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037 보험 사기의 모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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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그런데,내기 종목을 듣지도 않고 그리 말해도 괜찮겠나?”
“뭐 어떻습니까?지체 높으신‘교관님^^’께서 설마 창 들고 응시생과 드잡이질 할 것도 아닐 텐데요.”
“그건…….”
“그렇지 않습니까?”
실베니아의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내뱉는 그 한마디에 질레타는 말문이 막혔다.
당연히 그 경우도 생각하고 있었지만,저리 말하면 할 말이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저리 말하는데‘아닌데?나랑 싸울 건데?’하면서 유치하게 나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 질레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저 '교관님'이라는 단어에 차마 말로 표현 못할 것 같은 악의가 느껴졌지만, 아마도 기분탓이리라.
“……물론 그렇지.”
“그럼 뭐가 문제겠습니까?”
“하,자신만만하군 그래.”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건방지다.실로 건방지다.
그것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질레타는 더는 흥분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했다. 바람대로 되었으니까.
그녀를 시험하고, 잘 된다면 완벽한 명분 하에 아카데미에서 쫓아낼 기회를 얻었으니까!
‘그래.아무래도 상관없지.’
질레타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어차피 뭘 어떻게 하든 간에,내기의 내용은 자신이 정한다.
그리고 당연히 자신이 질 만한 것으로 정하지는 않을 테다.
운이나 요행이 개입될 요소가 없는 시련이라면—무엇이든 간에 자신이 질 이유가 없다.
‘애초에 이것의 목적은 저 아이의 실력을 보고자 하는 것이야…말려드는 것은 끝이다.’
더하여,기회가 된다면 이 건방진 아이에게 패배감이라는 것을 한 번 각인해주고 싶었다.
‘그렇다면,어떤 내기가 좋을까.'
“하지만!”
그러나 질레타가 무어라 생각을 시작하기도 전에—실베니아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솔직히 교관 된 입장으로서 신입생도 아니고 응시생을 공격하기도 뭣하실 테죠?저야 상관없습니다만,온갖 구설수가 떠돌 게 뻔하니까 말입니다.그렇죠?”
“뭐?아니.그건…….”
“생각 좀 해 보세요.베르트랑 후작님이 가만 있겠습니까?교관님이 직접 저를 후려치는 모습을 저 아이들 전부가 볼 텐데요?”
실베니아는 자신의 등 뒤,그리고 주변의 아이들을 가리켰다.
이 안내소 주변에 모여든 아이들은 전체에 비하면 극히 일부였으나,분명 그 자리에 있는 아이들은 그들의 대화에 주목하고 있었다.
저들 중 누군가는 분명히 그 입을 제멋대로 놀리리라.
진실이 어찌 되든 간에 오늘의 일은 반드시 와전되어 전해질 것이고,베르트랑 후작의 귀에 결코 좋은 이야기로 들어가지는 않으리라.
분하지만,그녀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그래.이성을 찾아라 질레타.넌 교관이야…징계 대상도 아니고,기껏해야 응시생을 일방적으로 팰 수는 없지 않나.일반적인 상식 선에서 생각해도 결코 옳지 않아.’
질레타는 자기 스스로를 그리 납득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숨을 한 번 다시 들이쉬기도 전에,실베니아의 말이 다시 찔러 들어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리전을 하기에는 만족스럽지 않으실 것 같구요?”
“당연하지.”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사안이었다.
애초에 그녀의 실력을 직접 보고 싶기에,이만한 특별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는 아이인지 확인하고 싶어 여기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말이야.’
세상에 그런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실종된 검성 실베스터가 살아 돌아온 것이 아닌 이상에야,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질레타의 웃음과 실베니아의 비소가 교차했다.
“킥,그럼 이렇게 하죠.”
다소 도발적인 어투였다.
보통 학생이었다면 그 자세만으로도 문제 삼아질 태도였으나,본디 그런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질레타는 별 말 없이 넘어갔다.
어느 순간부터,내기의 내용조차도 실베니아가 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지 못했다.
“저는 맨손으로 때릴 테니,교관님도 맨손으로 막으시면 됩니다.그리고…….”
실베니아는 질레타의 앞까지 걸어와,그의 주변 바닥에 원을 그렸다.
약 지름2m의,작지 않은 원이었다.
“교관님께서 이 안에서 벗어나거나 방어 이외의 행동을 하면 제가 승리하는 것으로.어떻습니까?”
질레타는 그 말에 어이없어하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질레타의 키는 못해도180.실베니아의 키는 기껏해야150.
신장 차이는 그렇다 치더라도—몸의 수련이 너무나도 달랐다.
질레타의 온 몸은 완벽하게 단련된 강철 같은 기사의 신체였다.
빈틈 하나 없으며,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근육질의 몸이다.
그에 반해,실베니아는 어떠한가?
“하.”
질레타는 코웃음치며 그녀의 온몸을 살폈다.
옷으로 가려져 그 근육이 드러나는 선은 보이지 않았지만,어찌 된 영문인지 바지 한 쪽의 천이 없어 그 새하얀 허벅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 여실히 보이는 곡선은결코 근육이 아니었다.
그저 여자아이의,평범한 살덩어리일 뿐이다.
“…진심인가?”
“저는 농담을 싫어합니다.”
“후회는 없겠지.”
“혓바닥이 좀 기시네요.기사답지 않게?”
“……좋다!!”
질레타는 험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조건도 그녀가 걸었으며,내기의 내용도 그녀가 결정했다.
대체 어쩌다고 내용까지도 그녀가 결정하게 되었는지,그 경과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어쨌든,그녀는 도발적인 웃음과 함께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언제든 와도 좋다.후회하지 마라.”
병신 같은 폼을 잡기는.
창술교관 놈은 원 안에서 우스운 자세를 취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을 들고 있지도 않으면서 마치 창을 쥐고 있는 것처럼,한쪽 팔을 뒤로 쭉 뺀다.
창술가에게는 근접했을 경우의 격투술 또한 매우 중요하기에,대부분의 창쟁이는 창술 뿐만 아니라 격투술 또한 배운다.
‘검을 손에서 놓으면 죽은 목숨이다’라고 말하며 격투술은 가르치지도 않는 일부 칼쟁이 머러지들과는 다르게,창쟁이들은 그 창을 손에서 놓는 일이 꽤 많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창을 잡을 때와 잡지 않을 때의 자세가 같다는 것은,그 경우의 수가 하나밖에 없다는 것.
그러니까—창이 없을 때의 박투술을 아예 배우질 않았다는 소리다.
‘저 창창한 나이에 아카데미에서 썩고 있는 머저리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한 건가.’
30대의 기사.
그것은 즉20대의 경험없는 신참도 아니며, 40대에 접어들어 슬슬 몸이 노쇠하기 시작하는 중견도 아닌—전성기의 육체를 지닌 훌륭한 전력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자가,국경도 마경도 아닌 아카데미에 있다라?
‘청춘을,전공을 낭비하는군.머저리 같은 놈.’
그 몸을 국가를 위해 바치지는 못할 망정,전장이 두려워 이딴 곳으로 도망쳤더냐.
나는 몇 걸음 물러서서 그 녀석을 바라보았고,곧 소니아가 내 귀에 대고 속삭여왔다.
“실베니아,괜찮으시겠어요?상대는 교관이에요.”
“괜찮아.걱정하지 마라.”
“네?아뇨?걱정은 안 해요.당연히 당신이 이길 텐데 그런 걸 왜 해요?”
“?”
“저는 이기는 쪽에만 붙어요.쪽!”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아주 당연한 반응을 보이며 그녀를 돌아보았고,그 순간 소니아는 내 한쪽 손을 강제로 잡아당겨 그 위에 입술을 부딪혔다.
“기사를 위한 승전의 키스.와!저,이거 한 번쯤 해보고 싶었거든요!어머니가 너무 멋졌던 거 있죠!”
“……온 동네 영애들이 통탄하겠구만.”
나는 그녀의 말에 대놓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소니아는 상큼하게 윙크하며 내 등을 밀어 줄 뿐이었다.
“어쨌든 교관이니까 패지는 말라구요!우리 멀쩡히 입학해야 하잖아요.”
“그건 맞는 말이군.그런데,너…….”
“잡담은 그만.가서 싸우세요.파이팅!내가 응원한다구요!”
…어이가 없네.
활기차고 체면치레 없는 아이를 좋아하는 편이기는 하지만,이건 좀…과하지 않은가 싶다.
뭐랄까.
머리가 맑기는 한데,너무 맑아서 머리에 든 게 없는 수준의 맑음이라고 해야 할까.
더욱 기분이 묘한 점은,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시감이 떨쳐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중에 생각하자.’
어쨌든,지금은 눈 앞의 머저리 창술교관이 먼저였다.
녀석은 제자리에서 뒷짐진 채로 건방지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우.”
나는 몇 걸음 물러서서 녀석을 바라보았다.
머저리라고는 하지만 상대는 기사,그리고 교관.
나아가— 30대의 육체를 지닌,전성기의 기사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이길 수 없다.
당연한 일이다.
밀어낸다는 것은 곧 주도권을 가져온다는 것.
그리고 무기 없이,맨손의 박투에서 주도권을 가져온다는 것은 온전히 힘으로서 압도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어떨까?
이 몸으로,수 미터를 도움닫기하여 전력으로 발차기를 날린다고 해도,저 거구의 기사가 조금 밀려나기나 할까?
‘아니.’
단언컨데 불가능하다.
단련된 육체라는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적이며,어지간한 꼼수로는 그 간극을 좁힐 수가 없다.
무기가 있다면, ‘기술’의 영역이 작용한다면 또 모르겠으나.
쌍방 무기가 없다면,그런 변수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저렇게 자신있게 받아들인 거겠지.’
무슨 짓을 하든,어떤 꼼수를 쓰든 제압할 자신이 있을 테니까.
게다가…아마 저 자리에 있는 것이 나라도 그리했을 테다.
‘하지만 문제 없다.’
애초에 싸울 생각은 없었다.
이 몸은 등신이고,병신이며,나약해 빠진 머저리다.
과거—내가 솔디어에게 이리 말했더랬다.
‘강한 기사는 모든 싸움에서 승리해서 강하다 불리는 것이 아니다.’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싸움만 하니까,강하다 불린다.
그리고 그 싸움의 사선을 넘을수록 강해지며,깨달음을 얻고,비로소 모든 싸움에서 싸워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사선(死?)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어떨까.
고작 삼십의 나이에,아카데미에 쳐박혀 있는 저 머저리가.
사선의 경험이라는 것을 알까?
‘확인해 볼까.’
나는 전신의 마나를 끌어올려 심장을 망치질했다.
숨을 쉬고,바람을 느끼며,혈액의 순환을 온몸으로 느낀다.
어려운 과정이 아니다.
그저 숨을 쉬고 내뱉듯이, 평상시에 느낀 전장에서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일련의 행동이다.
분노하고, 허탈하며, 그 끝에 위치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허무.
하늘이 시작되기부터 검의 역사가 끝나기까지,우리가 이것을 이르기를.
'살의'라고 칭했다.
발을 내딛는다.
눈을 통해 감정을 발산하고, 주변의 모든 마나를 받아들여 공간을 통제한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그리고, 네 걸음.
나를 향해 팔이 뻗어온다. 주먹은 아니다. 내 몸을 휘감아 넘어뜨리려는 포박의 움직임이다.
아마도, 채 주먹을 뻗기도 전에 넘어뜨려 망신을 주려는 속셈이다.
공격이라 하기에도 뭣한, 너무나도 기초적이고 유치한 수법이다.
그러나 저것은 예측하지 못할 때에나 의미가 있는 법.
"머저리도 아니고 참."
"이놈……!"
포박하는 손길은 관절을 비틀고 방향을 뒤트는 것만으로, 가볍게 회피할 수 있다.
하지만 공격이라는 것은 흐르는 강물과도 같은지라, 한 번 스쳐간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 귓가로 흘러간 물은 폭포처럼 아래로 흘러 어깨를 붙잡으려 움직이고, 나는 다시 허리를 비틀어 잡아야 할 것이 있는 공간을 비운다.
어깨 다음은 어디인가?
어깨에서 비껴간 손은 허리 즈음으로 내려가고, 인간의 관절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는지라—
다시금, 본래 자리를 향해 돌아간다.
그리고 그 때가 빈틈이다.
인간의 관절은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접히는 동시에 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동시에, 빠르게 접혀오는 관절은 비교적으로 힘이 빠져 외부의 간섭에 취약해진다.
무슨 뜻이냐면, 관절과 동맥을 '정확하게' 가격하면 그 접히는 방향까지도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살기에 반응해서 극도로 긴장하고, 도발에 걸려들어 극도로 흥분한 몸이라면.
당연히 작은 자극에도 과도하게 반응한다.
“……!!”
그리고 더하여,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의 관절은 두 가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한 몸과 분노한 뇌가 다른 명령을 내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접어라.
아니다. 펴라.
안쪽으로 접어라.
아니다. 아프다. 바깥쪽으로 접어라.
그럼 아주 심플한 결과가 나온다.
“——아아아아악!!”
다음 순간, 허공에 과격한 비명이 울렸다.
몸과 머리의 명령을 동시에 지키려고 하여, 결국 더 굳건한 의지의 명령을 따르게 된 몸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기사는 그런 수련을 거친다.
어떤 상황에도 본능에 굴복하지 않고, 강인한 정신으로서 언제나 의지를 관철할 수 있게끔 몸을 단련하는 수련을 말이다.
즉!
힘 조절은 전혀 없이, 그저 머리가 시키는 대로 올곧게 내질러—
그 팔은 내 안면을 강타했다.
즉, 내 비명이었다.
“흐으으으으으읍…….”
나는 온 힘을 다해 숨을 들이쉬었다.
당연히 고개를 젖혀 별로 아프지는 않지만, 그딴 게 뭐가 중요한가?
저 새끼가 나를 때렸다는 게 중요하지.
나는 온 힘을 다해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신관!! 신관!!!”
“어, 어라? 잠깐, 잠깐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