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027 규칙과 정의는 결국 쓰기 마련(2)
* * *
27.
“……?!”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괴한은 로렌스에게 접근하여 단검으로 배낭의끈을 끊어 버린 뒤, 그것을 그대로 빼앗아 내달렸다.
그 행동 자체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물 흐르듯 이어져서, 로렌스는 가방을 빼앗았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실베니아의 얼굴에는 도리어 미소가 걸쳐졌다.
“재밌네. 저 새끼 잡아.”
“예? 예!!”
얼타는 것도 잠시 뿐이다.
로렌스는 곧장 뒤돌아 소매치기를 따라 달렸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떨어진 거리는 대략 5미터 남짓.
몇 초 지나지 않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거리였고, 실제로 그들 중 누구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이 도시의 누구라도 자신이 같은 일을 당한다면 그리 생각할 것이다.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고 이 리베리아에 모인 청년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실력에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탁탁탁탁탁!
몇 초가 지나고, 다시 몇 초가 지나 수십 미터를 내달린다.
순식간에 거리의 풍경이 시야의 겉을 핥듯이 스쳐 지나감에도 소매치기와 로렌스 사이의 거리는 줄어들 줄을 몰랐다.
소매치기의 속도가 기이할 정도로 빨랐다.
저 정도면 거의 준 기사의 수준.
그래, 아카데미의 입학을 노려 보아도 꿇리지 않을 것이 분명할 테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도둑입니다! 도와주십시오!”
로렌스가 그리도 목청을 울리며 내달리고 있음에도 주변의 다른 누구도 그럴싸한 반응을 내비치지 않았다.
소매치기를 막으려 길을 막아서지도 않았고, 모종의 마법이나 기술을 사용하여 길을 막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방관할 뿐.
“……?”
뭐지?
로렌스는 기시감을 느꼈다.
‘건물을 십수 개를 지나치고 수백 미터를 내달릴 동안 그 누구도 도와주려 움직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거나 난처하다는 기색도 없이, 그저 ‘당연한’ 일을 응시하듯이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젠장! 어째서 아무도 돕지 않는 것이오!”
로렌스가 악에 받쳐 목청을 높였지만 그들의 반응은 여전했다.
듣지 못하는 것도,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분히 의도적인 무시였다.
나는 거리를 스쳐지나가며 다른 녀석들의 얼굴을 살폈다.
이 거리의 본래 주민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교복을 입은 녀석들은 의도적으로 내 시선을 피하고 있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저 ‘소매치기’를 보려 하지 않는다.
‘……이상한데.’
한창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세상에서 지가 제일 잘난 줄 아는 나이대의 아이들일 테다.
그리고 그 1차 시험을 넘어 이곳까지 왔으니, 당연히 응당 실력도 있기 마련일 테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멋들어진 찬스를 일부러 기피한다라?
‘나라면 좋다고 달려가서 저놈의 머리에 드롭킥을 꽂았을 것 같은데.’
당연하다.
‘영웅’이 되는 기분이라는 것은 저런 아이들에게 마약과도 같아서, 별것도 아닌 일에 무리하고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달려들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이런 말이 있지 않던가.
‘멍청하면 용감하다’ 라고.
어린아이의 만용이 딱 그 짝이었다.
허나—
저 태도는 마치….
항상 있는, ‘일상적인 일’을 좌시하는 것만 같지 않은가.
정말 별것 아닌 일상적인 트러블을 보는 것 같이 말이다.
그리고 그 트러블이 자신에게 향하지만 않으면 되는, 그런 종류의 좌시.
“젠장! 어째서 아무도 돕지 않는 것이오!”
로렌스가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지르며 소매치기의 뒤를 맹렬하게 쫒기 시작한 순간, 소매치기 녀석은 더욱 빠르게 가속하더니, 우리의 시야를 벗어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학술의 도시는 역사가 깊은 도시다.
계획적으로 개발되고 세워진 건물들이 아니며, 그에 따라 얽히고 섥힌 건물들이 자연스럽게 골목길을 형성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골목들이 어지럽게 교차하여 있는 이곳의 특성상 저기서 한 번 길이 엇갈리면 잡을 방법이 없다.
로렌스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당장 녀석을 뒤쫓으려 했다.
놓치면 잡을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가 주저 없이 골목으로 발을 들이려던 찰나— 나는 로렌스를 멈춰 세웠다.
“로렌스, 멈춰 봐라.”
“예, 예?!”
“들어가지 마. 거기서 멈춰.”
“아니, 하지만…….”
로렌스는 순간 표정을 구기며 무어라 대꾸하려 했다.
그러나 곧 골목과 내 표정을 한 번 돌아보더니, 결국은 이를 갈며 멈춰섰다.
“젠장……!!”
저 표정.
이미 놓쳐서 안 보인다는 소리다.
로렌스가 언성을 높였다.
“대체 무슨 생각 입……!”
“쉿. 조용히. 뭔가 이상하지 않냐?”
“……?”
“이 도시, 이 시점에… 응시생들에게 소매치기를 할 만한 멍청이가 얼마나 있을 것 같냐?”
“……무슨 말입니까?”
“고개 돌리지 마. 당장 튀어 들어갈 것처럼 자세 잡고 있어. 경계만 하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여.”
어지간히 실력에 자신이 있어서?
아니.
속도를 보면 뭐 그럴싸 하긴 하지만, 그럴 거면 대도시를 가서 부자들을 털어먹지 고작 학생들의 가방을 들고 튀지는 않는다.
게다가—
나는 골목 안쪽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 안에서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는 작은 기척을 응시했다.
“어떤 도둑놈의 새끼가 나 좀 잡아 달라고 기다리고 있겠냐?”
“기다린다고요?”
로렌스가 내게 물었지만 친절하게 설명하고 대답해 줄 시간은 없다.
대신 나는 다른 단서를 제시했다.
“목소리 낮춰. 고개 돌리지 말고, 눈도 돌리지 마. 주변시로 봐라.”
“내 뒤, 오른쪽 위 지붕 아래, 2층에 열려 있는 창문 보이냐?”
“예. 여자가 보입니다.”
“방금까지 우릴 감시중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마법사야.”
오고 가면서 수많은 시선들이 나를 향하고, 또 지나치며 없어져 갔다.
전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만큼은 계속해서 집요할 정도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위치가 계속해서 바뀌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단거리 텔레포트.
‘상당히 유능한 마법사다.’
나는 슬쩍 위를 올려다보았다.
골목길의 한 면을 막고 있는 3층 건물.
나 혼자서는 올라갈 수 없지만…….
“로렌스, 이 건물 위로 나를 던질 수 있냐?”
“타이밍 맞춰서 도약하신다면, 가능할 겁니다.”
“좋아, 그럼 준비하고… 자.”
나는 가슴 옆의 홀더에서 단검 하나를 뽑아 로렌스의 손에 쥐여 주었다.
내 몸으로 가려져 있어서 저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각도였다.
“저 뒤의 년, 던져서 제압할 수 있지?”
“……이걸 던지면 죽일지도 모르는데요.”
“남을 훔쳐보는 인간은 응징 당할 각오를 한 인간이니 괜찮다. 죽이기 싫으면 힘 조절을 하던가, 손잡이 부분으로 맞춰.”
“그게 됩니까?”
“그런 걸 누가 못하냐? 병신도 아니고.”
“……….”
뭐 그런 멍청한 표정을 지어?
솔디어도 두어 번 시키면 잘만 하드만.
“날 던지고, 바로 돌아서 저 년을 기절시켜. 할 수 있지?”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단검을 쥔 로렌스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하나,
둘,
셋.
“지금!”
로렌스가 내 허리를 잡아 허공으로 던져 올림과 동시에, 나는 전신의 마나를 끌어올려 다리에 집중시켰다.
허공을 밟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아직 내 몸은 그런 기술을 감당할 수 없다.
나는 그대로 난간의 창틀을 한 번 더 밟아 뛰어올랐다.
시간은 소모되지만 지붕에는 확실히 내려앉았고, 골목 뒤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를 좀도둑 새끼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대체 뭐 하는 새끼들이길래 마법사까지 동원하면서 좀도둑질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대체 뭘 하고 싶어서, 도망도 안 치고 저기서 저러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뭐면 어떤가?
원래 사람 간의 관계는 차차 알아가게 되는 법이다.
지금 중요한 건, 저 놈이 제 발로 골목길로 걸어 들어갔다는 것.
그리고—
내가 저놈을 팰 명분이 있다는 것이다.
“잡았다.”
“?!”
나는 지붕에서 뛰어올라 골목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매치기 놈을 덮쳤다.
계속 골목에서 우리가 튀어나올 것을 대기하고 있었는지 몸은 뒤로 쏠려 있었고, 위에서 낙하하는 나를 막을 재간은 없었다.
팔을 교차하여 한 번쯤 막아보려 자세를 취하지만, 글쎄.
나는 다리에 마나를 집중해서 그대로 내리찍었다.
—콰앙!
가드가 그대로 무너지고, 넘어진 놈의 머리 옆의 바닥이 그대로 우그러뜨려진다.
힘이 모자랐다.
머리를 으깨 버리려고 했는데.
그래도 상관없다.
포지션은 완벽하니 그대로 다시 한번 내려찍으면 그뿐이었다.
다시 다리를 내리찍으려던 찰나, 소매치기범이 목청을 높였다.
“자, 잠깐만! 항복!”
“도둑 새끼가 항복이 어딨어?”
“잠깐만!! 진정해 봐라!! 너, 너는 합격이다!!”
“알아.”
“뭣?”
무슨 그런 병신 같은 표정을 짓는 거냐.
당연한 것 아닌가.
“뭔가 꿍꿍이가 있었겠지. 환경이 대놓고 꾸며진 걸로 봐서는 며칠쯤 됐나? 어쩌면 입학시험의 일부일 수도 있겠군.”
모든 환경이 너무 인위적이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계속 쫓아오는 감시자와, 마치 자기를 쫓아오라는 듯이 속도를 조절하는 좀도둑, 활약할 상황을 두고도 약속이라도 한 듯 무시하는 학생들.
마치 ‘도와줘 봤자 의미가 없다’라는 그 행동 자체가, 너무나도 의심스러웠다.
소매치기범은 미간을 찌푸리며 바둥거렸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머리가 짓밟힐 각도였기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 그걸 어떻게……. 아니, 알면 비켜라! 너는 합격이라니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
“쓸 만한 정보를 불어. 뭐든지.”
“무슨 정보를…….”
무슨 정보냐니.
멍청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그걸 내가 아냐? 네가 알아서 생각해야지. 맞다 보면 기억이 날 거야. 걱정 마라.”
“자, 잠깐만.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냐! 이건 다 시험일 뿐—”
“네가 그걸 모르는 게 제일 문제야.”
그래도 걱정 마라.
맞다 보면 생각 날 테니까.
학술도시 레비리오는 거대한 산을 깎아 도시를 세운 형태를 띈다.
중앙에서부터 천천히, 그리고 바깥으로 갈수록 새 건물들이 감싸며 내려가는 형태.
그것은 마치 뱀이 똬리를 튼 모습과도 같았고, 하늘에서 보노라면 절벽에 피어난 장미와도 같은 모양새였다.
정상으로 갈수록 오래되고 위대한 지식과 식견을 모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레비리오는, 당연히 건물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거처 또한 그러한 규칙에 따라 분포했다.
아카데미의 신입생 기숙사와 그들의 교실은 아래쪽에.
더 높은 계급과 학년의 교실은 위쪽에.
그리고 그 더욱 위에는 교수들의 연구실과 회의실이 있는 형식으로 말이다.
대체로 교수들은 수업 시간 외에는 자신의 연구에 몰두하거나 개인적인 정비 시간을 갖고는 하지만— 지금 이 시기, 입학 시즌은 누구 할 것 없이 입학시험에 관련한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태였다.
아카데미의 정상에 위치한 교수들의 대회의실.
지금 그들의 의제는 두 번째 입학 시험에 관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두 번째 시험을 시작하기 전 만들어 둔 약간의 ‘거름망’에 대한 의제였다.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하지는 않겠소?”
“저는 괜찮다 봅니다. 이번 년도 아이들은 지나치게 자존심이 강해요. 조금 꺾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1차 시험에서 의도적으로 응시생을 공격한 아이도 있다더군요!”
“아아, 그랬지요. 이름이 분명…….”
교수 중 하나가 서류를 뒤적여 화제의 문제아에 대한 서류를 찾아냈다.
입학원서는 수만 장에 이르지만, 이 책상에 오르는 서류는 그것들 중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즉, 이곳에 있는 서류의 아이들은 전부 아주아주 우수한 우등생.
혹은— 극한의 문제아라는 뜻이었다.
“실베니아… 로군요.”
“성은 없습니까?”
“서류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복사화를 보니 평민의 차림새는 아닌데요.”
생김새로 평민과 귀족을 나누는 것은 아주 구차하고 멍청하기 그지없는 행위이라는 것을 그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실베니아의 서류를 본 교수들은 모두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달빛 같은 은발과, 황금과 자색이 뒤섞인 여명의 눈동자.
그 찬연한 미의 조각이 평민의 핏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면, 그들 중 누구라 하더라도 악질적인 농담으로 치부할 것이다.
차라리, 서제국 포이보스의 황족이 위장 입학을 했다고 말한다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라고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을 정도였다.
누군가는 이렇게까지 생각하리라.
저 아이가 귀족이 아니라면, 내가 입양해서라도 귀족으로 만들어 주겠노라고.
문득, 마법학과에 속한 교수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마법사도 아니고 기사 시험을 쳤으니, 마법사의 의례를 행한 것은 아닐 테요.”
“하지만 평민 출신이 그 정도로 대담하게 시험을 치뤘다고요? 아니, 게다가 열 다섯 살 여자아이가 아닙니까. 농이 심합니다.”
“……게다가 베일렌은 서쪽 실레온 산맥과 맞닿아 있습니다. 당연히 수인들도 지원했을 테지요.”
“그럼 그 아이가 수인들까지 압도하고 시험을 치뤘다는 의미입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귀족의 자제라도 무리일 텐데요! 그래요. 베일렌이라면— 베르트랑! 설령 후작의 아들이라도 아직 그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을 겁니다!”
“그것은 동의하는 바입니다만…….”
방금까지만 해도 2차 시험의 형평성에 대해 논의하던 이들은, 갑작스레 실베니아라는 소녀의 정체에 대해 물어뜯기 시작했다.
토의도, 논의도 아니였다.
그 무엇을 제시해도 말이 되지 않는 농담 같았기 때문에, 그럴싸한 갑론을박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그 시험과 소녀에 대한 자세한 보고라도 있었더라면 이 수수께끼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었겠지만, 그곳의 시험관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던 것인지 간략한 요약 외에는 그 어떤 특이사항도 보내오지 않았더랬다.
이 정도의 전적이라면… 개인 면담을 해서라도 좀 더 정보를 보낼 만한데도 말이다.
토론이 격해지자, 교수들 중 하나가 손뼉을 치며 제지했다.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지금은 ‘거름망’에 대한 불만이 얼마나 클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학생들이 대상인 것이 아니라, 특정 몇몇에게만 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냥 지들 실력이 모자란 것으로 퉁치면 안 되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이기는 사례가 하나라도 나오면 모르겠지만, 도둑 역할을 맡은 아이들은 이미 숙련된 팀을 이룬 재학생입니다.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지요.”
“그것도 그렇긴 하군.”
아카데미의 수준이 높다는 것은 곧 실력 향상의 폭이 크다는 것.
그리고 동아카데미는 대륙 제일의 교육기관이라 자부했으니, 재학생에 대한 자부도 그 어디보다도 컸다.
감히 입학 지망생 따위가 재학생을 이길 수 있으리라는 비전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