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028 규칙과 정의는 결국 쓰기 마련(3)
* * *
28.
—탁탁탁탁탁!
재빠른 발소리가 거리에 크게 울려퍼졌다.
사람을 스치고, 건물을 스치며, 한순간 순간이 지날 때마다 거리의 풍경이 바뀌어갔다.
[카드론, 준비해. 곧 포인트야.]
[알고 있다고. 달릴 때 말 걸지 마.]
카드론은 신경질적으로 음성 전송에 대꾸하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이번 ‘대상’… 그러니까, 운 없게도 교수들에게 찍힌 응시자들은 아직 열심히 자신을 쫓아오고 있었다.
‘꽤 싹수가 있는 놈들이네.’
굳이 따라오게끔 하려고 속도를 조절할 필요는 없을 듯 했다.
더욱 빨리 쫓아온다면 속도를 높일 필요는 있겠지만, 아직 그런 응시자는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그가 ‘시두스’— 아카데미의 하급반에 속한다고 한들 이미 2년이나 아카데미에서 수학하며 지내온 몸이었다.
비록 가슴에 달린 것이 동색 여우의 문장이라고는 해도, 아직 아무런 문장도 차지 못한 응시생들에게 꿇릴 정도의 수련을 쌓아왔겠는가.
‘어림도 없지.’
뭐, 가끔 미친 듯이 특출난 신입생들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그런 녀석이라면 교수들이 어련히 더 높은 학생을 배정해 주었을 것이다.
은색 늑대나 황금 사자… ‘디아나’ 나 ‘솔론’ 같은 계급의 녀석들을.
하지만 자신, 동색 여우의 계급에게 할당되었으니 녀석들은 그닥 훌륭한 기대주는 아닐 것이었다.
아마도 태도가 건방지거나 하여 버릇 좀 들이라고 따끔한 맛을 보여주는 것일 테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지 않았는가?
고작해야 열댓 살 정도의 여자아이와 그녀를 지키듯 서있는 샌님이라니.
가방을 훔치는 것조차 빠르게 반응하지 못했으니, 그 실력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뭐,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그 여자아이의 교복에 눈길이 조금…….
아니, 솔직히 자백하자면 ‘아주 많이’ 가기는 했지만, 그는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사내였다.
[포인트야. 들어가.]
[알고 있다니까.]
카드론은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따돌릴 수 있는 복잡한 골목이지만, 이곳에서 바로 떨쳐 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녀석들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쫓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막다른 길, 다 몰아넣었다는 녀석들의 희망찬 얼굴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준비된, 파트너 마법사의 텔레포트로 빠져나간다.
‘누가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악질적이야. 자존심이고 뭐고 남겠어?’
아마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살아온 아이들은 뼈저린 실패감을 맛볼 것이며, 동시에 굴욕과 패배를 삼켜야만 할 것이다.
동시에 공포도 차오르리라.
‘증표’가 없다면 두 번째 시험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런 허울 좋은 거짓말을 심어 둔 것은, 바로 이 짓거리만을 위해서였으니까.
‘진짜 악질적이란 말이야. 증표 같은 거 없어도 시험은 칠 수 있는데.’
뭐, 없다면 조금의 불이익은 있겠지만… 교수들의 계획은 그 불이익 때문이 아니었다.
시험 개시 직전까지의 ‘이대로 떨어지면 어떡하지’라고 떨게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이게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발버둥치다 결국 ‘자신은 무엇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뭐 그것으로 마음이 꺾여 유능한 인재가 떠나 버리면 어쩌나 싶은, 그런 마음도 없지는 않았지만….
‘내 알 바야?’
카드론에게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는 그저 교수들이 시키는 일을 하고, 그에 상응하는 상점을 얻어 은빛 늑대, ‘디아나’로 진급하고 싶을 뿐이었으니까.
—탁탁탁탁!
그래, 골목 안쪽으로 들어오는 멍청이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코너를 꺾는 순간 한 번 걷어차 넘어뜨려 주고, 이제 다시 도망가면 될 것이었다.
그리고, 콰앙!
“크억!”
“큭큭, 불쌍한 녀석들. 잘 쫓아와 보라고.”
“거, 거기 서라!”
꼴사납게 넘어진 남녀는 흙먼지에 뒹굴며 새하연 교복을 검게 물들였다.
꼴에 기사 응시생이라고, 어찌어찌 금방 일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카드론과 그들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저 비참하게, 온 힘을 다해 옷깃이라도 잡으려 쫓아올 뿐…….
“큭큭, 크큭, 흐흐흐…….”
응시생 놈들에게는 불쌍하게 됐지만, 결국 이 카드론의 상점이 될 뿐일 것이다…….
“영애, 이 녀석 웃고 있는데요.”
“냅둬.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나 보지.”
로렌스는 도둑질하다 잡혀 쓰러진 좀도둑이 저렇듯 웃는 것이 영 꺼림칙했지만, 실베니아가 그리 말하니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며칠 전, 실베니아에게 폭언을 하고 방을 나가 버린 이후— 솔디어가 그를 따로 불러 ‘나를 따르듯이 그녀를 따라라’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명령이라고 하기엔 뭣한 조언이었다.
강압적이지도 폭력적이지도 않았으며, 그저 정말로 그게 너한테 도움이 될 거라는 걱정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여전히 그녀의 명예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지금은 명명백백하게 도둑이 잘못한 상황이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그 잠깐 사이에 사람이 저 정도로 망가지나 싶기는 했지만, 죗값을 치른 것이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 뭐 고문이라도 했겠어?’
로렌스가 그리 고개를 끄덕거릴 즈음, 실베니아가 몸을 돌려 그에게 물었다.
“마법사는?”
“기절시키지는 못했지만, 무작위 공간이동 마법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 말하면서 로렌스는 아까 그녀가 건네었던 단검을 다시 돌려주었다.
차마 이것을 살아있는 사람에게 던질 수는 없었다.
아무리 마법사라지만, 여인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뭐, 그 정도면 잘 했다. 어차피 뜯을 건 다 뜯어냈어.”
“뜯어요? 뭘…….”
“정보. 그리고 뭐 그 외 소소하게 이것저것.”
실베니아는 대충 얼버무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딱히 깊게 묻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로렌스는 그저 고개를 주억일 뿐이었다.
“뭐 어쨌든 짐도 찾았고…….”
실베니아가 쓰러진 도둑의 옆에 떨어진 배낭에서 먼지를 털어내자, 로렌스는 그것을 열어 뒤적이더니 손에 잡히는 두 개의 물체를 잡아 꺼내었다.
도금 된 판에 날개 달린 창의 표식이 새겨진 증표였다.
“증표도 있군요. 혹시 모르니 이제부터는 각자 몸에 지니죠.”
“나는 별로 상관없는데.”
“돈이야 어찌 되겠지만, 이게 사라지면 꽤 성가시게 되지 않겠습니까.”
실베니아는 별다른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실베니아든 로렌스든, 굳이 이런 추격전을 몇 번이고 다시 하는 것은 사양이었다.
지정된 시각까지 시험 안내 장소에 도착해야만 했고, 이 짓을 몇 번만 더 반복하면 시험이 시작하기도 전에 피곤에 찌들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문득, 그녀의 기묘한 행동이 로렌스의 시야에 스쳤다.
“영애, 방금 뒷주머니에도 뭔가 넣지 않았습니까?”
“신경 쓰지 마. 별거 아니야.”
시험 안내 장소랍시고 도착한 그곳은, 아카데미의 정문 앞에 위치한 거대한 광장이었다.
중앙에는 분수가 있고, 마치 황실 만큼이나 거대한 수십 미터 크기의 아치가 있는, 장엄하기까지 한 장관의 광장이다.
하지만 그 광장을 가득 채운 판잣집들이 그 경관을 완벽하게 망쳐 놓고 있었다.
아니, 아니다.
저걸 판잣집이라고 해도 되나?
‘좀 기묘하긴 한데…….’
대충 급조한 것 같이 나열된 수십 개의 나무 집들.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모양새가— 판잣집이라고 하기에도 창피한 물건들이었다.
판잣집은 그래도 나름 주거의 역할을 하는 ‘집’이다.
몇 년 정도는 그래도 튼튼한 집이란 말이다.
그런데 저건, 딱 오늘만 쓰고 말 것 처럼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아니, 정말로 오늘만 쓰는 건가.’
하긴, 이 광장에 돈을 얼마를 쳐발랐을 지 상상도 되지 않는데, 이런 흉물들로 경관을 방해하는 것은 윗대가리들도 바라는 바가 아닐 테다.
로렌스와 나는 그 중앙으로 다가가, 안내소처럼 보이는 곳에 증표를 내밀었다.
그곳에 서 있던 여인은 쌓여 있는 차트를 몇 개 넘겨 얼굴과 대조해 보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로렌스 베르트랑, 그리고 실베니아. 확인되었습니다.”
그녀는 증표와 함께 숫자가 쓰여진 작은 나무 푯말을 우리에게 돌려 주었다.
“저는 37이군요. 영애는…….”
“나는 63이다.”
이 푯말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안내원의 설명이 친절하게 이어졌다.
“각자 주어진 방에서 대기하세요. 시험이 시작되면 일괄적으로 통보가 이뤄질 겁니다.”
“시험은 언제 시작되는 겁니까?”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준비는…….”
“항상 준비되어 있는 게 기사의 자세겠지요. 마법사라면 더욱 당연하구요.”
로렌스는 결국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섰다.
뭐, 저렇게 정론으로 말하면 나라도 할 말이 없다.
마법사는 또다른 이명으로 불리길 ‘준비하는 자’이며, 기사에게 있어 전투란 항상 준비한 뒤에 찾아오는 손님이 아니니까 말이다.
…결국에는 언제 시험 칠 지 모르니까 긴장 타고 있어라.
그런 소리겠다만.
로렌스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방도 먼 것 같네요. 저는 이쪽입니다.”
녀석이 가리킨 것은 내가 향해야 하는 곳의 반대쪽이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판잣집들의 입구에 숫자가 쓰인 것을 보았으니, 대충 규칙으로 생각하면 우리 둘의 판잣집은 정 반대편이었다.
‘짐꾼이 사라지는 건 좀 아쉬운데…….’
잠시 후, 나는 배낭을 풀려고 하는 로렌스를 제지하며 녀석을 일으켜 세웠다.
“그냥 네가 다 가져 가라. 귀찮구나.”
“예? 영애 짐은 어떡하구요.”
“어차피 둘 다 붙을 텐데 무슨 상관이야. 그냥 네가 갖고 있어.”
“하지만…….”
“왜, 떨어질 것 같아?”
우스운 질문이다.
나도 대답을 알고, 녀석도 흥분하여 대꾸할 만큼 너무 뻔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뻔한 질문’만큼, 상대방에게 원하는 대답을 끌어낼 수 있는 수단도 많지 않다.
로렌스는 가슴을 치며 호언장담했다.
“그럴 리가요! 베르트랑의 이름에 맹세코,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러면 이따가 보자고.”
로렌스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실력을 한 번 봐서… 라기보다는, 아마 솔디어가 모종의 말을 한 번 해 두었을 것이다.
그냥 닥치고 따르라고.
‘어른들 말만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오고 빵이 나오는데, 아무렴 그래야지.’
참 현명한 판단이다.
역시 옛 성현들 말씀이 틀린 것 하나 없다.
그리고 나는 나름 옛날 사람이니, 내 말도 하나 틀린 것 없다는 뜻이 되지 않겠는가?
“좋아, 그러면…….”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판잣집의 크기가 제각각 이긴 하지만, 그 숫자가 결코 백은 넘지 않을 듯 보였다.
하지만 응시자의 수는 못해도 천 명.
못해도 몇 명씩 짝을 지어 방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일단 임시 룸메이트 얼굴이나 보러 가 볼까.’
나는 우선은 가볍게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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