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진과 기사-42화 (42/50)

〈 42화 〉 거미줄 ­ 5

* * *

“방금 그건 대체 뭐야?”

《대 요새용 섬멸포라고 말 했잖아. 네가 모든 구체를 한꺼번에 증발시켜야 한다고 판단했으니까 거기에 가장 적합한 무기를 출력한 거지.》

당황이 섞인 질문에 티페레트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니, 아틀락의 다리를 피해 뒤로 몸을 날린 샤하나즈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게 아니라 수호자가 이런 화력을 보유해도 되는 거야?”

《세피로트의 나무에 제한이란 없어. 이건 세계의 억제력을 위해 만든 도구니까.》

“그런데 이런 힘을 개인이 원하는 대로 다룬 다는 건.......”

그러나 샤하나즈가 질문을 끝내기 전, 경고음과 함께 아틀락의 다리가 내려올 경로에 대한 시각적인 정보가 추가로 시야에 나타났다.

붉게 표기된 경로에 표기된 시간이 모두 지나기 전, 샤하나즈는 티페레트를 가속시켜 모든 경로가 자신을 스치지도 못할 때 까지 뒤로 물러났다.

다리가 닿을 수 없을 정도로 샤하나즈가 물러나자 아틀락은 그대로 두 다리를 지면에 깊이 처박았다.

지금까지의 공격이 장난이라도 되는 것인지, 아틀락이 깊이 다리를 처박은 곳을 따라 지면에 길게 균열이 가더니 파편은 천천히 둘로 갈라졌다.

《그건 다음에 얘기하자, 지금은 이것부터!》

“일단은 충전 시간부터 보여줘. 그걸 보고 싸울지, 시간을 벌지 판단할 테니까.”

순식간에 태도를 바꾼 샤하나즈의 지시에 맞춰 그의 시야 가장자리에는 3분의 타이머가 표기되었고, 그에 맞춰 샤하나즈는 서서히 갈라지는 파편의 절단면을 타고 아래로 향했다.

그런 샤하나즈를 아틀락은 표면에 깊은 자국을 남기며 쫓았고, 계속해서 타이머를 확인하는 샤하나즈는 파편에서 완전히 떨어지기 전, 오른팔에서 사슬을 꺼내 표면에 박았다.

떨어지는 티페레트의 움직임을 따라 사슬이 계속해서 풀려 나갔고, 순간적으로 궤도가 바뀌는 동시에 사슬이 그 지점에서 부자연스럽게 꺾여 있었다.

근처 작은 파편에 티페레트의 발을 단단히 고정한 샤하나즈는 사슬을 다시 감았지만,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져도 꺾인 부분이 여전히 남아있자 티페레트를 불렀다.

“티페레트, 네 연산 능력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어?”

《연산 능력? 그건 왜?》

“공간이 비틀려있어. 그걸 전부 계산하면 아틀락이 움직이는 것도 예측할 수 있을 거야.”

《글쎄....... 세피로트의 나무가 있어서 대폭 향상되긴 했는데, 지금 대부분의 동력은 무기의 충전으로 돌려서 부하가 큰 연산은 못 할 것 같아.》

“그렇다면 충전이 늦어도 좋으니까 연산으로 동력을 돌려줘. 지금 단순히 아틀락을 부수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야. 아틀락을 무력화해서 동력원을 확보하고,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을 찾아야 해.”

부서진 파편에 고정된 사슬을 뽑아 완전히 감은 샤하나즈는 20mm 기관포를 꺼내 예광탄을 장전했다.

“지금부터 모든 탄도를 기록해줘.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알겠어. 그러면 연산으로 동력을 돌릴 테니까 갱신된 충전시간을 표시해 줄게.》

마치 보이지 않는 거미줄을 타고 움직이는 것과 같이 허공을 밟으며 움직이는 아틀락은 티페레트가 있는 파편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런 아틀락을 주시하는 샤하나즈의 시야의 가장자리에는 2분 중반을 가리키던 타이머의 숫자가 7분까지 천천히 상승했다.

샤하나즈는 작게 혀를 찼지만, 아틀락이 달려드는 상황에서 티페레트에게 불평 할 여유는 없었다.

작은 파편에서 뛰어오른 샤하나즈는 아틀락이 달려오는 곳은 물론, 몸을 비틀어가며 모든 방향으로 기관포를 뿌려댔다.

“우욱......!”

시야에 예광탄이 남긴 붉은 궤적이 하나씩 기록되자, 티페레트와 자신을 연결하는 기계 팔을 통해 가슴에 열기가 주입되며 순식간에 몰려오는 메스꺼움에 샤하나즈는 자신도 모르게 헛구역질했다.

《무슨 일이야? 괜찮아?》

“.......괜찮으니까 계속해.”

연산이 이어질수록 메스꺼움과 머리를 쥐어짜는 두통 그리고 가슴에 쇳물을 주입하는 것과 같이 몸을 찢고 나올 것 같은 주입되는 열기가 점점 강해졌지만 샤하나즈는 묵묵히 구역질을 삼켰다.

수호자는 오로지 전투를 위한 병기니 전투 목적이 아닌 막대한 양의 연산은 수호자의 엔진인 자신을 이용해 처리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했지만, 한 가지 사실이 샤하나즈의 심기를 거슬렀다.

‘망할. 진짜 부품이 되었다는 게 체감되네.’

티페레트에게 들릴 것이니 중얼거리지도 못한 샤하나즈는 이러한 불평을 구역질과 함께 억지로 삼켰다.

《기록이 끝났어. 샤하나즈.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다시 충전으로 동력을 돌릴까?》

“......아니, 탄도가 꺾인 부분을 이어서....... 지도를 만들어.......”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든 두통과 이를 악문 입에서는 구토 중추를 자극하는 신 침이 새어 나왔지만 샤하나즈는 구역질을 참아가며 몸에 걸리는 부하를 견뎌냈다.

한 몸이나 다름이 없는 수호자와 기사의 관계라지만, 인간이 장기가 병드는 것을 쉽게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티페레트는 샤하나즈의 이런 고통을 모르는 듯 연산을 이어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샤하나즈는 아틀락을 피해 티페레트를 움직였고, 동시에 허공에 오른손을 팔뚝 안으로 집어넣으며 달아오른 칼날을 꺼냈다.

고통으로 좁아진 샤하나즈의 시선에 제대로 보이는 것이라곤 6분을 향해 가는 타이머뿐이었지만, 그의 칼날은 아틀락이 발사한 견인 케이블을 정확하게 베어냈다.

“지도는.... 얼마나..... 남았어?”

샤하나즈가 자신을 향한 케이블은 베어냈지만, 아틀락의 노림수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티페레트의 기동성을 제한할 생각인지 자신의 모든 견인 케이블을 사방으로 발사한 아틀락은 근방에 있는 파편을 모조리 끌어들여 다리로 내려찍었다.

분쇄기로 집어 삼키는 것처럼 흔적도 없이 흡수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리로 내려찍은 파편들은 티페레트가 발을 제대로 딛을 수 없는 수준의 작은 암석들로 분해되었다.

근방의 거대한 파편들이 모두 사라지니 미약하게나마 티페레트를 공중에 붙잡은 인력이 사라지며 끝을 알 수 없는 공허로 떨어졌다.

《추진기로 동력을 돌릴게!》

다급한 티페레트의 외침에 결국 참아왔던 헛구역질을 토해낸 샤하나즈는 입에서 신 침을 흘리며 그녀의 말을 일갈했다.

“아니! 지도를 완성시켜!”

《그렇지만......》

“빨리!”

빛과 어둠의 경계는 모호했지만, 공허로 빠질수록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저 공허의 아래는 밤이었다. 끝을 알 수 없이 짙고, 끈적이는 어둠으로 가득 찬 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뒤에 무엇이 담긴지 알 수 없는 밤.

수호자마저도 집어 삼키는 밤.

그러나 티페레트는 추진기를 가동하지 않았다. 샤하나즈를 믿기에. 그가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믿기에.

경계가 모호한 어둠이 공허의 안에서 끈적이는 몸을 움직여 티페레트를 향해 점점 다가왔지만, 티페레트는 베를 짜는 것과 같이 자신이 가진 기록들을 합치며 지도를 완성시켜갔다.

그리고 그 어둠이 기체를 붙잡기 전, 티페레트는 소리를 질렀다.

《지도 완성! 지금 보여줄게!》

조금은 절박한 티페레트의 외침이 샤하나즈의 시야를 흐리는 고통을 순식간에 흩어냈다.

밝혀진 시야에는 얇은 유리와 같은 표면이 허공에 수를 셀 수도 없이 펼쳐져 있었고, 샤하나즈는 손을 뻗어 유리와 유리가 만나는 선을 붙잡았다.

“잡았다!”

허공의 선을 단단히 붙잡은 샤하나즈는 어둠이 티페레트를 붙잡기 전, 몸을 끌어당겨 일선 위에 발을 디뎠다.

거미줄을 밟고 위를 향해 달려가는 샤하나즈는 시야 가장자리의 타이머를 확인했다.

떨어지는 동안 영겁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지만, 타이머는 6분대에서 정직하게 1초씩 줄어들고 있었다.

《뭘 잡았다는 거지?》

그러나 샤하나즈가 타이머의 시간이 흐르는 것을 제대로 확인도 하기 전, 모습을 감췄던 아틀락은 얇은 유리와 유리 사이의 틈에서 몸을 비집고 나와 샤하나즈의 앞길을 막았다.

그를 거미줄의 밖으로 쳐내려는 다리를 붙잡은 샤하나즈는 다른 줄 위로 옮겨 타곤 아슬아슬하게 힘 싸움을 이어갔다.

《아무리 네가 내 수호자를 처치할 화력이 있다고 해도 승산은 없어. 얌전히 포기하는 게 서로에게도 이득 아니겠나?》

“퍽도 그렇겠네.”

샤하나즈가 비아냥거리며 대답하니 오른팔 팔뚝의 장갑을 살짝 전개시킨 티페레트의 팔꿈치에는 피스톤 하나가 천천히 솟아올랐다. 그리고는 붙잡은 아틀락의 다리에 냅다 오른 주먹을 꽂았고, 이에 더해 피스톤이 함께 수축하며 충격을 더하니 아틀락의 관절이 비틀렸다.

그 반동으로 줄을 타고 쭉 밀려난 샤하나즈는 그대로 위로 뛰어올랐고, 그의 등에서는 다시 한 번 금속으로 만들어진 나무가 자라났다.

샤하나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티페레트는 그의 의도를 파악한 것인지 거의 동시에 오른팔이 분리되며 나무 안에서는 새롭게 출력된 팔이 내려와 어깨와 결합했다.

티페레트의 본래 기체는 여성적인 곡선이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새롭게 출력된 팔은 다른 수호자와 같이 투박한 직선으로 이루어진 장갑이 외부에 달린 유압 피스톤을 보호하고 있었다.

대강 훑어보더라도 티페레트의 몸통과 비슷한 정도의 두께를 자랑하는 육중한 팔에는 15m는 되어 보이는 포신이 달려 있었다.

이러한 포신을 움직이기 위해 팔 내부에 별도의 동력 장치가 있는 것인지 샤하나즈가 팔뚝과 맞먹는 두께의 손가락을 움직일 때 마다 장갑 사이에 설치된 배기구에선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대물 저격용 300mm 강선포 출력 완료.》

약실에 탄이 들어가자 살벌할 정도로 묵직한 소리가 포신을 타고 흘러 나왔고, 샤하나즈의 시야에는 뒤틀린 공간에 맞춰 아틀락을 타격할 수 있는 예상 탄도들이 나타났다.

“티페레트 준비 됐지?”

《말하지 않아도 안다니까.》

거리를 벌린 샤하나즈는 거대한 포신을 치켜들고 방아쇠를 당겼고, 폭발음과 구별이 가지 않는 포성과 함께 티페레트는 반동을 타고 선 위를 쭉 미끄러졌다.

아틀락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사 되었지만, 300mm철갑탄은 왜곡된 공간을 따라 탄도가 멋대로 꺾였다.

마지막에 가서는 아틀락에게 빨려들어 가듯, 탄도가 수직으로 꺾이며 다리에 직접 연결되어 있는 엔진에 직격했고 푸른 폭발과 함께 아틀락이 주저앉았다.

《젠장, 끝까지 쓸데없는 저항을......!》

“너도 얌전히 우리가 나갈 길을 마련하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

샤하나즈는 아틀락이 이전에 던졌던 제안을 똑같이 되돌려주며 피식 웃었다.

티페레트의 팔에선 또 다시 증기가 뿜어져 나오며 약실이 열렸고, 탄피가 빠져나오는 것과 함께 다른 철갑탄이 다시 약실에 장전되었다.

엔진을 잃어 움직이지 못하는 다리를 분리한 아틀락은 샤하나즈가 조준을 마치기 전, 곧바로 몸을 돌려 허공의 틈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아틀락이 아예 감지가 안 돼! 지도에도 저런 공간은 없었는데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이 공간이 거미줄이라면 저긴 세로줄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사냥이 아니라 이동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공간 말이야.”

《그 말 그대로!》

사라진 아틀락은 주변을 경계하는 샤하나즈의 사각에서 튀어나와 그대로 티페레트의 오른팔을 덮쳐 다리를 박아 넣었고, 당황한 샤하나즈는 몸을 돌리며 포신으로 아틀락을 밀쳐냈다.

밀쳐 나면서도 아틀락은 티페레트의 오른팔에 견인용 케이블을 감고는 거리를 벌리려는 티페레트를 점점 끌어당겼다.

《기동성을 최대한 살려야할 상황에서 스스로 기동성을 버리는 무장을 선택하다니. 수호자는 뛰어나지만 기사가 형편없군.》

《샤하나즈는 형편없지 않아!》

아틀락의 발언에 발끈한 티페레트는 붙잡힌 오른팔을 움직여 단단히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오른팔을 감싼 장갑들이 균일하게 갈라지며 비늘과 같이 변화했고, 그대로 손목을 돌리니 장갑의 표면을 뒤덮은 비늘들이 동시에 곤두섰다.

예리하게 날이 선 비늘들이 오른팔에 감긴 케이블에 파고드니, 팽팽하게 당겨진 케이블은 자체적으로 걸린 장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끊어졌다.

《내가 선택한 기사야! 내가 인정한 첫 기사라고!》

잔뜩 흥분한 티페레트는 10m도 떨어지지 않은 아틀락을 향해 포를 발사했지만, 탄환은 포신에서 나오자마자 꺾이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럼에도 곧바로 재장전을 하며 아틀락을 노리는 티페레트를 저지한 샤하나즈는 침착하게 제어권한을 되찾고 아틀락과 거리를 벌렸다.

“아직 노리는 게 있으니까, 나를 믿어줘. 모든 건 계획대로야.”

《그럴 필요 없잖아! 세피로트의 나무만 있다면 질 리가 없어! 적은 다른 세피로트도 아니잖아! 그냥 싸우면 이길 수 있잖아!》

“네 말이 맞아. 절대 질 리가 없지.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야.”

샤하나즈가 다시 자리를 잡고 아틀락을 타격할 수 있는 탄도를 찾는 사이 아틀락은 또 다시 모습을 감췄다.

《정말 행운이야. 저런 허접한 놈이 씨앗을 가지고 있다니.》

모습을 감춰도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페레슈테의 목소리에 티페레트의 기체가 움찔거렸지만, 샤하나즈는 곧바로 이를 바로 잡았다.

“흥분하지 마. 너는 침착하게 내 등을 지켜주면 되는 거야.”

《아, 알았어.......》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샤하나즈의 목소리에 티페레트는 조금 흥분을 가라앉힌 것인지 내뿜는 증기의 양이 눈에 띠게 줄어들었다.

티페레트마저 조용해지니 아틀락이 모습을 감춘 공간에는 공허 속 어둠이 꿈틀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착각마저 들 정도의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침묵을 깨고 아틀락이 튀어나오니 샤하나즈는 포신을 돌리지도 않고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제멋대로 탄도가 꺾인 철갑탄은 티페레트를 향해 뻗은 다리를 엔진과 함께 그대로 날려버렸고, 그와 동시에 샤하나즈는 준비했던 방향으로 도약해 다시 자리를 잡았다.

“돌아가면 리암한테 고맙다고 해야겠는데.”

《리암? 리암은 갑자기 왜?》

“이렇게 하는 것도 리암한테 배운 거니까. 이렇게 침착하게 기다리는 건 내 장기가 아닌 것 알잖아.”

조준하는 동안 참았던 숨을 몰아쉬는 샤하나즈는 재장전하며 다시 포신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준할 시간도 주지 않으려는 듯, 아틀락이 샤하나즈의 측면에서 곧바로 튀어 나왔다.

《샤하나즈!》

티페레트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샤하나즈의 얼굴에는 작게 미소가 맴돌았다.

“이걸 노렸거든.”

그와 동시에 티페레트의 몸이 새하얗게 달궈지며 가속을 시작했고, 티페레트의 오른팔에 달린 포신이 분리되었다.

티페레트를 덮치기 위해 아틀락이 다리를 벌려 몸을 노출시킨 찰나, 티페레트의 거대한 오른팔이 아틀락의 몸 안으로 파고들어 거대한 아틀락의 기체를 받아쳤다.

티페레트의 주먹이 직격하는 동시에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충격파는 허공에 떠돌던 파편들을 순식간에 흩뿌려내며 그 위력을 엿보여주었고, 가슴의 장갑이 으스러진 아틀락은 중심을 잃고 뒤로 뒤집혔다.

“거대한 무기를 들고 근접전에 약한 척 하면 사각을 파고들 줄 알았지. 그것도 네 크기로는 감당 못한 크기로 말이야. 근데 그거 알아?”

그와 동시에 티페레트는 공중에 새하얀 궤적을 남기며 아틀락의 장갑이 일그러진 부분으로 돌진했다.

한껏 달궈진 티페레트의 팔은 진흙에 손을 처박는 것 마냥 아틀락의 장갑을 녹여 주변에 쇳물을 튀기며 깊숙하게 파고들었고, 그와 함께 샤하나즈의 시야 밖에 있는 타이머는 0을 가리켰다.

“네가 공간을 넘어 다녀도 내가 더 빠르면 그만이야.”

《섬멸포 충전 완료! 발사!》

《이 망할 나시르의 망령들이.......!》

그리고 아틀락의 내부에 처박힌 원기둥이 작렬하며 금속제트를 뿜어내자 녹아내린 금속이 아틀락의 중심을 관통했고, 발사가 끝나갈 때 즈음이 되자 금속제트에 휘말린 아틀락의 머리는 흔적도 없이 증발해 있었다.

머리가 사라진 아틀락은 다리가 늘어져 기동을 정지했지만, 샤하나즈는 자신이 떨어트린 포신을 회수해서 아틀락을 노렸다.

남은 6개의 다리에 연결된 모든 엔진을 박살내고 나서야 샤하나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꼭 이렇게 할 필요가 있어? 어차피 그냥 싸워도 이길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포신을 다시 분리한 샤하나즈는 섬멸포에 맞아 녹아내린 아틀락의 단면을 통해 내부로 향했다.

“이런 놈들은 마지막까지 패를 숨기는 습성이 있거든. 방금 전에도 그렇게 달려든 걸 보면 섬멸포를 빗겨 내거나 막아낼 방법이 있었겠지. 그걸 쓰기 전에 죽이려면 이렇게 해야 됐어.”

기동을 정지한 아틀락의 내부로 들어서자, 기동했을 때와 같이 피스톤과 크랭크가 요란하게 움직이는 소리는 더 이상 울려 퍼지지 않았다.

내부에는 달궈진 금속 같은 주황색 빛 한 줄기도 남아있지 않았고, 정밀하게 움직이던 블록들은 아틀락이 기동을 정지하자 느슨하게 연결되어 이리저리 틈새가 노출되어 있었다.

주변을 살피던 샤하나즈는 그런 블록중 하나를 뜯어내 한층 더 내부로 향했다.

그리고 어둠이 더 짙어지기 전, 샤하나즈가 조명을 꺼내 내부를 밝혀지니 티페레트는 작게 헛구역질을 했다.

《으와...... 아니, 이게 다 뭐야?》

샤하나즈가 조명을 비춰보자 이곳저곳이 부식되고, 녹아 온전한 형태를 찾기 힘든 수십 개의 수호자의 잔해가 이곳저곳에 덩어리져 있었다.

“수호자......인 건가? 그렇지만 이런 종류는 로샨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샤하나즈는 부서진 팔을 주워들곤 유심히 살폈다.

장갑의 형태도, 색도, 힘을 출력하는 방식도, 관절의 제작 방식도 로샨에 있는 수호자와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달랐다.

“수호자인 것 같지만 모토르가 만든 수호자는 완전히 달라. 이건 대체 어디서 만들고, 누가 탄 거야?”

《그런 걸 보려고 여기 온 게 아니잖아! 딴 짓 하지 말고 빨리 하던 거나 해!》

유심히 팔 구조를 살피는 샤하나즈에게 티페레트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로테스크한 풍경에 샤하나즈마저도 인상을 찌푸렸는데, 사람으로 치면 거의 육편이나 다름이 없는 시체들이 뭉쳐 있는 것이니 수호자인 티페레트의 반응은 당연했다.

“미안하지만 이 주변을 좀 살펴주겠어? 내가 내부에 있었을 때는 동력로를 봤었는데, 이 몸으로는 이전에 갔던 길을 따라갈 수 없거든.”

《으으...... 알겠어. 그래도 너무하네.》

티페레트의 반응에도 샤하나즈는 여전히 부서진 수호자들을 살폈다.

아틀락이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엔진을 뽑아낸 것인지 수호자의 흉부 장갑은 하나같이 파헤쳐져 척수 같은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런 수호자의 잔해 사이에서 아직 엔진이 남아있는 수호자를 하나 발견한 샤하나즈는 그쪽으로 걸음을 돌려, 엔진에 위로 쌓인 잔해를 털어냈다.

쇳가루와 부식된 부분을 대강 걷어내자 엔진에 새겨진 문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읽을 수는 없었지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느낌에 샤하나즈가 기억을 되짚고 있으니 티페레트가 소름이라도 돋는 것인지 몸을 떠는 소리를 내며 그를 불렀다.

《으으으...... 진짜 그런 것 좀 그만 보면 안 돼?》

“미안해. 조금 신경 쓰였거든.”

그런 반응에 삐진 것인지, 만약 얼굴이 보인다면 입이 코보다 튀어나왔을 것 같은 티페레트는 조금 뾰로통한 목소리를 냈다.

《그보다 동력로 같은 건 찾았어. 그걸 쓰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해봐야지.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까.”

아직도 엔진에 새겨진 문자가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더 급한 일이 있으니 샤하나즈는 티페레트의 지시를 따라 동력로로 향했다.

얼마 걷지 않아 주변에 모든 파이프들이 한 곳에 모인 동력로에 도착하자, 샤하나즈는 손을 변형시켜 칼날을 꺼내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외벽에 찔러 넣었다.

“준비해 티페레트, 지금부터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알겠어. 그리고......》

씩씩하게 대답한 티페레트의 목소리는 한 순간에 누그러졌고, 그녀가 말을 끝내지 못하니 샤하나즈는 동력로의 외벽을 가르는 손을 멈췄다.

“왜?”

《내 손......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놓을 거지.......?》

망설임 끝에 간신히 말을 꺼낸 티페레트는 말꼬리를 흐렸고, 샤하나즈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어디 가겠어. 네 안에 있는데.”

그러곤 샤하나즈는 외벽을 칼날로 쭉 그어 틈을 만들곤, 억척스런 오론팔로 간단히 한쪽을 뜯어냈다.

그 중앙에는 아카이브의 안에서 봤던 응집체가 떠있었고, 천천히 심호흡한 샤하나즈는 이 응집체를 단단히 쥐었다.

“우욱.....! 억......!”

응집체를 손에 쥐자 강렬한 메스꺼움이 샤하나즈를 덮쳤고, 이전 지도를 만들었을 때의 열기는 따스하게 느껴질 정도의 고통스런 열기가 기계팔을 타고 가슴에 밀려들었다.

《샤하나즈, 괜찮아? 대체 무슨 일이야?!》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해 식도만 꿈틀거리는 샤하나즈는 티페레트의 외침에 대답하지 못했다.

뇌가 익어버릴 것 같은 열기와 함께 티페레트의 등의 장갑이 열리며 또 다시 세피로트의 나무가 자라났다.

다만 이번에는 무기를 출력하는 것이 아닌, 방열판을 펼치는 것과 같이 껍질이 곤두서며 샤하나즈에게 전하는 열기를 식혔다.

“대체 뭐야 이건...... 뭐 이딴 물건이 다 있어.......?”

열기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자 간신히 고개를 든 샤하나즈는 눈앞에 가득 채우는 수식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샤하나즈가 정신을 잃기 전, 폭발과 함께 티페레트는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응집체를 남기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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