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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소녀검성-26화 (26/47)

〈 26화 〉 #025 후작님, 제 교복을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3)

* * *

25.

솔디어 베르트랑은 지금, 근 몇 년 간의 시간 중에 유래 없이 들뜬 상태였다.

지금껏 스승에게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은할 기회가 생긴 시점부터, 그는 어떻게 그를 모셔야 할 지 만을 고민해 왔다.

그리고 오늘 그 일부를 이루리라.

가령 예를 들어— 이 방의 모든 것은 그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급하게 수배하고 주변의 아이 드레스란 드레스는 싹 긁어모아 비치했다.

좋아할 지 싫어할 지는 모르지만 언제나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설령 쓰레기가 되어 불태워 버린다고 해도, 스승의 선택지가 하나 늘어나는 것 자체로 그는 행복에 겨웠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핵심은, 미스터 데샤프가 보내 준 그의 교복.

‘스승님이야 당연히 무엇을 입든 어울리시겠지만…….’

데샤프는 제국 전역에 명성이 자자한 디자이너다.

그가 디자인한 교복을 입고 시험장에 나타나는 그 순간부터 이목이 집중되는, 그런 명성을 지닌 디자이너.

그 명성에 비해 처음에 그 교복을 봤을 때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말이다.

조금… 뭐랄까.

‘그라면 조건의 틈을 찾아 찌르고, 조금 더 귀엽고 깜찍하고 발랄한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평범하기 그지없는 바지라니.

하긴, 조건이 너무 빡빡하긴 했다.

그래도 뭐면 어떤가!

그의 스승이라면, 지금의 실베니아라면 분명 거적때기를 입어도 빛이 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직후.

“솔디어어어어어어!!”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온 방을 울리는 노성과 함께 그녀가 문을 박살내듯 박차고 튀어나왔다.

당황 반, 분노 반으로 이루어진 참으로 절묘한 표정.

경황이 없었는지, 실베니아는 옷걸이를 한 손에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솔디어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뭘 쳐웃고 있어!! 좋냐?! 좋아?! 이딴 거 스승한테 입히고 수치스러워하고 있으니까 좋냐?!”

“왜, 왜 이러십니까?!”

솔디어는 순간 생각이 이해를 따라갈 수 없었다.

분명, 그녀가 이렇게까지 화를 낼 요소는 없었을 터였다.

셔츠부터 바지까지, 심지어 코트는 자신이 보아도 멋들어진—아저씨 취향이라는 의미다—코트였는데 말이다!

“왜, 왜 이러십니까?!”

“왜 이러냐고?! 이걸 보고도 그딴 말이 나오냐?!”

솔디어는 천천히 위에서 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분명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 아무 문제도 없었을 그 교복은—

정말이지 기묘한 형태로, 왼쪽 다리가 전부 훤히 드러나 아름다운 곡선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솔디어는 탄성을 내뱉을 뻔 했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그는 목숨이 아까운 줄 아는 사내였다.

솔디어는 전혀 모르겠다는 양 눈을 부릅떴다.

“하, 하지만 스승님. 아까까지는 멀쩡했—"

“망할!! 또라이 새끼 아니야!! 정령 각인을 이런 데다 박아?!”

정령 각인.

그것은 정령의 도움을 받아, 사물에 일정한 특성을 부여하는 마법의 일종이었다.

가령 예를 들자면 자연적으로 발화하는 횃불이나, 스스로 수맥을 찾아내는 막대기…….

……그리고, 투명한 천 같은 것이 있다.

“미친 새끼. 이 정도로 투명한 걸 만들어? 이거 대체 뭘로 만든 거야?”

이 정도면 집념이다.

아니, 광기에 가깝다.

정령 각인은 상당히 편리한 기술이지만, 그 한계점이 명확하다.

각인하는 재료가 좋아야 그 효과가 오래 지속되고, 또 강력하게 발휘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정령 마법사와 희소한 재료.

그 둘이 합쳐져야 나오는 것이 정령 각인의 명품이라는 물건이다.

그런데, 그런데…….

그 기술을 낭비해서 만든 게, 전혀 보이지 않는 투명한 반바지라니.

그것도!

가로로 반이 아니라, 세로로 반!!

“제가 작년에 사냥한 바실리스크의 가죽을 준 적이 있긴 한데…….”

“또라이 새끼야아아아!! 투명 망토를 하나 만들겠다!!”

“스승님을 위해서는 아깝지 않았습니다.”

“악, 아악, 고혈압이…….”

“그 나이에 벌써 그러시면 안 됩니다. 신관을 불러드릴까요?”

“아가리 안 닥쳐?!”

솔디어는 대놓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저놈 돈으로 만든 물건이니, 저 표정에 대고 더 이상 욕하기도 뭣했다.

제일 짜증나는 부분은, 품질 자체는 정말로 특급이라는 것이다.

가볍고, 아무것도 안 입은 것처럼 편하다.

게다가 바실리스크 가죽이면, 말이 투명이지 칼로 찔러도 흔적 하나 남지 않으리라.

“이, 이 개 씨발…….”

하지만, 대관절 이딴 걸 어떻게 입고 다닌단 말인가.

쪽팔려서 거리 한복판에서 뒈져 버릴 것이 분명했다.

내가 벌벌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는 와중, 솔디어가 내 허리춤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아, 거기 뭔가 들어 있습니다. 쪽지 같은데요.”

“?”

솔디어의 말마따나 주머니에는 종이 하나가 꼬깃꼬깃 쪽지 모양으로 접힌 채로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펼쳐들자—

[피부 노출은 없습니다.]

차마, 고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씨발년아아아아아!!”

“아, 뒷면에도 뭔가 적혀 있는데요?”

“뭐라고…?”

나는 황급하게 쪽지를 뒷면으로 돌렸다.

그래, 남의 돈으로 이 지랄을 해 놨으면 당연히 끄고 켜는 기능 정도는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쪽지 뒷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노출(?出)

[명사][환경 ] 생물체가 피부에 직접 접촉하거나 호흡, 흡수를 통하여 오염물과 접하게 되는 일.]

“재밌네.”

나는 맑게 웃으며 쪽지를 찢어발겼다.

그래, 역시 수련 직후에는 좀 몸 상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어쩜, 딱 필요한 걸 하늘이 내려 주신 것 같다.

“이 새끼 어딨어? 직접 가져왔을 거 아니야. 내 손으로 직접 조지겠다.”

“그… 예상한 모양인지, 하인을 시켜 보냈습니다.”

“하인은 어디 있는데?”

“……이미 돌아갔습니다.”

차마 눈앞의 솔디어를 조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보여주면 살해당할 것 같다는 사실을 예감했으면 그렇게 안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이딴 물건을 만드는 것에 진심을 쏟아야 했던 거냐?

나는 눈 앞에 놓인 전신 거울에 온몸을 비춰 보였다.

다른 것들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와이셔츠와 조끼는 거의 정복에 가까웠고, 넥타이는 아예 안 할 것을 예상했는지 만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하필…….

바지가 반반이야?

세로로 반반?

“안 입어! 못 입는다! 이딴 걸 어떻게 입으란 말이냐!!”

“하지만 스승님…….”

“네 성의는 미안하게 됐다. 하지만 이건 도저히 무리다.”

이건 유사 살인 행위다.

명예와 존엄의 살인이며, 나아가 내가 길거리에 나가면 수치로 사망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목숨은 목숨으로 받는다는데, 내가 그 놈 목숨을 받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솔디어는 곤란하다는 듯 대답했다.

“스승님, 일정이 촉박합니다. 이번 부탁도 거의 억지로 한 것이고… 더 이상 새 교복을 맞출 시간이 없습니다. 당장 내일이 두 번째 시험이고, 텔레포트도 예약해 놓았는걸요.”

“몰라! 기성품 써! 난 상관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승님.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다른 사람의 성의는 거절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클수록 거절하기 어렵다고.”

“그, 그랬지. 하지만 고작 교복 한 벌! 까짓 거 돈으로 돌려주마! 나도 수도에만 돌아가면—”

내 궤변이 차마 다 이어지기도 전에, 솔디어는 품에서 영수증을 꺼내어 내게 내밀었다.

수표를 썼다는 기록이었고, 곧 이 옷의 가격이기도 했다.

그런데…….

“……?”

숫자가 좀 이상하다?

0이 하나, 둘, 셋, 넷…….

“일주일 사이에 인플레이션이라도 일어났느냐?”

“그럴 리가요.”

“……그럼 드래곤이라도 기워서 넣었냐?”

“단추는 드워프제, 원단은 엘프제… 아, 바실리스크 가죽을 썼으니 용도 들어가긴 했군요. 나름 용의 아종이니까 말입니다.”

“………….”

진짜 미친 사람은 그 디자이너가 아니라 솔디어였나?

저 돈이면 제도 근처에 작은 성을 하나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다, 황제랑 거래해서 국보 하나를 받아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솔디어는 간절한 표정으로 애원했다.

“성능을 생각해서라도 입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어지간한 강철 갑옷보다도 튼튼할 겁니다. 아니면 스승님! 스승님을 향한… 저의 성의를 보아서라도요. 스승님!!”

“크, 크윽…! 이깟 돈…!!”

이깟… 돈…….

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액수였다.

실베니아가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방을 나간 후, 솔디어는 혼자 남아 숨을 내쉬었다.

오늘 자신은 너무나도 큰 불충을 저질렀다.

스승의 바람을 거절하고,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입히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한 불충도 분명 또다른 충성의 일면이겠지.’

솔디어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제 와서 다른 교복을 구하려 해 봐야 구해지지도 않을 것이고, 저것을 입는 게 수많은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생긴 게 어찌 되었든 간에, 강철 갑옷보다도 튼튼한 것은 분명한 사실.

솔디어는 후회 없는 선택을 했노라고 믿었다.

그는 드레스룸 끄트머리에 있는 벽으로 다가가 말했다.

“나와도 좋소.”

그러나, 그 벽이 천천히 뒤집히며 안쪽에서 사내가 한 명 걸어 나왔다.

미스터 데샤프였다.

“하하, 큰일 날 뻔 했군요. 감춰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대가 좋아서 감춰 준 것이 아니오. 무의미한 피를 흘리는 것이 싫었을 뿐.”

“그나저나 방음이 훌륭하군요. 고함 빼고는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시발’로 시작하는 육두문자만 들어도 반응은 알 수 있었지만 말입니다.”

데샤프는 흐뭇한 미소를 흘리며 짐을 챙겨 나왔다.

오늘도 그는 훌륭하게 세계 평화에 기여했노라 자부했지만, 솔디어는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며 대꾸했다.

“그대는 그녀를 실망시켰소. 디자이너라면 응당 고객을 만족시켜야 했을 터인데. 돈이나 가지고 내 저택에서 꺼지시오.”

“……알겠습니다.”

솔디어는 수표책을 꺼내어 한 장을 데샤프에게 내밀었고, 데샤프는 그것을 받아 조용히 드레스룸의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떠나기 직전— 데샤프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마지막으로 솔디어에게 물었다.

“……그래서 후작,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마음에 들지 않냐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질문을 하는군.”

솔디어는 뒤돌지 않은 채로, 그저 입을 열어 대꾸했다.

“미스터 데샤프.”

“예.”

“당신은 제국 최고의 재단사가 분명하오.”

“그럴 줄 알았습니다. 후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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