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진과 기사-45화 (45/50)

〈 45화 〉 그라이아이 ­ 3

* * *

“아직 이야....... 내가 그렇게 쉽게.......”

의식을 차린 것인지 바닥에서 조금씩 꿈틀거리는 에라실이 눈을 뜨자, 무릎으로 그의 머리를 받치던 레티시아의 얼굴이 그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에라실, 몸은 좀 괜찮아?”

“레티시아 누나......”

머리를 부여잡으려한 에라실은 자신의 손목에 걸린 수갑에 다른 손이 끌려오자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설마 로샨에.......”

“아니, 로샨은 아니야. 그렇다고 그렇게 완벽하게 아군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철창에 기댄 안톤은 에라실이 일어나기를 기다린 것인지, 가지고 있던 열쇠 뭉치로 잠겨있던 철창을 열었다.

이에 리암이 자리에서 일어나려하자, 안톤은 손을 저으며 에라실을 가리켰다.

“아니, 내가 볼 건 저 녀석만. 너희는 아직 나와도 된다는 허가를 못 받았어. 너희 수호자의 점검이 안 끝났거든. 거기에 어떤 병신이 총질을 해대는 바람에 더 문제가 복잡해졌거든.”

누구인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안톤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와 시선에 에라실도 대략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눈치 챌 수 있었다.

“죽이지는 않았잖아. 살짝 스친 상처니까 붕대 좀 감고 며칠 푹 쉬면 나을 거라고.”

“너야 노린 것이겠지만, 총구가 2~3mm만 틀어졌어도 아리아드네의 이마를 꿰뚫었을 거라고. 게다가 속사 속도를 생각하면 모르는 사람 눈에는 순전히 운으로 보였을 걸?”

“거참. 다들 속고만 살았나.”

그럼에도 자신이 잘못이 없다고 주장할 생각은 아니었는지 리암은 벽에 기대어 턱에 어중간하게 앉았다.

“그러면 샤하나즈는 어디 있는 거야?”

“시간 없으니까 빨리 와. 누구 죽는 꼴은 보기 싫으니까.”

안톤은 레티시아의 질문을 은근슬쩍 넘기며 에라실을 향해 나오라 손짓했지만, 구부정하게 몸을 일으킨 에라실은 작게 으르렁거리며 안톤을 올려다보았다.

“나에게 볼 일이 있다면, 레티시아도, 사일러스도, 리암도, 샤하나즈도 모두 풀어줘. 그 전에 여기서는 안 나갈 거야.”

“네가 그걸 따질 상황은 아닌데, 나도 너도 이번 일에 관련해서 공개적으로 털어놓고 싶지는 않잖아. 뭐, 리암과 샤하나즈만 아니라면 수갑을 찬 상태로 나와도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이 정도면 어때?”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으려 했지만, 에라실이 태도를 바꾸지 않자 안톤은 다시 문을 닫으며 에라실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면 내가 여기서 네 ”가족“에게 내가 멋대로 짐작한 네 이야기를 해도 정말로 문제없겠어?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끝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입장이 곤란해질 텐데.”

가족이라는 단어를 양손의 검지와 중지를 까딱이며 좋지 않은 의미로 강조하자 에라실이 닫히기 직전의 철창에 달려들어 매달렸다.

“안 돼. 그건 안 돼.....!”

“그럼 나와. 정확히 이야기를 듣고 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봐야지.”

“너를 믿어도 된다는 증거는?”

에라실이 으르렁거리며 묻자 안톤은 다시 문을 열었다.

“의사는 환자의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어. 내가 아무리 썩어 빠졌어도 의사 나부랭이니까 지킬 건 지킨다고. 네가 나를 죽이려 한다고 해도 비밀을 가지고 협박하지도 않을 거고.”

“그러면 협력할 테니까 약속한 대로 사일러스와 레티시아는 풀어줘.”

안톤이 고개를 끄덕이자 에라실은 순순히 따라 나왔다.

물론 에라실의 뒤로 철창을 다시 닫았지만, 그와 동시에 철창의 근처에 실수하는 시늉을 하며 열쇠를 떨어트렸다.

“아, 실수로 떨어트린 열쇠로 모두 나와 버리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아무리 얘네가 나한테 좆같이 굴어도 그런 실수는 하면 안 되잖아. 뭐, 설마 나오자마자 수호자가 보관된 3번 차량의 10번 격납고로 달려가겠어? 설마 그럴 리가. 그러기 전에 필요한 새끼만 빨리 데려가야지.”

노골적으로 횡설수설 혼잣말을 주절거린 안톤은 그대로 에라실을 데리고 유치장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걸어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아직 수갑이 풀리지 않은 에라실의 멱살을 잡고 벽으로 밀어 세웠다.

“이 씨발 너 정체가 뭐야. 너 새끼가 왜 니미럴 그라이아이를 알고 있는 거냐고?”

그러나 에라실은 놀라는 기색 대신, 눈을 찌푸리며 안톤을 노려보았다.

“너야말로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누가 말 해준 건데. 알고 있는 사람은......”

“로샨에 있는 사람은 전부 뒈졌지. 나만 빼면 말이야.”

대답을 듣자마자 에라실은 몸을 돌려 자신의 멱살을 잡은 안톤의 손을 떼어냈고, 동시에 그의 뒤로 돌아가 수갑의 사슬을 안톤의 목에 걸었다.

“너냐?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든 거냐!”

“병신아......! 나는 널......! 도우려 하는 거라고....... 너하고는....... 관련.......없어!”

“그렇다면 네가 왜 그라이아이를 알고 있는 건데!”

“이론을 만드는데 참여 했으니까! 실제로 적용할 줄은 몰랐다고!”

사슬이 목을 파고들기 전에, 안톤은 목소리를 낮춰 소리를 질렀고 잠시 뒤 에라실은 안톤의 목을 조른 사슬에 힘을 뺐다.

잠시 자신의 목을 매만지며 숨을 고른 안톤은 몇 번 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라이아이는 내가 대학 시설에 만드는데 참가한 이론 중 하나야. 의사 윤리 따위는 갔다 버린 교수 새끼가 좆같았지만 의사가 되려면 어쩔 수 없었어. 그때는 졸업이 최선이었으니까.”

“의사, 의사 노래를 부르더니 의사가 되기 위해 윤리를 버린 거냐?”

“윤리를 완벽하게 버렸으니까 절대로 실행하지 않을 거란 확신을 가진 거지.”

안톤은 다시 걸음을 이어가며 이마를 짚었다.

“하나의 수호자에 둘 이상의 영혼을 정착시켜 강제로 기사와 감응 수준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하나의 영혼이 받는 부하를 줄여 성능을 향상시킨다. 이게 내가 작업했던 그라이아이야. 그래서 네 수호자에는 영혼이 얼마나 정착된 거지?”

“최소 둘.”

“최소?”

에라실의 대답에 안톤은 잠시 멈춰 섰다.

“확실한 숫자도 아니고 최소는 뭐야? 네가 타는 수호자도 모르는 거야?”

그러자 에라실은 잠시 시선을 내려 자신을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원래 스펜서에 정착된 여러 영혼 중 하나였어. 이 몸도 원래는 누구 것인지도 몰라. 그저 내가 가장 빠르게 눈치 챘기 때문에 스펜서가 만들어지며 연결되었던 이 몸에 정착할 수 있던 거지.”

“영혼을 몸에 정착했다고?”

그러자 에라실은 어깨를 으쓱였다.

“왜? 금속으로 만들어진 수호자에 영혼을 정착시킬 수 있다면 시체에 영혼을 정착시키는 건 더 쉽지. 얼마 전에 직접 해보기도 했잖아?”

“티페레트......”

“그리고 지금 문제가 있는 곳은 스펜서가 아니야. 여기지.”

에라실은 수갑을 찬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스펜서가 그러한 것처럼 이 몸에도 영혼이 여럿 있어, 최근 전투에 능숙한 스펜서에게 제어 권한을 자주 넘겨 이 몸의 제어 권한도 점차 넘보게 된 거지.”

“그러면 얼마 전 스펜서가 너를 찾을 수 없다고 한 건?”

자신의 소매를 뒤져 작은 철사를 꺼낸 에라실은 입으로 철사를 구부려 수갑의 열쇠구멍을 휘적거렸다.

“그건 스펜서가 아니야. 나는 그걸 조율자라고 불러. 다수의 영혼이 한 번에 범람하면 수호자가 움직일 수 없으니까 그 녀석이 영혼을 관리하는 거야.”

이런 일이 익숙한 것인지 에라실이 몇 번 손을 움직이지도 않았지만, 수갑은 허무할 정도로 풀렸다.

“마지막 전투에서 스펜서에게 이 몸의 제어 권한을 거의 뺏겼어. 동시에 난 스펜서가 있는 수호자 안에 갇혀 있었고.”

“티페레트의 수술을 할때 제대로 말도 못하고 풀을 뜯어먹던 행동이 조금은 설명이 되네.”

그리고 불쾌한 기억이 떠오른 것인지 수갑을 던진 에라실은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그 수호자에 정착된 건 영혼뿐이 아니야. 그 안에는 어둠이 정착되어 있어. 이 몸도, 수호자도 차지하지 못한 영혼은 그 밤에, 어둠에 빠져 자신의 자리를 찾을 때 까지 끝없이 고통 받는 것이지. 나는 그 어둠에 숨어서 스펜서가 빈틈을 보일 때 까지 기다린 거야.”

“그리고 다시 몸을 차지한 뒤로 스펜서에서 내렸다는 거냐.”

“그래, 그리고 지금도 머릿속에서 스펜서가 다시 몸을 내놓으라고 미친 듯이 소릴 지르고 있지.”

씁쓸하게 웃은 에라실은 벽에 기대어 그대로 주저앉았다.

“기사 에라실은 여기가 끝이야. 또 다시 수호자에 탄다면 아마 스펜서가 완전히 이 몸을 차지할 테니 다시 수호자에 탈 수도 없어. 거기에 내가 만들어졌다는 것까지 밝혀지면 8번 전대에 있을 수도 없겠지.”

“가족을 믿지 못하는 거냐?”

“너라면 불사자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어? 거기에 이제 수호자에도 탈 수 없는 기사인데 있어봤자 짐만 될 뿐이야.”

에라실의 웃음에는 희미한 흐느낌이 섞여들었지만, 이는 얼마 가지 않았다.

그 대신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조용히 눈물을 흘린 에라실은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냥 내가 진료 중에 죽었다고 전해줘. 넌 최선을 다했지만 막을 수 없던 거야.”

“앞으로 어쩌려는 거냐?”

“별 것 있겠어? 그냥 죽은 것처럼 사라져야지. 이제는 익숙하니까.”

아예 미련마저 버린 것인지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일어난 에라실은 다른 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지만, 무언가 앞길을 가로막는 기분에 그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에라실이 눈을 내리자 양팔을 벌린 티페레트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싫어!”

에라실을 올려다 본 티페레트는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슬퍼할 거라고! 아무도 이런 이별은 원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이게 가장 쉬운 방법이야.”

얌전하게 티페레트를 옆으로 밀어낸 에라실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지만, 티페레트는 다시 그의 앞을 가로막고 양 팔을 벌렸다.

“난 세피로트야! 나라면 너를 도울 수도 있다고!”

“허풍을 치기에는 별로 좋은 타이밍은 아닌 것 같은데.”

멀리서 팔짱을 낀 안톤은 티페레트의 외침에 의심만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티페레트를 지긋이 바라보던 에라실은 몸을 낮춰 티페레트 근처에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아니, 진심으로 하는 말 같은데. 그런데 네가 왜 돕는다고 하는 거지?”

그러자 티페레트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네가 없어지면 샤하나즈가 슬퍼할 테니까......“

주먹을 단단히 쥔 티페레트는 결의에 찬 눈으로 자신과 눈높이를 맞춘 에라실을 마주보았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날 위해 목숨을 건 샤하나즈를 위해서 이번에는 내가 목숨을 걸 거야.”

에라실을 도울 자세한 계획을 물어보자, 티페레트는 대답하는 대신 옷을 대신해 몸에 두른 천을 고쳐 잡아 후드처럼 눌러썼다.

약간 모습이 반사되어 보이는 매끄러운 표면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 티페레트는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곤 문을 두드렸다.

“퍼시빌! 아직도 거기 있지! 도와줄 수 있어?”

티페레트가 몇 번이고 문을 두드리자 책 더미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서서히 열렸다.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책과 문서가 쌓인 방 사이로 머리가 개기름으로 떡 진 남자가 무너진 책 사이로 발을 간신히 내딛고는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목소리는 알아들었지만, 코 끝에 걸친 안경을 밀어 고쳐 쓰고 나서야 신원을 확신한 것인지 시선을 내려 티페레트를 바라보았다.

“엥? 아가씨 또 오셨어요? 거기에 갑자기 도와달라니 무슨 이야기세요?”

“내 영혼을 수호자에 정착시켜줄 수 있어?”

“네? 그건 무슨 소리세요? 농담하시는 거죠?”

도끼로 깎은 것처럼 거칠고 지저분한 수염을 만지작거리던 퍼시빌은 티페레트의 말에 당황한 것인지 구부정한 자세가 순식간에 바로잡혔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야. 지금 도와야 할 사람이 있거든.”

티페레트의 뒤로 안톤이 들어오자 퍼시빌은 뒷걸음질 치다 책에 걸려 넘어졌고, 또 다른 책 더미가 무너지며 그의 위로 쏟아져 내렸다.

잠시 동안은 죽은 것처럼 반응이 없었지만, 이내 책 무더기에서 팔이 휘적거리며 뚫고 나왔고 그 사이로 퍼시빌이 뚫고 나왔다.

“가....... 갑자기 다들 누구세요?!”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그라이아이라고 알고 있어?”

주변을 더듬거리며 벗겨진 안경을 찾은 퍼시빌은 안경을 다시 쓰곤 고개를 끄덕였다.

“논문은 읽어봤죠. 그걸 쓴 놈이 있다면 진짜 미친놈이거나 천재거나, 아니면 미친 천재거나 셋 중 하나에요. 수호자 하나에 영혼이 둘 이상이라니. 대체 어쩌자고 그런 생각을 한 건지. 물론 수호자의 성능은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그 수호자에 탄 기사는 사람이 아닐 거라고요. 그런데 두 분은 누구세요?”

조금 흥분해서 주절거리던 퍼시빌은 방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에 두 명을 번갈아 살펴보며 눈치를 살폈다.

“그걸 만든 사람 중 한 명이 나야.”

“그리고 거기에 탄 기사가 나고.”

그러자 방금 자신이 주절거린 말이 스쳐지나간 것인지 할 말을 잃은 퍼시빌은 어색하게 시선을 돌리며 입만 뻥끗거렸고, 손가락 관절을 꺾으며 위협적인 소리를 낸 에라실은 말없이 방 안으로 들어오며 문을 닫았다.

“그러면 너도 의사인가?”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요. 저는 완성된 수호자를 수리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수호자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원이었거든요. 이론은 자신 있어도 실전은 좀......”

퍼시빌은 손이 닿는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곤 두 명의 시선을 피했지만, 눈앞에 든 책을 슬쩍 내려 그의 얼굴을 살핀 안톤은 그의 책상으로 향했다.

심각하다는 접두사가 어울릴 정도로 난잡하게 어질러진 책상 위에서 작업 중이던 설계도를 발견한 안톤은 이를 들고 가볍게 펄럭였다.

“이거, 내가 생각하는 것하고 똑같은 건가?”

“아, 영혼 정착기 맞아요. 완전히 머릿속으로만 진행하다보니까 진행이 엄청나게 더디지만, 지금 해방군에 가장 급한 물건이거든요.”

또 다시 흥분이 얼굴에 드러난 퍼시빌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의 다른 설계도를 들어 자랑스럽게 보였다,

“만약 완성만 된다면 로샨의 위성도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전력이 될 거에요. 지금 해방군이 있는 수호자들은 죄다 구식 기체밖에 없으니까요.”

“제작은 가능해?”

“어....... 그건 좀 곤란해요. 필요한 부품이 한 가득인데, 해방군의 사정이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거든요. 식량, 물, 의약품, 스탈로의 보수에 필요한 부품까지, 전부 부족해서 간신히 버티는 수준이니까요. 여유가 있어도 전부 아침의 파편을 확보하느라 여기 필요한 부품은 구할 수가 없어요.”

“아니, 내 말은 부품이 있다면 제작을 할 수 있냐는 거야. 구할 방법은 대강 있거든.”

설계도를 자세히 살펴보던 안톤은 가볍게 설계도를 툭툭 쳤다.

“완벽할 필요는 없어. 70% 정도만 완성하면 수호자를 만드는 것은 무리라도 재조정은 가능할거야.”

“아무리 의사라도 영혼의 재조정은 아예 다른 문제 아닌가요? 그것도 할 줄 아는 거세요?”

“그건 내가 할 거야.”

티페레트의 대답에 안경을 다시 고쳐 쓴 퍼시빌은 당황한 눈으로 그녀를 위아래로 살폈다.

“아가씨가요? 그 기술을 익히려면 최소 10년은 걸릴 텐데...... 10살이라면 믿겠지만, 10년 동안 그쪽 기술을 익혔다는 건 좀.........”

“티페레트는 그냥 애가 아니니까. 설명하려면 좀 복잡해.”

그러자 퍼시빌에 얼굴에 엿보이던 미세한 흥분은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티페레트? 설마 제가 아는 티페레트는 아니죠? 그 미친년 말이에요. 그 싸이코 때문에 죽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닌데.......”

그리고 또 다시 분위기가 얼어붙자 퍼시빌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설계도를 떨어트렸다.

“농담이죠? 아가씨? 그런 거죠? 설마 그럴 리가......티페레트는 분명 톱니바퀴에 있는 영혼이었는데......”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잖아. 만들 수 있어? 없어?”

대답하지 못하는 티페레트를 대신해 에라실이 물었지만,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퍼시빌은 재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책무더기 위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안톤은 그의 반응은 상관없었는지, 설계도를 보며 잠잠히 생각하다 마음을 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답이 어떻든 계획은 대충 정해졌어. 자세한 방향은 아리아드네가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 달렸어.”

“계획이라니?”

설계도를 책상 위에 올린 안톤은 설계도 중심에 그려진 엔진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수호자를 만드는 제 1 위성도시, 우누로 갈 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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