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026 규칙과 정의는 결국 쓰기 마련(1)
* * *
26.
다시 하루가 지났다.
출발 직전까지 나는 온 몸을 쥐어짰고—팔굽혀펴기는 스물 두 개로 늘어났다—나는 목욕을 마친 후에 그 빌어먹을 교복과 다시금 마주해야만 했다.
“……….”
겉으로 이렇게 볼 때는 참 멀쩡한 옷이다.
그 사이에 솔디어 녀석이 뭔가 이것저것 더 구해 왔는지, 단검이나 물약 따위를 넣을 수 있는 벨트와 홀스터 등이 딸려 있었다.
저건 내 취향이긴 한데… 바지가 문제란 말이지.
“정말 입어야만 하겠느냐?”
“효율적이지 않습니까, 스승님.”
“……그래, 효율.”
효율과 감정.
그 둘이 싸운다면, 나는 대체로 효율의 편을 들어주는 편이었다.
지금껏 항상 그래왔다.
아무리 끔찍하고 비정한 결단이라 하더라도 ‘효율’이라는 명제 앞에 용서받았으며, 수많은 결정의 행동 원리가 효율 아래 성립했다.
설령 천 명의 병사를 사지로 내몰아야 할지라도, 만 명의 병사를 지킨 채 진군할 수 있다면 그리하는 것이 마땅한 선택이라고 확신하며 살았다.
그 천 명 중에 내가 끼어 있더라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효율을 낳는다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러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지금 이리 외치고 싶었다.
차라리 내 목을 쳐라, 라고…….
“그러면 망토라도 따로 다오. 케이프라도 괜찮으니까, 뭔가 가릴 만한 거라도…….”
나는 마지막 보루라도 지키자는 마음으로 그리 말했지만, 솔디어는 매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안 됩니다. 교복 위에 다른 코트나 망토를 걸치는 것은 학칙 위반입니다.”
“뭐, 뭣?!”
“처음부터 교복을 그리 만들면 가능했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이건 있지 않습니까?”
솔디어는 처음에 교복과 같이 왔던 코트를 내게 건내 주었다.
주머니가 많이 달린 점은 좋지만, 주머니 만들다가 천이 떨어지기라도 했는지 그 기장이 심히 짧은 코트였다.
아니, 이걸 코트라고 불러도 되기는 한가?
단추를 잠가도 엉덩이 위를 겨우 가리는 정도였다.
당연히, 다리를 가리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 그리고 이것… 가지고 계십시오.”
“이건?”
솔디어가 내민 것은 빛나는 창이 새겨진 문양의 인정이었다.
대충 모양새를 보아하니… 어딘가에 달 수 있는 작은 뱃지 정도의 용도로 보였다.
“1차 시험 합격의 증표입니다. 이게 있어야 2차 시험에 출입할 수 있으니 잃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는데?”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지요? 많이 번거롭게 될 겁니다. 정말로, 많이.”
솔디어가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는 것은, 후작인 지금으로서도 곤란한 일이 생긴다는 뜻이리라.
뭐, 안 잃어버리면 그만이니 별로 상관은 없다.
복장이 문제여서 그렇지.
“곧 시간입니다. 게이트로 가시지요. 늦으면 안 되니까요.”
“……망할.”
텔레포트 게이트의 운영은 마탑의 주관이어서, 아무리 제국 귀족이라고 한들 시간을 어기면 융통성 없이 예약이 취소된다.
나는 결국 이 차림으로 거리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1차 시험에 합격하고, 2차 시험에 응시하는 모든 학생들은 교복의 착용이 의무라는 규칙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솔디어가 말했었다.
문득, 나는 솔디어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솔디어, 그런 학칙… 정말 있는 게 맞는 거겠지?”
“제자가 스승께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믿겠다.”
솔디어는 명예를 아는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내게 거짓말을 하지는 않으리라…….
“흐음.”
솔디어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아마 지금쯤이라면, 자신의 아들놈과 함께 떠난 스승님께서 텔레포트를 타고 다음 도시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 이후로 아들 녀석의 교육을 잘 해 놓았으니 염려는 없다만…….
역시, 끝끝내 스승의 말을 부정한 것은 배알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어찌 이런 불충이 이딴 말인가.’
뭐? 외투나 망토 착용 금지?
당연히 그딴 규칙은 없다.
하지만, 제자로서 스승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
‘그러니까——'
그는 자신의 신뢰하는 시종장을 불렀다.
“로메인!”
“예, 주인님.”
“아카데미 부학장과 약속을 잡아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생활지도부 담당도 누군지 알아오고… 그가 좋아할 만한 물건 리스트를 내 집무실로 가져오도록.”
“약속은 어떤 용건으로 할까요?”
“학생들의 생활 태도와 규칙 개선에 대한 건이라고 말하면 될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잡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규칙이 없으니까 거짓말이라고?
괜찮다.
없으면 이제부터 만들면 되지 않던가.
진실을 확인하기 전에 규칙이 생기면, 그건 진실이 되는 법이었다.
언제나 진실은 주관적이며, 주관적인 것은 항상 변동하기 마련.
그리 생각하니 전혀 꺼려질 것이 없었다.
결국 자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역시, 기사의 명예는 지키라고 있는 법이지.”
“이 책 냄새도 오랜만이군….”
텔레포트 직후의 끔찍한 공간 멀미의 감각도, 이 오래된 책 냄새를 맡으니 곧 어디론가 훌훌 떠나 버리는 것만 같았다.
‘학술의 도시 레비리오.’
장장 십 년 만에 방문하는 도시였지만, 이곳은 여전히 바뀐 것이 별로 없었다.
시대가 발전한다고 해도 학문은 변하지 않으며, 그 이상으로 쉬이 변하지 않는 노친네들의 성향을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깊게 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자, 점점 위로 향하는 길을 떠라 오래된 양식의 건물들이 아름답게 조화하고 있는 도시의 광경이 보였다.
천천히 차오르는 여명의 빛을 반사하여 빛나는 푸르고 새하얀 색의 건물들.
그리고 그 꼭대기에는 동아카데미로 불리우는 아르칸티아 아카데미의 붉은 깃발이 휘날렸다.
“영애, 마법진에서 나와 주십시오. 다음 마법이 발동될 겁니다.”
“…아, 그러지.”
나는 서둘러 이동하기를 재촉하는 마탑 소속 마법사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있는 로렌스에게로 다가갔다.
수행원은 다른 누구도 따라오지 않았다.
오직 로렌스와 나 뿐이었다.
녀석은 능숙하게 내 짐까지 도맡아 어께에 짊어지고 있었다.
짐이라고 해 봤자 여행비가 든 지갑과 여벌의 교복—당연하지만 빌어먹게도 똑같은 물건이다—정도였지만 말이다.
나는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고 있는 녀석의 옆으로 다가가 옆구리를 찔렀다.
“윽. 하지 마십쇼.”
“사용인이 없는 생활은 익숙한가?”
“평소에도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는 않습니다. 그리 가르치셨으니까요.”
“훌륭하군. 시험 장소도 알고 있나?”
“물론이지요.”
“좋네. 안내해라.”
로렌스는 내게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은 채 앞장서서 길을 걸었다.
주변에는 각자 생김새는 달랐지만, 확실히 교복으로 보이는 옷을 입은 아이들이 꽤 많았다.
빈도로 따져도… 다섯 명 중 한 명 정도일까.
‘저 녀석들 모두가 경쟁하는 건가.’
내 시선을 눈치챈 건지, 로렌스가 문즉 입을 열었다.
“앞으로의 일정은… 오늘 발표되어 이틀동안 치뤄지는 2차 시험, 그리고 최종 합격자를 가림과 동시에 기초적인 분류를 하는 반 배정 시험으로 나뉩니다.”
“합격자와 동시에 반 배정이라고?”
“최종 시험 같은 경우는 천 명이 동시에 시험을 보고, 이백 명은 남고, 팔백 명은 그대로 집으로 돌려보낸다고 하더군요. 결과에 따라 시작점이 갈리는 형식입니다.”
“웃기는 놈들이군. 그럼 교복은 대체 왜 미리 맞추는거냐?”
“명목상으로는 지역 경제 살리기… 같은 느낌입니다만, 사실 진짜 이유는 그냥 돈 때문이지요. 교복 한 벌을 만들 때마다 아카데미에도 일정 비율이 떼어 지거든요.”
황실 지원으로 운영되는 아카데미이니 돈이 궁하지는 않을 텐데…….
대체 뭘 어떻게 얼마나 해쳐먹고 있길래 이렇게까지 돈을 뽑아내는 건지.
납득하기는 힘들었지만, 어찌되었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마 아카데미에는 엘로힘이 있다.
내 옛 파티 동료들 중 하나였으며, 세계 제일의 연금술사인 그 날백수 새끼가 말이다.
녀석에게 물어보면 지금 당장 내가 갖고 있는 질문들은 대부분 대답해 줄 수 있으리라.
“그렇군. 이해했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은 다른 게 더 궁금했다.
나는 로렌스의 앞으로 돌아가 녀석의 앞에 멈춰섰다.
그러자, 로렌스는 고개를 홱 돌리며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왜 그렇게 피하냐?”
“……눈을 둘 곳이 없어서요.”
“뭐?”
“너무… 너무 파렴치하지 않습니까.”
“나도 좋아서 입는 게 아니다. 이 씹어먹을 녀석아. 나도 충분히 알고 있으니 상기시키지 마라!!”
그러잖아도 열심히, 정말 전력을 다해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단 말이다.
나는 검의 경지에 올랐다는 게 항상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지금 이 순간 통감하고 있었다.
본능의 단련이라는 것은 직감의 단련, 육감의 단련이다.
그건 신체 능력과는 상관없이 영혼에 새겨지는 일종의 기억이며, 경험인데…….
그러니까, 일반적인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느끼고 볼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가령— 시선 같은 것들을.
‘너도 손으로 막는 척하면서 다 보고 있잖냐….’
손가락 사이로 내 다리는 볼 여력이 있으면서, 내 얼굴은 볼 용기가 없는 모양이다.
뭐, 거리에 있는 다른 놈들이 내 다리를 힐끗거리며 쳐다보고 가는 것 보다야 이 놈 반응이 귀여우니 봐줄 만은 하다만.
……그래도 이 놈은 앞으로 내가 착실히 부려먹어야 하는데, 계속 이 모양으로 쑥맥이면 문제가 좀 있다.
“장난질할 시간 없으니까 그냥 봐라. 안 닳아. 기분이 나빠서 그렇지.”
“자, 잠시만요! 영애! 아악!! 어떻게 그럽니까!”
“바른생활 청소년 새끼…! 그냥 보라고!!”
나는 온 힘을 다해 눈을 가리려 하는 녀석의 팔을 때려고 잡아당겼다.
로렌스는 이제 거의 절규하며 눈을 손으로 덮어 버렸고, 높이 차이도 있는 탓에 차마 내 힘으로는 떼어낼 수가 없다.
“이 개자식 이거!”
“안 됩니다! 정조와 정절은 어디 갔습니까 영애!”
“그딴 거 처음부터 안 키웠다고!”
“이제부터라도 키우십시오오오!!”
그러나— 그러던 와중.
—파앗!
“!!”
골목길 한켠에서 튀어나온 괴한 한 명이, 로렌스가 메고 있던 짐을 순식간에 빼앗아 도망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