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소녀검성-21화 (21/47)

〈 21화 〉 #020 아카데미, 1차 입학시험(4)

* * *

20화.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에서 나오는 사상자는 매년 사회 이슈의 하나가 될 정도로 많은 숫자가 속출한다.

그것은 시험 자체의 격렬함에서 나오는 위험성도 물론 이유의 하나이긴 하나—

결정적인 이유는 경쟁의 심화로 인한 목숨의 경시.

동아카데미라는 성공의 보증수표를 쟁취하기 위해서 서로를 그저 발판으로만 보는 인식이 팽배해진 탓이었다.

뒷골목의 소매치기로 연명해온 소년도, 보잘 것 없던 시골의 소녀도, 아카데미에만 들어온다면 찬란한 영예를 약속 받을 수 있으니 그 누가 그리하지 않겠는가.

‘당연한 일이지.’

서로 투쟁하고, 싸우며, 약속된 성공을 위해 몸부림친다.

그것은 귀족이 아닌 평민, 빈민일수록 더욱이 그러한 모습을 보였다.

아카데미가 명목상 가르침에 있어 신분의 평등을 제시한다고는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들은 평등하지 않으므로.

어릴 적부터 검을 잡은 이와, 살기 위해 괭이를 든 이.

그 둘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노력의 차이를 무의미하다 비웃을 수 있는 재능을 지닌 자만이 아카데미에 발을 들이는 것이 허락되는 것이다.

나머지는 그 재능을 위한 거름으로 전락할 뿐인 일. 그것이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이리 이를 것이다.

그야말로서로를 헤치고 물어뜯는 연옥의 아귀들과 다름이 없다고.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서, 다른 모든 것들을 짓밟고 오르면 그 위에 천국의 문이 있으리라 믿는 아귀가 따로 없노라고.

그러나이 사내—포엠 아이카반 공작은,그러한 벌레들 중 한 명에 자신의 딸이 포함될 것이라고는 감히 생각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않았’었’다.

“공작 전하, 곧 마지막 시험입니다.”

“……벌써 그리 되었나.”

옅은 아이보리 색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사내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사내가 있는 장소는 이 특설 시험장의 꼭대기— 본디 최종 감독관이 이 시험을 주관하는 방.

그러나 그 감독관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특별한 용무’로 자리를 비워버린 상태였고, 아이카반 공작은 명목상 그 역할을 대신하겠다며 여기에 들어앉아 있었다.

그것이 오늘 새벽의 일이었다.

“공작 전하,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확인 결과 영애께서는 이미 이곳에 없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나도 안다. 그러나… 무엇인들 어떠할까.”

새벽, 갑자기 텔레포트의 좌표를 교란하여 홀로 떨어지게 된 여식을 경비대장이 보호했다는 소식을 입수했고,곧바로 가신들과 함께 감옥으로 향하였으나—

남아 있는 것은, 우그러뜨려진 창살과 죽은 이 하나 없이 깔끔하게 기절한 경비들 뿐이었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솜씨였다.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제압하는 것이 어려움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 아니던가!

경비들은 일격에 급소를 강타당해 혼절해 있었다.

깔끔하다 못해, 예술적이라고 일러야 할 솜씨였다.

하물며, 이건 또 뭔가.

‘악력으로 우그러진 창살……?’

창살이 우그러진 높이와 폭은 분명 어린아이.

그것도 어린 여자아이의 것이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소네트. 역시 내 딸이로다. 이 모든 것을 네가 했단 말이냐?’

직전까지는 딸의 일탈에 대한 분노로 거의 이성을 잃어 있었지만, 소네트가 탈출한 그 광경을 보자 분노의 아래에서 조금씩 대견함이 일었다.

‘마법사? 흥, 하찮은 소리를.’

그 흔적은 분명 물리적인 것들이었다.

마법을 사용한다면 그 특유의 마법흔이 남아야만 하니, 그것은 달리 말할 필요도 없는 완력과 기술의 결과물이리라.

아이카반 공작은 확신했다.

아니, 이미 확신하던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자신의 딸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검성의 재목이라고.

지금에야 하찮은 마법사 따위가 되겠다고 가출했지만, 이 감옥을 탈출한 기술만 보아도 그녀가 무엇에 재능이 있는지 쉬이 알 수 있었다.

아이카반은 위대한 네 기사의 가문.

이 제국에서도 가장 위대한 검술의 시조 중 하나.

그 가문의 독녀인 소네트가 검에 재능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본래는 여기서 소네트, 너를 찾을 생각이었다만…….’

과연 나의 딸.

눈치 빠르게 다른 곳으로 도망가 버렸구나.

그러나 이제 무슨 의미가 있으랴!

어차피 다른 어딘가에서 시험을 합격하여 아카데미에 입학할 것이다.

여기에 남은 흔적대로라면 필경 그리하고도 남는다.

‘어차피 곧 내 품으로 돌아오겠지.’

딸은 그 때 찾으면 그만이다.

지금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이를 위해 준비했던 작은 ‘선물’을 어떻게 하느냐였다.

"주군이시여, 명령을."

“우리 마법사가 공들여 소환한 저것을 버리기도 아까울 테지."

아이카반 공작은 힐끗 저 아래를 내려다보며 간단하게 답을 내렸다.

“당초의 계획과는 틀어져 버렸지만, 어차피 결국은 걸러져야 할 인원들.”

저것조차 돌파하지 못하면 어차피 아카데미에는 들지 못한다.

반대로 저들이수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원석이라면, 저 정도는 문제 없을 테다.

아이카반 공작은 그리 결론을 내리려다, 목을 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하지만 큰 녀석은 너무 위험한가…….”

“예. 아이들에게는 힘들 겁니다. 당초에 탈락시키기를 상정하고 준비하셨으니까요.”

아이카반 공작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확실히위험한 것을 그 자신도 알고 있기에 직접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의 일을 대비하여직접 처리하기 위해서 말이다.

“네 말이 옳다. 작은 선물만 풀어라. 큰 놈은… 내가 따로 처리하겠다.”

“주군의 뜻대로.”

“무기를 고르고, 각자의 문 앞에 서라!”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감독관으로 보이는 사내가 그렇게 외쳤다.

응시자들은 각자의 무기를 하나씩은 지니고 있었지만, 그들도 얌전히 무기를 고르러 다가가는 것을 보면 무기는 지정된 것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칙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무기고 하나를 통째로 끌고 온 건가?'

준비된 무기들의 모양새는 썩 마음에 들었다.

그 날의 예리함과 만듦새를 보면, 못해도 이류는 되는 무기들이다.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다른 무엇도 아닌 무기 종류의 숫자였지만 말이다.

숏소드, 대거, 레이피어 등의 한손검부터, 용도 잡을 수 있을 법한 그레이트소드나 클레이모어…….

그리고 방패나 창, 철퇴, 활 따위의 잡다한 무기들까지.

종류로만 놓고 보아도 수십 가지의 무기들이 있었다.

무기의 종류에 따라 차별받지 않게끔 배려한 것이 느껴졌다만…….

“나는 곤란하단 말이지.”

본디 검이란 기성품을 쓰는 것이 아니다.

기사 하나하나마다 각자의 손에 맞는 무기가 있으며, 그 손잡이의 길이와 날의 폭까지, 몸에 맞는 사이즈가 각각 존재한다.

하물며 고작 열다섯 살의 여자아이 몸에 맞는 검을 기성품 중에 찾으라고 해 봐야 뭐.

“내가 뭐 잡쫄도 아니고, 이딴 칼을 써야 하나…….”

나는 작게 투덜거리며 나열된 무기들 앞으로 나아갔다.

불합리해도 규칙은 규칙.

좋은 무기 내버려 두고 아쉬운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게 나만은 아니었으니까.

당장 옆에 있는 로렌스 녀석만 하더라도 그럴싸한 명검을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아쉽게도 내게는 길이가 안 맞을 것 같지만 말이다.

로렌스는 자신의 검과 최대한 비슷한 검을 찾아 확인한 뒤, 내게로 와서 물었다.

“영애, 어떤 무기를 선호하십니까?”

“글쎄…….”

나는 무기를 가리지 않는다.

옛 전장에서의 검은 몇 번 휘두르면 쓰레기가 되고, 그 때는 손에 잡히는 무기를 써야만 했으니까.

‘나 때는 이것저것 가리면서 싸울 수 있을 만큼 간편한 세상이 아니었다. 이놈아.’

나는 한 발자국 물러서서 다른 이들이 무기를 가져가는 것을 보았다.

숫자는 대략 스무 명 정도.

열 다섯 정도가 인간이었고, 나머지 다섯은 수인이었다.

종족도 제각각, 신장과 체형도 제각각.

나름대로 각자에게 익숙한 무기가 있을 터였고, 그들은 익숙하게 자신의 무기를 골랐다.

‘흠, 철퇴와 방패. 아주 베이직하고 훌륭한 선택이지. 하지만 저 깡마른 체구로 다룰 수 있을까…….’

‘그레이트소드. 수인의 근력을 살리는 훌륭한 방법이야.’

‘창이라… 무난하긴 하지만, 글쎄…….’

열 아홉의 응시자들이 전부 무기를 골라 물러섰고, 나는 그제서야 앞으로 나섰다.

사실, 이딴 몸인 이상 처음부터 선택지는 없었다.

내 취향이 무어 중요하랴?

무기의 전제조건인 ‘들고 휘두를 수 있을 것’.

그것 하나를 만족시키는 무기 자체가 몇 없는데 말이다.

나는 결국 구석진 곳에 얌전히 놓여 있는 무기 하나를 집어들었다.

오늘 내내 누구도 잡은 적이 없는지, 아주 반짝반짝하게 광이 나고 있었다.

“실베니아, 그것으로… 괜찮겠습니까?”

“네 걱정이나 해라, 로렌스.”

“하지만, 영애……!”

“시끄럽다니까.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몰라?”

“으음.”

나는 뭣도 모르고 깝치는 로렌스를 대충 손짓하며 일축시켰다.

그래, 네 마음을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이놈 뿐만 아니라, 다른 응시자들도 이 이쑤시개를 보고 비웃는 눈치가 여실히 느껴졌다.

“아카데미의 위세도 땅에 떨어졌군. 마실 나온 기분으로 참여할 만큼 만만해진 건가.”

“풋, 레이피어라니. 하긴 계집년이 기사에 대해 뭘 알겠어.”

옛날 같았으면 윗턱이랑 아랫턱을 둘로 나눠 버리는 건데…….

안타까운 지나간 나날이여.

하지만 나라고 좋아서 이걸 드는 게 아니기에,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저들의 말에 뭐라 화낼 수도 없다.

레이피어는 병신 무기가 맞으니까.

검의 크기부터 무게, 내구도…….

그 모든 면에서 우세할 것이 없다.

무게가 가벼운 것이 장점이 아니냐 묻는다면—글쎄.

‘기사들의 싸움에서 무기의 무게는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기사들의 주적이 무엇이냐를 생각한다면.

저 검은색 장벽 너머에 무엇이 존재할까를 유추해 본다면,이 레이피어는 그야말로 어리석기 그지없는 선택임이 맞았다.

'근데 이것도 무겁네.'

사실 병신인 건 레이피어가 아니라 내 몸뚱이인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할 즈음,로렌스는 끝끝내 내 귓가에 대고 소리쳤다.

“영애, 저 너머에는 분명 마물이 있을 겁니다. 사람끼리의 싸움이라면 레이피어는 분명 유효하겠으나, 마물과의 싸움에서는 아닙니다! 한 번만 스쳐도 부러질 게 뻔해요!”

“나도 알아, 이 새끼야.”

“그러면 왜……?”

“네 칼 줘 봐.”

로렌스는 의심 없이 내게 방금 고른 한손검을 건내었다.

아주 심플하니 아름다운 한손 장검이다.

그런데—

“악.”

“……?”

대략 2kg쯤 할 그 검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내 팔은 그대로 아래로 축 쳐졌다.

굳이 휘두르려고 하면 못 휘두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나는 숨을 고르며 그것을 다시 로렌스에게 건네었다.

“봤지?”

“못… 드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이 가녀린 팔에 뭘 바라냐? 눈 삐었어?”

로렌스는 진심으로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나와 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눈깔 튀어나오겠다 임마.

어쨌든, 내 칼에 대한 관심사는 곧 사그라들었다.

결국은 여기 모인 인원 전부가 경쟁자이고, 자기 앞날 챙기기 바쁜 머저리들이니까.

—삐이이이익!!

감독관의 호루라기 소리를 신호로 그들은 전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당연히 로렌스도 마찬가지였다.

조금은 혼란스러운 듯 보였지만, 뭐 내 알 바인가.

검은 벽에는 스무 개의 입구가 있었고, 철창과 쇠사슬로 가로막혀 안쪽이 잘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모두가 각자의 입구에 서자, 시험관의 목소리와 함께 쇠창살이 열리며 안쪽의 모습이 드러났다.

——쿠구구구궁!!

“시험은 단순하다!!”

그 안쪽에 있는 것은 하얀색의 구체였다.

일정한 형태 없이 휘몰아치는 모습이 마치 불꽃과 같은 구체가 그곳에 있었다.

그것은 점차 부피를 불려 크기를 키워갔고, 곧 사람의 두 배 정도 되는 크기가 되어 휘몰아쳤다.

그리고— 그 안에서 거대한 푸른 다리가 첫 발을 내딛었다.

성인 남성의 두 배 정도는 되는 거구와 코 위로까지 솟아오른 거대한 송곳니.

그리고 그 크기에 걸맞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통짜 아름드리나무를 두 손으로 든 괴수가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 트롤이 죽었을 때, 혹은 너희들 중 다섯 명만이 남았을 때 시험은 종료된다. 그리고——.”

감독관은 일부러 말을 끌며 웃음을 흘렸다.

사악하게 웃는 것이, ‘진작에 빨리빨리 포기해라’라고 겁이라도 주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과연.

“십 분이 지날 때까지 저 트롤이 쓰러지지 않는다면, 전원 실격이다.”

“호오…….”

백명 중 한 명은 뒤진다는 말이 허언은 아니었나.

좋아. 흥미롭다.

고작 상대가 트롤은 썩 기대 미만이지만, 룰은 상당히 마음에 든다.

‘아직 아카데미생이 아니니 뭘 어떻게 하든 알 바 아니라는 사고방식, 아주 내 스타일이야.’

게다가 방금 들어온 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었다.

겁먹은 자는 언제든 도망쳐라. 그런 의미일 테지.

“아주 마음에 들어.”

나는 일단 한 발자국 물러서서 다른 놈들의 싸움을 지켜보기로 했다.

제일 재밌는게 좆밥들 싸움인데, 그 일등석에서의 구경을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데.

아까 보았던 수인들 중 한 명이 내게 천천히 다가와서는, 그 대검의 끝을 나에게로 향했다.

“계집, 나약함. 목숨 아까움, 돌아갈 것.”

“……재밌군. 짐승 새끼가 사람한테 말을 걸어?”

햐…….

옛날에 이 새끼들한테 인권을 주니 마니 할 때 반대했어야 했나.

언제나 생명체가 빈곤하고 궁핍해야 기어오르지를 않는데, 인권이니 동물권이니 뭐니 하는 씹새끼들 때문에 별 같잖은 놈이 기어오른다.

그러나.

뭐면 어떤가?

“재밌네.”

나는 지금, 너무나도 즐거운데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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