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018 아카데미, 1차 입학시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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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그래요. 안 그래도 이상하기는 했습니다. 북동쪽 끝 마을에 은거하실 스승님이 서쪽 끝인 제 영지에 있는 시점에서 기묘하긴 했죠. 지금 보니 뭐 뱀들을 등쳐먹었다면 이상할 것도 없겠군요.”
“미안하게 됐다.”
“아닙니다. 예상하지 못한 제자의 불찰이지요.”
솔디어는 지끈거리는 미간을 부여잡았다.
‘뱀의 동굴’은 끔찍하리만치 집요한 놈들이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몇 달, 몇 년이 걸려서라도—
대륙 끝에서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반드시 얻어낸다.
그런 그들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사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더라도 결코 좋은 일이라 말할 수가 없으리라.
‘당분간은 안전하겠지만…….’
영원한 보호는 없다.
솔디어 자신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정보는 반드시 언젠가는 새기 마련이고, 뱀의 굴이 모든 정보를 다 알고서도 감히 쳐들어가지 못할 만한 장소는…
…이 대륙에 열이 채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일대일이라면 뭐가 오든 간에 쳐죽일 수 있겠지만, 놈들은 뱀.’
꼬리의 숫자도 어마어마하게 많을 뿐더러, 그 수뇌부를 이루는 ‘송곳니’들은 하나하나가 무시할 수 없는 실력자들이었다.
실베스터라면 나약한 생각이라며 윽박지를지도 모르지만, 실제가 그렇다.
놈들은 정정당당하지 않고, 자신을 죽이는 것보다도 스승을 죽이고 반지를 찬탈하는 것을 목표로 하리라.
그러한 모든 과정을 솔디어 혼자서 지켜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문득, 솔디어의 뇌리에 기묘한 생각이 하나 스쳤다.
“그런데 스승님, 그 몸의 힘은 이전과 비슷하신 겁니까?”
“농담하냐? 백만분의 일도 안 된다. 당연한 걸 물어.”
“그럼 어떻게 뱀 굴을…….”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이었기에 말을 끝맺지도 않았다.
실베스터가 사는 지역이 아무리 변방이라지만 뱀의 동굴은 거대한 조직이다.
최소로 잡아도 수십 명에서 수백 명.
분명 지금의 몸으로 그들 모두를 쳐죽이는 것은 불가능할 텐데…….
실베스터, 아니 ‘실베니아 영애’는 어께를 으쓱였다.
“나도 모른다. 이상할 정도로 숫자가 적었어. 소굴을 지키는 놈들까지 어디론가 나가고 난 뒤였다.”
“그러면 그 쪽도 따로 알아봐야겠군요. 까마귀들에게 말해 두겠습니다.”
필경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다.
습격을 벗어나 지금 당장 이리 안전을 확보한 것만으로도 다행인 일이지만,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는 보다 완벽한 조사가 필요했다…….
완벽한 안전과 완벽한 시간을 위해서.
‘내 집보다 안전한 장소가 필요해. 스승님께서 몸을 숨기실 수 있을 법한… 아, 그렇다면.’
솔디어는 좋은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들어 실베니아에게 물었다.
“아카데미는 어떠십니까?”
“……아카데미? 지금 나더러 핏덩이들이랑 부대끼면서 살라는 소리냐?”
“하지만 선택지가 별로 없습니다. 다른 것들도 있기는 하지만…….”
실베니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양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다른 것들이 뭐가 어떻길래 그런 말을 하냐는 투였다.
“나머지도 읊어 보거라.”
“하나는 황제 폐하입니다. 찾아가면 분명히 환대해 주시겠죠. 제가 보증하면 의심도 없을 거구요.”
“기각.”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솔디어는 실베니아와 황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은 모른다.
그저, 황제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검성을 곁에 두고 싶어했고, 실베스터는 끝끝내 거부하다가 거진 혐오에 가까울 정도로 황제를 기피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을 알 뿐이었다.
실베니아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두 번째는?”
“이건 나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까마귀입니다.”
“무슨…….”
실베니아의 미간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까마귀?
미친놈.
나는 솔디어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이 아무리 당장 곤란하고 앞일이 어두워도 그렇지, 그년을 찾아가는 건 미래를 팔아버리는 일이나 다름이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두 분은 동료가 아니셨습니까? 분명 요청하면 당장 보호해 줄 텐데요.”
“당장은 그렇겠지. 딱 당장만.”
지난 번에는 뱀의 동굴에 들어가기 위해 까마귀의 방법을 썼지만, 그건 직접적인 만남이 없으니까 했던 편법이다.
까마귀와 직접 대면하고 르 미에를 만나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될 방법이다.
‘까마귀 여왕, 르 미에.’
그녀는 옛 마왕 토벌 파티의 여섯 번째 멤버였다.
즉, 내 옛 동료 중 하나인 셈이다.
본인이 싫다 하여 그 사실들이 기록으로서 남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인물들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람들은 알음알음 알고 있을 테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갔을 경우를 떠올려 보았다.
말마따나 동료이니, 일단은 보호해 주겠지만…….
“걔는 좀… 그래. 솔디어, 너 돈 많냐?”
“예? 예, 있을 만큼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황제보다 많아?”
“……그건 아니죠. 무슨 농담을 그리 짓궂게 하십니까.”
당연히 그렇겠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했다곤 해도 솔디어는 자수성가한 귀족이다.
가문 대대로 물려 내려온 보물이 있지도 않고, 영지 내에 어마어마한 광산이나 금맥이 있지도 않다.
귀족으로서 사치와 향락을 누릴 만큼은 벌었다고 자부하겠지만, 글쎄.
이 세상 그 어떤 인간이 감히 제국의 황제보다 돈이 많다고 떵떵거릴 수 있겠는가?
“황제보다 돈 많은 거 아니면 나 관련된 일로 까마귀한테 가지 마라. 죽는다.”
“대체 왜…….”
솔디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이건 설명하기도 미묘하다.
직접 경험하거나 당해 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다.
그 년의 정보가 얼마나 지독하고, 헤어나올 수 없는 거미줄의 요람인지.
“정보를 사면 ‘누군가 정보를 샀다’라는 정보가 남지. 그리고 그들과 대화만 해도, ‘누군가가 어떤 정보를 원한다’라는 정보가 남는다.”
그리고 르 미에는 그것으로 장사를 한다.
마이클이라는 귀족이 댄버스라는 귀족의 추문을 사면, 댄버스라는 귀족에게 ‘마이클이 당신의 정보를 사 갔다’ 라는 정보를 사겠느냐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경우에는, 그 반대편 대상이 황제다.
“황제가 이미 돈을 걸어 놨을 걸. 내 위치를 확인하면 일억 골드쯤 주겠다고. 그리고 너한테 속삭여 오겠지. 이억 골드를 주면 황제한테 말하지 않겠다고…….”
“그건 좀 무서운데요.”
“그 다음엔 뭐가 일어나는 지 아냐?”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을 솔디어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설령 이억 골드를 준다고 해도, 황제는 ‘이억 골드를 준 새끼 이름을 말해라’ 라면서 솔디어의 이름을 살 것이고, 당장에 솔디어를 반역죄로 매달아 버릴 테지.
나는 킥킥, 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까마귀는 안 돼. 설령 하려거든 돈 좀 많이 벌어 와라. 제국을 살 수 있을 정도로.”
“그래도 옛 동료인데…….”
“내가 은거했던 오두막 장소를 황제가 어떻게 알았겠냐?”
“아…….”
솔디어는 이제야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뭐…….
“망할, 결국에는 아카데미 외의 방법을 내가 부정한 셈이군. 거지같아서 이거.”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조금 귀찮으실지는 몰라도 가장 훌륭한 장소는 맞습니다. 아카데미는 일단 제국 최고의 연구기관이기도 하니까요.”
“내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렇지요. 비밀을 유지해야 하니 좀 번거롭긴 하겠습니다만.”
“흠…….”
맞는 말이기는 하다.
세상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십 년쯤 전을 기준으로 해도 동아카데미는 꽤 이름 있는 아카데미였다.
나는 관여하지 않았으나— 동료 중 하나가 그것에 큰 관심을 두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엘로힘 녀석은 여전히 아카데미에 있나?”
“네? 일단은 그렇습니다. 떠나셨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으니까요. 최근 근황이 들려오지 않은 지 꽤 되었지만, 그분은 항상 그러시니까요.”
“그렇다면야…….”
망할.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내멋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아카데미에 가야 했을것이라고.
'창세의 연금술사, 엘로힘.'
파티에 들어오기 전에는 지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던 은둔형 백수지만, 이제 와서는 연금술의 위대한 시조로 추앙받는다.
성격이 지랄이기는 해도 실력은 확실한 놈이니, 아마 내 상황에 대해서도 뭔가 의견을 내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좀....
많이 지랄이기는 해도.
‘어쩌면… 치료약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아니,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기대는 그만두자.
그 날백수 놈이 나를 위해 일해 줄지를 먼저 고민해야 할 테니까.
“그래, 아카데미라…….”
안전하고, 앞으로의 비전도 있고…….
나쁘지는 않다.
핏덩이 놈들과 같은 취급 받으며 몇 년을 보내는 건 좀 어떨까 싶다만,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면 꼴리는 대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카데미는 그야말로 학생의 성역.
황실과 비견되는 수준의 마법으로 항시 보호받고 있으니, 아무리 뱀 굴 놈들이라도 아카데미에 쳐들어오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내 생각이 최대한 긍정적으로—그래야 이 상황이 덜 좆같으니까— 기울던 와중, 솔디어가 끼어들어 초를 쳤다.
“그러면 스승님, 외람되오나… 아카데미가 목적이시라면, 서둘러 움직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입학 시험을 접수해야 하거든요.”
“마감이 얼마나 남았는데?”
“흐음…….”
솔디어는 품에서 회중시계 하나를 꺼내어 확인했다.
허, 시대가 아무리 발전했다지만 저런 것도 가능하다고?
“요즘 시계는 날짜도 나오냐? 세상 많이 좋아졌네.”
“아뇨? 그럴 리가요.”
“?”
“두시간 남았으니까 빨리 가셔야 합니다.”
“이 미친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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