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거미줄 3
* * *
“뭐 이딴 기계가 다 있어?”
좁은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돔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샤하나즈는 욱신거림이 심해지는 자신의 팔을 보며 중얼거렸다.
험하게 다룬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장갑들은 하나같이 녹거나 일그러져 있었고, 벗겨진 장갑 아래로는 구멍이 뚫린 얇은 철판이 파이프와 뼈대를 감싼 검붉은 점액이 빠져 나오는 것을 붙잡고 있었다.
그나마 몸은 험하게 다룬 팔만큼 심하게 손상되진 않았지만, 아직 인간의 부분이 남아있는 것인지 흉부 장갑 변두리를 손으로 만지니 장갑이 녹아내려 일그러진 손에 선명한 붉은 빛을 띠는 혈액이 묻어 나왔다.
“근데 진짜 더럽게 아프네. 몸이 이렇게 된 이후로 고통을 느낄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돔을 빠져나온 이후로 진동은 계속되었고, 보이는 톱니바퀴마나 마찰하는 부분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격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역시 수호자급 대응으로 인간 크기의 적을 상대하려니 문제가 생기는군, 개선의 여지가 있겠어.》
좁은 통로 안으로 페레슈테의 목소리가 울러 퍼졌고, 그럴수록 샤하나즈는 걸음을 재촉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팔의 욱신거림은 강해지기만 했고, 샤하나즈는 힘겹게 신음을 삼켰다.
“젠장, 출구는 어디 있는 거야.”
뜨거운 열기를 상징하는 주황빛은 증기로 자욱한 좁은 통로를 끝이 보이지 않게 비추었다.
지금도 발을 디딘 지면에 느껴지는 진동은 언제라도 지형을 바꿔버릴 듯, 조금의 멈춤도 없이 미친 듯이 그를 흔들었다.
‘내부에서 파괴하는 것이 불가능하면 자멸을 유도해야 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동력로에 숨어들어서 동력만 빼내서 탈출해야 하나? 그게 아니면 저 페레슈테라는 놈을 죽일 방법을 생각해야 하나? 그게 아니면........’
수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가는 중, 샤하나즈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의 톱니바퀴를 잡고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더라도 티페레트만 부를 수 있다면, 세피로트의 나무만 꺼낼 수 있다면 지금 상황은 문제 축에도 들지 못했다. 이 거미 이전에 그냥 이 알 수 없는 공간에서 바로 나갈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샤하나즈는 고개를 저으며 톱니바퀴에서 손을 뗐다.
“생각해라 샤하나즈. 생각해. 분명 혼자서 해결할 방법이 있을 거라고.”
《혼자서 뭘 해결하겠다는 거지?》
샤하나즈가 얼마 움직이지도 못했지만, 페레슈테는 이미 그를 찾아낸 것인지 그가 있는 구역의 진동이 점점 더 강해졌다.
《너무 몸을 헤집고 다니지는 말아줬으면 하는데. 인간으로 치면 혈관 속을 헤집는 세균과 비슷하다고. 찾는 것도 꽤 힘든 일이야.》
그가 있는 구역을 이동시키는 대신, 파이프와 벽이 점점 멀어지며 공간을 확장시켰고 그의 앞에는 간신히 따돌렸던 구체로 이루어진 수호자가 떨어져 내렸다.
《다행인 점이라면 면역체계를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점이라고 해야 하나.》
“망할!”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수호자에 샤하나즈는 곧바로 방향을 돌렸다.
《영원히 도망칠 수는 없을 거네. 어디까지나 자네는 아틀락의 안에 있으니까.》
“나도 알아! 그러니까 나가려고 하는 거잖아!”
수호자를 보는 즉시 욱신거리는 몸을 가속시켰지만, 수호자의 주먹이 근처를 내려친 충격에 튕겨나간 샤하나즈는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아무리 고민해도 저 수호자를 정면에서 상대하는 것은 승산이 없었다.
이전처럼 신체를 가열시켜 공격하는 것은 많아봐야 수백 개의 구체 중 두 세 개를 파괴하는 것이 최대일 것이고, 장갑이 녹은 팔의 상태를 봐서는 그때처럼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렇다고 전신을 그렇게 가열하는 것은 남은 생체 부분이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필사적으로 방법을 갈구하는 도중, 하나의 생각이 샤하나즈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수호자에서 도망치며 벽에 바짝 붙은 샤하나즈는 눈으로 파이프들을 훑었다.
그리고 회전하는 톱니바퀴를 볼 때마다 근처의 파이프들을 하나씩 뜯어내는 것을 반복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로 손상을 초래할 생각이라면 어림도 없네.》
페레슈테의 비웃음에 맞춰 샤하나즈가 뜯어낸 파이프에서 증기가 솟구쳤고, 희뿌연 증기에 샤하나즈는 혀를 차며 뒤로 뛰어 수호자의 손을 피했다.
“천재를 따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했지?”
《그건 갑자기 왜 묻는 것이지?》
“네가 나시르를 따라했다면 이 거미도 많은 부분이 수호자와 비슷할 것 같았거든.”
샤하나즈는 계속해서 파이프를 따라 움직이며 뜯어내는 것을 반복했고, 뜯어낸 파이프에서 희뿌연 증기가 아닌 푸른색의 기체와 액체 사이의 물질이 새어나오자 그 파이프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내 생각이 맞는 것 같네.”
푸른 물질이 흐르는 방향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샤하나즈는 순간적으로 멈춰 섰고, 동시에 그의 머리 위로는 그를 짓뭉개려는 수호자의 주먹이 날아왔다.
《잘 생각했네.》
주먹이 그대로 샤하나즈를 직격하고, 그가 빠져나간 흔적이 보이지 않자 페레슈테는 만족스럽게 한 마디 던졌다.
그러나 수호자가 샤하나즈의 잔해를 회수하기 위해 손을 들려하자 그 손에는 미세한 저항이 있었다.
“칭찬해 줘서 고맙네. 더럽게 아파서 후회할 참이었거든.”
수호자의 주먹을 양팔로 받아내 짓뭉개지는 대신 다리로 충격을 받아낸 샤하나즈는 수호자의 주먹을 밀치곤 부서진 장갑을 흩뿌리며 수호자의 뒤 방향으로 달려갔다.
수호자의 충격을 받아낸 탓에 일그러지기 직전의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인지 샤하나즈의 달리기는 불안정하기 그지없었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이전에 봤던 파이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파이프를 따라 한참을 뛰어 가던 샤하나즈는 자신이 따라왔던 가는 파이프가 합류하는 조금 더 두꺼운 관을 발견하곤 다시 걸음을 멈췄다.
잠시 심호흡한 샤하나즈는 그 파이프에 자신의 팔을 있는 힘껏 처박았다.
《지금 뭐하자는 거지? 고작 더 큰 관을 찾았다고 해서 더 큰 손상을 유도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
수호자가 샤하나즈가 따라 잡았을 때, 그는 이미 파이프에서 손을 뺀 지 오래였다.
샤하나즈는 푸른빛 물질이 뚝뚝 떨어지는 팔을 들어 올리자, 녹아내리는 강철처럼 불씨가 미친 듯이 튀는 그의 팔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밝게 빛났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팔이 수호자를 향하자, 신체를 이루던 구체 몇 개가 빠져나와 새롭게 얽혔고 순식간에 전신을 가리고도 남는 방패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샤하나즈는 마지막 순간 팔을 돌려 벽을 노렸다.
“난 출구를 만들 생각이었어.”
한계까지 빛나는 팔의 장갑 아래에서 빛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샤하나즈의 손바닥 방향으로 집약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과 함께 그 중앙에선 샤하나즈의 장갑을 포함해, 초고온으로 인해 녹아버린 내부의 물질들이 막대한 금속 제트로 뿜어져 나오며 벽면에 구멍을 만들어 냈다.
이제는 완전히 뼈대만 남아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팔에서 전해지는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외부의 모습을 보자마자 샤하나즈는 곧바로 뛰어올랐다.
자신이 만들어낸 방패가 걸림돌이 된 틈을 타 완전히 밖으로 빠져나온 샤하나즈는 아틀락의 외부장갑에 널브러져 자신의 팔을 부여잡았다.
방금 전 탈출을 위해 망가진 왼팔에서 한꺼번에 올라오는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이전부터 이어진 욱신거림은 이제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뼈를 깎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던 샤하나즈는 아틀락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하나로 전신을 비틀며 머리와 다리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다음 계획을 고민하기도 전, 익숙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그의 청각을 자극했다.
“..........ㅈ......”
“뭐지? 페레슈테의 목소리는 아닌데.......”
목소리를 따라 한 걸음 움직일 때 마다 희미하던 목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졌고, 견인용 케이블들이 늘어진 복부에 다다르자 그 목소리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샤하나즈!”
오른팔로 간신히 견인용 케이블에 매달린 티페레트는 샤하나즈를 발견하자 어깨로 눈물을 닦으며 그를 불렀다.
“샤하나즈, 거기 있었구나!”
“젠장, 뭐하자는 짓이야!”
한쪽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샤하나즈는 한쪽 팔과 이빨로 번갈아 케이블을 잡아가며 티페레트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티페레트가 아틀락의 위까지 올라오자,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 샤하나즈가 소리를 질렀다.
“넌 여기서 뭐하는 거야! 내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갑자기 샤하나즈가 소리를 지르자 티페레트는 자신이 하려던 말을 잊었는지 충격 받은 얼굴로 얼어붙었다.
“나도 죽이려고 환장한 거야? 네가 죽으면 나도 죽는 걸 잊은 거냐고!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든 혼자 해결하려 한 건데, 그걸 헛짓거리로 만들 생각이냐고!”
“나......나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몸으로 뭘 하게! 넌 지금 수호자가 아닌 걸 잊었어? 인간의 몸으로 여전히 수호자가 하는 짓을 하면 어쩌자는 거야!”
계속해서 몰아붙이는 샤하나즈의 태도에 말문이 막힌 티페레트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흐아아앙! 나.... 나는 그냥.....! 흐아아앙!”
“지금 그래봤자 도움 안 돼! 뭔가 대책을 생각해 보라고!”
여전히 티페레트를 바라보지 않는 샤하나즈는 신경질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만약 아틀락이 내부를 원하는 대로 변형시킬 수 있고, 외부로 뻗은 다리를 내부로 수납할 수도 있다면 외장을 변형시키는 것 또한 가능할 것이었다.
그리고 샤하나즈의 예상대로 그가 뚫었던 구멍이 복구되는 동시에 외장이 열리며 계속해서 그를 쫓아왔던 수호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이지 경이로워. 역시 나시르는 부정할 수 없는 천재가 맞아.》
“그럼 그렇지!”
수호자가 나타나자 샤하나즈는 망가진 왼팔로 티페레트를 옆구리에 끼곤 아틀락 밖으로 뛰어 내렸다.
끝을 알 수 없는 밑바닥으로 떨어지기 전, 샤하나즈는 비명을 삼키며 오른팔로 견인용 케이블에 매달렸다.
“너 여기 온 건 뭔가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잖아...... 그렇지?”
간신히 케이블에 매달린 샤하나즈는 아직도 우는 티페레트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못해 살짝 시선을 내린 샤하나즈의 손에 들어온 것은 봉합이 완전히 뜯겨나가 피로 물든 티페레트의 오른팔과 아예 피부가 벗겨지고 일그러져 뼈까지 드러난 왼팔이었다.
“너....... 설마.....”
그때가 돼서야 샤하나즈의 머릿속에 무언가 하나 둘 정리되었다.
왜 티페레트가 이런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을 쫓아온 것인지, 왜 이렇게 팔이 욱신거렸던 것인지,
티페레트와 자신의 목숨이 하나인 만큼, 자신이 받는 고통과 상처도 티페레트에게 전해진다는 것을.
지금까지 자신이 혼자 해결한다고, 티페레트를 위험에 빠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 정작 한 것이라곤 상처만 늘렸다는 것을.
“네가..... 아프니까...... 혼자.....아프면........무섭잖아........ 너도...... 그렇지......?”
이에 처음으로 샤하나즈가 시선을 들어 눈을 마주치자 티페레트는 살며시 눈웃음을 지었다.
“헤헤...... 드디어 봐줬다....... 어렵지....않잖아.....그렇지?”
“미안해.내가 정말로 미안해.난 그저........”
“괜찮아......아픈 건 익숙하니까.”
샤하나즈의 말을 끊은 티페레트는 그의 가슴에 피투성이인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그니까...... 우리 같이 해보자.......나의 기사....... 나를 똑바로 봐줘. 날 놓지 말고......”
그리고 티페레트가 힘겹게 톱니바퀴를 돌리자 위에서 한 줄기 섬광이 강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