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013 스승을 스승이라 부르지 못하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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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조악한 티가 많이 나나?”
“솔직히, 대놓고 납니다. 패션에 대해서는 티끌만큼도 모르는 디자이너구나 싶었지요. 꼭 자르십쇼.”
잘라? 뭘?
내 패션 센스는 아닐 테고, 네놈 모가지를?
그러니까 대충, 지금까지 나를 향하던 시선들은 ‘신기한 동물을 보는 시선’ 정도였다는 것인가.
‘이 시간, 이 거리에 있는 부인들은 대부분 높든 낮든 귀족이거나 부유층일 테니…….’
설마 귀족인 게 신기한 것은 아니었을 테고, 웬 귀여운 아가씨가 평민으로 변장하고 집을 나선 것이 티가 나서 바라봤다는 것이다.
“귀족인 티가 난단 말이지.”
“그렇습죠. 특히 그 머릿결 때문입니다요. 비법이 있다면 부디 듣고 싶을 정도로요. 마치 은빛의 실크 같은 것이… 엘프들도 그만큼 예쁜 머릿결을 유지하지는 못할 겁니다요.”
“그 정도인가?”
“두 말하면 잔소리일 정도입죠.”
복잡미묘한 기분이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릿결 좋다고 힘이 강해지는 건 전혀 아닐 테니 전혀 불필요하긴 하지만…….
‘아가씨로 오해받는 건 일장일단이 있으니, 머리칼에 관한 건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 되겠군.’
나는 혀를 한 번 차고는, 사장을 향해 물었다.
“얼마면 되겠나?”
“금 두 닢만 주십쇼.”
‘켁.’
비싸네.
하긴 뭐, 보통 귀족들이 이용하는 가게라는 점을 감안하면 합리적인 선 안의 가격이기는 하다.
나는 애써 손의 떨림을 참으며 금화 두 닢을 꺼내어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내게 ‘또 오시라’ ‘언제나 환영한다’ 따위의 아부를 몇 번이고 허리를 굽히며 반복했고, 나는 대충 손을 흔들어 주며 가게를 나왔다.
내가 이 가게로 들어가는 것까지도 눈 여겨 봤는지 건너편 가게에 있는 귀부인들의 시선에 곧 내게 꽂히는 것이 느껴졌지만, 괜한 관심이나 트러블에 엮이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곤 다른 거리를 향해 걸었다.
‘이래서야 로브를 뒤집어쓰고 다닐 때와 별반 다를 것도 없군.’
어디로 가든 이목을 끌고, 시선이 집중되는 외모였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길거리의 로브 차림은 ‘수상한 사람이다!’ 정도의 시선인 반면, 지금 차림이라면 ‘귀여운 아이네!’ 정도의 시선이라는 것 정도다.
‘차라리 전자가 나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일단 지금은 이 차림이 필요했다.
사람을 설득하고 회유시키기 위해서는 번듯한 외모가 필수적이니 말이다.
첫인상으로 안정을 주고, 이후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뢰를 더해주는 것은 외모 외의 다른 무엇으로도 사기 힘든 효과다.
‘……하지만, 이미 정문을 지키는 경비와는 한 번 마주쳤지.’
그 때는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니 내 얼굴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목소리는 들었으니 이미 첫인상은 새겨진 상태다.
그러므로 나는 다른 인물을 찾아야 했다.
조금 더 순진하고, 내 말을 잘 믿을 법한 인간을.
그리고 나는— 솔디어의 근처에서 일하는 그런 사용인을 딱 한 명 알고 있었다.
본디 침입이라는 것은 그 침입하는 장소가 넓을수록 행하기 수월하다.
보통은 그 넓은 지역을 인력으로 커버하지 못해 온갖 마법적 수단을 동원하지만, 결계 등의 마법에 소비되는 마력을 감당하는 것도 다 돈인지라 그런 수단들은 대체로 밤에만 켜 두는 편이다.
‘단순한 이유지.’
그야— 낮에는 누가 침입하는 금방 찾아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한낮의 저택이라면 경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용인들과 식솔들이 깨어 있을 테니, 누군가 침입해도 금방 찾아낼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사실.
도둑들이 ‘밤의 손님’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이명으로 불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밤이 아니라면 침입에 의미가 없고, 무엇을 하더라도 금세 들키게 되니까.
침입은 밤에. 도둑질도 밤에.
하지만— 어떨까.
침입한 뒤에 이어지는 행동이 ‘일부러 발각된다’ 라면.
그것만큼 심플하고 간단한 일도 없지 않겠는가.
“여기가 접견실인가.”
나는 담을 넘어 숨어든 저택 안을 활보하며 접견실을 찾아냈다.
1층의 접견실이 아니라 3층— 특별한 손님들을 위한 공간.
이곳에 들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은 가주가 ‘정성 있는’ 대접을 한다는 의미가 되며, 그만큼 가문과 긴밀하거나 중요한 인물에게만 개방되는 공간이다.
지레짐작 뿐이었지만 역시 베르트랑 가에도 준비되어 있었다.
하기사 뭐, 어지간한 귀족들 집에는 전부 준비되어 있는 공간이니까.
나는 적당히 소파에 자리잡고 앉아 모자를 벗었다.
예의, 예절.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
마치, 이곳에 있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동인 것처럼 다음 행동을 이어갔다.
—딸랑.
나는 테이블에 올려진 핸드벨을 한 번 울렸다.
보통이라면 시종이나 메이드 중 가까운 누군가가 움직일 테지만, 이곳의 벨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이곳을 관리하는 사용인은 단 한 명 뿐이다.
솔디어 놈이 가장 신뢰하고 가장 총애하는 딱 한 명 있는 종자.
‘이름이 뭐랬더라…….’
솔디어가 내 밑에서 수련을 받을 때에도 옆에 붙어 있던 놈이라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 로메인이었던가?
내가 그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고 있을 즈음, 접견실의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하여 나이듦을 과시하는 것이, 역시 기억 속의 애송이와는 조금 괴리감이 있었다.
“오늘 접견실은 비었을 텐데…….”
문을 열고 등장한 사내는 소파에 앉은 나를 발견하자 눈이 휘둥그래지며 놀랐다.
하지만 함부로 미간을 찌푸리지는 않는다.
만약에 손님일 경우를 위한 사용인의 버릇이리라.
로메인은 태도를 공손히 고치며 나에게 물어왔다.
“……세상에. 누구십니까? 오늘은 이곳에서의 약속이 없을 텐데.”
당연히 없겠지. 침입자니까.
하지만 여기부터가 중요하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고요하게. 자연스럽게 대답해야만 한다.
가령, 이렇게.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녀 한 명이 이곳으로 안내해 주더군요.”
“이곳으로 안내받았다고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만.”
“로메인… 경께서 오실 것이라고 말이에요.”
그에 대한 호칭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해 대충 뭉뚱그렸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모양이었다.
일순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짓던 로메인은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곤, 잠깐의 신음 끝에 대답을 내놓았다.
“……으음, 알겠습니다. 가주께 전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차를 준비해 주시겠어요?”
“곧 다른 아이를 통해 전해드리겠습니다.”
—탁.
작은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생각보다 쉽게 넘어갔다. 쉽게 넘어가기는 했는데…….
“으, 말투 소름돋네.”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연기였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로우렐 그 여자는 어떻게 이 짓을 매번 하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평소에 쌍욕을 하다가도 다른 사람만 오면 귀신같이 돌변하는 태도를 흉내내 보았지만…….
‘이걸 매번 했다고? 여자들이란 대체…….’
이걸 아무렇지 않게 하면 거의 뭐 이중인격 아닌가?
무섭다 정말로.
‘비즈니스 목소리’니 뭐니 하던 게 지랄이 아니었던 건가 싶기도 하다.
정확히 뭐라고 그랬더라?
‘왜… 그 있잖아 병신아. 말하다가도 수정구로 연락이 오면 곧바로 목소리 바꾸는 그런 거.’
‘전혀 모르겠는데.’
‘됐어. 너랑 무슨 대화를 하겠냐? 이래서 기사들이란…….’
대충 이런 대화였던 것 같기는 한데, 오래돼서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뭐면 어때.’
당장 생각보다도 쉽게 해결됐다는 게 중요하지 뭐.
나는 편안히 앉아 곧 찾아올 나의 제자를 기다렸다.
뭐라고 첫 인사를 하는 게 좋을까?
오랜만이다?
아니, 이건 좀 식상하고…….
“약속? 무슨 소리냐 로메인. 내 일정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어야지.”
솔디어는 갑작스럽게 방문한 시종장이 내뱉은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베르트랑 가의 가주, 현재는 이름보다는 ‘베르트랑 후작’으로 자주 불리는 솔디어인 만큼 그는 매일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거대한 도시 베일렌의 행정 업무에 정상에 위치해 있는 사람이 바로 그였고, 그의 일정을 관리하는 이는 다름아닌 눈앞의 시종장 로메인이었다.
하루하루 내일의 일을 신경 쓰는 것은 몹시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 생기고 어떤 약속이 있는지 관리하는 것은 당연히 전적으로 로메인의 일이었다.
“무, 물론 그렇습니다만… 3층의 응접실에 어떤 영애분이 와 계셨습니다. 헌데, 태도를 보아하니 정말로 약속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 말입니다…….”
“영애?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솔디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늘 자신에게는 예정이 없을 테다.
당장 처리해야 할 행정 안건이 서른 개에, 인가를 내려야 할 사업 제안이 스물 한 개니, 누굴 만나려면 그야말로 몸이 두 개여야 가능할 테다.
그리고 그 사실은 로메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유능하고, 그랬기에 지금까지 곁에 두고 중용한 것이니까.
“보고에 거짓은 없겠지.”
“제가 어찌 그리하겠습니까?”
하긴, 로메인이 거짓을 말할 사내는 아니었다.
하지만 3층의 접견실이라?
‘설마…….’
순간, 솔디어의 뇌리에 한 가지 기억이 스쳐갔다.
자신은 오늘 약속이 없다.
하지만—
오늘 이 저택을 방문하는 이가 없느냐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예정은 아니지만, 아들놈의 약속이 하나 잡혀 있었다.
‘아이카반 영애인가?’
솔디어는 기억했다.
아이카반 공작가에서 온 혼담을 분명 오늘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분명 양 쪽 가문에 중요하고, 또 서로를 잇는 인연을 시작할 만남이 바로 오늘이었다.
하지만, 곧 그는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아이카반 공작에게서 또 연락이 온 것이 있었나?”
“제가 알기로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 그렇겠지…….”
오늘 텔레포트로 도착할 예정이었다는데, 무슨 일이 생겼는지 일정을 미루자는 연락을 받은 것이 바로 오늘 새벽.
그러잖아도 실망한 아들놈을 보며 한숨을 내쉰 게 오늘 아침쯤이었더랬다.
그런데 이제 정오가 좀 넘어갈 시간인데, 또 말이 번복된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아이카반 공작은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인간이다.
어쩌면 솔디어 자신보다도 더 말이다.
그렇기에 그 공작 작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을 테고, 그 폭군 황제의 곁을 지키면서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 테다.
그런 인간이 한 번 번복한 말을 다시 한 번 뒤집었다고는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신뢰하는 시종장이 이렇게까지 당황할 만한 손님이라.
솔디어는 펜을 내려놓고 벽에 걸린 재킷을 입었다.
“한 번 가 보지.”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만나봐야 알 수 있을 듯 싶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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