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021 아카데미, 1차 입학시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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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수인은 내 대꾸에 전혀 호응하지 않았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이 그들의 법칙.
되려 대꾸하는 것조차 가치 없다 느끼는 것일 테다.
“너, 나약하다. 저것, 대적 불가능.”
나를 향해 대검을 치켜든 수인은 그리 말하며 자신의 발치에 검을 내리찍었다.
바닥과 대검이 충돌하며 약간의 충격파를 만들어 냈고, 그것은 투기장 전체를 가로질렀다.
모래먼지가 일었고, 나와 놈은 시선을 마주했다.
사람의 얼굴에 푸른색과 은색의 머리털이 거칠게 내려왔고, 그 위를 장식하는 귀는 분명 늑대의 것.
온전한 동물의 형태가 아닌 것을 보니수인 중에서도 피가 옅은 놈이다.
그러나 피가 옅다 한들, 고작 인간 여자아이보다는 수십 배 강한 근력을 가지고 있을 테지.
“꺼져라. 나약한 계집.”
“글쎄…….”
나는 힐끗 시선을 돌려 트롤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직은 주변의 상황을 살피는 상태였다.
저런 나무를 도구로서 휘두르는 것을 보면 알듯, 트롤도 나름의 지성이 있는 생명체다.
이 상황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눈앞의 위협적인 먹이들을 잡아먹을 수 있을지 정도의 판단은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소린가 하면….
"킬라우! 물러나라!!"
“마우나, 무슨 소리를…….”
…저놈도 여기서 누가 제일 약골인지 알아볼 수 있다는 소리다.
—우어어어어어!!!
킬라우라 불린 수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트롤의 괴성이 투기장 전체에 몰아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대한 나무가 나를 향해 그대로 날아들었다.
거대한 질량이 바람을 가르며— 시험의 사상자가 많은 이유를 그 몸으로서 직접 증명했다.
포위되었을 때에는 가장 약한 놈부터.
멍청한 마물이라도 그쯤은 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중에서 제일 약해 보이는 건 나다.
‘그러면 어쩔까.’
받아치면 당연히 뒈지겠지만, 저 큰 궤도의 휘두름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수많은 전장을 넘은 경험과 이젠 이능의 영역에 다다른 육감은 시간을 초월하여 마나를 증폭시킨다.
여명식, 론하르트의 방식.
그 기초는 공간의 장악이다.
주변의 모든 마나를 지배하고, 발 아래 두어, 온전히 나의 공간으로서 탈바꿈한다.
마나를 읽는다는 것은 흐름을 읽는 것.
그리고 흐름을 읽는다는 것은 시간을 읽는 것.
내 눈에는 지금 저 거대한 궤도의 종착지가 비춰지고 있었다.
녀석이 사람이라면 수많은 가능성이 동시에 이 시야에 보이겠지만, 멍청한 트롤 따위가 고등한 검법을 구사할 리도 없는 노릇이다.
저딴 일직선적인 공격을 피하는 것은, 단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기만 해도 된다…….
그러나 시간은 언제나 흐르고, 결과는 확정되어 있지 않다.
내가 피한다고 해도 저 괴물의 가공할 근력은 허공에서 나무기둥의 궤도를 바꾸기에 충분하리라.
그렇기에— 나는 되려 앞으로 달려들었다.
내 앞에 훌륭한 방패가 하나 있었으니, 사용하지 않으면 아까운 일이었다.
“……?!”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거대한 모래먼지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모두의 시선을 가리웠고, 먼지가 다 멎기도 전에 다른 놈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영애!!”
“저럴 줄 알았지. 깝치면 저렇게 된다니까?”
“꼴 좋다. 건방진 귀족년.”
어쩜, 말하는 꼴이 삼류를 벗어나지를 못하는 안타까운 친구들이다.
하지만 곧 모래먼지는 잦아들었고 직선적인 시선들이 침묵과 함께 내게로 향했다.
정확히는 나의 앞에 위치한 수인 놈과 트롤을 향한 시선이었다.
거대한 나무기둥과 그것을 받아치는 대검, 그리고 삐걱이는 수인 놈의 관절.
트롤은 방금 찍어버린 것을 그대로 말살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나무 기둥을 찍어내리고 있었다.
다만 내가 아니라, 대검을 든 수인 놈이 대상이었지만 말이다.
“크으윽……!!”
“과연 수인이군. 사람이랑은 차원이 다른 근력이야.”
“비…겁하다……!!”
“젊은 녀석이 고작 이 정도로 엄살은.”
킬라우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완벽하게 트롤의 공격을 버텨내고 있었다.
마물 대 인간의 구도가 되었을 때, 가장 피해야만 하는 구도가 바로 저 ‘힘 겨루기’ 형태일 텐데도 수인에게는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젊음이 좋기는 좋아.”
“끄으으윽!!”
나 같은 경우에는 옛날에 저거 한 번 하다가 허리가 삐끗해서 만성 허리디스크를 얻은 적이 있다.
쟤는 뭐…….
젊으니까 어떻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문득, 다른 수인 중 하나가 내게 삿대질하며 언성을 높였다.
“비겁한 년! 기사를 목표하는 장에서 무슨 추태인가!”
“비겁?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애송아.”
기사는 비겁하면 안 된다는 법도가 세상 어디에 있다던가?
기사와 비겁을 한 문장에 담는 놈은 딱 두 가지 뿐이다.
유머 감각이 뛰어난 개그맨이거나——
전쟁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머저리이거나.
게다가.
“비겁한 건 이런 게 비겁한 거지.”
“!!”
나는 어거지로 버티고 있는 수인의 뒤로 돌아가, 그 무릎의 뒤를 살짝 차 주었다.
아프지도 않을 만한 작은 충격.
그러나 전신의 근육이 긴장되어 부푼 지금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물결이 되어 놈을 덮쳤다.
—콰드득!
“크으으으으윽!!”
한 쪽 무릎을 꿇은 채로 억지로 트롤의 공격을 견뎌내고 있었지만, 트롤 쪽도 더욱 무게를 주고 있었다.
이 상태로 나머지 하나까지 꿇게 되면 어떻게 될까?
뭐, 어찌 될지는 몰라도 유망한 전사 하나의 장래희망이 경비병으로 바뀌지 않을까.
어느 쪽이든 내 알 바는 아니었기에, 나는 한 발자국 물러나 다음 상황을 살폈다.
”킬라우! 버텨라! 우리가 돕겠다!!”
—크륵……!
곧, 다른 네 명의 수인들이 일제히 트롤에게로 덤벼들었다.
하나같이 제 체격에 맞게 도끼나 해머 등의 거대한 무기를 들고 있었고, 저런 대형 무기들은 마물들에게 아주 유효하다.
다루기가 어렵다는 게 단점이지만… 수인의 근력이라면 전부 무의미한 단점이다.
거대한 대검이 단검과 다름없는 속도로 트롤의 관절에 들이박혔다.
하지만 어림없다.
트롤의 치유력은 경이로워서, 절단상이나 화상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공격은 그저 받아들이며, 수비 대신 공격으로서 무조건적인 소모전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주된 트롤의 전투 방식.
즉, 저렇게 막무가내로 덤벼든 시점에서 이미 승산은 없는 셈이다.
뒤이어 다른 인간 놈들도 합세하여 몰아쳤지만 트롤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남길 수 있는 놈은 없었다.
방어를 도외시한 압도적인 질량의 폭력에 놈들은 속수무책으로 쓸려나갔고, 한 번이라도 견딘 놈들은 자세를 추스리며 다시금 기회를 넘볼 뿐.
누구도, 곧바로 다시 달려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크으윽……!!”
“일어나라 킬라우! 망할, 저 계집만 없었어도!”
어떤 수인의 그 말을 시작으로 다른 놈들의 시선이 전부 나를 향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없었다면 다른 유능한 놈 하나가 더 들어왔으리라 생각하는 것일까?
혹은, 방심하다 쳐맞은 저 수인 놈이 저 트롤을 상대할 만큼 강했던 것일까?
‘뭐면 어때.’
나는 실소를 머금으며 레이피어를 손에 쥐었다.
이것조차 무거워 땅에 칼끝이 끌렸지만, 마나로 몸을 강화한다면 그 시간동안은 가벼이 휘두를 수 있다.
‘한손검이 나았겠지만…… 손잡이가 너무 커.’
그나마 핑거그립과 핸드가드가 있는 레이피어가 이 작은 손에 맞다.
그러나 이것으로 트롤을 잡을 수 있느냐 묻는다면, 대답은 당연히 No 다.
이 몸뚱아리로 손해 없이 저걸 잡아내는 방법은 지금으로서는 전무하다.
그러나.
“내가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저 트롤이 새삥이 아닌 것 같거든?”
“무슨 소리를…….”
“저 흉터들을 보라고. 상처는 치유되지만 흉터는 남으니까 말이야. 저 가슴에 있는 것도, 다리에 수십 개 있는 것도… 하나같이 새 흉터들이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계집.”
“십 분이 지나기 전에 저 트롤을 족친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단 말이야. 저게 안 죽고 재활용되고 있다는 소리지.”
그러나 사람을 잡을 수 있느냐 묻는다면.
“세 명.”
“?”
대답은당연히,YES.
나는 손가락 세 개를 피며 트롤을 가리켰다.
“선착순 세 명은 살려주마. 늦은 놈은 밖으로 걸어 나가던가 해라.”
“건방진……!!”
도발은 언제나 효율적인 개전의 방법이다.
몇 놈은 무기를 들고 내게로 성큼성큼 걸어왔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몇몇은 그저 트롤에게서 물러나며 서로를 견제하듯 바라볼 뿐이었다.
“너희, 설마?”
“무슨 소리를! 네놈이야말로 불순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냐?!”
그래.
십 분 내로 트롤을 죽이는 것보다, 십 분 내로 다섯 명을 남기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깨달은 것이다.
하물며 이미 마음이 흔들린 지금으로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야— 응시생들끼리 서로 싸우지 말라는 규칙 따위, 말한 적 없지 않은가?
게다가 적당히 무력화하여 밖으로 던져 버리기만 하면 밖에서 대기 중인 신관이 회복시켜 줄 테니, 살인죄 걱정도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내 도발이 정통으로 먹혀든 빡대가리들은 당장에 눈이 뒤집혀, 결국 무기를 들고 내 앞에 섰다.
그리고 참으로 예상대로, 로렌스는 그 사이를 막아서고 검을 치켜들고 있었다.
“멈추십시오. 어찌 기사를 목표하는 자가 여인을 핍박한단 말입니까.”
“비켜라, 귀족. 저 년은 입을 함부로 놀리면 안 된다는 단순한 진리도 모르는 모양이니.”
“누구나 실수는 하기 마련입니다.”
“실수에도 대가는 치르기 마련이지.”
“……….”
로렌스는 대꾸하지 못했다.
경험 없는 바른생활 사나이인 저놈이 저 상황에서 그럴싸한 대답을 하리라고 기대하는 것부터가 과도한 기대일 것이다.
“나와, 괜히 재밌는 상황 망치지 말고.”
“하지만, 실베니아! 당신은 대체 어쩌자고!”
“어쩌긴…….”
대답은 정해져 있는데 멍청한 질문을 하는군.
“이러려는 거지.”
나는 전신의 마나를 끌어올렸다.
한계까지 압축하고, 근육이 터져나갈 듯이 팽창시켜—
한 순간에 도약한다.
“!!”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세 놈이 반응하기도 전에, 나는 트롤의 바로 아래에서 위로 뛰어올랐다.
트롤은 순혈 거인이나 오우거만큼 거대한 몸집은 아니다.
기껏해야 3m, 말에 탄 인간 정도의 크기.
즉, 지금의 나로서도 뛰어오를 수 있는 높이다.
—그륵…?!
놈이 나를 보고 반응하여 팔을 휘두르는 미래가 보였다.
막을 수는 없다.
궤도를 틀어버릴 수도 없다.
하지만, 놈 스스로 팔을 거두게 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
나는 공중에 뜬 채로 놈의 어께를 박찼고, 그대로 한쪽 눈을 그어 버렸다.
두개 다 베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이제부터 이놈은 날 대신할 꼭두각시다.
그러니까, 하나만 빼앗는다.
—그워어어어어!!
눈을 잃은 고통에 울부짖던 놈은 남은 하나의 눈으로 곧 나를 포착했다.
그 하나 남은 눈에 비치는 것은 분노, 그리고…광기.
다음 순간.
“뛰어라, 로렌스!”
“!!”
로렌스와 머저리 세 명이 대치하던 자리에거대한 나무기둥이 내려 꽂혔다.
기둥의 일부가 박살날 정도로 전력을 담은 일격이었고, 가장 멀찍이 있던 로렌스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그대로 내려찍혀 바닥에 쳐박혔다.
처음에 주제도 모르고 달려들다 쓰러진 놈이 넷, 방금 쓰러진 놈이 셋.
"앞으로 여덟 명."
나는 한 쪽 시야를 잃은 트롤의 사각으로 파고들며, 방금 그 광경을 보고 몸이 굳어버린 애송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아주.
아주아주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살고 싶은 놈은 지금 나가. 병신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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