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진과 기사-33화 (33/50)

〈 33화 〉 등가 교환 ­ 2

* * *

사일러스가 돌아오자 샤하나즈 쪽의 수술은 끝난 것인지 에라실이 용접기를 들고 안톤이 잘라냈던 부분을 닫고 접합시키는 중이었다.

입가에 풀 조각이나 침이 흥건하고 간간히 으르렁거렸지만, 용접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심장을 이식하는 쪽에서도 안톤이 황동으로 만든 확대경을 쓰곤 리암과 함께 혈관을 하나하나 꿰매는 중이었다.

“그래서 샤하나즈 상태는 어때요?”

사싱러스가 묻자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레티시아는 의식이 없는 샤하나즈의 손을 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실한 건 하나도 없어. 샤하나즈가 깨어날 수 있을지, 깨더라도 우리가 아는 그 샤하나즈가 맞을지도....... 지금은 아무것도 몰라.”

용접을 마친 에라실은 용접기를 한쪽으로 집어 던지곤 샤하나즈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댔고, 살짝 어두워진 표정으로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샤는 수술에서 눈을 돌리곤 샤하나즈의 주변에 모인 이들을 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저기..... 이제 정지를 풀까요? 지금이면 샤하나즈는 괜찮을 거 에요.”

그러나 그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고,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꽉 쥔 손에 입을 맞춘 레티시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씨발 멈춰! 아직 하지 말라고!”

레티시아의 끄덕임에 손을 내리려던 아이샤는 화들짝 놀라 손을 다시 치켜들었다.

소리 지른 안톤은 여전히 샤하나즈의 심장과 시신의 혈관을 연결하는 중이었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크고 명확했다.

“그 새끼는 자신이 수호자라면 얘가 자신의 기사라고 했어! 아직 기사가 준비가 안 됐는데 뭔 수호자를 가동 시키려는 거야? 둘 다 죽이고 싶어?”

“그.... 그렇지만......”

“아직 안 끝난다고 씨발것아! 네 좆대로 할 생각 말라고!”

물론 말만 하고 끝낼 생각은 아니었는지 바느질을 이어가는 안톤의 손은 조금 더 바빠져 갔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살짝 손을 떠는 안톤은 바늘을 잡은 핀셋을 한쪽으로 내려놓았고, 피가 흥건한 손을 대신해 팔뚝으로 눈가의 땀을 닦았다.

“혈관은 다 이어놨으니까 일단 좀 닫아봐. 지금 할 말이 있으니까.”

손에 묻은 피를 대강 털고, 풀에 닦은 안톤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크게 한 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 밖에 있는 수호자를 전부 가져와. 별로 좋지 않은 느낌이 들어.”

발레리안, 아서, 스펜서 그리고 마무리를 끝내 조금 늦은 리암의 커티스까지.

각자의 수호자에 탑승한 이들은 에라실을 제외하면 모두 콕핏트를 연 상태로 안톤을 내려다보았고, 안톤은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목소리를 높였다.

“잘 들어! 이제 곳 아이샤가 샤하나즈의 정지를 풀 거다. 100% 확신 할 수는 없지만, 높은 확률로 샤하나즈가 날 뛸 거야.”

“《그럴 것이라는 이유는?》”

리암과 커티스가 동시에 묻자 안톤은 아직도 누워있는 샤하나즈와 아이의 시체를 번갈아 훑어보았다.

“이전까지 샤하나즈는 완벽한 수호자나 다름이 없었어. 그런데 지금, 아무리 본인이 원했다지만 우리는 그 수호자의 안에서 기사를 억지로 분리해냈고. 이제 그 수호자를 깨울 거라고. 이제 좀 이해가 돼?”

“《그러면 우리의 목적은 어떻게 되는거지?》”

“나하고 그 뭐냐. 너희 이름이 뭐였지?”

장황하게 말을 이어가던 안톤은 아이샤와 아리아드네를 돌아보곤 잠시 말이 막혔고 잠자코 대화를 듣고 있던 아리아드네가 식은땀을 흘리는 아이샤를 대신해 대답했다.

“아이샤 페이루즈, 아리아드네 페레슈테.”

“그래, 아무튼. 아이샤하고 아리아드네 쟤네하고 내가 이 녀석의 소생시도를 할 거야. 의미 없는 일 일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샤하나즈가 티페레트와 세피로트의 나무를 제어할 수 있을 때 까지는 너희가 막아야 할 거야.”

“그것보다 아리아드네가 샤하나즈를 막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 아카이브 안에서는 거의 신이나 다름이 없잖아.”

《시가늘 멈출 수 이쓰니까 싸울 피료도 업고, 다칠 릴도 업자나여?》

발레리안과 레티시아가 지적하니 아리아드네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해. 어째서인지 저 녀석은 올드 원이 힘을 쓰는 걸 막을 수 있거든. 티페레트를 정지시켜서 막는 건 고사하고 내 안전도 장담할 수 없어.”

“그러면 소생시킨 뒤에 샤하나즈의 정지를 푸는 건?”

발레리안에 이어 레티시아도 거들었지만, 이번에는 안톤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싶은데, 상식적으로 시체에 산 심장을 넣었다고 살아나겠어? 우리가 말하는 소생이라는 건 샤하나즈가 말한 것처럼 샤하나즈의 기사였던 티페레트를 깨우는 거야. 그러기 위해선 샤하나즈가 정지한 상태면 안 돼. 둘은 완전히 연결된 상태니까.”

《쳇. 그럼 결국 우리가 짬처리를 해야 하는 거잖아. 사일러스가 너희 종인지 알아?》

“아서. 말조심해. 내 가족에 관련된 일이야.”

《딱히 틀린 말은 아니잖아.》

“.....지금은 다른 일이 급하니까 나중에 나랑 이야기 좀 해.”

만약 입이 있었다면 삐쭉 튀어나왔을 법한 목소리의 아서를 다그친 사일러스는 콕핏트를 닫았고, 이에 맞춰 다른 이들도 콕핏트를 닫고 각자 무장을 꺼냈다.

안톤은 가슴을 봉합한 아이를 안아들곤 4기의 수호자를 올려다보았다.

“다들 준비 됐겠지? 아무리 적대적이라도 너희 가족이라는 건 잊지 말고.”

안톤이 턱으로 숲을 가리키자 지팡이를 짚은 아리아드네가 일어나 먼저 숲 속으로 향했다.

“우리가 충분히 거리를 벌리면 아리아드네가 신호를 줄 거야. 그때 정지를 풀어.”

식은땀을 흘리는 아이샤는 창백한 머리를 끄덕였고, 이를 확인한 안톤도 아이의 시체를 안고는 아리아드네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공중에 맴도는 침묵이 어색해질 정도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이샤가 고개를 들었고, 수호자들에게서 증기가 살짝 뿜어져 나왔다.

“다들 준비 됐지?”

모두를 훑어본 아이샤는 샤하나즈에게서 손을 치우는 동시에 불기둥과 함께 사라졌다.

아이샤가 사라진 순간 모두가 살짝 움츠려들었지만, 이내 아무런 반응이 없자 방패를 내려놓은 발레리안이 가장 먼저 다다가 몸을 낮췄다.

그러고도 반응이 여전히 없으니 레티시아는 콕핏트까지 열어 샤하나즈와 거리를 좁혔다.

“샤하나즈? 정신이 들어? 괜찮은 거지? 그렇지?”

거의 엎드리는 수준으로 발레리안의 몸을 낮춘 레티시아는 샤하나즈에게 손을 뻗었지만, 그의 뒤를 스펜서가 잡아 끌어냈다.

《피해.》

“스펜서?”

평소의 이성과 거리가 목소리가 아닌, 또렷하고 의미를 가지는 스펜서의 문장에 모두가 놀라기도 전 샤하나즈의 전신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누가 반응하기도 전, 수호자가 그 자리에 강하했다.

칠흑의 장갑을 가지고, 피스톤과 관절이 그대로 드러나 직선적인 모두와 다르게 여성적인 곡선을 자랑하는 기체는 푸른 증기를 내뿜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하나즈? 정신이 들어......?”

아직도 콕핏트를 연 레티시아가 소리 질렀지만, 티페레트는 반응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괜찮은거지? 그렇지? 들리면 대답을......”

레티시아가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들리지 않는지 전신이 푸르게 달아오른 샤하나즈는 그대로 발레리안에게 달려들었다.

《누나도 정신 차려! 지금 샤하나즈는 샤하나즈가 아닐 거라고!》

그런 샤하나즈의 앞을 전신이 희붉게 달아오른 스펜서가 막아섰고, 그 사이 발레리안은 콕핏트를 닫고 다시 방패를 집어 들었다.

《스펜서, 너 언제부터 말 할 수 있었어?》

《그건 나중에! 지금은 샤하나즈를 어떻게 막을지 생각하라고!》

정면에서는 출력이 밀리는 것인지 간신히 버티는 스펜서는 천천히 뒤로 밀려 나갔다.

《미아내요!》

샤하나즈가 손을 손목 안쪽으로 집어넣고 푸르게 달아오른 검을 꺼내니 먼저 사과를 꺼낸 발레리안이 샤하나즈를 방패로 후려쳤다.

잠시 자세가 무너졌지만, 바닥을 검으로 찍은 샤하나즈는 순식간에 자세를 바로잡았다.

《내놔! 티페레트를 내놓으라고! 내게서 뺐어가지 마!》

《정신 차려! 지금 우린 적이 아니라고!》

샤하나즈가 다시 자세를 잡자 발레리안이 먼저 달려가 방패로 후려치려 했지만, 방패 한가운데 검을 박아 넣은 샤하나즈는 지면을 단단히 딛고 버텨냈다.

그대로 힘싸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지만, 샤하나즈는 다시 검을 팔뚝 안으로 격납했고 그와 함께 반대쪽 팔꿈치에는 피스톤이 돋아났다.

《방해 하지 마!》

발레리안이 다시 방패를 휘두르기 전, 샤하나즈가 먼저 피스톤이 돋아난 팔을 휘둘렀고 주먹이 방패에 닿는 동시에 피스톤이 수축하며 2차 충격을 가했다.

방패에는 어떠한 이상도 없었지만 방패를 관통하는 충격으로 인해 발레리안은 크게 휘청거렸고, 다시 피스톤을 뒤로 당긴 샤하나즈는 발레리안의 가슴 안 쪽으로 파고들었다.

샤하나즈의 주먹이 발레리안의 흉갑을 파고들기 전, 커티스가 발사한 사슬이 샤하나즈에 팔에 감겼다.

《정신 차리라고 좀! 가족도 못 알아보는 거야?》

커티스는 샤하나즈를 멈춰 세우기 위해 사슬을 잡아 당겼지만, 팔이 당겨지자 샤하나즈의 손이 갈라지며 그 사이에서 포신이 튀어 나왔다.

사선이나 다름없는 그 사슬을 아서가 절단하며 샤하나즈의 조준이 흐트러졌고, 그 사이 스펜서가 샤하나즈의 안쪽으로 파고들며 어깨로 그를 쳐냈다.

그렇게 밀쳐낸 샤하나즈를 뒤에서 대기하던 발레리안이 방패로 다시 후려쳤고, 비틀거리는 샤하나즈를 또 다시 스펜서가 덮쳤다.

《좀 아플지도 모른다!》

스펜서가 뒤를 잡아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니 커티스가 주먹으로 샤하나즈의 안면을 정면으로 가격했고, 부서진 장갑 파편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 아서의 후속타가 이어졌다.

두 수호자의 타격이 이어질 때 마다, 샤하나즈의 안면 장갑이 조금씩 깎여나갔고 마지막으로 스펜서가 살짝 빠지자 발레리안이 있는 힘껏 방패를 앞세워 몸을 부딪쳤다.

《진짜로 미아내요!》

그러나 방패에 밀려나 공중으로 날려진 샤하나즈는 허공을 딛고 자세를 잡아 발레리안을 조준했다.

《거기 조심......》

가장 먼저 발견한 커티스는 곧바로 발레리안을 밀쳐내기 위해 움직였지만, 포성과 함께 철갑탄이 샤하나즈의 어깨를 꿰뚫어 오른팔이 떨어져 나갔다.

《아서! 미쳤어? 지금 뭐하는 거야!》

처음부터 발포 할 생각이었는지, 애당초 공중을 조준하던 아서는 커티스의 목소리를 무시하곤 차탄을 발사했다.

오른팔이 떨어져나가 중심을 잃은 샤하나즈에게 발사된 철갑탄은 하복부를 관통했고, 이마저도 모자랐는지 아서는 약실에 차탄을 장전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차탄이 발사되기 전, 발레리안이 달려와 아서의 포신을 발로 밟았고 커티스가 아서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도록 제압했다.

《우리 목적은 샤하나즈를 막는 거지, 죽이는 게 아니야! 지금 뭐하는 거냐고!》

《먼저 죽이려고 하는데 그딴 식으로 나오는 게 문제지! 어차피 저 녀석은 안에 비어 있잖아! 그러다 우리가 다치면 어쩌려고? 어?》

《둘 다 일어나지 않는 게 우리 목적이잖아! 대체 왜 그러는 건데!》

《그만 둬. 지금 더 심각한.....냄새가.....나니까........》

한데 뭉친 이들이 말다툼을 하는 중, 두 팔로 땅을 짚고 몸을 떠는 스펜서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체에 심각한 손상 감지. 비상 프로토콜에 따라 기능 잠금을 자체적으로 해제합니다.》

쓰러진 샤하나즈의 등에선 금속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났고, 나무에서 뻗어 나온 뿌리는 샤하나즈를 고치처럼 감쌌다.

《세피로트의 나무를 전개, 현재 위험 등급에 따른 무장을 출력합니다.》

아카이브의 내부에서 자라난 거대한 금속 거목을 앞에 두고 두 팔로 땅을 짚은 스펜서는 고통스럽게 으르렁거리며 몸을 비틀었고, 이내 평소처럼 괴성을 지르며 증기를 뿜어냈다.

《똑같은 냄새! 진짜 냄새! 끈적거리는 비릿함!》

가장 먼저 그 뜻을 알아들은 커티스는 아서를 나무라는 것을 멈추고 포신을 꺼내 탄을 장전했다.

《커티스? 지금 머하는 거에여?! 방금까지 주기는 게 아니라 막는 거라면서여!》

그런 커티스의 행동에 놀란 발레리안이 물었지만, 커티스는 아서를 누른 그를 밀어내며 자신의 무장을 점검했다.

《상황이 바뀌었으니까 너도 무기를 꺼내. 방금까지는 다치게 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상황이 아니야.》

《내가 뭐랬어?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랬잖아?》

《닥쳐.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걸지도 모르니까. 호드와 싸웠을 때를 벌써 잊은 거야? 세피로트의 나무가 언제부터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아?》

《전투 불능이 된 시점.......》

그 기억을 떠올린 것인지 아서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금속으로 만들어진 거목을 바라보았다.

《설마..... 아니겠지?》

《그 설마가 맞아.》

《흉곽을 뜯어내고 부품을 쏟아낸다!》

지금의 상황을 믿지 못하는 아서와는 달리 스펜서는 이미 전신을 희붉게 달구곤 전투를 준비했고, 발레리안 또한 방패를 조금 더 치켜들었다.

그리고 고치가 천천히 열리며, 고치를 이루던 뿌리들이 관통된 샤하나즈의 하복부를 천천히 채워나갔다.

이미 팔이 부서진 오른쪽은 물론, 멀쩡한 왼쪽 팔도 몸에서 분리되어 나무에서 자라난 새로운 팔이 장착되었다.

나무의 껍질 전신으로 타고 내려 한 층의 새로운 장갑으로 변형되었고, 매끄러운 심재는 세로로 사등분 되고 각 위치에 관절이 생겨나며 신장보다 긴 보조 팔이 되었다.

새롭게 교체된 오른팔은 손바닥의 중앙이 갈라지며 검지와 중지, 약지와 소지, 그리고 넓게 변형된 엄지가 새롭게 만들어진 포구를 덮개와 같이 감쌌다.

반대로 조금 더 장갑이 두꺼웠던 왼팔은 팔뚝에 점점 장갑이 모이며 작은 원형 방패를 만들어 냈다.

《무장 출력 완료. 적대 수호자에 대한 응전을 시작합니다.》

티페레트의 목소리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샤하나즈의 목소리는 모두의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그리고 문장이 끝나는 동시, 숙인 고개를 들어 모두와 눈을 마주친 샤하나즈가 기동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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