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소녀검성-38화 (38/47)

〈 38화 〉 #038 보험 사기의 모범(2)

* * *

37.

—솔디어. 상대방이 많이 저급한 실력을 가진 결투에 있어, 상대에게 선수를 무조건 양보해야 하는 이유를 아느냐?

—제자의 식견이 얕아… 잘 모르겠습니다. 보통은 방심하지 않고 선수를 취하는 것이 유리하지 않습니까?

—명분 때문이다.

—명분…이요?

—그래. 내가 저 놈을 여름철에 개 패듯 패도 탓 당하지 않을 수 있는 명분. 실수로 죽인다고 해도 저 놈이 먼저 쳤다! 라고 변명할 수 있는 명분. 압도적인 실력차가 나서 거진 학살에 가깝게 되었더라도, 선수는 양보했노라고 변명할 수 있는 명분 때문이다.

나는 이 순간, 수십년 전 솔디어에게 가르쳤던 수업의 내용을 돌이켰다.

고수는 하수에게 선수를 내어 주는 법이고, 그것이 암묵적인 규칙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그리고 그 암묵적인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그것을 가르쳤었다.

하수에게 선수를 양보하지 않은 고수는 그것만으로 불명예다.

하지만, 치명적이지는 않다.

말마따나 방심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니까 말이다.

불명예라는 것을 모두가 알지만, 그것을 지적하여 들고 일어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솔디어는 그 뒤, 내게 한 가지를 더 물어왔다.

—그럼, 실력이 훌륭한 사람이 초짜를 먼저 쳐서 묵사발을 내면 어떻게 되나요?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이구나.

‘좆 되는 거지.’

나는 녀석에게 맞아 날아가는 순간 심장에서 마나를 끌어올려 머리에 집중시켰다.

신체는 마나로서 강화할 수 있고, 머리에 마나를 집중시키면 청력이나 시력 등의 감각을 강화하여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말했듯이, 근육이 담아낼 수 있는 마나는 한계가 있는 법.

그것은 머리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한계를 넘어 흐르는 마나는 컵에 파도가 치듯이 일렁이고, 넘치는 공간을 해방하기 위해 어딘가로 뚫고 나간다.

근육이 끊어지고, 핏줄이 터지는 등의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머리 전체라면—

“쿠웨에에에에엑!!”

—그야말로 칠공에서 피분수를 뿜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쥐 죽은 듯이 숨을 멈추었다.

“어, 어이. 이봐. 나는 아무 짓도…….”

질레타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일 힘이 없냐고?

아니.

애초에 아프지도 않다.

머리의 마나 역류로 인한 출혈은 결국 내출혈의 일종이라, 피가 부족해지는 것만 조심하면 그리 심각한 증상도 아니다.

이유? 단순하지 않는가.

‘공격을 안 하기로 했는데, 갑작스러운 기습을 맞고 날아간 비극의 여주인공.’

캬.

이건 뭐 돈 없으면 장기라도 때서 보상해야 할 죄목이구만.

곧 수많은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한 순간이 지나자 그 시간이 전부 거둬지고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도 느꼈다.

그리고 비명이 들려왔다.

“세상에! 신관! 신관!! 질레타 교수, 어린아이에게 대체 무슨 짓을!!”

“………….”

“세, 세상에! 신관님! 어서 이쪽으로!”

‘대체 뭐지?’

질레타는 지금의 이 난장판이 된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 하늘을 찌를 듯이 기세등등하던 소녀는 머리의 온갖 구멍에서 피를 뿜으며 죽어가고 있었고, 주변의 흥미로 가득했던 시선들은 전부 자신을 향한 모멸로 바뀌어 있었다.

“아, 아니야. 때리려던 게—”

“위선자! 기사로서 일말의 명예조차 없소?!”

“아니란 말이다!”

그래. 인정한다.

결국에는 자신이 때린 모양새가 되었지만, 자신은 결코 그럴 목적으로 팔을 뻗지 않았다.

저토록 무방비하게 자세도 취하지 않고 접근하기에, 그대로 팔을 휘어잡아 내던지려 했을 뿐이다.

기초적이라기 하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의 유술.

자신이 하려던 것은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기묘한 몸놀림에 첫 번째와 두 번째 손짓이 전부 무위로 돌아갔고, 다음 공격을 위해 손을 거두어들이려던 찰나.

그 찰나에— 무언가 당했다.

“그녀가 일부러 맞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요?! 멍청한 소리! 우리도 똑똑히 보았소!!”

“그, 그건…!!”

질레타는 얼떨떨한 채로 자신의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주먹 끝에 닿았던 감각이 아직 남아있었기에, 자신이 분명 그녀를 때렸다는 사실은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깊지는 않다. 그야말로 스친 정도— 혹은, 때렸으나 빗나간 정도의 감각이다.

‘그래. 얕았다. 결코 사람이 날아갈 만한 충격은 아니었어.’

그런데 저 소녀는 저만치 날아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코와 입, 귀 등지에서 온갖 핏물을 뿌려대고 있었다.

피 흘리는 수준이 아니다.

거진 뭐 마시면 즉사하는 독약이라도 양동이로 퍼 마신 수준으로, 온 구멍에서 피를 철철 쏟아내고 있었다.

정말로, 정말로 마음 같아서는 그녀가 엄살을 부리는 것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자신의 감각이, 경험이 증언하기로— 자신은 분명 무고했다.

‘게다가 맞은 부위에 멍도 안 들었잖아!’

어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년이 엄살을 부리는 것이라고 외칠 수 없는 현실이 어이가 없었다.

그야— 어찌 그러겠는가.

진실이 어찌 되었든 이미 민중의 시선은 저 자극적인 핏물에 향해 있었다.

그 비명과 저 출혈은 진실을 감추기에 충분한 자극이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 내가 물러나면 저 사기꾼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분명 꾸밈이 있을 것이다.

그 거짓을 폭로하기만 하면, 저 계집을 사기꾼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질레타는 목을 가다듬고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일단은 분위기를 휘어잡아야만 했다.

“모두 들으——!!”

“실베니아아아아아!! 어떻게 이런 일이!!”

“—시오…….”

그러나 질레타의 고함은 누군가의 비탄어린 울음에 순식간에 묻혔다.

고개를 돌리자, 실베니아의 상처를 살피는 신관의 곁에서 누군가가 흐느끼며 우는 것이 보였다.

물빛의 머리칼을 지닌 하프엘프였다.

분명— 이름이 소니아라고 했던가.

신관은 당황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자네가 아는 자인가?”

“네. 저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친한 친구인데… 몸이 너무 약한 나머지 바람만 불어도 픽픽 쓰러지고는 했어요. 크흑, 그런데 그런 연약한 아이를 어쩜 이 정도로 잔혹하게……!!”

“세상에…!”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질레타에게 다시금 몰렸다.

누군가 먼저 나서 그를 질책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선들의 의미에 어찌 한 마디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시선은 이미 하나의 훌륭한 무기이며, 비수가 되어 날아들었다.

쓰레기. 명예를 모르는 놈. 자신의 말조차도 지키지 않는 비겁자.

연약한 여자아이를 서슴없이 때리는 인간 말종…….

“나는, 나는…….”

질레타는 이를 악물고 등을 돌렸다.

그는 차마 그 시선에 항거하여 대꾸할 수 없었다.

지금 눈앞에서 완벽하게 틀어쥐어진 분위기는, 그에게 단 한 마디의 변명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질레타는 곧 이를 악문 채 자리를 떠야만 했다.

안내원에게는 내 원하는 대로 다 들어 주라는 말만을 남긴 채, 야유 속에 발을 옮겼다.

신관은 내 출혈을 깔끔하게 치료해 주었고, 나는 모두의 동정어린 시선 속에 아픈 척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이 일은 반드시 아카데미 측에서 보상할 테니…….”

안내원은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태도로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야, 방금까지 진상짓을 당하던 대상이라도 그렇게 피 뿜으며 쓰러지는 꼴을 본다면 누구라도 불쌍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나는 그녀의 어께에 손을 올리며 연약한 미소를 지었다.

진상짓은 할 때는 과격하게 해야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이 되면 또 스텐스를 바꿔야 한다.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에는 진상이지만, 이미 다 얻었는데 난폭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괜찮아요. 제가 그분께 뭘 잘못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 각자의 사정이 있겠죠. 저는 그분을 용서해요…….”

“세상에……!!”

안내원은 눈물을 훔치며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었다.

완벽하다. 시작은 진상이었지만 끝은 창대한 피해자일지니.

이것만큼 완벽한 마무리가 어디 있겠는가?

그녀는 곧 교수님들께 연락을 돌리겠다며 물러났고, 다른 아이들의 시선도 거두어졌다.

나의 상황과는 별개로 그들은 여전히 시험을 보는 중이었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 소니아가 내 앞에 털썩 주저앉고는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패지 말라는 게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요.”

“나도 너를 어릴적부터 만난 기억은 없구나.”

“저는 지금도 어리잖아요. 방금 만났지만 결국 어릴 적부터 만난 게 맞지 않나요?”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걸 자기 입으로 말하는 미친년은 좀처럼 없지.

나는 속마음을 목구멍 뒤로 넘기며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감사 인사는 됐어요. 마음만 받을게요!”

소니아는 그렇게 말하며 내 앞으로 두 손을 내밀었다.

마음만 받는다더니,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휘젓는게 대놓고 뭣 좀 내놓아라 하는 행동이었다.

“그럼 그 손은 뭐냐?”

“아이 참, 마음이라는 게 또 눈에 보이기도 하는 물건이거든요. 막 금색이고, 손가락만한 무언가가 다섯개쯤 있으면 마음이 전해질 것 같은데? 막 있잖아요. 창 그려진 그거. 열여섯개쯤 있으시던 그거요.”

소니아는 아주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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