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진과 기사-48화 (48/50)

〈 48화 〉 그라이아이 ­ 6

* * *

격납고 내부에 붉은 불이 켜지기가 무섭게 내부의 인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기동 준비된 수호자 보고해!”

“4호기 기동 가능합니다!”

“7호기 기동 가능합니다!”

멀리서 외치는 보고에 아리아드네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지시를 이어나갔다.

“4호기와 7호기는 기동 준비! 기동 후, 수호자가 위치에 도착하면 바로 열차포를 작동시킬 준비! 관측소! 어둠 농도 보고해!”

그와 함께 천장의 조명 부분의 톱니바퀴가 회전하며 사람 한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원통이 내려왔고, 등대 같이 중심에 눈부신 전구가 자리 잡은 원통에서 한 명이 고개를 내밀었다.

“약 10분 후에 최심부로 진입합니다!”

“격납고 개방 준비! 전원 전투 위치로!”

마지막으로 지시를 내린 뒤로 아리아드네는 소매를 걷고 격납고 문 앞에 섰다.

그녀가 잠시 눈을 감자 아리아드네는 전신이 문자 그대로 불길이 되어 맹렬하게 타올라 붉은 빛 조명만 남아 어두워졌던 격납고를 푸른빛으로 밝게 밝혔다.

눈부시게 밝은 푸른빛에 살짝 눈을 돌렸던 레티시아는 출격이 준비된 수호자에 1명이 아닌 2명이 타는 것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잠깐, 저기는 왜 두 명이 타는 거야? 수호자는 한 명의 기사만 탈 수 있는 것 아니었어?”

“저게 2세대 수호자야. 영혼이 없는 대신 1명이 더 탑승해서 영혼의 역할을 대신하는 거지. 수호자에 영혼이 들어간 건 4세대 수호자부터야. 수호자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올라간 것도 그때부터고.”

설명하는 것 보다는 무언가를 고민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에 가깝게 읊조린 리암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리아드네를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이전에 티페레트가 유일한 수호자라고 한 것이겠지? 저건 수호자보다는 단순히 보행 기계에 가까우니까.”

“닥치고 너희도 움직여. 너희를 공짜로 여기 머무르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전신을 불태우는 아리아드네는 열리는 문을 바라보며 명령조로 말했지만, 리암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렇다면 수호자를 쓰는 게 더 도움이 될 텐데? 너 정도면 2세대와 4세대 수호자의 성능 차이를 모를 리가 없을 것 아니야?”

그런 리암의 말을 증명하듯 기동을 시작한 두 수호자는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뻣뻣한 걸음걸이로 비틀거리며 간신히 수호자용 소총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이에 반응할 여유도 없는 것인지 문이 열리자마자 아리아드네는 전신의 불길을 한층 더 강하게 태우며 격납고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어둠을 밀어냈다.

“수호자 출격 준비!”

아리아드네가 전신의 불길로 어둠을 막아내는 동안, 삐걱거린다는 표현 말고는 설명하기 힘든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로 격납고 문을 나선 수호자 둘은 열차의 위로 향했다.

그 사이 아리아드네의 불길을 뚫고 밀려들어오려는 어둠의 안에서 불사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리아드네가 불길로 어둠을 막고 있었지만, 불길을 뚫고 들어오는 불사자들은 몸이 불타는 것에도 아랑곳 하지도 않고 내부로 비집고 들어왔다.

“전원 사격 개시!”

불사자가 불길을 뚫고 완전히 격납고의 내부로 들어오자 아리아드네는 사격 신호를 내렸고, 불쾌한 악취와 함께 타오르던 불사자들은 그대로 육편으로 갈려나가며 격납고 밖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사이 격납고 문이 천천히 닫혔고, 밀려오는 어둠도 벽에 막혀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아리아드네의 얼굴에는 여전히 긴장이 가득 남아있었다.

“열차 감속 후 열차포를 가동한다! 그리고 너희 둘!”

지시를 이어가던 아리아드네는 팔짱을 끼고 모든 것을 관망하던 리암과 레티시아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녀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 열차가 무언가에 충돌한 것처럼 충격과 함께 정지했다.

예기치 못한 충격에 격납고 내부의 인원들이 전부 나뒹굴었지만, 아리아드네는 황급히 몸을 돌려 쓰러지는 수호자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한순간에 손에 불길이 타오르니 아리아드네의 양 손을 감은 붕대가 불타올라 샤하나즈를 수술하며 생긴 화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고통으로 아리아드네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아리아드네는 수호자가 쓰러지는 것을 막기가 무섭게 목소리를 높였다.

“관측소 보고해! 무슨 일이야?”

여전히 침착한 아리아드네와는 달리 관측소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불안정한 떨림으로도 당황함을 엿볼 수 있었다.

“어...... 어둠 농도가 짙긴 하지만, 아직 열차를 멈출 수준은 아닙니다! 어둠으로 인해 육안으로 식별되지 않지만 무언가 열차를 정면에서 막은 것으로 보입니다!”

“열차포 가동해서 공격할 준비해!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서 다른 수호자들의 기동 준비도 서둘러라!”

아리아드네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지시를 이어갔지만, 관측소에서 또 다시 당황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시만? 이쪽으로 누군가...... 아악!”

그 외침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고, 관측소의 벽면이 뜯겨나가며 비명마저도 새어 들어오는 어둠에 묻혀 사라졌다.

그리고 주 조명을 담당하는 관측소가 부서져 불길한 붉은 빛만 남은 격납고의 중앙으로 누군가 뛰어 내렸다.

“안녕~ 너희 열차를 타야하는데 정류장을 지나친 것 같더라고. 내가 조금 격하게 막았지만 괜찮지?”

오묘한 끈적거림이 느껴지는 목소리였지만, 그런 것 따위는 조금도 상관이 없는 것인지 내부에 대기하던 인원들은 방아쇠를 당겼다.

어두침침한 붉은 조명만 남아있던 격납고 내부는 일순간이지만 총구 화염으로 인해 환하게 밝아졌다.

하지만 그 장난기와 음란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목소리의 여성은 탄환 세례를 받고 나서도 여전히 자리에 서서 자신의 몸에 묻은 먼지만 털어낼 뿐이었다.

“아~앙, 이런 격한 건 내 취향이 아닌데. 너무 격렬한 것 아니야?”

그녀가 여전히 장난스런 목소리로 대답하니 천장을 녹여 억지로 어둠이 밀려들어오는 것을 막은 아리아드네가 앞으로 나섰다.

“넌 누구지?”

“그건 별로 안 중요하니까 넘어가자. 네가 이 열차의 차장인 것 같은데, 내 자매 좀 찾아줄래?”

“네가 누군지 몰라도 적대적 행위를 한 시점에서 협상의 여지는 사라졌어.”

손날을 세운 아리아드네는 목을 베는 것처럼 그대로 팔을 휘둘렀지만, 손날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남긴 푸른 궤적은 그녀의 목에 닿기 직전에 멈췄다.

“그런데 나는 협상하러 왔는걸?”

그녀에게 붙잡힌 아리아드네의 손날의 빛에 피부를 대신하는 검은색 금속 장갑을 비췄다.

그럼에도 아리아드네는 여전히 타오르는 손을 휘두르며 여성을 계속해서 밀어붙였고, 아리아드네의 커다란 소매가 펄럭일 때 마다 여성은 팔로 이를 막아내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걷는 것마저도 힘들어 보이는 옷을 입었음에도 움직임에 조금도 군더더기가 없는 아리아드네는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공격을 이어나갔다.

“네가 누구라도 상관없어. 네가 한 짓은 목숨으로 갚아.”

계속해서 여성을 밀어붙이던 아리아드네는 손날을 휘두르는 도중 불길과 함께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여성의 뒤로 불기둥과 함께 아리아드네가 모습을 드러냈다.

팔을 들어 손날을 막아내려던 여성이 제대로 반응도 하기 전, 아리아드네의 손이 그녀의 척수를 붙잡아 그대로 뜯어냈다.

푸른빛을 발하는 척수와 함께 늑골처럼 보이는 뼈대가 완전히 들어나자 여성은 그대로 쓰러졌고, 잠시 숨을 고른 아리아드네는 뜯어낸 척수를 한 쪽에 집어 던지곤 지시를 이어갔다.

“내 신호에 맞춰 열차포 발사 준비! 포탄을 도약시켜 열차의 진행을 막는 장애물을 처리하겠다!”

“누구 마음대로?”

아리아드네의 지시에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척수가 뜯겨나간 여자는 웃음과 함께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체.......”

척수가 뜯겨나가며 완전히 들어났던 늑골과 척수가 순식간에 자라난 그녀는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급속 자가 수복 “불멸 프로토콜”. 그래도 올드 원은 쉬운 상대가 아니네.”

“말도 안 돼. 네가 티페레트와 같은 세피로트라고?”

이전 샤하나즈와의 전투에서 들었던 문장에 놀란 리암이 소리를 지르자, 그녀는 음란함이 묻어나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키스를 보냈다.

“내가 아버지에게 받은 이름은 네차흐. 티페레트 언니를 만나려고 왔어.”

“단순히 만나러 온 것 치고는 이미 선을 넘었어.”

그러나 네차흐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인지 아리아드네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뭔 상관이래? 만날 수 없다면 불멸자를 써서 여길 전부 으깨버리면 그만인데. 어떻게 할래?”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린 네차흐는 금방이라도 톱니바퀴를 돌릴 것처럼 가슴의 톱니바퀴를 만지작거렸고, 그와 함께 강렬한 충격이 격납고를 흔들며 문이 선명한 손의 형태로 일그러졌다.

“올드 원이라면 제대로 된 결론을 낼 수 있을 거라고 믿을게. 나는 문자 그대로 티페레트를 보려고 온 것뿐이니까.”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아리아드네는 네차흐를 노려보며 한쪽으로 손을 뻗었고, 그녀의 팔뚝에서 천천히 불길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걸로 전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건가?”

“누구의 명령도 아니고 내 독단으로 왔을 뿐이니까. 더 해를 가할 이유는 없지.”

아리아드네는 적당한 상자 위에 앉아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보라는 것처럼 느린 움직임으로 다리를 꼰 네차흐를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충격과 함께 격납고가 흔들리자 그녀의 마음도 흔들린 것인지 불길을 한층 더 키웠다.

또 다시 충격이 이어지기 전, 아리아드네의 손이 향한 곳에 불기둥이 솟구쳤고, 불기둥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당황함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티페레트가 나타났다.

“뭐......뭐야? 갑자기 여긴 어디고?”

“반가워, 언니~ 또 만나네?”

네차흐와 눈이 마주치자 다리에 힘이 풀린 티페레트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간신히 입을 움직였다.

“네....... .네차흐....... 네가 어떻게......”

“어휴, 말도 못하게 처참하네? 세계의 억제력인 세피로트가 피와 살에 담겨있는 꼴이라니. 그걸로 우리에게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이 곳에 대한 위치 정보는 분명 티페레트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이 곳을 안 것이지?”

“고작 씨앗을 때어놓은 것만으로 그만이라고 생각한 거야? 오히려 아리아드네가 내가 알려준 대로 잘 말 해준 덕분에 씨앗을 얻기만 더욱 쉬워졌지. 더 이상 수호자인 세피로트를 상대할 필요가 없고, 무엇보다 가장 큰 걸림돌을 직접 제거할 방법도 생겼으니까.”

네차흐가 주저앉은 티페레트에게 손을 뻗으려하자 아리아드네가 그녀의 목을 쥐었고, 리암의 옆에 서있던 레티시아도 근처의 병사가 든 총검을 빼앗아 네차흐에게 달려들었다.

목에는 금방이라도 타오를 것 같은 아리아드네의 손과 명치 부근에 칼날이 닿자 네차흐는 장난이라도 한 것 마냥 웃으며 손을 내렸다.

“물론 오늘은 진짜 얼굴만 보려고 왔을 뿐이야. 방금도 말 했지만 목적을 이뤘으니 너희에게 더 해를 가할 이유도 없고.”

그러나 네차흐는 미소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자기 가슴에 박힌 톱니바퀴를 돌렸고, 장갑 아래에서 분출되는 대량의 증기에 아리아드네와 레티시아가 튕겨 나왔다.

《엔진에 의한 기능 해제 승인. 세피로트의 나무를 전개합니다.》

튕겨나간 레티시아가 다시 자리를 잡기도 전, 이미 네차흐는 광배근쪽 장갑이 전개되어 금속으로 만들어진 작은 나무가 자라 있었다.

“약속하고 다르잖아! 분명 더는 해를 가하지 않는다고.......”

“더 해를 가할 이유가 없다고 했지. 그런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

《지역 장악용 무장을 출력합니다.》

그녀의 말에 대답하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격납고에 울려 퍼지자 네차흐의 등에서 자라난 나무가 열렸다.

하지만 나무에서 나온 것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무장이 아닌, 검은 점액이 섞인 붉은 살점만이 쏟아져 나올 뿐이었다.

“《아리아드네에게 남기는 감사의 선물이니까 잘 받아둬.》”

마지막으로 알 수 없는 금속까지 살점에 섞여 쏟아져 내리자 세피로트의 나무는 다시 네차흐의 몸 안으로 접혀 들어갔다.

나무를 완전히 몸 안으로 집어넣은 네차흐는 푸른 분진으로 천천히 사라졌고, 네차흐에게 달려든 레티시아의 칼날이 장갑 사이로 파고들기 전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아리아드네....... 방금 들었던 말, 진짜야?”

검을 들고 이성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인지, 거침 숨을 몰아쉬는 레티시아는 동공이 잔뜩 수축된 눈으로 아리아드네를 돌아보았다.

“금시초문이야. 아무리 너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해를 가할 이유는 없어.”

“꼭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지. 안 그래?”

레티시아는 점점 헐떡이며 더욱 단단하게 칼날을 쥐었고, 아리아드네마저도 거의 악의나 다름없는 레티시아의 기세에 밀려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레티시아를 막아선 리암은 그녀의 손에서 총검을 떼어냈다.

“진정해. 지금 잡아야 될 무기는 그게 아니잖아. 아직 나도 모르는 것이 많지만, 지금 확실한 건 따로 있다고,”

리암의 말대로 네차흐가 쏟아낸 살점과 금속은 천천히 움직이며 점차 뼈대를 만들고 선명한 모습을 갖추어갔다.

“너라도 이번만큼은 우리가 수호자에 타도 뭐라고 할 생각이 없겠지?”

“오해는 나중에 풀도록 하지. 지금은 클리포드의 제압을 최우선으로.......”

그러나 여전히 아리아드네를 노려보는 레티시아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난 해답이 우선이야.”

레티시아의 눈에는 여전히 아리아드네를 향한 살의가 끓어올랐다.

“발레리안은 우리 가족을 지키는 방패야. 그 방패로 우리 가족을 해하는 사람을 보호할 생각은 없어.”

“됐어, 그렇다면 내가 외부로 도약시킬........”

레티시아가 조금도 협조의 뜻을 보이지 않자 아리아드네는 거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 않은 클리포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허나 아리아드네의 팔은 이전처럼 불타오르는 대신 깊은 균열이 생기며 그 사이에서 진홍빛 불꽃과 함께 선혈이 튀었다.

그와 함께 순간 숨이 막힌 것인지 아리아드네는 피가 흐르는 팔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어두운 붉은 조명 아래 유일하게 선명한 색을 유지하는 아리아드네의 상처 아래에는 창백한 뼈까지 그대로 드러났다.

“전원! 전투 준비! 모든 수호자를 가동시켜라! 아침이 올 때까지 이 열차를 방어한다!”

“지금 어둠을 막을 수는 있어? 아무리 나와 커티스가 정밀하게 화기를 다뤄도 우리가 전투를 시작한다면 열차의 피해는 필연적이야. 저 정도로 짙은 어둠이 밀려들어오면 그 순간으로 끝이라고.”

《그럴 필요 없어.》

아직 리암이 커티스에 탑승하지도 않았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리암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완전히 모습을 갖추어 일어난 클리포드를 뒤에서 덮친 것은 그 누구도 다시 움직일 것이라 생각하지 않은 스펜서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