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017 아카데미, 1차 입학시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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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대체 무슨 일이지…?”
로렌스는 자신의 아버지가 저리도 흥분하는 것을 여지껏 본 적이 없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솔디어 베르트랑.
제국에서 가장 강한 열 명의 기사를 꼽으라면, 그 안에 반드시 들어가는 자랑스러운 아버지였으므로.
강한 기사에게 감정을 다스리는 수련은 필수적이었으므로, 솔디어의 흥분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아버지께서 저리도 흥분하시던 게…….’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의 분노는 분명히 오래 전.
로렌스가 기억하기에 8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이후로 처음인가.’
그 이후로 감정도 죽이고 일만 하는 기계처럼 살아온 사람이 저렇듯 흥분하다니.
보통 각자의 사정을 존중하며 개인사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귀족의 예법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상황을 눈 감고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로렌스는 곧 솔디어를 쫓았다.
분명 자신에게 이 편지를 주었던 소녀에게 찾아갔으리라.
과연— 문은 거칠게 열려 있었고, 그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버지, 대체 무슨 일…….”
로렌스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 안쪽으로 고개를 드밀었다.
그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은 채로.
그것은 단순한 무의식의 발로였으며, 또한 호기심의 표출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기에, 오히려 그 방 안쪽에서 벌어지는 일을 조금의 주저도 없이 바라볼 수 있었다.
“………?!”
그곳에는 소녀의 앞에 무릎 꿇은 자신의 아버지가 있었다.
순간 잘못 본 것인가 싶어 몇 번이고 눈을 껌뻑였지만, 두 사람은 그곳에서 가만히 무어라 속삭이는 대화를 반복할 뿐이었다.
솔디어의 어께와 등이 몇 번씩 울컥이는 것으로 보아, 그는 거의 흐느끼며 말하고 있었다.
‘세상에……!’
로렌스는 충격에 휩싸였다.
대체, 대체 무엇 때문에?
그 강인하고 굳세던 아버지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누군가에게 허리 숙이지 않을 것 같던 아버지가 대체 무엇 때문에 한낱 어린아이에게 무릎을 꿇는단 말인가.
‘말도 안 돼. 황제 폐하의 앞에서도 절하지 않는 분인데……!’
검성의 제자라는 단어는 허언이 아니며, 그 이름에 걸맞은 무위와 품행을 지금껏 보여왔다.
분명 그럴진데——
지금 저곳에 있는 사내는, 그 강철같던 마음이 완벽하게 허물어져 무릎 꿇은 듯 보였다.
로렌스는 당황했다.
‘대체, 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아는 지식 내에서 이 상황을 납득하기 위한 단서들을 찾아 열심히 기워 맞췄다.
처음 보는 소녀.
흥분한 아버지.
갑작스러운 방문과, 괜히 사람들이 찾지 않는 손님방…….
‘설마?’
“……아버지?”
무언가 짐작한 로렌스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입밖으로 내었다.
저 분위기에 끼어드는 것은 또 어떤가 싶었지만, 그래도 이대로 보고 있는 것은 더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아, 로렌스. 크흠. 무슨 일이냐?”
솔디어는 지금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화들짝 놀라 일어나며 로렌스를 돌아보았다.
마치 방심한 듯한 모양새다.
허나, 방심? 그게 말이나 되는가!
솔디어라면 반경 수 미터, 개미 한 마리의 움직임까지도 느낄 수 있을 터였다.
온전한 상태였다면 로렌스의 접근을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을 터.
즉, 그만큼 다른 곳에 신경이 쏠려 있다는 의미였다.
로렌스는 자신의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졌다.
“아버지.”
“그래, 무엇이냐. 아들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 쓸쓸함을 견디지 못해 끝없이 업무만을 반복했다는 사실을, 소자… 잘 알고 있습니다.”
“……? 분명 그랬지. 그런데 그것을 갑자기 왜?”
“소자, 전부 이해하오나……!”
그래, 전부 이해한다.
다른 귀족의 영애나, 설령 저잣거리의 봄을 사들여 하룻밤을 즐긴다고 해도 로렌스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그간의 시간은 고되었고, 솔디어가 얼마나 아내를 그리워하고 있는지 뼈에 사무치도록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 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렌스는, 딱 하나만큼은 납득할 수 없노라고 단언했다.
“그래도 소자보다 어린 새어머니는 좀… 그렇지 않은가 싶습니다.”
“뭐 이 씹새끼야?”
“네?”
어이쿠.
말이 헛나왔다.
언제나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야 하는데, 내 신념을 내가 어기니까 이렇게 험한 말이 나가게 되는 모양이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방의 주먹이 참되다는 불변의 진리가 있거늘…….
나는 당장에 저놈의 주둥아리를 뜯어 버리려고 움직였지만, 건방진 솔디어 놈이 내 팔목을 붙잡았다.
뭐 하는 짓거리냐고 놈을 올려다보자, 놈은 애써 내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놔라.’
‘애가 아직 뭘 몰라 그렇습니다.’
‘나와. 한 대만 때리게. 죽이진 않는다.’
‘애가 연애를 책으로 배워서 그렇습니다. 풍속 소설을 압수해야겠어요.’
‘그러던가. 일단 나오라니까?’
‘불충을 용서하십시오, 스승님. 부족한 아들이어도 삼대독자란 말입니다.’
‘후…….’
나는 피가 나도록 아랫입술을 악물었다.
지금까지 사람들을 최대한 만나지 않으려 노력해 와서 모르고 있었는데, 여자아이 취급을 당하는 게 생각보다 많이 기분이 나쁘다.
‘아니, 생각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을 조절하는 것이 극히 어려웠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 자신’은 괜찮다.
다만… 어딘가, 본능이 충동적으로 움직여 폭력을 행사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를테면,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어린아이의 본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기사의 이성은 본능을 억압하는 법.
‘그래, 내면의 평화. 내면의 평화…….’
나는 곧 뻗쳐 오르는 열을 다스리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성적으로도 사내 새낀데 좀 때리면 어떠냐 싶기는 했다만…….
솔디어 놈이 너무나도 절실한 표정으로 빌기에 어쩔 수 없었다.
‘알겠으니 놔라 이놈아.’
나는 놈의 손을 뿌리치고 들고 있던 검을 내동댕이쳤다.
괜찮다. 시간은 많으니까.
그러다 문득, 놈이 다시 내 소매를 손가락 끝으로 잡아가며 물었다.
‘스승님.’
‘뭐.’
‘두고두고 기억하다가 나중에 보복하시는 거 아니죠?’
‘내가 그리 속 좁은 인간으로 보이냐?’
구질구질하다 이 놈아.
옛날이었으면 이 질문과 함께 주먹이 날아갔겠지만, 솔디어 녀석도 연륜이 생겨서인지 대답을 퍽 마음에 들게 하는 모양새였다.
‘그런 말은 않겠지만, 은원은 확실하신 분이시지요.’
‘잘 아는구나.’
‘……….’
아는 놈이 왜 그런 걸 물어봐?
웃기지도 않네. 정말.
‘속 좁은 영감탱이…….’
‘뭐랬냐?’
‘스승님 충성충성.’
저 새끼 방금 내 욕 한 것 같은데, 요즘 귀가 침침해서 이거…….
“……그렇게 된 거였군요. 죄송합니다. 큰 결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솔디어의 적절하고도 적당한 변명 끝에, 로렌스는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숙였다.
녀석이 즉석에서 대답하기를—
나는 맹우의 딸이며, 사정이 있어 잠시 이곳에 머물게 되었노라고.
그리고 그 ‘사정이란 것은…?’ 이라는 질문에는 눈물까지 머금어 가며 맹우의 죽음과 그의 고결함을 찬사하기까지 했다.
그 과정과 이야기가 참으로 그럴싸하여, 나까지 믿어버릴 지경이었다.
적당히 대답하기 어려운 의문에서는 내게 말을 떠넘기기까지 하며, 즉석에서 ‘실베니아 영애’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가 창작되었다.
가문은 개인 사정상 밝히기 어려우니 묻지 말 것이며, 이 아비를 대하는 것처럼 영애를 대하라.
그 말에 로렌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표정은 잘 알지.’
뭐 좆도 없는데 지레짐작하고 감동하고서 뭔가를 결심하는 표정이다.
참 감수성 풍부한 아들내미를 낳았구나 싶다.
뭐, 더는 그 좆같기 그지없는 —직유적인 표현이다— 삼류 러브스토리 가능성을 생각하지는 못할 테니 아무래도 좋았다만.
‘애들이 십 년 만에 보니까 다 이상하게 컸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야?’
아이카반 놈은 뭐 비행청소년을 만들어 놓지를 않나.
로렌스 놈은 웃기지도 않는 문학소년을 만들어 놓지를 않나…….
어쨌든 로렌스는 애비를 닮아 썩 눈치가 있는 편인지—이미 방금 상황으로 파탄난 것 같기는 한데— 재빨리 자리를 비켜 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자신이 낄 만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이리라.
그리고 잠시 후— 문이 닫히고.
로렌스가 나를 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스승님, 실베니아는 좀 아니지 않습니까?”
“……어쩔 수 없었다.”
“뭘 어쩔 수 없습니까. 찾아 달라고 발악을 하시지 그러셔요? 마이클이 개명해서 마이크가 된다고 사람들이 그걸 못 알아보겠습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급했단 말이다! 네가 나이 먹어 봐라. 젊을 때처럼 머리가 팍팍 돌아가나!”
“이십 년 전에도 허구한 날 하셨던 말입니다. 딱 지금 제 나이 쯤에요.”
“……큭!”
정론이라 반박할 말이 딱히 없었다.
당장 나부터가 말하고서 등신 새끼냐고 스스로 욕했는데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콱 씨 하고 손을 들며 언성을 높였다.
“시끄럽다! 엎질러진 물인 걸 뭐 어떡하겠냐?”
원래 나이는 상대적인 것이다.
요즘 기술력도 참 좋아졌던데, 그것 때문인가 보지 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다른 아이한테도 그리 일러 두었단 말이다.”
“아이? 다른 누구를 또 만나셨습니까?”
“그래. 아이카반 녀석의 딸이었지.”
소네트 아이카반.
나를 감옥으로 끌고들어간 건방진 꼬맹이의 풀네임이었다.
자기 스스로 가문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은 대충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이런저런 단서들도 많기는 했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아이카반의 성령’.
마법으로 성형해내는 그 특징적인 종소리는 착각할 수가 없다.
제국에서 가장 진귀한 보물 중 하나일 그 성령이 소녀의 품 속에서 들려온 시점에서, 나는 그녀가 아이카반의 딸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가출할 때 가보를 들고 나왔더라고. 한 눈에 알아봤다.”
“……어쩐지 아이카반 공작이 여유가 없어 보이긴 했습니다.”
“그 뺀질이가? 큭큭, 내가 그 표정을 봤어야 했는데.”
수십년 전을 마지막으로 했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그것만으로 퍽 즐거웠지만, 솔디어는 무슨 일인지 퍽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내 앞에 다시금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췄다.
며칠 동안 무리해서 진지한 이야기라면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그러나 내가 푹 내쉰 한숨에도 불구하고 결국 솔디어는 이야기를 꺼내고야 말았다.
눈치를 채고서도 꺼낸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이야기일 테다.
“아무튼 스승님. 외람되오나… 저는 진실로 휴식의 시간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먼저 드려야만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뭐냐? 갑자기. 내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 다 알고 있을 것 아니냐.”
“그렇죠. 스승님의 실종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 모습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안전한 곳을 찾아 저에게로 오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 제자. 너무나도, 너무나도 감사하고 또 영광되옵니다. 허나——”
솔디어는 말끝을 흐리며 송구하다는 양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집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왜?”
“오늘 새벽의 사건 때문입니다. ‘까마귀’가 전한 특급 정보입니다만, ‘뱀의 동굴’ 놈들이 무슨 일 때문인지 미쳐서는 온갖 대도시들을 이 잡듯 뒤지고 있다고 합니다.”
“……흐음.”
솔디어는 그 이후로 쭉 몇 가지 정보를 꺼내어 놓았다.
까마귀 측의 정보에 의하면 놈들은 사람을 한 명 찾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그것은 은발을 가진 어린 소녀라고 했다.
무슨 일인지는 아직 경황이 파악되지 않았으나, 전국의 온갖 대도시에서 은발 소녀에 대한 정보를 사들이는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도 칼을 갈고 있는 것 같다고…….
그리고, 항상 은발 소녀와 함께 어떤 ‘반지’에 대해서도 찾고 있다고.
솔디어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무튼, 당연히 제 집이면 얼마간은 안전하겠지만… 이미 스승님을 본 사용인들이 몇 있습니다. 이제 와서 염색을 한다고 해도 입소문은 퍼지겠지요. 갑작스럽게 염색을 한다면 더더욱 눈에 띌 테구요.”
“분명 그렇겠지. 하지만 다들 네게 충성하지 않느냐?”
“그들은 제게 충성하지만, 입이 가벼운 자가 없노라 단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스승님, 제가 다른 안전한 장소를——”
솔디어가 계속 뭐라 뭐라 말했지만, 나는 내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하나의 촉감을 느끼고 있었다.
서늘하고, 단단하며, 또 찬란한…….
그리고 작은, 그 감각을.
“그런데 말이다. 솔디어. 중요한 얘기 중인 건 아는데…….”
“하문하십시오.”
“이거 좀 보겠니?”
나는 주머니에서 황금색 반지 하나를 꺼내어 그의 눈앞에 내밀었다.
통짜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안쪽에는 알 수 없는 문자가 각인되었으며— 머리 모양은 일종의 인장처럼 생긴 반지였다.
그것을 본 솔디어는 잠깐 말이 없어졌다.
“……스승님?”
“그래.”
“……아니죠?”
“맞을걸.”
“……….”
정정. 잠깐이 아니다.
좀… 오랫동안.
솔디어는 말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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