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그라이아이 2
* * *
“할 수 없는 게 없다니, 그건 무슨 소리야!”
“대체 에라실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데!”
“분명 다른 해결 방안이 있는 거지?”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착잡한 표정을 지은 안톤이 파이프를 꺼내 입에 물기도 전에 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서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니 그의 착잡한 표정은 한순간에 짜증으로 가득 차 일그러졌고, 푸른 연기를 깊게 빨아들이며 깊게 숨을 들이 쉰 안톤은 한 순간에 모든 공기를 토해내며 소릴 질렀다.
“닥쳐 씨발 새끼들아!”
침을 뱉는 것처럼 입안에 남은 연기를 뱉어낸 안톤은 다시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지금 너희보다 내가 더 복잡하니까 좀 닥치라고 씨발! 최소한 한 번에 한 명씩 물어봐.”
그러자 모두를 대표하듯, 앞으로 나선 레티시아가 가장 먼저 질문을 던졌다.
“에라실의 자아가 사라질 위험이라는 게, 문자 그대로의 사실인 거야?”
“내가 아는 바로는 맞아. 그리고 알고 있는 게 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
“그 말은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도, 해결 방법이 있기는 하다는 것 아니야?”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안톤은 자신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없는지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이론적으로는 해결할 수 사람이 있지.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게 현실이야.”
조금은 절망적인 결론에 모두가 할 말을 잃은 가운데, 샤하나즈만이 아직도 잠든 티페레트를 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해야 할 일은 정해졌네. 해방군과 합류해야지.”
짧게 정리하고 수호자들이 격납된 곳으로 가려던 샤하나즈는 자신을 노려보는 사일러스의 시선을 눈치 챈 것인지, 자리에 멈춰 섰다.
“에라실을 포기하자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지금 안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우리 역시 다를 것이 없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앞으로 나아가는 거라고.”
“틀린 말은 아닌데, 나아간다고 해도 도와줄 사람은 못 찾을 걸.”
안톤이 흘리듯 던진 말에 모두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안톤에게 집중되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방금까지는 이론적으로는 있다면서.”
“그래, 이론적으로는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없다고. 내가 알아.”
“내가 맞춰볼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전부 로샨에 있다는 거지?”
아이샤의 대답에 안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아는 한 모두 죽었어.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니까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 하다고 한 거지.”
자신도 이런 상황을 믿고 싶지 않은 것인지 깊게 들이 마신 연기를 가늘고 길게 내뱉던 안톤은 샤하나즈에게 다가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뭐, 그렇지만 이 새끼 말이 맞기는 하지.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안 되니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나도 나 나름대로 시간을 벌어볼게.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마지막으로 파이프를 문 안톤은 자연스럽게 수호자를 정비하는 곳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그가 몇 발걸음을 가기도 전 눈을 가늘게 뜬 레티시아가 안톤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모두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살을 베어버릴 것 같은 예리한 목소리에 안톤은 멈춰 섰고, 서서히 다가온 레티시아가 자신의 뒤로 바짝 붙으니 파이프를 입에서 뗐다.
“그건 말 할 수 없어, 그렇지만 지금 에라실을 도울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것 정도는 기억했으면 하는데.”
“네가 관련이 있는 것 맞지?”
안톤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돌아서서 레티시아를 마주 보았지만, 신체에 부착된 기계 팔까지 완벽하게 제어할 수 는 없었는지 그의 등에 연결된 기계 팔이 조금씩 진동했다.
“아예 관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일어난 일과 나는 전혀 관련이 없어. 그저 관련 된 것을 알고 있는 것뿐이야.”
“알고 있는 모든 걸 말해.”
그러나 레티시아의 협박 아닌 협박에도 안톤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의사는 환자의 비밀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거든. 알고 싶으면 환자 본인에게 직접 물어봐.”
레티시아와 똑바로 눈을 마주친 안톤은 엄지로 스펜서를 가리켰다. 동시에 스펜서 또한 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게 됐어. 에라실을 위해서 나도 더 이상은 못 밝히겠어.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거든.》
스펜서마저 설명을 거부하자 레티시아는 강요할 생각은 없었는지 먼저 수호자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고, 사일러스 또한 스펜서를 잠시 올려다보곤 레티시아의 뒤를 따랐다.
그 둘이 떠나자 아이샤는 무언가 떠오른 것이 있는지, 스펜서를 바라보며 잠시 정신을 집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놀란 얼굴로 안톤을 돌아보았다.
이를 눈치 챈 안톤은 아이샤가 입을 열기 전, 검지로 자신의 입술을 가로지르며 고개를 저었다.
“대체 뭘 봤는데 그런 거야?”
샤하나즈가 묻자 다급하게 걸음을 움직이는 아이샤의 몸을 푸른 불길이 감싸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어.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하니까 비행선을 가동시켜 줘. 수호자는 내가 격납할 테니까 빨리!”
그러곤 레티시아와 사일러스가 향했던 방향을 따라 뛰며 불길과 함께 사라졌다.
랑데부 지점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비행선 안에선 침묵만이 감돌았다.
스펜서의 뒷목에 매달려 상태를 확인하는 안톤, 그런 안톤을 감시하는 레티시아.
이런 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사일러스와 잠든 티페레트의 손을 말없이 붙잡고 있는 샤하나즈.
스펜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에라실을 대신해 비행선을 조종하는 리암과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아 자연스레 침묵을 유지하는 아이샤까지.
엔진이 증기를 뿜어대며 움직이는 소리만이 맴돌던 비행선 내부에서 처음으로 이질적인 소리를 섞은 것은 리암이었다.
“랑데부 지점까지 거의 도착했어. 그런데......”
“그런데?”
먼 조종실에서 울려 퍼지는 리암의 목소리에 아이샤가 소리쳐 대답하자, 엔진을 정지시켜 비행선을 공중에 부양시킨 리암은 격납고 쪽으로 내려왔다.
그리곤 모두가 보란 듯 격납고의 문을 열었다.
“아무것도 없어. 기다리는 사람도, 이정표도, 아무것도 없어. 그냥 황야라고.”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는지 아이샤는 바닥에 엎드리기까지 하며 격납고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비행선의 바로 아래까지 샅샅이 살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라곤 리암의 말 그대로 생기 없는 회갈색 황야 뿐 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아리아드네는 랑데부 지점에 해방군의 도시가 있다고 했단 말이야.”
“그렇다면 거짓말을 한 것 아닐까? 이 비행선에 있는 좌표계와 지도에는 이상이 없어 보이거든.”
“그것도 말이 안 돼. 아리아드네 입장에서는 아침의 파편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거짓말을 할 이유도, 거짓말을 해서 얻는 이득도 없어.”
당황한 아이샤가 심각한 얼굴로 고민을 하고 있으니, 안톤에게 정비를 받던 스펜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기다려.》
“뭐?”
안톤이 여전히 자신의 뒷목에 매달린 것을 고려해, 스펜서는 느릿느릿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비행선에 있는 그 누구도, 심지어 스펜서를 점검하는 안톤까지도 미세하게 움직이는 그 손가락의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이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허공을 가리키던 스펜서의 손가락이 격납고 문에 가까워질수록 황야에 희미하게 울려 퍼지던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선의 엔진 소리마저 묻어버리는 우렁찬 엔진 소리는 격납고에 있는 모두에게 선명하게 전해졌다.
“설마..... 저게?”
스펜서의 손가락이 격납고 문으로 향하자 기관차의 전고만 20m가 넘어 보이는 거대한 증기기관차가 모두의 시야에 들어왔다.
기관차의 하부에선 자체적으로 레일을 깔며 기관차가 달릴 철로를 만들어냈고, 동시에 마지막 차량에서는 이 레일을 회수해서 기관차로 돌려보내는 동시에 기관차가 달린 흔적을 지웠다.
얼핏 보면 레일도 없이 질주하는 증기기관차는 비행선을 향해 궤적을 울리며 신호를 보내며 점차 속도를 줄였다.
어느 정도 열차의 속도가 감소하자 각 차량에서 노출 된 금속봉은 레일에 뚫린 구멍과 결합해 열차를 고정시켰고, 상식을 벗어난 정도로 거대한 증기기관차는 레일채로 미끄러지며 완전히 정지했다.
그리고 4번째 차량의 천장이 완전히 열리며 비행선을 향해 유도등을 비췄다.
“들어...... 오라는 건가?”
“그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겠지. 일단은 다들 먼저 내려 봐. 착륙은 내가.......”
다시 조종실로 향하는 리암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 푸른 불기둥이 그의 앞에 솟구쳤고 사춘기를 겪는 나이 정도로 보이는 한 소년이 나타났다.
“안녕하......”
불기둥 사이에서 나타난 그가 인사를 하기도 전, 리암은 곧바로 그의 관절을 꺾어 제압하고는 목덜미에 권총을 들이댔다.
“인사는 됐고, 넌 누구고, 여긴 왜 왔지?”
“어....어니스트에요! 비....비행성.... 아니 비행선 차....착륙 때문에 온 거에요! 사...... 살려주세요!”
리암은 잠시 못미더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간단히 어니스트의 몸을 수색한 뒤 총을 거두었다.
갑작스럽게 리암이 제압한 탓에 다리가 풀린 어니스트가 바닥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있으니 리암은 그의 손을 끌어당겨 반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미안해. 조금 신경이 곤두서 있었거든. 저 열차에서 올라온 거야?”
리암이 턱으로 격납고 밖을 가리키니, 잠시 얼이 나갔는지 대답이 없던 어니스트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네. 이래보여도 비행선 조종은 꽤 하는 편이거든요. 스탈로가 멈춰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못해서 아리아드네님이 절 보냈어요. 그... 그니까 잠시......”
약간 쭈뼛거리는 어니스트는 조종실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리암에게 비켜 달라 소심하게 손짓했다.
“그런데 이 고작 비행선 때문에 저런 대형 기관차를 끌고 올 이유는 없잖아. 그냥 해방군의 거점이 되는 도시의 위치만 알려주면 그만일 텐데.”
아이샤는 살짝 눈을 찌푸렸다.
“아리아드네가 여전히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건가......”
리암이 비켜준 길을 따라 조종실에 들어간 어니스트는 이 말을 들었는지, 계기판과 조종간을 확인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 뭔가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스탈로는 해방군의 도시로 물자를 나르는 열차가 아니에요..”
쭈뼛거리고 소심하던 방금과는 달리, 어니스트는 거침없이 조종간을 조작했고 비행선은 거의 추락하는 것으로 오해할 정도로 빠르게 열차를 향해 하강했다.
그럼에도 유도등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비행선은 순조롭게 천장이 열린 차량의 안으로 진입했고, 조금은 거친 충돌과 함께 비행선이 열차에 완전히 수납되었다.
열린 차량의 천장이 다시 닫히고, 스탈로의 엔진이 다시 한 번 우렁차게 가동하는 소리가 들리자 어니스트는 자랑스럽게 소개하듯, 격납고 밖으로 손을 뻗었다.
“해방군의 도시, 스탈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격납고에서 모두가 내리기 전, 그들의 앞에 또 다시 푸른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느긋하게 담뱃대를 물고 연기를 들이마신 아리아드네가 입을 열기도 전에, 스펜서의 뒷목에서 내려온 안톤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해방군이라면 로샨에서 회수하거나 탈취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겠지? 그거 어디 있어?”
“갑자기 뭘 하자는 거지?”
그녀의 대답은 상관이 없는 것인지 가장 먼저 비행선 밖으로 나온 안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존나게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다. 어차피 비행선에 수호자까지 있는 우리가 갑인 상황이니까 협조하는 게 좋지 않아?”
건성으로 대답하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었지만, 이를 밖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꾹 참은 아리아드네는 한층 더 깊게 연기를 빨아들였다.
“어차피 너희 수호자를 그 근방으로 이동시켜야 하니까 좀 기다려.”
“긴급 상황 몰라? 긴,급.상,황 지금 1초가 아까운 상황인데 넌 씨발 기다리라는 말이 나와?”
그럴수록 담뱃대를 쥔 아리아드네의 손에는 힘이 들어갔고, 금속으로 세공한 파이프가 일그러지기 직전까지 힘이 들어가자 리암이 끼어들었다.
“솔직히 협조 해줬으면 하는데. 이건 에라실에 관련된 일이거든.”
“그건 너희 사정이지 내 알 바는 아니야.”
“우리는 서로 입장도 비슷하고, 서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정도는 협력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평온하게 설득하려는 리암도 은근 슬쩍 권총에 손이 가긴 했지만, 노골적으로 뽑아들진 않았다.
그 대신 레티시아가 나서려하자 다급하게 일어난 아이샤가 도약까지 써가며 불길과 함께 순식간에 아리아드네의 앞으로 이동했다.
“부탁이니까 도와줘, 언니. 왜 해방군을 만들 때, 어둠에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돕자고 했잖아. 지금이 그 순간이야. 그러니까 제발......”
아이샤의 호소에 인상을 구긴 아리아드네는 담뱃대를 망가트리기 전, 불길과 함께 다른 곳으로 보내곤 가볍게 혀를 찼다.
“기록은 3번 열차에 있는 격납고에 보관하고 있어. 거기로 가면 담당자가 안내해 줄 거야.”
아리아드네의 대답을 듣자마자 안톤은 곧바로 3번 열차를 향해 달려갔다, 그런 안톤을 대신해 고개를 숙인 아이샤는 조심스레 시선만 들어 아리아드네를 올려다보았다.
“고마워......”
“네 부탁 때문에 돕는 게 아니야. 기용 가능한 수호자를 잃는 건 해방군에게도 큰 손실이니까. 네가 여기 있을 수 있는 건 수호자와 기사가 있기 때문이지, 내가 널 용서한 건 아니야.”
그러자 사일러스가 다가와 아이샤를 밀쳐내려는 아리아드네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냥 사실대로 이야기 하시지 그래요? 꼭 아이샤가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데, 단순히 순진한 것이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 거라면서요.”
아리아드네는 사일러스의 손을 떨쳐 떨쳐내려 하지도 않았지만, 손에 희미하게 불길을 일으키며 사일러스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나와 고작 한 두 마디 나눴다고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그만두지 그래? 그러다 후회할 텐데.”
“여긴 아카이브가 아니잖아요. 누가 더 빠른지 내기 해볼래요?”
그와 함께 사일러스의 손이 허리춤의 권총으로 향했다. 그러나 사일러스의 손에 권총이 닿기 전에 아이샤가 그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잘못 한 것이 맞아......”
“그게 무슨 소리야?”
당황한 사일러스의 손이 아리아드네의 팔을 놓자 그녀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신호에 맞춰 수갑을 든 한 명이 들어와 아이샤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고, 아이샤는 조금의 저항도 없이 이를 받아들이곤 말없이 연행되었다.
“알고 있어서 다행이네. 거기서 나올 생각은 하지 말라고. 그리고 너희 모두 저 배신자의 뒤를 따라가 줘야겠어.”
아리아드네의 뒤로 수갑을 든 사람이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내자, 이제는 꺼릴 것이 없는지 권총을 잡은 리암이 살며시 공이치기를 당겼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사정이 어떻게 되었든, 너희는 로샨에서 온 기사들이니까. 해방군의 도시에 온 이상 너희들과 너희의 수호자가 로샨과 내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이 생기기 전까지는 주의를 기울여야 하거든. 특히 아직도 기사가 타고 있는 저 수호자는 더더욱”
아리아드네가 스펜서를 가리키자 레티시아가 일어나 아리아드네와 스펜서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건 안 되겠는데.”
“그렇다면 저 수호자에서 나오라고 해. 떳떳하면 스스로 설명할 수 있겠지.”
“그것도 불가능해. 지금 안톤이 해결하려는 문제가 그거거든.”
“그럼 어쩔 수 없네. 실력행사를 하는 수밖에.”
아리아드네가 손을 치켜드는 것을 신호로 리암은 권총을 뽑아들었다.
조준도 하지 않았지만, 리암이 가슴 아래에서 손바닥으로 공이를 치며 연속적으로 발사한 5발은 수갑을 든 사람들의 발에 정확히 박혔고 그중 한 발은 아리아드네의 어깨를 스쳤다.
찰나의 순간 능력이 봉인당한 아리아드네는 탄환이 스친 어깨를 부여잡았다.
멀리서 여전히 티페레트의 손을 잡은 샤하나즈는 아리아드네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고, 그의 장갑 아래로는 아리아드네의 불길이 빨려 들어가는 중이었다.
“아직 한 발 남았는데, 어떻게 할래? 아무리 올드 원이라도 이 상황을 벗어나긴 힘들 텐데.”
리암은 그런 아리아드네의 이마에 총구를 가져다 댔다.
“이렇게 나오겠다는 거야?”
“아무리 목적이 같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가족이 우선이거든.”
그리고 둔탁한 굉음이 스탈로의 엔진소리가 울려 퍼지는 격납고에 새로운 파문을 만들어 냈다.
그 굉음에 리암은 아직 실린더에 한 발이 남은 총구를 소리가 난 곳으로 돌렸고, 그 자리에는 스펜서의 열린 해치에서 떨어진 에라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