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소녀검성-8화 (8/47)

〈 8화 〉 #007 저 간첩 아닌데요(1)

* * *

7화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텔레포트의… 뭐랄까, 승차감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발동의 감각은 썩 좋지 않다.

속이 뒤집히고, 공기는 흔들리고, 아무튼 어지러운 것이…….

요즘 젊은 놈들은 괜찮다곤 하던데, 나는 이 몸이 되어서도 구역질이 났다.

마법사 놈들이 들으면 꽤 좋아할 만한 정보일지도 모르겠다.

가령 뭐 ‘텔레포트 멀미와 인체의 무관련성에 대한 연구’ 같은 거.

하지만 지금은 멀미의 구역질보다는 당장 탈출의 안도감이 더 컸다.

그 문지기 새끼가 나를 발견한 순간과 내가 아주 상큼하게 엿을 날린 순간, 그리고 텔레포트가 발동된 순간은 아주 정확하게 교차했다.

시야가 한 순간에 뒤집히고, 주변의 공기가 달라진다.

차가운 돌바닥의 감촉에서 뒤바뀐 것은 뭉개지는 풀의 감촉.

“아이고 허리야…….”

나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빼곡한 나무와 수풀이 가득 드리워 있었고, 저 멀리서 떠오르는 태양이 보여왔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새벽을 밝히는 도시의 불빛이 시야에 스쳤다.

아직 하늘은 자주색 여명이 채 가시지도 않았건만 도시는 벌써부터 분주하여 하루의 시작을 부지런히 알리고 있었다.

내 목적지, 도시 베일렌.

다행히도 텔레포트는 알맞게 시행된 것 같았다.

‘‘뱀 굴’은 출발하는 장소는 고정이지만, 도착 장소는 도시 근처의 랜덤한 위치랬지.’

본래는 다른 지부들이 동시에 습격당했을 때를 대비해 일망타진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마련한 방비책이라고 했던가.

제 3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번거롭기 그지없는 수단인 것 같지만…… 이번에는 득을 봤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나.’

지부장의 패를 내가 가지고 있으니 추적도 따라붙지 못할 것이다.

그야말로, 이제는 조금 안심해도 좋을 테다

이외에 대충 코트에 넣고 가져온 물건들도 전부 무사한 것 같았다.

금화 주머니와 단검, 그리고 반지나 귀걸이 몇 개와 내 손에 든 금패까지.

하나같이 처분하면 비싼 값을 받아낼 수 있는 물건들 뿐이었지만, 단 하나만큼은 예외로 두기로 했다.

‘이건 버리는 게 낫겠다.’

나는 이젠 쓸모 없게 된 금패를 대충 저 멀리 던졌다.

좀 아깝기는 하다만, 저런 물건은 본디 추적 마법 같은 것이 걸려 있는 법이다.

갖고 있어 봐야 위험하기만 하니 일찌감치 버리는 게 낫다.

게다가 텔레포트를 이용할 다른 수단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구태여 위험한 도박을 행하는 것은 이번을 마지막인 것으로 하자.

나는 옷매무새를 점검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전의 수도복은 여전히 눈에 띄었지만, 강탈… 아니, 빌려 온 코트 덕에 조금은 자연스러워 보였다.

아빠 코트를 몰래 훔쳐 입은 딸내미 같았다만, 기장을 잘라 조절하니 어떻게든 됐다.

있는 건 금화 열 두개와 반지 등의 패물 몇 개, 그리고 단검.

“여긴 새벽인가…. 서둘러야겠어.”

자색과 적색의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게 물들고 있었다.

아침이 되면 위병들이 깨어나 입성이 어려워질 테니 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나는 숲을 벗어나자마자 도시로 향했다.

동이 트고 있으니 이미 성문은 열렸을 테고, 어린아이의 검문은 그리 심하지 않다.

그냥 대충 말 몇 마디로 둘러대면 쉬이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일행은 먼저 들어갔다거나, 심부름을 다녀왔다거나 하는 그런 거.

'……분명 그랬어야 했는데.'

나는 숲을 벗어나서 곧장 보이는 끔찍한 행렬에 헛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분명 아직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성문 앞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사람과 마차들의 행렬은 거의 30m정도는 족히 되어 보였다.

“줄이 왜 이렇게 길어?”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다. 애초에 셈포어와 달리 베일렌은 대도시라, 이 정도의 유동인구로 뭔가 큰 변화가 있을 턱이 없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저 앞을 확인했다.

위병 여럿이 한 사람을 둘러싸고 몸 수색을 하고, 다른 여럿은 수레를 뒤적이며 작은 상자 하나하나까지 전부 들춰내는 현장.

그리고 뒤쪽부터 시작되는 신분증의 제시부터 수레의 품목 확인, 나아가 마력 조사까지.

한 사람이 통과하는 데에만 거의 십 분 남짓이 걸릴 지경의 검문이 이뤄지는 것이 보였다.

‘……전쟁이라도 났나?’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무린데....

나는 설마 싶은 가정을 접어 두고는, 가까운 사람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말문을 텄다.

상대는 수레와 말을 이끌고 전전긍긍한 채 기다리고 있는 후덕한 사내였다.

“거, 실례 좀 하겠소.”

“음? 아, 어? 아……. 무, 무슨 일이니?”

사내는 순간 자기와 시선을 맞춰 앞을 바라보았다가, 이내 목소리의 근원을 찾아 고개를 내려 나를 쳐다보았다.

어쩌면 앞으로 이런 시선을 계속 견뎌야 할지도 모르겠다.

'말 더듬는 꼬라지 하고는.'

순간 열이 뻗치긴 했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질문했다.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아시오?”

“아… 아저씨도 잘은 모르는데, 뭐 첩자가 침입했다? 그런 모양이더라고.”

“지랄! 뭔 놈의 첩자? 전쟁이 끝난 지가 언젠데?”

“나도 잘은 몰라. 근처에서 허가받지 않은 장거리 텔레포트 반응이 감지되었다나. 그런데 너 무슨 애가 말투가…….”

“……신경 끄쇼.”

빌어먹을, 목소리 지랄났으면 됐지 말투로도 지랄을 들어야 하나.

나는 후드를 눌러쓰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조질 뻔했네.”

조금만 늦었으면 놀라는 표정이 겉으로 드러날 뻔 했다.

얼굴 근육이 멋대로 움직이는 게, 옛날처럼 통제가 안 된다.

근데 뭐라고? 텔레포트 반응?

그거 난가?

‘에이… 설마.’

가능성이야 있지만, 설마 뱀 놈들이 작업을 그렇게 허술하게 쳐 놨을 리가 없다.

변방 지부라서 호구새끼들만 있어서 망정이었지, 윗선의 실력자들은 옛날에도 나와 겨룰 만한 실력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설마 이렇게 단순하게 발각될 리가 없지 않은가.

……젠장, 뭐 어쨌든 간에.

내가 됐든 다른 머저리가 됐든 경비가 이따구인 건 변하지 않는 일.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정문으로는 못 들어가겠는데.’

내가 이 차림으로 성의 정문으로 가 들여보내 달라고 호소하면,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대략 세 개 정도 있다.

첫 번째는, 수상한 사람으로 몰려 잡혀들어가는 것.

두 번째는, 미친년으로 몰려 잡혀들어가는 것.

세 번째는, 잡혀들어가지도 않고 즉결 처형당하는 것.

뭐, 아무 일 없이 ‘불쌍한 소녀’ 취급을 받아 성 안에 들어간다는, 머릿속이 꽃밭으로 가득한 일도 물론 가능성이야 있겠다만—

현실에서 찾아오는 기회는 안타깝게도 한 번 뿐이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많은 경우를 연상해도 맞이하는 현실은 딱 하나고, 그게 무엇이 될지는 알 수 없다는 게 골 때리는 점이다.

나는 지금 신원 미상의 소녀다.

신분증으로 제시할 만한 물건은 하등 존재하지 않고, 내 신분을 증명할 사람은 이 도시 한가운데쯤 있을 테니 부를 방법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행운을 기대한다?

우리 경애하는 대마녀, 월계수의 로우렐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문용어로 그건 '좆됐다'라고 부른다.

……즉, 조졌다!

‘어떻게 한다?’

신분패를 조사하는 위병은 점차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검문이 약화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뱀 놈들이 언제 따라붙을지 모르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은 지나치게 부자연스럽게 보일 테다.

“……….”

고민 끝에, 나는 방금 말을 걸었던 사내에게 다시 돌아가 물었다.

“저기, 혹시 펜이랑 종이 있습니까?”

—뚜벅, 뚜벅.

“………!!

지하도에 공허한 구둣소리가 울렸다.

지하도를 걷는 사내는 여럿이었으나, 들리는 발소리는 단 하나뿐.

신경질적이고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으려 절제하는 것이 미력하게 느껴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단 한 명의 사내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작은 소리 하나 내지 않게 노력하고 있었으니까.

발소리는 말할 필요도 없고, 옷깃 스치는 소리부터 숨소리 하나까지 말이다.

가장 앞을 걷는 사내, 피처럼 붉은 머리칼을 지닌 사내는 복도 끝의 방에 다다라 책상을 훑었다.

책상 가득한 먼지가 사내의 손가락에 묻어 흩어졌고, 그것은 옆에 쓰러져 부패되어가는 ‘지부장이었던’ 시체에 날아붙어 스러진 잠시 후.

싸늘한 고요를 깨며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습격자는 어떻게 됐다고?”

“도, 도망쳤습니다. 뱀 굴을 타고…….”

“반지는?”

“녀석이… 가져갔습니다.”

“하.”

사내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재밌어서…보다는, 허탈함, 그리고 분노를 숨기기 위한 웃음이다.

사내는 이미 죽은 시체의 머리에 손을 뻗어 움켜쥐었다.

“아쉽군. 이 무능한 놈이 죽지 않았더라면, 이 분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다음 순간.

—콰득.

사내의 손에 쥐여진 머리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손쉽게 터져나갔다.

벽면에 피와 뇌수가 튀었고, 그것이 뒤의 사내들에게 묻어 흘러내리는 와중에도 그들은 신음 한번 내쉴 수 없었다.

작은 소리라도 내는 순간, 다음 터져나가는 것은 자신의 머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사내는 더러운 것을 만졌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뒤의 사내에게 물었다.

“다시 말해 봐라. 인상착의가 어떻다고?”

“은발의 꼬마애였습니다. 여자아이였고… 후드를 깊게 눌러써서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체형이나 목소리로 보아 열댓 살을 넘지 않을 겁니다.”

“나더러 그걸 믿으란 말이지.”

“……….”

“무능한 놈들.”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할까.

사내는 그저 미간을 찌푸렸다.

듣기로는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지만, 당장 이 놈들을 쳐죽일 수도 없었다.

이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독니로 가득한 뱀의 아가리에 스스로 머리를 들이밀고, 심지어 태양신을 등쳐먹을 정도로 대담한 여자아이?

그게 말이나 되나?

그건, 마치…….

‘여자아이가 아니라,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는 뭐든 가리지 않는 백전의 노장같지 않은가.’

거짓말을 한다면 오히려 반대다.

막을 수 없는 수준의 군대나 소드마스터가 들이쳐서, 저항할 새도 없이 죽어버렸다고— 차라리 그리 말한다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단숨에 죽여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가령 옛 영웅들—

‘실베스터… 같은.’

유명하기야 유명한 검성이다만, 그가 갑자기 들이닥쳤다고 하면 그딴 개소리를 지껄인 놈을 당장에 죽여 버렸을 것이다.

강하고 막을 수 없는 것까지는 사실이겠으나, 그가 이곳에 올 이유가 없으므로.

사내는 손을 털어 오물을 떨쳐냈다.

“그 반지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 아나?”

“모, 목숨만은....”

“네놈 같은 버러지들 목숨 천을 갈아넣어 반지를 되찾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리할 수 있다.”

십 년이다.

자그마치 십 년!

그들이 어젯밤 잃어버린 반지를 찾기 위해 걸린 시간 말이다.

그것은 고대의 유물이었으며, 동시에 세기의 보물이었다.

뱀의 동굴의 수뇌부인 ‘송곳니’들 중, 무려 세 명이 나서서 찾아낼 정도로 중요한 안건이기도 했다.

이 시대에 몇 남지 않은 정령의 비보 중 하나, 바람의 정수.

착용하는 것만으로 바람의 정령왕과 대면할 수 있다 일컫어지는 보물의 이름이었다.

헌데 그것을, 오늘 회수할 예정이었던 그것을…….

이 머저리들이 단 한순간의 실수로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사내는 표정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면서도 계속해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화를 진정시켰다.

“……그래, 까마귀 놈들의 계획이었다면… 같잖은 놈들 몇이 있어봐야 의미는 없었겠지.”

놈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확실했다.

더 이상 생각할 여지조차 없었다.

적은 분명 까마귀의 일원일 것이다.

지금은 놈을 쫓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미 하룻밤이나 늦어버렸다만, 반드시 되찾아야만 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문득, 뒤에서 꾸물거리던 머저리들 중 하나가 나서 입을 열었다.

제 딴에는, 조금이나마 점수를 따 보겠다고 한 행동이겠지만.

“추적마법을 발동시킬까요?”

“멍청한 놈. 의미가 있겠나? 상대는 까마귀다. 어젯밤 일이니 당연히 다른 좌표로 이동시켰을 게 뻔해…… 애꿎은 마력 낭비다. 찾아서 수거는 하되, 수색은 하지 마라. 의미 없을 테니.”

사내는 인상을 찌푸리며 단칼에 말을 잘랐다.

의미 없는 수고, 의미 없는 코스트 낭비다.

유능한 적을 상대하려면, 상대방의 의중을 읽고 그 앞의 앞을 꿰뚫어 봐야 하는 법.

그 까마귀들이라면 반드시 그리했을 것이다.

이미 흔적은 사라졌으니, 다른 방법으로 추적해야만 할 터다.

'상대는 유능하니, 그 너머의 너머를 읽어야만 한다.'

사내는 그리 확신하고 있었다.

은발을 지닌 실력자 소녀라면, 그대로 죽어 버리지 않은 이상에야 언젠가 다시 눈에 띄는 법.

머지않아 다시금 소식이 들려오리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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