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거미줄 2
* * *
궤도가 틀어지자 샤하나즈는 순간적으로 자세를 바꾸며, 배기구에서 증기를 뿜어 틀어진 방향을 바로 잡았다.
틀어지는 궤도에 대처하지 못하고 아무 곳으로 튕겨 나갔던 이전과 달리 샤하나즈의 궤도는 거의 직선에 가까웠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동 속도 또한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강제로 궤도를 직선으로 비틀며 앞으로 나아가니 얼마 가지 않아 공간의 틈에 다리를 놓고 기동을 정지한 거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 거미를 자극하지 않도록 능숙하게 몸을 180도 회전시킨 샤하나즈는 몸을 천천히 감속시키며 허공에 부유한 수호자의 잔해에 착지했다.
아무리 감속했다 한들, 샤하나즈가 수호자와 닿는 순간 녹슨 장갑이 바스러졌고 덕분에 한층 더 불안정해진 표면에 샤하나즈는 더욱 힘을 주며 부서진 장갑 안의 뼈대를 붙잡았다.
“이제 저걸 어떻게 죽이는 지가 문제인데......”
멀리서 봤을 때도 가늠이 안 될 정도로 거대한 크기였는데, 자신이 착지한 수호자마저도 하찮은 크기로 보일 정도로 압도적인 체구를 자랑했다.
외부에서 물리적인 힘으로 파괴하는 것은 커티스 수준의 화력이나 발레리안 수준의 출력, 혹은 적정 장비를 착용한 아서 수준의 돌파력이 필요해 보였고, 내부에서 외부로 파괴하는 것은 스펜서 수준의 반응속도와 직감이 없다면 불가능해 보였다.
물론 티페레트와 세피로트의 나무가 있다면 그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지만,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타인을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뭘 고민하는 거냐. 그래서 다른 방법 있어? 없잖아. 애당초 이런 곳에서 별로 고민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조용히 자문자답을 마친 샤하나즈는 주머니를 뒤적여 이전에 주워왔던 조약돌을 꺼내 던졌다.
이 장소에서는 궤도가 틀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 그는 다시 한 번 웅크리며 크게 심호흡했다.
샤하나즈가 숨을 들이쉴 때 마다 연료를 펌프로 밀어 넣는 것처럼 장갑 아래에서 빛이 점점 밝게 맴돌았고, 장갑을 뜨겁게 달궜다.
희붉은 색을 넘어 푸른색이 보일 정도로 장갑이 달궈지자 고개를 든 샤하나즈는 희푸른 잔상만을 남기며 거미를 향해 뛰어들었고, 문자 그대로 포탄과 같이 일직선으로 날아간 샤하나즈는 그대로 거미의 장갑을 관통했다.
단순한 병기와 같은 외부와는 달리 내부에는 사람이 다니기 위해 만든 난간이 달린 발판과 계기판들이 즐비했다.
“대체 이건 뭐야?”
샤하나즈가 이런 광경에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는 사이 그가 외부 장갑을 관통한 충격으로 거미가 깨어난 것인지 내부에선 증기가 서서히 올라오며 피스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혼 재활성화.》
피스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며 크랭크를 회전시키는 소리에 맞춰 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침입자인가? 이거 참,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거지? 침입자마저도 반가울 줄이야.》
갑작스런 목소리에 당황한 샤하나즈는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래서 전쟁은 어떻게 된 건가? 누가 이겼지?》
“전쟁?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샤하나즈가 대답하자 약간의 흥분이 묻어나던 목소리는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짧은 침묵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말을 이어갔다.
《말도 안 될 정도로 긴 시간이 흐른 게 분명하군, 최소 400년 정도 말이야.》
“년? 처음 들어보는데?”
그러나 샤하나즈의 바로 옆 파이프에서 증기가 피식 새어나오며 목소리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이 몇 연도인지 물어보지 않은 게 다행이군. 내가 여기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밖이 정말 개판이 된 건 알 수 있겠어. 이렇게 기본적인 개념도 잊을 줄이야.》
작게 실소한 목소리를 따라 격렬하던 피스톤의 움직임이 조금 누그러졌고, 미친 듯이 흔들리던 계기판의 바늘도 조금씩 안정되었다.
“넌 대체 누구지?”
《페레슈테. 이 병기 아틀락을 만든 제작자 정도로만 해 두지.》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샤하나즈는 파이프들의 방향을 눈으로 훑으며 아틀락의 동력원을 찾아 파이프를 따라 조금씩 내부로 나아갔다.
신체가 수호자와 같이 변형되었지만, 아직도 감각은 남아있는 것인지 부품들 사이에서 뿜어 나오는 증기와 마찰열로 달궈진 공기에 샤하나즈는 본능적으로 코와 입을 손으로 가렸다.
《자, 그래서 침입자. 무슨 이유가 있어 아틀락에 침입한 것이지?》
“이 뭔지 모를 곳에서 나가야 하니까. 이 공간을 자유롭게 다니는 이거라면 뭔가 돌아갈 수 있는 실마리가 있을 것 같았거든.”
난잡하게 이어진 파이프들은 내부로 들어갈 때 마다 조금씩 합쳐지며, 수백, 수천 개의 파이프는 8개의 거대한 파이프로 합쳐져 마지막으로는 한 곳을 향해 모여들었다.
봉인된 것처럼 굳게 닫힌 문 앞에 선 샤하나즈는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미안하지만 도와줄 수 있겠어? 나는 여기서 꼭 나가야 하거든.”
《부탁하는 태도가 좀 불량하다고 생각하는데.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벌써부터 동력로에 도착했지 않나.》
“그만큼 급한 일이니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거든. 해야 할 일도 많고.”
샤하나즈는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지만, 동력로를 막은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러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고 페레슈테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서 나간다라. 별 것도 아니지. 어디까지나 이 공간도 아틀락과 함께 운용하기 위해 내가 만든 곳이니까.》
“강제로 침입한 건 지금이라도 사과할게. 그 말은 나갈 수 있는 것 맞지?”
《당연하지, 씨앗만 있다면 아틀락 전체를 이 공간 밖으로 내보내고도 남는다고.》
그와 동시에 조금 안정되었던 피스톤들이 순식간에 날뛰기 시작하며 지금까지 샤하나즈가 따라왔던 통로에 격벽이 내려왔다.
허나 씨앗이라는 말이 페레슈테의 문장에 포함된 순간부터 불길함을 느낀 샤하나즈는 곧바로 반대 방향으로 닫히는 격벽의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빠져 나왔다.
《이 공간의 에너지는 부족해! 이 공간의 모든 물체를 흡수해 동력으로 바꾼다고 해도 아틀락을 밖으로 내보낼 수는 없었지! 그런 공간에 네가 왔다! 그것도 그 증오스런 씨앗을 들고! 웃기지 않나! 나를 여기 처박은 놈이 직접 오다니 말이야!》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네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상관없어! 나는 너를 알거든! 이름을 가진 10기의 세피로트! 나시르가 만들어낸 걸작! 씨앗만 있다면 내 결과물은 나시르도 넘을 수 있다고!》
그와 동시에 파이프의 사이에서 날카로운 다리가 하나 비집고 나왔고, 이를 시작으로 이곳저곳에서 다리들이 비집고 나오며 작은 금속 거미들이 그 몸을 드러냈다.
《내가 정말로 방어 병력도 없이 너와 여유롭게 대화나 하고 있었을 것 같나?》
눈을 돌리지 않더라도 예리한 다리들이 철판을 두드리며 다가오는 소리는 선명하게 샤하나즈에게 전해졌다.
샤하나즈는 파이프를 따라 동력로로 향한 것과 같이 역으로 파이프가 뻗어나가는 방향을 훑어가며 자신이 진입한 방향의 반대로 빠져 나왔지만, 아무리 달려도 자신이 장갑을 뚫고 들어온 곳은 찾을 수 없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예리한 쇳소리를 피해 계속해서 달리는 중 갑작스런 진동과 함께 샤하나즈는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이건 또 뭔데.......”
연속적으로 이어져있던 통로는 샤하나즈의 바로 앞에서 끊겨 있었다.
마치 그 공간만 다른 곳으로 떼어낸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비어있는 공간 밖으로는 톱니들이 맹렬히 회전하는 것을 엿볼 수 있었고, 이런 기계 장치 때문인지 그의 앞으로 새로운 블록이 자리 잡았다.
《이런 거대한 병기를 안에서부터 파괴할 생각을 한 사람이 자네 말고 몇 명이나 있을 것 같나?》
새로 들어온 블록의 철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거대한 무언가가 샤하나즈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컥......!”
《전쟁 때만 하더라도 수도 없이 많이 봐왔지. 그런데 아직도 아틀락은 멀쩡하지 않나.》
가슴을 정통으로 맞고 뒤로 뻗은 샤하나즈의 앞으로 거대한 금속 구체가 굴러왔다.
측면에 샤하나즈의 가슴을 강타한 팔이 뻗어 나온 구체는 서서히 표면을 전개하며 그 사이로 열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붉은 빛을 발했다.
하부에서 다리까지 나오며 똑바로 선 구체는 양쪽으로 약간 갈라져 등에 회전하는 톱니바퀴까지 나오자 샤하나즈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망할, 나는 배우지도 못하는 거냐고. 이유도 없이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티페레트와 안톤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샤하나즈는 간신히 상반신을 일으켰지만, 뒤에서 쫓아오던 금속 거미들이 순식간에 그를 덮쳤다.
금속 거미들의 날카로운 다리가 가슴에 박힌 톱니바퀴에 닿기 전, 샤하나즈의 팔이 거미 무더기를 뚫고 나오며 손에 쥔 한 마리를 완전히 으스러트렸다.
《인간이라면 사지가 분해되고도 남았을 텐데, 멀쩡한 걸 보면 이미 수호자와 동화가 꽤나 진행된 모양이군.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되기 전에 씨앗을 내놓는 것이 어떤가? 수호자 안에 영원히 갇히는 것 보다는 죽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약간의 흥미가 엿보이는 제안에도 몸에 들러붙은 거미들을 전부 쳐낸 샤하나즈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샤하나즈에게 다가온 구체는 깍지를 끼고 샤하나즈의 머리를 향해 내려쳤다.
머리 위로 팔을 교차시켜 간신히 팔을 막아냈지만, 그 질량에서 나오는 충격 때문인지 샤하나즈의 팔의 장갑이 일그러지며 검붉은 점액이 튀었다.
“으극......!”
이를 앙다물고 이를 버텨낸 샤하나즈는 이를 밀쳐내며 동시에 자신은 뒤로 뛰었지만, 거의 즉시 블록이 교체되며 후방에도 철문이 내려와 샤하나즈의 진행경로에 끼어들었다.
등과 부딪힌 문이 열리며 구체가 또 다시 보이자 샤하나즈는 곧바로 몸을 낮췄고, 그의 머리 위로 또 다른 팔이 스쳐지나갔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라. 무기도 없는 네가 싸우는 환경도 불리하고, 숫자도, 성능도 불리해. 네게 어떤 우위가 있다고 생각해서 계속 저항하는 거지?》
“그런 불리한 상황에서 계속해서 살아남은 경험.”
몸을 낮춘 사이에 다시 가슴으로 타고 오르려는 거미를 뜯어낸 샤하나즈는 후속타가 이어지기 전, 구체의 다리 사이로 빠져나왔다.
톱니가 회전하는 구체의 등 쪽으로 올라간 샤하나즈가 톱니와 장갑 사이 미세한 틈을 노리고 오른손을 처박으니 자신의 뒤로 올라간 샤하나즈를 잡으려는 구체의 팔이 멈췄다.
여전히 동력은 전해지고 있는 것인지 틈에 끼인 샤하나즈의 팔은 점점 안으로 말려 들어갔지만, 샤하나즈는 팔을 빼는 대신 오히려 어깨까지 더욱 깊이 집어넣었다.
《자신만만한 발언과는 달리 내 눈에는 자살 이상으로는 안 보이는데 말이지.》
맞은편에서는 아직도 멀쩡한 구체가 팔이 끼어 움직이지 못하는 샤하나즈를 향해 육중한 걸음을 옮겼고, 거미들도 천천히 몸을 타고 올라왔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던 샤하나즈는 한 순간 눈을 뜨며 말려들어간 손을 단숨에 뽑았다.
일그러지고 긁힌 자국이 그득한 손에는 인간으로 치면 인대 역할을 하는 금속 케이블이 얽힌 뼈대가 들려 있었고, 다른 구체가 뻗은 주먹을 피하고 팔꿈치 안쪽 관절에 이를 박아 넣었다.
이를 비틀자 구체의 팔이 그대로 뜯겨 나갔고, 샤하나즈는 이를 놓치지 않고 떨어진 팔을 잡아 자신의 팔을 강제로 우겨 넣었다.
직립한 샤하나즈의 무릎까지 내려오는 하완은 샤하나즈가 팔을 처박기가 무섭게 손가락이 경련하더니 순식간에 단단히 주먹을 쥐었다.
그 거대한 질량으로 인해 팔을 제대로 들어 올릴 수도 없었지만, 전신을 이용해 몸을 회전시킨 샤하나즈는 팔을 철퇴처럼 휘둘러 남은 다른 팔을 내지르려는 구체를 측면으로 후려쳤다.
구체가 벽에 처박히자 파이프들이 깨지며 좁은 복도는 순식간에 짙은 증기로 가득 찼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자 구체는 경계태세만 유지한 채 움직이지 않았고, 그 대신 작은 금속 거미들이 증기 속으로 향했다.
그러나 방에 자욱하던 증기는 백색으로 전신이 달아오른 샤하나즈가 전신에서 쇳물을 흩뿌리며 증기를 뚫고 나오자 순식간에 흩어지고, 사라졌다.
“뒈져라!”
눈부실 정도로 빛나는 샤하나즈의 몸 중 푸른색이 보일 정도로 빛나는 오른팔은 이전에 손을 처박았던 하완을 녹이며 모습을 드러냈고, 순식간에 구체의 표면을 녹이며 내부로 파고들었다.
중심이 꿰뚫린 구체는 그대로 뒤로 쓰러졌고, 팔꿈치까지 파고들었던 샤하나즈의 팔은 인간의 피처럼 흘러내리는 녹아내린 장갑과 부품들을 윤활제 삼아 부드럽게 빠져 나왔다.
그러나 이런 가속으로 인해 내부가 망가진 것인지 샤하나즈 역시 점액이 섞인 쇳물을 토하며 무릎을 꿇었고, 닿는 것만으로도 강철마저 증발시키던 팔 또한 천천히 식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샤하나즈가 다시 일어서 앞으로 나아가니 목소리만으로도 눈을 찌푸린 것이 엿보이는 페레슈테가 흥미로운 듯 콧소리를 냈다.
《내가 너무 얕본 것 같네.》
“그걸 알겠으면 어서 나갈 길을......”
《아무리 동화된 인간이라도 2단계 정도의 대응이면 충분히 처치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는데. 나시르가 끼어 있는데 일반적인 계산을 한 나의 잘못이야.》
그와 함께 지금까지 있었던 진동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진동과 함께 블록들이 움직이며 내부를 대대적으로 변형시켰다.
《대응 체제를 최고 수준인 5등급으로 변경한다.》
진동은 점점 더 강해져 샤하나즈는 중심도 잡을 수 없었고, 그와 함께 샤하나즈가 있는 블록까지 뒤집어지며 그를 어딘가로 떨어트렸다.
샤하나즈가 바닥에 깔린 철판에 떨어지자 난잡한 파이프와 톱니바퀴들이 얽혀 만들어진 높이가 30m이상 되는 돔 안으로 공허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파이프는 여전히 증기를 내뿜었고, 톱니바퀴들은 끊임없이 돌아가며 돔을 열었다.
열린 돔의 위에는 현재 진행형으로 운전하는 엔진이 자리 잡고 있었고, 샤하나즈가 간신히 몸을 가눌 수 있을 정도가 되자 천천히 엔진이 내부를 향해 돌았다.
“이건 뭔......”
《수호자가 침입할 것을 대비한 대응 체계지.》
엔진이 완전히 돌아가자 돔 내부로 아틀락을 움직이던 8개의 다리가 모습을 드러냈고, 동시에 천장의 거대한 파이프에선 이전에 보았던 구체 수백 개가 쏟아져 내렸다.
《인정하긴 싫지만, 나시르는 나보다 뛰어난 천재야.》
천장에서 떨어진 구체들은 이전에 샤하나즈와 조우했을 때처럼 팔다리를 전개하지 않았다.
그 대신 외피만 약간 벌려 톱니바퀴를 노출시켰고, 추가로 벌어진 외피의 틈에서는 강철 케이블 수십 가닥이 늘어져 다른 구체에서 늘어진 케이블과 얽히며 일정한 형태를 갖추었다.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샤하나즈의 앞으로는 수백의 구체들이 서로 얽히며 만들어진 수호자가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천재를 따라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
팔이 욱신거려 다리만으로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난 샤하나즈가 눈으로 돔을 반도 훑기도 전 내부로 뻗은 다리 중 하나가 그가 있는 자리를 내려찍었다.
간신히 몸을 비틀어 직격만은 피할 수 있었더라도 다른 다리가 곧바로 그의 자리를 내려찍었다.
“나갈 방법이 분명 있을 거라고 분명히.......!”
삐걱거리는 몸을 움직이며 필사적으로 주변을 훑은 샤하나즈는 다리가 뻗어 나온 엔진과 벽 사이의 틈을 발견하곤 살짝 보폭을 넓혔다.
가장 가까운 엔진까지만 하더라도 수직거리만 15m는 넘어 보였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조금 앞으로 내딛은 다리에 힘을 준 샤하나즈는 배기구에서 증기를 뿜어내며, 엔진을 향해 위로 솟구쳤지만, 그의 앞을 모습을 완전히 갖춘 수호자가 가로막았다.
《이전에 한 두 기를 처치했다고 너무 무시하는 건 좋지 않을 텐데.》
샤하나즈가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기도 전, 수호자가 주먹으로 샤하나즈를 정면에서 후려치자 샤하나즈는 뛰어올랐던 속도만큼 빠르게 바닥으로 날아갔다.
어떻게든 자세를 바로잡아 무력하게 처박히진 않았지만, 충돌에 가까운 거친 착지를 하며 샤하나즈의 주변에는 몸에서 떨어져 나간 장갑 파편들이 흩뿌려졌다.
거기에 더해 전신을 꿰뚫는 충격에 비명을 지르는 몸을 쉴 시간도 주지 않으려는지, 억지로 착지한 샤하나즈가 밀려나는 것이 멈추기도 전, 그의 위를 거미의 다리가 내리 찍었다.
8개의 다리와 한 기의 수호자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피해 다니며 기회를 노리던 샤하나즈는 다시 한 번 보폭을 넓혔다.
물론 샤하나즈가 다시 한 번 공중으로 날아오르자 이전과 같이 수호자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이번만큼은 샤하나즈가 한 발 빨리 대응했다.
처음부터 이것을 노렸다는 듯, 수호자가 자신을 쳐내기 전 몸을 비틀어 자세를 바꾼 샤하나즈는 몸으로 주먹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수호자의 주먹에 발을 딛었고, 주먹의 운동량마저 역이용해 그대로 엔진을 향해 뛰었다.
거미 다리가 그를 막기 위해 움직였지만, 이미 팔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까지 파고든 샤하나즈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엔진과 돔 사이의 공간으로 파고들었고, 페레슈테는 작게 혀를 차는 소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