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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소녀검성-12화 (12/47)

〈 12화 〉 #011 저 간첩 아닌데요(5)

* * *

11화

“흐으… 지루하구만.”

감옥의 문 앞을 지키던 위병 하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입맛을 다셨다.

오늘은 대략 세 시간째. 안타까운 일이지만 교대하려면 아직도 두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감옥의 경비라는 것은 위병의 업무 중에서도 상당히 기피되는 업무 중 하나다.

이유야 뭐, 단순하다.

한 군데에서 죽치고 서 있어야 하는 업무의 내용은 심플해서 좋지만, 경비 중에 태만한 자세를 보이거나 자리를 비우는 등의 행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뭐 그거야 다른 경비도 그렇지 않느냐 싶을 수 있다만, 감옥의 경비는 그것에 더하여 다른 단점도 추가된다는 게 문제였다.

할 일이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감옥이 위치한 장소가 경비 초소나 대로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특성상,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만날 일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미치지 않고서야 탈옥하는 놈도 나오지 않고, 탈옥할 만한 놈이면 애초에 방비를 철저히 하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즉, 할 일도 없이 그저 하루 종일 멍때리며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라는 의미다.

때문에 감옥의 경비들은 그나마 자기 옆에 있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하루의 일과로 삼는 것이 보통이었다.

지금 이 도시, 베일렌의 감옥을 지키는 이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득, 그들 중 하나가 감옥의 안쪽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좀 이상한데. 안쪽이 시끄러워서 마이클이 보러 가지 않았나?”

십 분쯤 전이었던가.

갑작스레 들려온 소음 탓에 동료 하나가 감옥 안을 살피러 갔었더랬다.

탈옥 시도야 뭐 웬만한 범죄자들은 한번쯤 해 보는 무의미한 저항의 수순이지만, 결국 수갑과 철창도 마모되기 마련인지라 하지 말라고 주의 정도는 주는 과정이 필요했다.

여러 명이 갈 필요도 없는 일이었고, 구태여 그럴 필요성을 느낀 적도 없지만……

지금은 너무 조용했다.

사내는 감옥의 안쪽을 슬쩍 돌아보았다.

침묵과 정적으로 가득했고,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어딘가 불길하다는 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안 오는데.”

“별 일이야 있겠어. 기껏해야 꼬맹이 둘이야.”

“하지만 걔들 몸 수색도 안 했잖냐. 장비라도 가지고 있으면 어쩌려고?”

위병 일을 하면서 사내는 온갖 기인들을 만나봤다고 자신하는 편이었다.

그들 중에서는 머리핀 하나로 자물쇠를 따는 요상한 도둑도 있었으며, 철근을 씹어 삼키는 이상한 차력사도 있었다.

꼬맹이들이라고 해서 방심했다가는 정말로 철창을 열고 탈출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몸 수색을 해서 있는 것 없는 것 다 빼앗았다면 모르겠지만, 웬일인지 경비대장은 일말의 처리도 없이 그저 저 안에 가둔 것이 다였다.

제 딴에는 진심으로 걱정한 것이었지만, 맞은편에 서 있는 동료는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경비대장님이 괜히 몸수색도 안하고 저기 박아 놓은 줄 알아? 몸수색 같은 짓을 하다가 쟤네 부모한테 항의라도 들어오면 피 보는 건 우리라고.”

“……그건 그렇군. 하기야 뭐, 귀족집 딸내미들이 뭘 하겠어.”

“짤리기 싫으면 그냥 가만히 있어. 설마 진짜로 탈옥해도 그냥 보내주는 게 오래 사는 길이라고.”

“하하, 그것도 그렇군. 미움받는 역할을 자처하기는 싫으니.”

숨긴다고 숨기고 감춘다고 감춘 것 같지만, 그 소녀가 귀족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그야— 우습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감옥에 발을 들이면서까지 전혀 주저함이 없고,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한 태도.

분명 여행용 의상일 텐데 티끌 하나 묻어 있지 않고, 소재는 또 거르지 않고 최고급인 외투.

나아가 저 세상사 분간 못할 것 같은 연령대의 소녀…….

어딜 보아도 그녀가 도망친 귀족의 자제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래도 조금 의심해 보았겠지만, 지금 이 도시에서 행해지고 있는 ‘시험’의 특수함 탓에 그 누구도 그녀가 귀족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정말 매년 나오는구만. 그놈의 시험이 뭐라고… 학벌이 인생을 결정하나?”

“동아카데미 정도면 결정하지! 이야, 내 아들놈도 똑똑했으면 시험 한 번 보게 하는 건데… 그 놈은 영 게을러서 말이야.”

“관둬. 개나소나 합격하는 줄 아냐? 저 아가씨도 가 봤자 떨어졌을걸?”

“아니, 그건 혹시 모르지. 지금까지 텔레포트 쓰다가 잡혀온 귀족은 없었잖아.”

“크큭, 그건 그렇구만. 탈출한 노예나 가출한 꼬맹이들은 여럿 있었지만 말이야.”

사내들은 낄낄대며 잡담을 이어갔다.

경비대장은 저 귀족 계집의 부모를 알아보겠다며 자리를 비웠으니, 당분간은 그들에게 잔소리를 할 인간도 없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이 딱 하나 존재한다면.

“으겍.”

“무슨… 어억?!”

“잘 자라.”

잔소리 할 인간은 없어도, 목을 꺾어 버릴 인간은 있다는 점이었다.

“……죽이면 안 된다면서요?”

“안 죽였어. 봐, 움직이잖아.”

나는 방금 쓰러뜨린 경비의 팔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게, 아마 아직 살아있을 것이다.

“아뇨, 사후 경직 같은데요…….”

“착각이야. 죽으면 지 탓이지 뭐. 죽기 직전까지 팼는데 쟤가 나약해서 죽은 거야.”

“그게 그렇게 되나요?

“어른이 그렇다 하면 그런갑다 해.”

“……….”

어린애가 말이 많아.

소네트가 눈으로 ‘어른도 아니면서’따위의 욕을 하며 궁시렁댔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하고 감옥 바깥으로 나갔다.

바깥에는 동쪽 한켠에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아직 정오도 아니고, 그야말로 새벽이 다 간 아침 정도라고 할 수 있으리라.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방금 쓰러뜨린 두 놈 말고는 다른 인기척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기절시킨 놈들을 질질 끌어 감옥 안쪽으로 옮겨 놓고 고개만 내밀어 주변을 살폈다.

‘경비는 이게 다인가? 생각보다도 쉬운데.’

의도적으로 풀어줄 생각이거나, 아니면 정도를 넘은 방심이거나…….

분명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전자는 아닐 테니, 아마도 후자다.

정말로 나와 저 꼬맹이를 첩자로 취급했다면, 이런 허접한 초소의 감옥에 가둘 게 아니라 당장 영주성의 지하감옥에 쳐박았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신체수색도 안 했고. 이 새끼들 진짜 뭐 하는 놈들이지?’

마치 어디로 단체로 몰려가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이 감옥의 위치는 성벽 근처, 경비병 초소에 딸린 작은 감옥이었다.

그 말인 즉슨, 여기를 빠져나가 조금 달리기만 하면 그대로 벗어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러다 문득, 소네트가 내 머리 위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뭐야, 아무도 없네요? 이제 나가기만 하면…….”

“……!! 잠깐. 누군가 온다. 숙여.”

저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발소리로 보면 아마 다섯에서 여섯 정도.

곧장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젠장, 시간이 없는데.’

여기서 당장 몸을 빼면 곧바로 시야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기다리자니, 나 탈옥했소— 하고 감옥 앞에서 기다려주는 꼴이었다.

‘지난번처럼 연막을 뿌릴까?’

아니, 아니다. 그 때는 실내였고, 잔뜩 방심한 오합지졸이었기에 먹혀들었던 수법이었다.

지금 이 발소리는 분명히 기사. 그것도 고도로 훈련된 실력자들이다.

얼마 남지도 않은 마나로 연막을 뿌려봐야 바로 간파당하고, 저항할 새도 없이 붙잡힐 테지.

그렇다고 싸우기에는 상황이 너무 불리했다.

내 남은 마나는 10%도 채 되지 않고, 기사 하나도 아니고 넷 이상을 상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젠장, 여기서 막혀야 하나.’

지금의 나로서는 방법이 없다.

차라리 감옥으로 돌아가 있는 게 낫지 않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허나, 그러던 와중.

“……저기요. 실비. 실베니아.”

소네트가 내게 손을 뻗었다.

“내 손 잡아요.”

“……?”

해봤자 뭘 하겠다고?

수준에 절대적인 차이가 있기에, 내게는 소네트의 마나량이 보인다.

상당한 재능이 있는 수준이지만, 그것으로 저 기사들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힐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그녀가 허공에 띄운 마법진은 나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마법에도 나름의 지식이 있는 나지만, 그것은 지난 십수년 간 발달한 마법의 새로운 총체일까.

내 그런 상념이 채 멎기도 전에, 그 마법진은 허공에 허물어졌다.

대신, 시야 저편— 담장의 바로 위편에, 지금의 우리와 똑 같은 형상의 환영이 생성되었다.

얼떨결에 손을 잡고 있는 포즈부터, 벽 뒤로 숨어있는 형태까지 똑같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조금 어지러울 거예요.”

“………!!”

시야가 반전했다.

소네트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이 꼴이다.

“흐흥, 감사 인사는 됐어요.”

“우욱…….”

감사 인사는… 개뿔이.

“우웨에에에엑.”

“뭐야. 공간 멀미가 있어요? 세상에. 우리 아빠도 없는 건데…….”

“젠장…. 말이라도 하고 해라…….”

일단 당장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라 억지로 참고 내달리기는 했는데, 좀 안전한 곳에 다다르자 어지럼증과 구토감이 몰려왔다.

역시 텔레포트는 영 좋지 않다.

일단 살아서 다행이긴 한데…….

나는 대충 정신을 차린 다음에야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방금 그건 무슨 마법이냐?”

“환영 마법이요. 내 특기에요! 방금 그건 분신이랑 위치를 바꾸는… 조금 고도의 응용?”

……들어도 뭔 소린지 모르겠다.

수십년 전만 해도 마법이란 게 딱 다섯 가지 속성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때는 진짜 당장 싸우고 살아남는 것에 급급해서, 당장 눈앞의 적을 어떻게 쳐죽여야 할지 고민하던 시대였으니 이상할 것도 없기는 하다.

“세상이 참 많이도 발전했구만…….”

“그건 또 무슨 할아버지 같은 소리에요.”

“됐어 인마.”

나는 한숨을 내쉬며 헛구역질을 몇 번 반복했다.

어지러움은 대충 가라앉았고, 나는 입가를 대충 닦았다.

이제는 슬슬 안전할 것이다.

경비 초소는 이미 옛적에 벗어났고, 이곳은 주택가 근처의 골목길.

아직은 인적이 적었지만, 저 밖으로 나가면 곧바로 대로이니 다시 붙잡힐 염려는 어지간해서는 없으리라.

내가 골목길 너머를 바라보며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소네트의 목소리가 앞을 가로막았다.

“저기요.”

“또 왜.”

대답은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소네트는 우물쭈물하며 손가락을 베베 꼬고 있었고, 몇 초가 지난 다음에야 가까스로 입술을 떼었다.

“……구요.”

“뭐라고?”

“고, 고맙다구요! 구해줘서. 나는 처음부터 이용할 생각만 했는데. 부끄러워지네요.”

“흐음.”

후드를 깊게 눌러썼음에도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다.

억지로 억지로 후드 끝을 끌어내리는 손끝까지 새빨개져 있었으니 말이다.

이걸 대견하다 해야 할까, 귀엽다고 해야 할까.

어설프기 그지없는 감사인사였다만, 공작 가문에서 태어나 누구에게 한 번 고개 숙여보지 않은 아이일 테다.

이 정도의 감사도 상당히 용기를 냈다고 해야겠지.

뭐, 그런 것이다.

귀족의 생태라는 것은 말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그거면 됐다.”

나는 팔을 뻗어 소네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길이가 모자라 까치발을 들어야 해서 모양이 조금 빠지긴 했지만, 지켜보는 사람도 없는데 뭐 어떠랴.

하지만 소네트가 고개를 흔들며 떨쳐냈기에, 나는 곧 손을 떼야만 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마음에도 없는 질문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계집애가 뭘 하고 살든지 내 알 바 아니었다만, 그저 의무감에 내뱉은 질문이었다.

대답도 바라지 않았으나, 예상 외로 꽤 친절한 대답이 돌아왔다.

“만나기로 약속한 일행이 있어요.”

“가출청소년 집단?”

“그, 그런 거 아니거든요! 좀 사정이 있는 것 뿐이에요.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면 안 되요. 아시죠?”

“관심도 없다."

알아서 잘 지내고.

난 그 말을 끝으로 뒤돌아 거리로 나갔다.

그녀는 나를 잡지 않았고, 잡는다 해도 돌아볼 생각도 없었다.

우연히 연이 닿아 도움을 준 것뿐, 다시 만날 일도 없으리라.

꼬맹이는 꼬맹이 나름의 할 일이, 나는 나 나름의 할 일이 있다.

조금 지체되었다만, 이제는 내 제자를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그런데 미련이 남았는지, 마지막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실베니아. 우리, 다시 볼 것 같지 않나요?”

빌어먹을. 그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앞으로 없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리고... 글쎄, 꼬맹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젊은이는 젊은이들 끼리 있을 때 빛나는 법이야."

"또 할아버지같은 소리."

나는 그저 발걸음을 옮겼고, 투정 어린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골목에 울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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