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등가 교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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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덩이 창자! 뜨거운 부품!》
아서를 노리는 샤하나즈를 가장 먼저 막아선 건 스펜서였다.
이미 있는 대로 전신이 달아오른 스펜서는 샤하나즈가 기동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를 덮쳤고, 샤하나즈는 이런 스펜서를 정면에서 받아내 양 손을 붙잡았다.
스펜서 외형의 특징으로 인해 서로 손을 맞대고 있었음에도 서로 힘을 겨루는 둘은 스펜서가 아래에서 밀어내는 그림이었고, 스펜서의 선공으로 제대로 자신을 지지할 지면을 확보하지 못한 샤하나즈는 체중을 실지 못해 점차 밀려났다.
그런 샤하나즈가 제대로 체중을 실기 위해 한쪽 발을 뒤로 내딛으려는 순간 스펜서의 다리가 용수철처럼 펼쳐지며 장갑이 전개되어 내장된 90mm포가 드러났다.
발포의 반동까지 이용한 스펜서가 중심을 이동하는 동안 밀쳐내니 샤하나즈는 뒤로 넘어가기 직전까지 밀려났고, 이 반동으로 공중에 튀어 오른 스펜서는 그대로 다리에 장착된 90mm포를 샤하나즈에게 겨눴다.
《격통! 크랭크를 찢는 고통!》
“커티스! 고폭철갑소이탄 준비해!”
《이미 장전한지 오래야!》
샤하나즈가 잠시 무방비가 된 틈을 타 커티스 또한 120mm포를 샤하나즈에게 겨눴고, 스펜서의 발포에 맞춰 방아쇠를 당겼다.
거의 동시에 이뤄진 착탄과 함께 폭발이 일어나며, 폭연과 함께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리암이 전하는 내용이야! 이제 제압한다는 생각은 버리라고! 진짜 죽일 생각으로 싸워야 간신히 막을 수 있을 거니까 실탄이고 뭐고 전부 사용해!》
《저....정마리에여?》
머뭇거리는 발레리안과 달리 커티스는 망설임 없이 차탄을 장전하며 거리를 조금 더 벌렸다.
《어차피 세피로트의 나무는 뚫을 수도 없어! 그 나무가 뭘 할 수 있는지는 호드하고 싸우면서 봤잖아!》
그럼에도 발레리안은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손을 천공기로 변형 시키곤 방패를 앞세워 불길 속으로 뛰어 들었다.
《진짜로 미아내요!》
방패와 샤하나즈가 충돌하는 것이 느껴지자마자 발레리안은 사과와 함께 곧바로 천공기를 처박았다.
그러나 천공기의 피스톤이 발사되는 소리 대신, 증기를 내뿜는 소리와 함께 발레리안이 불길의 밖으로 튕겨져 나와 지면에 나뒹굴었다.
그리고 대기를 울리는 충격과 함께 불길이 모두 사라지며 방패를 치켜든 샤하나즈가 모습을 드러냈다.
《충격 전환 완료. 충격 축적기 부하율 14.91%. 전투를 속행합니다.》
방패를 내린 샤하나즈가 오른팔을 치켜들자 바닥에 나뒹굴었던 발레리안이 일어나 모두의 앞으로 나와 방패를 땅에 박았다.
《제 뒤로 피해여!》
발레리안의 다급한 목소리의 울림이 끝나기도 전, 샤하나즈의 포구에서 푸른 섬광이 번쩍였고 온 몸으로 방패를 지탱하던 발레리안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방패에서 튕겨져 나왔다.
지금까지 압도적인 중량으로 인해 한 번도 타의로 인해 지면에서 발이 떨어져 본 적이 없었지만 발레리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일어나 방패를 잡았다.
발레리안이 앞에서 샤하나즈의 포격을 막고 있으니 샤하나즈의 사각을 노리기 위해 스펜서와 아서가 옆으로 빠져 나왔고, 샤하나즈가 이들에게 시선을 돌릴 수 없도록 발레리안은 착실히 한 걸음씩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발레리안의 팔이 샤하나즈에게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거리를 좁힌 순간 침착하게 조준을 이어가던 커티스의 포신이 불을 뿜었다.
150mm 강장 철갑탄이 샤하나즈의 오른팔을 뜯어내자 발레리안은 방패를 내려놓고 천공기를 다시 치켜들었다.
《정신 차려여!》
발레리안이 정면에서 천공기를 처박으려하자 이번에는 샤하나즈가 방패를 치켜들었지만, 그와 함께 사각에서 스펜서가 튀어 나왔다.
방패를 든 자신의 팔을 노리고 사슬톱을 회전시키는 스펜서를 피해 샤하나즈가 공중으로 뛰자 이미 다리를 변형해 지지대를 만들어 전신을 고정 포대로 삼은 아서가 그를 조준하고 있었다.
《이거나 처먹으라고!》
아서가 거의 전신에서 불을 뿜자 공중으로 뛰어오른 샤하나즈의 장갑이 기관포에 천천히 갈려나갔고, 철갑탄을 이용한 커티스의 지원 사격까지 이어지자 공중에선 부품의 비가 흩뿌려졌다.
《좀 시만거 아니.....》
그러나 발레리안의 걱정이 무색하게 공중에서 파편들을 쏟아냈던 샤하나즈는 땅에 착지하기도 전, 뜯겨나간 오른팔을 포함해 전신이 수복되어 있었다.
《그딴 걱정할 시간 없어! 앚기 한참 멀었어!》
《급속 자가 수복 “불멸 프로토콜” 종료. 전투를 재개합니다.》
여전히 공중에 떠있는 샤하나즈는 오른팔을 방패의 아래로 집어넣었고, 푸르게 빛나는 방패의 빛은 순식간에 오른팔의 포신으로 옮겨갔다.
눈의 통각을 자극할 정도로 응축된 빛은 샤하나즈가 종아리의 배기구에서 증기를 분사하며 몸을 회전시키자 눈부신 빛은 채찍과 같이 4기의 수호자를 모두 휘갈겼다.
그 충격으로 장갑이 찌그러지고 뼈대가 찌그러진 것도 모자라 채찍이 할퀸 궤적은 맹렬하게 폭발하며 부서진 장갑을 파고들었다.
샤하나즈가 전신을 몇 번 회전시켜 4기의 수호자는 물론 아카이브의 천장과 벽에도 궤적이 남았고, 절대로 깨질 것 같지 않은 아카이브의 내부마저도 부서져 파편이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그런 심각한 손상 속에서도 발레리안은 다시 일어나 방패를 집어 들었다.
《정신.....차려여....... 누나도.....걱정한단 마리에여.......》
거의 방패에 기대 간신히 서있는 발레리안은 쓰러진 다른 전대원을 지키기 위해 샤하나즈에게 다가갔지만, 그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지 샤하나즈는 오른팔로 그런 발레리안의 가슴을 가격했다.
천공기에 맞은 것처럼 흉부 장갑이 찌그러지며 발레리안은 뒤로 나뒹굴었다.
그런 발레리안의 가슴을 밟은 샤하나즈는 발레리안의 머리에 오른손을 가져다 댔다.
《충격 축적기 부하율 5.24% 전투를.......》
허나 점점 푸른빛이 밝아지는 오른팔과 달리 샤하나즈의 목소리에는 머뭇거림이 끼어들었다.
《샤하나즈......?》
《속행....... 속행........ 전투를 속행........》
《샤하나즈...... 제발..... 그러지 마......》
《전투를 속행........ 전투를........》
《쓴 맛.....광기......》
《적대적 수호자...... 전투를.......속행......합니다......》
《제발...... 이러지 말라고...》
《전투를....... 전투를........》
말을 흐리던 샤하나즈는 발레리안의 머리에 가져다 댔던 오른팔을 자신의 가슴에 처박았다.
그렇게 폭발과 함께 가슴에 공허한 구멍이 뚫리며 빛을 잃은 샤하나즈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