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039 보험 사기의 모범(3)
* * *
37.
“흐음….”
고속 마법학의 교수, 금작화의 로뎀.
그녀는 나름 스스로가 천재라고 자부하는 편이었다.
다른 어떠한 설명도 필요없이, 고작 서른의 나이에 가슴에 단 아카데미 교수의 휘장이 그것을 증명할 수 있으리라.
젊어서 재직하는 것이 썩 좋은 일이 아닌 기사들과는 다르게, 아카데미 교수직은 수많은 학자와 마법사들에게 있어 각광받는 일자리였다.
교수라는 이유만으로 연구비가 거의 무제한적으로 지원되고, 학생이라는 양질의 노예… 아니, 연구원들까지 기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대륙 전체에 이곳으로 오고 싶어 하는 마법사를 줄세우면 이 도시 레비리오 전체를 둘러 감싸고도 남음이 있을 터.
그런 경쟁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당연히 그녀 나름의 능력을 입증하여 인정받았기 때문이리라.
스무 살에 ‘마녀’의 칭호를 받은 천재.
고속 마법의 권위자.
유력한 차기 월계수의 지명자—
지금에 이르러는, 그녀의 행실이 어떠하든 그런 칭호
들이 그녀의 뒤를 쫓았으나.
“글쎄요…….”
자신의 손에 들린 몇 장의 시험지를 보며, 그녀는 자신을 향한 칭호가 퍽 부당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천재라는 단어는 마땅히 이런 인간들에게 돌아가야 할 테니까.
“이런 게 학생이면 저도 자신감이 떨어지는데 말이죠.”
2차 시험이 끝나고, 그 결과의 마무리는 전적으로 그녀의 손에 돌아가게 되었다.
단순한 흐름이었다.
누구도 그 곤란하고 복잡한 일을 처리하기 싫어했고, 그나마 일감을 가리지 않는 교감은 ‘그 폭행 사건’의 뒤처리를 위해 베르트랑 후작과의 만남을 가져야 했다.
—이 일을 어찌한단 말입니까?
—…다행히, 어제 베르트랑 후작이 나와의 약속을 잡은 바가 있습니다.
—그, 그렇다면…….
—어떻게든 내가 무마해 보지요.
그 결과—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가 바쁘다며 서로에게 이것을 미루었고, 결국 지금 진행중인 연구가 없는 로뎀에게 돌아온 것이다.
“사건사고는 그렇다 치지만, 나머지 학생들은 각자의 시험을 제대로 치렀을 텐데.”
어떤 트러블이, 어떤 해프닝이 일어났든 간에 결국 시간은 흘렀다.
실베니아의 건이 어찌 되었든 간에 다른 응시생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시험을 치뤘고, 새벽이 오자 각자의 희비가 극명하게 교차했다.
애당초—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학생의 수준으로 풀 수는 없는 문제들이었다.
‘아니, 설령 그런 능력이 된다고 하더라도 전부를 맞추지는 못했겠지.’
이 시험지에는 기사의 지문과 마법사의 지문이 혼재되어 있었으니까.
어떠한 검술의 유파와 특징, 수련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를 서술하시오— 등의 기사 문항이 다섯 개.
어떠한 약초를 짓이겨 n그렘만큼 달여내고, 치료의 효과를 보기 위해 어떤 마법을 사용해야 하는지 서술하시오— 등의 마법사 문항이 다섯 개.
아무리 공부가 깊다고 한들 그 두 개를 전부 만족할 수는 없을 테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최선의 방법은, 자신의 분류 다섯 개를 풀 수 있는 데까지 풀고 반대편 다섯개를 증표로 답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랬을 텐데.
“만점자가 둘이나 된다니.”
심지어 둘 다 그 성격이 달랐다.
첫 번째는 증표 하나를 소지하고, 그 어떤 증표도 사용하지 않은 채 만점을 맞은 이였다.
그 누구보다 빨리 정답을 제출하고 그 누구보다 빨리 합격을 확정지었다.
부상 같은 것은 눈길을 줄 가치도 없다는 듯 말이다.
로뎀은 당연한 일이라는 양 헛웃음을 지었다.
‘뭐, 우리 위대하신 마탑의 공주님께서 부상 같은 게 눈에 들어오기나 하셨겠어.’
버드나무의 아셰카.
첫 번째 천재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증표 다섯을 소지하고, 모든 증표를 사용하여 만점을 맞았다.
그러나 기이했다.
다섯 개 뿐만이 아니라 모든 답이, 증표로 얻을 수 있는 ‘모범 답안’과 100%일치하고 있었으니까.
아셰카는 그렇다 치지만 이건 대체 뭐란 말인가?
“컨닝인가? 아니, 아닌데… 그런 건 전부 막아 뒀어. 학생이 그걸 깼을 리는 없고…….”
마법학과의 교수진이 총동원되어 만든 온갖 보안 마법이 그 시험장 전체에 흐르고 있었을 터였다.
서로의 시험지는 확인할 수조차 없으며, 각자의 문제를 상대에게 설명하려 하면 인식을 방해하는 저해 마법까지도 발동해 두었다.
상호간의 협력도, 컨닝도 불가능할 터인데.
‘대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사람이라면 딱 두 사람 뿐이었다.
일단 아셰카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녀는 아카데미생의 기준에서 아득히 벗어나 있으니, 교사들의 마법을 해제할 수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만의 답으로 만점을 얻어 냈다.
그리고 두 번째는문제의 그녀, 실베니아.
시작부터 증표 열 여섯개를 가지고 있던 그녀라면, 다소의 억지를 피워 뭔가 수작을 부렸을 것이라고 추측이라도 했을 수 있을 테지만—
시험지의 주인은 그녀가 아니었다.
오히려 실베니아는 낙제점이었다. 10점 중 맞은 것은 0개.
로뎀은 그녀의 답안지를 꺼내 보았다.
‘내가 보기엔 정답 같은데.’
모든 문항에 빼곡하게 뭔가 복잡한 문장을 적어 내기는 했지만, 채점 결과 전부 오답이란다.
말 자체는 그럴싸하게 쓴 것 같은데… 기사학과 교수들의 말을 들어 보면 전부 그럴싸한 엉터리 이론이라고 했다.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그녀의 답을 실제로 하려고 하면 팔이 부러지거나 다리가 부러지거나 둘 중 하나는 확실할 것이라나.
뭐, 전문가의 말이 그렇다니 로뎀은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어차피 그녀는 멍청이 질레타와의 내기로 인해 합격이 확정되어 버렸다.
교수진의 결정 하에 질레타가 내려갔으니, 교수진 전원이 그에게 대리 권한을 위임한 것과 다름없었던 상황.
일이 어찌 되었든 간에, 그녀는 이미 합격했다.
차라리 다른 일에 신경을 돌리는 것이 건설적인 일이리라.
그래, 이 소녀… 두 번째 만점자에 대해서 말이다.
그녀가 오류가 있나 확인하기 위해 서류에 눈을 돌릴 무렵, 문 두드리는 소리가 방 너머에서 울려왔다.
—똑똑똑.
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것은 강렬한 한 사내의 존재감.
로뎀은 말로서 대답하는 대신, 가볍게 손짓하여 문을 대신 열어 주었다.
“실례하겠네. 로뎀 교수.”
바깥에 있던 것은 수석검술교관 베르투스였다.
그는 한 손에 서류철을 하나 든 채 다가왔고, 로뎀은 질색을 하며 책상에 엎어져 버렸다.
“교수.”
“말 걸지 마세요.”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그러나.”
“교수님은 좋은 일로 찾아오는 일이 없잖아요!”
“나도 그러고 싶지는 않네만, 별 수 있겠나? 돈 받은 만큼 일해야지.”
“하아…….”
빌어먹을 교수들 같으니라고. 충분히 바빠 죽겠는데, 이번엔 또 무슨…….
로뎀은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류철을 받았다.
투덜거리던 그녀였지만, 서류의 내용을 확인하고서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베르투스를 올려다보았다.
“이거, 진짜에요?”
“안타깝게도 그렇다네.”
서류의 내용은 시험의 두 번째 만점자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수상한 성적이어서 추적에 들어갔고, 그 결과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이 서류에 담겨 있었다.
어떻게 해서 다섯 번밖에 사용하지 못할 증표를 열 번이나 사용했으며, 대체 그럴 기술과 편법을 어디서 마련해 줄 수 있었는지 말이다.
베르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뱀’이 잠입했네. 아마도, 최소 다섯 이상.”
“각국의 조직들이 아카데미에 학생을 잠입시키는 건 항상 있는 일이지만, 너무 대범한데요.”
아카데미에 재학하는 것은 각국의 유망주이며, 동시에 차기를 이끌어갈 지도자들이다.
그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어린 정보원을 길러내어 아카데미에 잠입시키는 것은 늘상 있는 일이지만—
이만큼 많은 수라니.
“정보를 위해서라면 이렇게까지 필요하지 않을 텐데요.”
“동의하네.”
“이 정도라면… 다른 무언가를 노린다는 건데.”
아카데미의 정보원은 기본적으로 소모품이다.
결국 졸업하기 마련이고 재입학은 불가능하기에, 어떤 조직이라도 한 번에 이리 많은 정보원을 잠입시키지는 않는다.
차라리 청소원이나 일꾼 등, 잡부 등으로 고용하여 들여보내면 모를까.
이 정도라면…….
“찾는 게 있군요. 위치나… 정체를 모르는 무언가.”
“그렇겠지.”
가령 아카데미에 보관 중인 보물이라거나.
혹은, 누군가의 목숨이라거나.
아직은 알 수 없었지만, 이유 없이 이 많은 이들을 내던지듯 투입한 것은 아닐 테다.
두 교수의 눈빛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지금으로서는 알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최대한 조사할 수 있는 만큼 조사하여 걸러내는 것 외에는 말이다.
대비는 해야겠지만, 지금 두 교수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하나 뿐이었다.
그것 하나면 그들의 모든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교장선생님은 언제 돌아오신대요?”
“모르지. 올해 내로는 끝날 출장이라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지금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네.
베르투스는 그리 말을 끝맺었다.
한편 교장의 자리를 대신해야 할 교감은—
“……안녕하십니까. 베르트랑 후작.”
“오랜만에 보는군요. 페이로드 교감.”
너무나도 불안한 가시방석에서, 베르트랑 후작—피해학생 학부모라 일러도 좋을 것이다—과의 만남을 진행하고 있었다.
페이로드 교감은 그가 무슨 말을 할까 단 한 순간도 안심하지 못해 좌불안석이었지만, 솔디어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교감이 내온 찻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까?
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을 만나고자 한 것일까?
‘젠장, 무슨 말이라도 좀 해 보란 말이오.’
베르트랑 후작이 자신에게 면담을 요청한 것은 바로 어제였다.
시험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 대체 무슨 용무인지 학생생활부장을 맡는 선생과 자신을 동시에 보자고 한 것이었다.
베르트랑 정도 되는 자이니, 무슨 말을 할지도 궁금하여 자리를 마련하려 했으나—
‘만나기도 전에 사건이 터지다니.’
이것을 다행이라 해야 할지, 불행이라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직접 변명할 기회가 있으니 다행에 조금 더 가깝기야 하겠지만서도—
베르트랑의 첫 마디를 듣는 순간, 교감은 그딴 생각은 전부 집어치우고 불행이 분명하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생활부장 선생님은 어디 계신지요?”
“아, 그건…….”
망할!
조졌다!
다 알고 왔구나!
하긴, 그만큼 아끼는 소녀인데 아직까지 일러바치지 않았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리라.
분명 실베니아가 교사에게 맞아서 중상에 이르는 상처를—사실이 어찌되었든—입었다는 소리까지 전부 들었을 것이다.
생활부장이 참석하지 않은 이유?
단순하다!
그게 바로 질레타였으니까!
피해자 학부모를 만나는데 어떻게 가해자 본인을 참석시키겠는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베르트랑 후작인데 말이다.
이게 ‘면담’이 아니고 ‘처형식’이었다면 참 멋진 인선이었겠지만, 교감은 유능한 교사의 목이 단칼에 날아가는—지극히도 물리적이다—것을 원하고 있지 않았다.
교감은 눈물을 머금고 대답했다.
“저희 측에서… 강력한 징계를 내려 참석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렇습니까? 아쉽게 되었군요.”
“그, 그렇군요. 아쉬우시군요…….”
뭐지? 직접 목을 베지 못해서 아쉽다는 뜻인가?
“교감선생님과 진득한 이야기를 나누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뭐지? 나를 대신 죽이겠다는 뜻인가?
교감은 딱딱이는 이빨을 억지로 악물며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기분이 나빠서 싸늘한 게 아니라, 죽음에서 벗어나고 싶은 싸늘함이었다.
“안색이 좋지 않으시군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습니까? 제가 편하게 해 드릴 수도 있는데…….”
허허허허허허.
영원한 죽음을 맞으면 편하긴 하겠지만 아직 죽고 싶지는 않았다.
교감은 실성하기 직전인 정신을 붙들며 손바닥을 싹싹 비볐다.
표정은 여전히 완벽을 연기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곧 찾아오리라.
“… 원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뭐든, 저희가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네? 정말이십니까? 하지만 아직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요.”
“당연한 일입니다! 저희가 잘 해 드려야죠. 예. 아무렴요.”
망할, 기만자 녀석!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고?
교감은 이 빌어먹을 서북의 호걸이, 사자가 아니라 여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세치 혀를 이리도 잘 놀린단 말인가.
자신들이 완벽하게 잘못한 입장임을 이용해서, 단 한 마디 요구도 없이 ‘무슨 말을 하든 다 받아들여라’라는 압박을 하다니.
뭐? 아무 이야기도 안 했어?
대체 무슨 거창한 요구를 하려고 그 지랄을 하실까?
“뭐든지 상관없습니까?”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요.”
교감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을 굳혔다.
질레타의 경질은 당연할 것이고, 어쩌면 자신이 책임을 지고 교감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 어차피 정년도 가까워지고 있었으니, 고향에 작은 논밭이나 사서 농사나 짓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교감은 솔디어의 안색을 살폈다.
정말로 말해도 되는지 망설이는 투였고, 그가 침묵을 이어갈수록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 결국.
솔디어는 깊게 숨을 내쉬며 그가 이곳을 찾은 이유를 입에 담았다.
“그러면, 학생들의 교복 위에 교복 외의 다른 외투를 걸치지 못하게 하는 교칙을 추진해 주십시오.”
“예?”
뭐지?
미친 놈인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