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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000 미친 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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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화
"자, 가벼운 허공 도약 연습이다."
그 말을 들은 것이 언제였더라?
십년인가…이십 년 전쯤인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들은 상황과 주변의 풍경은 아직 사내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구름보다도 위에 위치한 깎아지른 봉우리, 당장 한 발자국만 나아가면 끝없는 무저갱으로 떨어질 법한 거대한 절벽의 위편.
그곳에서 사내의 스승이 그의 등을 밀어 보채며 한 말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무어라 대답했는지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실패하면 뒤지겠는데요."
"뭐, 최악의 경우라도 하늘에는 올라가겠지."
"진심이십니까?"
"너는 지금 스승을 거짓말을 일삼는 인간으로 만들고 싶은 거냐?"
하하.
미친 인간.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더라?
안타깝게도 기억나지 않는다.
충격과 공포에 잠식당해서일까.
아니면 잊어버리는 편이 조금 더 평안한 생애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없앤 탓일까.
하지만, 사내가 이렇게 번듯이 살아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 있으니 아무래도 그 때 하늘로 승천하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별로 떠올리고 싶지는 않은 기억이지만, 사내는 지금 그 끔찍한 기억을 되씹고 있었다.
왜 갑자기 자학을 하느냐 묻는다면—사내는 이렇게 대답해 줄 요량이었다.
웬 미친년이 집무실에 쳐들어와서는, '내가 네 스승이다' 라고 지껄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미안하지만, 내가 잘못 들었나? 누구라고?"
"많이 컸구나, 솔디어. 말대답도 하고. 네 스승님이시다. "
눈앞의 소녀는 눈 한 번 깜짝 안하고 그렇게 대답했다.
저 기세만으로 사람을 판별하자면 도저히 거짓말이라고 볼 수 없는 자신감이었다.
저게 거짓말이라면, 저 소녀는 분명 별이 낳은 천재적인 배우나 시대를 속일 새 종교의 지도자가 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당최 어떻게 그 말을 믿어야 하겠는가?
빌어먹을 스승이었더랬다.
자기는 할 줄 안다고, 다른 사람들이 다 자기처럼 천재인 줄 아는 미친 인간.
가르침의 기준이 천재에서 움직일 생각을 않으니, 매일매일이 한계와 인내심을 시험하는 나날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의 슬하에서 배움을 반복한 것은, 스승이 그토록 위대한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실베스터 론하르트.
최강의 기사.
그가 싸워 이긴 온갖 고수들과 몬스터, 전쟁의 공훈과 업적—
무엇보다, ‘마왕 토벌'에 얽힌 그 살아있는 전설의 이야기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고 또 위대한 기사였다.
그렇기에 사내는 그의 아래에서 배웠다.
그의 아래에서 싸웠고, 그의 아래에서 자랐다.
이 대륙에 사는 사내로서, 가슴 한 켠에 불을 지피는 수많은 이야기들의 주인공이 자신의 스승이라는 것 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영예를 전부 가진 것만 같았다.
드래곤 슬레이어, 왕의 기사, 제국의 구원자…….
그 모든 것이 사내를 가리키는 스승에 대한 수식어였으므로.
그런데…… 으음.
"무슨 말이라도 해 봐라, 솔디어. 어떤 질문이라도 좋다."
눈 앞의 여성은.
아니, 여성이라고 부르기에도 모자람이 있는 어린아이는 대뜸 그런 인간이 바로 자신이라고 지껄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저렇게 당당한 태도로 말이다.
확실히 저 은빛 머리칼과 새벽색 눈동자는 스승의 그것과 비슷한 감이 있었지만, 스승은 이미 칠십을 바라보는 노인일 터였다.
만나뵌 지 수십 년이 지났다곤 하나, 나이를 거꾸로 먹기야 하겠는가.
…물론, 노인이기 이전에 남자였고 말이다.
"………."
사내, 검성의 넷째 제자 솔디어는 잠시 고민하고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역시 그것 하나밖에는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주 간단명료하고 심플한, 단 하나의 답이다.
"미친 년인가."
솔디어는 고개를 끄덕이곤 책상 위에 놓인 종을 두어 번 울렸다.
그러자 곧, 집무실의 문을 거칠게 열고 몇 명의 사용인이 우르르 몰려와 소녀를 포박했다.
"솔디어? 잠시만… 얘기를 들어 봐라. 듣다 보면……."
"끌고 가서 감옥에 가둬라. 쯧, 요즘에는 별의 별 종자가 다 날뛰는군. 감히 스승님 행세를 해?"
"솔디어? 솔디어! 자, 잠깐만! 에잇, 이거 놔라! 이 빌어먹을…! 으읍!!"
사내는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날씨가 좋다.
어쩌면, 귀한 손님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고.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솔디어! 솔디어! 이, 이 자식아! 스승을 스승이라 부르지 못하냐?! 이 개새끼야!!"
……저 멀리 사라지는 소녀의 비명을 뒤로 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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