소설리스트

엔진과 기사-30화 (30/50)

〈 30화 〉 새로운 아카이브를 향해

* * *

“찌르르르르르릉!”

“찌르르르르르릉!”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사람이 아닌 수호자였다.

부스스 일어난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천천히 작동을 시작한 커티스는 콕핏트가 있는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야, 일어나. 피곤한 건 아는데 시간이 다 됐다고.》

커티스의 가슴 속에서 울리는 자명종은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멎었고, 매번 커티스가 낼법한 늘어지는 하품소리와 함께 리암이 일어났다.

“뭐야, 벌써? 체감으로는 이제 반 정도 온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할까? 지금까지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어서 너 죽은 지 알았어. 그동안 편히 쉬었으니까 별 문제는 없었지만.》

“걱정해줘서 참 고맙네. 기사가 죽은 것 같은데 편히 쉬었다는 말 잘 들었어.”

서로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서로 반응이 없어 조금 어색한 시간이 지나고 난 뒤 커티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희미한 조명이 내부를 밝히는 격납고 안에는 스펜서와 발레리안 또한 늘어져있었고, 아직 서로 잠이 덜 깬 것인지 살짝 비틀거린 커디스는 발레리안의 콕핏트가 있는 가슴을 두드렸다.

《ㅁ.....머에여! 무슨 이리에여! 크니리라도 나써여?!》

화들짝 놀란 발레리안은 허겁지겁 자신의 방패를 찾아 주변을 찾았다.

그 덕분에 레티시아가 일어난 것인지 어쩔 줄 몰라 하던 발레리안이 순식간에 진정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도차캐써여? 생각보다 가까웠네여?》

《그건 아직 모르지.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건 이 녀석 뿐인데.......》

커티스가 고개를 돌려 아직도 늘어진 스펜서는 바라보고 있으니 발레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누나도 이거는 어렵게따고 하네여......》

《일단은 아서부터 깨워봐. 둘이서 잡고 있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한숨을 쉰 커티스의 지시를 듣기라도 한 것인지 아서의 기체에 불이 들어오며 천천히 기동하기 시작했다.

작게 하품소리를 낸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몸에 있는 장갑들을 가볍게 여닫았다.

추가 장비를 착용할 곳이 많은 아서의 특성상 장갑을 여닫고 있으니 전신이 요동쳤고,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아서는 자신을 바라보는 둘을 마주보았다.

《그래서 도착한 거야? 사일러스는 아예 푹 잘 생각이었는지 알람도 안 켜뒀던데.》

《몰라, 그건 이 녀석이 알고 있거든.》

커티스가 누워있는 스펜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 아서는 못 볼 것을 본 것 마냥 시선이 튕겨 나왔다.

《나는 안 깨울 거야. 저 녀석을 깨웠다가 무슨 일을 겪을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저 자식 팔이나 붙잡고 있어봐. 깨우는 건 내가 깨울 테니까.》

리암은 둘에게 서있을 자리를 손짓하며 심호흡을 했다.

그러나 커티스 안의 리암이 심호흡을 마치기도 전에 스펜서는 자리에서 발사되는 것처럼 튀어 올라, 천장에 매달렸다.

《순간의 열기를 빨아들인다!》

갑작스런 스펜서의 반응에 커티스가 움찔거렸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한 것인지 차분히 어깨를 으쓱였다.

《뭐, 이정도면 생각보다 심각하지는 않네.》

천장에 매달려 주변을 둘러본 스펜서는 바닥으로 내려와 자세를 낮췄고, 가슴의 콕핏트가 열리며 조명을 착용한 에라실이 기지개를 켜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망할 이럴 때만 시간이 더럽게 빠르다니까. 로샨에서 경계 설 때는 더럽게 안가더니.”

《그래서 지금 위치는 어디쯤이지?》

“기다려. 나도 방금 깨서 정신없으니까.”

투덜거리는 에라실은 대충 계기판을 훑어보고는 스펜서로 돌아가 다시 가슴에 기계팔을 연결했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 나서야 에라실은 슬며시 비행선의 조종간을 돌렸고, 인내심이 바닥난 레티시아가 먼저 발레리안에서 내려왔다.

“그래서 얼마나 남은 거야?”

레티시아의 질문에도 에라실은 계기판만 바라보며 입만 움직였다.

“거의 다 도착한 것 같아. 아직 밤이니까 먼저 발레리안에 들어가 있어.”

“걱정 되서 그러는 거야. 조명이 약해서 언제 뭐가 나올 줄 모르니까.”

느긋한 에라실과 달리 레티시아는 한 손에는 권총을 들고 주변을 경계했고, 이를 본 커티스가 슬며시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걱정되면 우리가 먼저 살펴보고 올게. 에라실, 격납고 문 좀 열어줘.》

여전히 하품이 섞인 커티스가 문을 두드리자 에라실은 무심하게 레버를 잡아당겼고, 그와 함께 싸늘한 바람이 격납고 안으로 밀려들었다.

안쪽으로 어둠이 밀려들기 전, 가볍게 몸을 푼 커티스는 도움닫기와 함께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완전히 몸으로 떨어지기 전, 문을 붙잡은 커티스는 그대로 비행선의 위쪽으로 뛰어올랐고 자연스럽게 팔에 연결된 거포를 펼치며 저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두부의 장갑을 전개시켜 스코프를 꺼낸 리암은 주변을 살펴보다 입을 열었다.

“일단 내 눈에 뭔가 보이는 건 없는 것 같은데. 네 눈에는 뭔가 보여?”

리암이 묻자 한참 지나고 나서야 커티스는 늘어지는 하품과 함께 대답을 꺼냈다.

《몰라. 나도 어둠 말고는 보이는 게 없거든. 조금 이상한 게 있다면 이쪽.》

그와 함께 커티스의 고개가 살짝 움직이며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여전히 보이는 것이라곤 어둠밖에 없으니 리암은 살짝 인상을 구겼다.

“지금 장난치자는 건 아니겠지?”

《내가 언제는 장난 친 것처럼 말하네. 기다려 봐, 줌을 좀 낮춰 볼 테니까.》

커티스는 손으로 머리에서 연장된 스코프를 손으로 직접 조작했고, 그와 함께 리암 시야 중앙에 있는 조준선 점차 작아지며 조금씩 시야가 넓어졌다.

여전히 어둠이 짙게 끼어있어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찌푸린 리암의 눈에는 이질적인 점이 희미하게 보였다.

“혹시 저기 말 한 거냐? 다른 곳보다 더 어둠이 짙게 깔린 부분?”

《그래. 거기가 아이샤가 언급했던 아카이브가 있는 방향이야. 뭔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앞에 보이는 어둠을 지긋이 응시한 리암은 짙은 어둠을 향해 포구를 들이밀었다.

“일단은 탄부터 준비해 둬. 지금은 뭐 아는 것도 없으니 에라실이 뭔가 움직이면 따라 움직일 거야.”

《기다릴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그러나 리암이 대답을 끝마치기도 전, 비행선의 문이 열리며 스펜서가 밖으로 뛰어내렸고 갑작스런 중량 감소에 비행선이 크게 흔들렸다.

《맞는 것 같아.》

스펜서가 뛰어내리며 잡아당긴 닻이 땅에 닿기 전, 스코프를 집어넣은 리암은 조심스럽게 비행선의 위에서 미끄러지며 뛰어내렸다.

커티스가 지면에 착지하기가 무섭게 비행선에서 발레리안과 아서가 뛰어내렸고, 어둠마저도 몰아낼 것 같은 둔중한 충격과 함께 지면에 착지했다.

셋의 상태를 확인한 리암은 다시 스코프를 꺼내고 어둠을 지긋이 노려보았다.

“커티스, 조명탄 좀 부탁해.”

《이미 약실에 있으니까 쏘기만 해. 주변에 불멸자도 없는 것 같으니 난 좀 쉰다.》

약간 성의 없는 대답과 함께 커티스가 노골적으로 코고는 소리를 내니 리암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포구를 위로 올렸다.

청명한 소리와 함께 위로 발사된 조명탄이 폭발하니 수호자의 장갑마저 검게 물들일 것 같이 짙은 어둠이 흩어졌다.

어둠이 사라지니 그 속에서 나타난 수천 구의 불사자가 수호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세 수호자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시선이 사로잡혀 장갑을 두드리는 불사자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과장된 코고는 소리를 내던 커티스도 소리 내는 것을 멈췄다.

금방이라도 날뛸 것 같던 스펜서도 미동도 없이 그저 눈앞의 광경을 바라 볼 뿐이었다.

《저거....... 머져......?》

처음으로 침묵을 깬 건 발레리안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조명탄의 붉은 빛에 비친 구조물은 마치 어둠이 응축된 것처럼 짙은 검은색을 자랑하고 있었다.

30m가 넘는 뾰족한 원뿔 모양의 구조물의 표면은 수면처럼 요동치며 어떠한 빛도 반사하지 않았고, 껍질과 같이 보이는 조각들이 드문드문 표면을 맴돌 뿐이었다.

이전 안톤이 있던 아카이브에도 비슷한 원뿔이 있었으니,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카이브라는 것은 어림짐작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정확히 대답할 수 없었다.

평소라면 저런 곳에 가장 뛰어들 스펜서마저도 쉽사리 발을 옮기지 못하니 방패를 고쳐든 발레리안이 한 발 앞서 나왔다.

《일다는 제가 앞장설게여. 누나도 그러게따고 하고, 제가 제일 튼튼하니까여.》

《차갑고 매캐하다! 뜨거운 냄새가 난다!》

한참동안 원뿔을 노려보던 스펜서는 먼저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발레리안의 말에 양팔로 땅을 짚고 엎드려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참동안 지켜보던 아서는 불만스럽게 팔짱을 끼었다.

《그래서 다들 어쩌자는 거야? 이대로 지켜만 볼 수는 없잖아. 언제 빛에 자극된 불멸자가 달려올 줄 모른다고.》

한참동안 이어진 침묵을 깬 것은 한숨인지 하품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소리를 낸 커티스였다.

《이렇게 되었다면 일단 정공법으로 가야지. 스펜서하고 아서가 입구를 찾으면 발레리안이 선두로 진입. 나는 화력지원과 주변 경계. 혹시 다른 좋은 생각 있다면 지금 말해.》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스펜서를 제외한다면 커티스의 계획에 이견이 있는 것 같이 보이진 않았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로 이동하고 있는 와중에도 스펜서가 움직이지 않으니 작게 투덜거리는 아서가 다가갔다.

그러나 그런 아서의 앞에 불기둥이 솟구쳤다.

다들 때마침 아이샤가 도착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불기둥이 사라진 자리에는 불타는 옷감이 펄럭이는 아리아드네가 담뱃대를 물고 있었다.

아리아드네가 담뱃대를 빨아들이며 손가락을 튕기자 아서의 전신에 문자가 새겨지며 자세 그대로 멈췄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이상은 허락하지 않겠어.”

《너야말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아리아드네? 그보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그야 너희가 의심 되서 위치를 쫓았으니까. 제때 나와서 다행인 것 같네. 아이샤는 지금 여기 없는 건가?”

아리아드네가 앞길을 막아서자 커티스는 곧바로 포구를 내려 아리아드네를 노렸다.

《집어치우고 본론부터 말해. 우리를 막는 이유는 뭐야?》

“너희들 아카이브를 열 생각이잖아. 그렇게 마구잡이로 아카이브를 열었다가 밤이 시작된 걸 모르는 거야?”

허공을 계단삼아 걸어 올라온 아리아드네는 커티스의 눈높이까지 올라와 수호자들을 둘러보았다.

“아카이브는 단순한 보물 창고가 아니야. 재앙이 잠들어있는 감옥이기도 하지. 그런데 그걸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무런 대비도 없이 열겠다고?”

《그치만..........》

발레리안이 말꼬리를 흐리자 아리아드네는 눈을 돌려 발레리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렇지만 뭐? 너희가 뭘 할 수 있는데? 포기하고 돌아가. 우리도 너희보다 더 아카이브가 필요하지만 이유가 있어서 손대지 않고 있는 거야.”

커티스는 여전히 아리아드네를 향해 포를 겨누고 있었지만 아직도 발포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스펜서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다 바닥에 엎드린 스펜서의 피스톤이 압축되는 것을 보곤 천천히 포를 내렸다.

《다들 비행선으로 철수하자. 위험부담이 너무 크기도 하고, 아군과 싸우는 것은 사양하고 싶으니까.》

《커티스! 무슨 소리를 하는거에여! 이거 말고는 방버비업다고 햇짜나여!》

흥분한 발레리안이 소리를 질렀지만, 커티스는 마음을 굳힌 것인지 대답 없이 닻과 연결된 사슬을 붙잡았다.

그런 커티스를 막기 위해 발레리안이 움직였지만, 아서가 그런 발레리안을 붙잡았다.

《난 약간 찬성하긴 하는데. 우리가 볼 수 있는 이득도 확실하지 않은데 세계 수준의 위험을 부담하기는 어렵잖아. 게다가 저번 싸움 이후로 사일러스의 몸도 다 회복되지 않았다고.》

그러는 와중 몸을 움찔거리던 스펜서가 어둠 속으로 뛰어 들었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 사슬에 다리를 감아 몸을 고정한 커티스는 포구를 펼치며 몸을 뒤로 젖혔다.

《입구를 뚫을 거니까 다들 정신 바짝 차려! 뭐가 나오든 우리가 여기서 막는다!》

“뭣......!”

당황한 아리아드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도 전, 커티스의 포구에서 굉음과 함께 어둠을 찢는 섬광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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