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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소녀검성-11화 (11/47)

〈 11화 〉 #010 저 간첩 아닌데요(4)

* * *

10화

소녀, 소네트는 도망치는 중이었다.

무엇으로 도망치는 중이냐 묻는다면, 그녀는 이리 대답할 것이다.

가문으로부터.

억압으로부터.

예정된 약속으로부터—

—도망치는 중이라고.

‘흥, 약혼자? 나랑 한 마디 말도 없이? 절대로, 절대로 어림도 없지.’

소네트는 본래 오늘 약혼자와의 만남이 주선되어 있었다.

일정을 맞추기 위해 텔레포트를 이용하여 이 도시에 다다랐고, 딱 지금쯤이면 그와의 저녁식사를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즐기고 있다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네트에게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약혼자와의 만남 따위를 즐기고픈 마음은 터럭만큼도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차라리 혀 깨물고 죽는 게 나아.’

……뭐, 그러한 마음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탈출을 감행했겠지만, 소네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드물게도 실수했고,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텔레포트의 좌표계를 교란하여 혼자 다른 곳에 떨어지는 것에는 성공하였으나, 그 사실 자체가 적발되어 쫓기게 되는 경우는 상정하지 않았었다.

그래도 갖고 있는 위장용 신분증으로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뭐, 결과는 보란듯이.

어이없는 허풍선이와 함께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곧 가문의 사람이 들이닥쳐 자신을 도로 잡아갈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지?’

아무리 자신 스스로 뛰어나다 자찬하고 그것을 확신하는 소네트라고 해도 감옥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을 턱이 없다.

감옥의 벽과 창살에는 대 마법 처리가 되어 어지간한 마법에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고, 어떻게 탈출을 감행해 봤자 곧 잡혀들어올 것이다.

방법이 없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나름 강자로 보였던’ 스파이—추측, 희망사항—는 그냥 허풍만 잔뜩 늘어놓는 허풍선이였으니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그래, 허풍선이일 터였다.

자신이 없으면 나라가 이미 망했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거짓말쟁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영웅으로서 명성을 떨쳤던 이들.

……그래, 검성 실베스터 정도나 되어야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믿을 수가 없었다. 믿을 생각도 없었고, 믿을 만한 내용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눈앞의, 자신보다도 어린 여자아이의 말은 진실이었다.

소녀는 동요했다.

“요즘 애들은 말을 듣지를 않아. 나 때는 안 그랬는데…….”

그 말에, 품에 쥐고 있는 성령이 울렸기 때문이었다.

—딸랑.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 작은 체구의 소녀를 만나고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은 방울이 이제서야 맑게 귓가를 때렸다.

‘……말도 안 돼. 왜, 어째서? 저 말만 거짓말이라고?’

소네트는 로브 안쪽에 작은 핸드벨을 쥐고 있었다.

아이카반의 성령(??)이라 불리는 그녀 가문의 가보.

도망칠 때 유용하다고 생각하여 아버지 몰래 가지고 나온 물건이었다.

능력은 단순했다. 상대방의 거짓말을 판별하는 것이다.

마력을 불어넣는 동안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면 종이 울린다.

이 성령 안에는 공이가 들어있지 않으니, 다른 요소로 종이 울릴 일은 결단코 없다.

그런데…… 종이 지금까지 울리지 않았었다.

감옥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것을 쥐고 있었음에도, 종은 단 한 번을 울리지 않았더랬다.

‘고장난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장이 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저 사람이 한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게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있을 수 있는 경우는 보통 두 가지다.

하나는, 그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경우.

둘은,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정말로 그렇게 굳게 믿고 있는 정신병자일 경우.

소녀는, 그것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지금 저 손을 잡으면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신뢰할 수 없는 자의 뒤를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너, 이름이 뭐에요?”

“지금 그게 중요한가? 시간이 없는데.”

“나도 알려줬잖아요. 이름 알려준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실버라고 불러.”

방울이 울린다.

거짓말이다. 최소한 본명은 아니다.

“가명 말고, 본명이요.”

“알려줘도 못 믿을 걸.”

“믿을게요. 뭐라고 하든 믿고 따라나설 테니까, 말해 주세요.”

“뭐라고 하든? 정말이지?”

거 참, 속고만 살았나.

소네트는 고개를 끄덕였고, 눈앞의 작은 소녀는 잠깐 고개를 숙이고 고민하는 듯 보였다.

뭔가 그럴싸한 거짓말거리라도 찾고 있는 것일까?

말해주기 싫어서, 그럴싸한 이름을 생각하고 있나?

‘의미 없는 짓일 텐데.’

몇 초 지나지 않아, 작은 소녀는 그 입술을 떼었다.

“실… 실베… 실베니아.”

“실베니아? 성은요?”

“없어.”

—딸랑.

방울이 다시 울렸다.

소네트는 팔짱을 끼며 눈초리를 흘겼다.

“거짓말 하지 말라니까.”

“휴…….”

자신을 실베니아라고 소개한 소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납득한 걸까?

소녀는 다시금 말했다.

“진짜 없어.”

“아니, 거짓말은…… 어라?”

“거짓말 아니야.”

“………?!”

소네트의 눈동자가 휘둥그래졌다.

방울이 울리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마나도 체크해 봤지만, 흘려보내는 마나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뭐지? 정말로 고장난 건가?’

아니면, 저게 진실이라고?

‘아냐, 그럴 수는 없어.’

방금은 분명히 울렸다.

첫 번째 ‘없다’라는 말은 거짓이고, 두 번째 ‘없다’라는 말은 진실이란 말인가?

웃기지도 않은 말장난이다.

하지만, 소네트의 생각이 더 이상 이어지는 것보다 실베니아가 철창을 우그러뜨리는 게 더 빨랐다.

“일단 나와. 사치스러운 대화는 이만 하지.”

“그… 아, 알겠어요.”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었다.

일단은 제 입으로 내뱉은 일이었기에 따랐지만, 소네트는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온단 말인가?

체구만 작을 뿐, 사실 안쪽에는 드워프가 들어있기라도 한 걸까?

목소리는 마법으로 변조한 거고?

차마 그것들을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실베니아는 다른 방식으로 대답했다.

철창을 우그러뜨리느라 힘을 준 탓일까?

목과 어께를 휘두르며 뻐근함을 풀던 실베니아의 후드가 흘러내렸고, 소네트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세상에.”

그녀는 자신보다도 다섯 살은 어려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열 다섯… 열 넷?

혹은, 그보다 어릴까?

목 아래까지 길게 흘러내리는 은빛 옆머리와, 어딘가 신경질적인 눈매가 특징적인 소녀였다.

소네트는 감탄을 감출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조용히. 곧 온다.”

“목소리를 변조한 게 아니었나요? 정말… 여자애네요?”

“…조용히 하라니까. 마나를 봐도 그림자 속은 못 보는 모양이지?”

“그야 당연하죠. 세상에, 귀엽잖아요!”

“망할.”

소녀는 단발의 상소리를 내뱉으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무언가를 준비하듯 주먹을 악쥐었고, 감옥으로 이어지는 복도의 그림자 앞으로 다가가 기다렸다.

그리고 하나, 둘, 셋.

정확한 타이밍에 발을 내딛은 위병의 턱에 주먹이 꽂혀 들어갔다.

그리고 동시에, 몸을 던져서 넘어지는 창과 투구를 잡아챘다.

열 댓살의 여자아이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몸놀림이었지만, 소네트는 감탄은 그만두고 재빨리 그 뒤로 따라 붙으며 속삭였다.

“위병은 공격하면 안된다면서요?”

“탈옥은 해도 되냐? 뒤처리만 잘하면 돼.”

“주, 죽이게요? 그건 좀 심한 것 같은데…….”

아무리 도망이 중요해도, 사람을 죽일 바에는 그냥 잡히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자신은 정략혼이 싫은 것이지, 그것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생각이었지만, 소네트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한숨이었다.

“넌 왜 그렇게 애가 매사에 폭력적이냐? 나중에 일만 잘 덮으면 된다고. 뒤처리. 돈과 빽. 알간?”

“아…….”

“어릴 땐 안 그랬는데 참…….”

“뭐라고요?”

“아무것도 아니야.”

소네트는 잘 듣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실베니아는 이미 저만치 앞서 가 있었다.

자기 혼자만 탈옥범으로 잡히는 것은 극구 사양이었다.

“이쪽.”

본디 감옥이라는 것이, 철창을 벗어나는 것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썩 어렵지 않다.

좀 규모가 있는, 어디 탑의 꼭대기나 지하에 위치한 던전 정도 된다면 모르겠지만, 이런 평화에 잠식된 도시의 감옥 정도는 별 문제도 되지 않는다.

소리가 크게 울리지 않았기 때문인지 다른 위병들까지 감옥으로 내려오지는 않았고, 실베니아는 순찰이나 경비를 서는 위병들의 시야를 절묘하게 피해가며 전진했다.

“그런데 당신,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거예요?”

“어릴 때 많이 해 봤어.”

“지금보다 더 어릴 때?”

“……그냥 그런가보다 하려무나. 아가.”

“아가는 무슨. 지금은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데. 무슨 마법을 쓴 거예요? 어려지는 마법도 있었나?”

“말 좀 그만 시키면 안 될까? 우리 지금 도망치고 있거든.”

“아… 죄송해요. 조금 흥분했네요.”

실베니아. 실베니아라.

나는 이 감옥을 탈출하기 위해 주변을 탐색하는 와중에도, 방금 내가 입에 남았던 ‘나’의 이름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별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진짜로, 그런 이름을 내뱉어도 어색하지 않을 목소리가, 너무나도 좌절스럽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망할, 딸을 가지면 주려고 했던 이름인데.’

하지만 뭐 어쩌겠나.

어차피 새 이름을 짓는 것은 언젠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내가 실베스터요. 하고 광고하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 와중에 여자아이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딸아이 이름을 써 버린 것은 조금 어떤가 싶었다만—

‘뭐 어때, 안사람한테만 안 걸리면 되지.’

별거 중인 그녀가 알면 내 모가지를 뜯어버릴 것 같기는 한데…….

아마 괜찮지 싶다.

내가 이 이름을 안 썼어도, 아마 그녀는 나를 만나자마자 죽이려 들 테니까.

오히려 조금 더 화나서, 더 편하게 죽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세상 만사 언제나 긍정적이여야 하는 일도 잘 되는 게 아니겠는가.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는, 뭐 그런 말도 들어본 적 있는 것 같고…….

……뭐 어쨌든.

그녀에게 목이 졸리기 전에 죽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므로, 나는 소네트를 이끌고 결국 마지막 문에 다다랐다.

들어오는 길에 외워 둔 길 상으로는 저 앞을 지키는 경비가 둘.

‘괜찮아. 둘 정도 더 쓰러뜨릴 정도의 마나는 남아 있다.’

기습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나는 전신에서 마나를 끌어올려 도약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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