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039 보험 사기의 모범(4)
* * *
39.
새벽,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시험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야 몇 시간 전에 끝내서 알 바 아니었다만, 소니아는 ‘잠깐만요!!’를 몇 번이나 외치며 시험지를 끝의 끝까지 수정하고 있었다.
결국 내 증표 다섯 개를 받았으니 합격은 확정선일 테지만… 뭐 원하는 것이라도 있는지 증표도 쓰지 않고 열심히 푼 결과였다.
“다, 다 했다…! 후우! 봤죠?”
“…뭘?”
아무 주어도 없이 그렇게 말하면 늙은이는 참 곤란하다.
‘이거’ 혹은 ‘저거’로 지칭해서 말하지 좀 마라. 못 알아들으니까.
내가 인상을 구기자, 소니아는 전혀 개의치 않고 가슴을 쭉 펴며 대꾸했다.
“저 엘리트라니까요! 결국 다 풀었잖아요?”
“정답인지는 아직 모르잖냐?”
“츳, 츳, 츳. 그런 고민은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거라구요. 저는 엘리트니까, 당연히 푸는 것도 다 맞는 거에요! 당연히 올백일 걸요?”
저 좌우로 까딱이는 손가락을 부러뜨려 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나는 억지로 웃어 주었다.
이 미묘한 시건방짐이 참… 기묘한데.
“자, 좀 더 절 칭찬해도 괜찮다구요?”
“……흐음.”
소니아는 ‘자! 얼른!’ 따위의 말을 외치며 자랑스레 팔을 벌렸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다.
미간이 간질간질하고, 등허리에서 소름이 돋는 것이…….
이 계집애와 마주하고 있는 한순간 한순간이 기시감의 덩어리였다.
‘역시 안 되겠어.’
당장은 시험이 문제였지만, 그것도 이젠 끝난 참이다.
이 기집애의 정체를 반드시 밝혀내고 말리라.
시험의 결과가 바로 나오지는 않는 모양이었는지, 아카데미 측은 응시자들을 아카데미 안으로 불러들였다.
이 거대한 산의 입구나 될까 말까한 위치의 건물이었으나, 지붕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지덕지다.
게다가.
‘새벽 내내 시험을 치렀으니까 배려라도 해 주는 건가.’
어디 강당 같은 곳에 싹 때려박아 놓을 줄 알았더니 의외로 꽤 그럴듯한 방을 내놓았다.
급조한 티가 나는 가구들을 보았을 때 본디 숙소로 쓰는 곳은 아닌 것 같지만, 침대가 있으니 그것으로 좋다.
불만이라면 개인실이 아니라서 룸메이트가 있다는 것 정도.
그리고 침대의 한 켠을 대놓고 차지한 그 장본인이 판잣집에서 주워 온 내 위인전을 아직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소니아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 책 좀 버리면 안 되냐?”
“할 것도 없는데 어떻게 해요. 그리고 재밌다구요. 이거?”
“차라리 자던가 해.”
재미야 있겠지. 순도 100% 소설이니까…….
나는 침대에 다리를 걸쳐 누우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긴, 애들이 읽기엔 저게 더 낫나?’
우리 파티의 옛 여행은 그다지 보는 재미는 없는 여행이었다.
어디보자… 당장 떠오르는 녀석들의 모습만 생각해 보아도….
‘뒤져, 이 씹새끼야! 도마뱀 새끼가 어딜 냄새나는 아가리를 드밀어! 뒤져!!’
—드래곤 대가리를 한 번에 깨는 욕쟁이 마녀에.
‘숨 쉬세요. 들숨. 날숨. 아, 걱정 마세요. 다리는 새로 자라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치료하기 전에, 돈은 얼마나 있으신지?’
—허리를 절단당해도 살려낼 수 있는 수전노 신관.
‘이 녀석은 에고 소드야. 하나씩 줄게. 무슨 기능이냐고? 너희가 죽으면 나한테 알려주는 기능. 너희 죽으면 장비는 내가 팔아도 되지?’
—물건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구석 폐인 연금술사.
‘1만 대 1이라니. 내가 미쳤냐? 그런 싸움엔 끼지 않는다. 1만 대 1 따위로는 어디 가서 자랑도 못 한단 말이다. 부끄러워서 원.’
—일당만(?)의 숫자 못 세는 빡대가리 대전사.
그리고, 제발 그런 칭호 붙이지 말아 줬으면 좋겠는 나.
하나씩 결함이 있는 머저리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본디 천재란 어디 하나는 망가지기 마련인지—
‘강하기는 오질라게 강했지.’
내가 회상에 젖어 있을 무렵, 소니아가 내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요. 당신은 영웅들을 왜 그렇게 싫어해요? 이야기들도 전부 이상하게 알고 있고…….”
“이상하다니? 전부 진실이다.”
“아니, 아까 시험 문제 풀 때도 그랬잖아요. 맞는 것 하나 없이 전부 엉터리던데. 영웅들이 위기나 고난이 없었다구요? 이 책 전체가 위기와 고난인데요.”
그거야 그게 소설이니까 그렇지.
‘그럴싸한 위기나 고난……?’
잘 모르겠다.
그런 게 있었던가?
어릴 적이라면 모를까, 그 파티가 꾸려진 이후로는 별로 위기가 없었다.
무용담은 썩어나고 음유시인들이 노래하는 찬가는 어딜 가나 들렸지만, 그것들은 전부 소설이다.
헌데 내 생각이 표정에 전부 드러났는지, 소니아는 심통난 표정으로 책을 펼쳐 들었다.
“좋아요. 어디 한 번 봐요.”
책을 든 소니아는 책장을 마구잡이로 넘겨 그 제목을 읽어대기 시작했다.
무시해도 문제는 없겠지만,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떻게 진실을 숨길 수가 있으랴.
—고전 끝에 드래곤을 토벌했다.
“지랄이야. 로우렐 혼자 대가리를 두 번은 깼다. 보자마자 한 번, 확인 사살로 한 번.”
—십만의 오크 대군을 다섯 명이서 토벌했다.
“다섯 명이서 하려고 하긴 했는데, 에일랴 혼자 잠결에 나가서 절반 정도는 쓸어 놨었지. 미친년이라니까 그거?”
—지상에 강림한 대악마를 토벌했다.
“카를로스 놈이 돈으로 매수해서 칼질 한 번 없이 돌려보내던데….”
“그만.”
소니아는 더 못 들어주겠다는 양 책장을 덮었다.
내가 애들한테 옛날 이야기 해 주는 일이 잘 없는데, 이 좋은 기회를 발로 차 버리네.
“왜? 더 물어보지 않고.”
“저, 전부 거짓말이잖아요! 그럴 리가 없어요!”
“진짜라니까.”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몰라도 돼. 믿기 싫으면 말고.”
애초에 내게 진실을 규명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알려 달라니까 알려줄 뿐이지, 그 이상의 의리는 없다.
소니아는 팔짱을 끼고는 흥, 하며 고개를 돌렸다.
“흥, 뭐 좋아요. 어차피 시험에도 역사 문제가 나왔잖아요? 기사학과에… 뭐였지? 여명식?”
“그래. 여명식.”
“아무튼요. 나는 전혀 다르게 알고 있는데, 당신은 맞다고 아득바득 우겼죠?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구요.”
“우긴 게 아니라, 그게 진짜라니까? 그 쉬운 문제를 왜 틀리냐?”
“결과가 나오면 알겠죠! 당신 이론은 전부 다 엉터리에요.”
엉터리? 재밌는 말을 하네.
내가 역사의 산 증인이야 이 기집애야.
“허허허허허허. 오냐. 내가 백 점이라는 데에 내 우승 부상 전부를 건다.”
“그, 그렇게까지 해야겠어요?”
“쫄리면 뒈지시던가. 천하의 소니아가 왜 이렇게 혀가 길어? 후달리냐?”
“후, 후달려?! 좋아요. 내가 백 점이라는 데에…….”
“걸 것도 없잖아.”
“으윽…….”
소니아는 분한 듯 손가락을 깨물었고, 몇 초간 고민하고야 결심했는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음에 나온 말이, 퍽 가관이었다.
“나, 나를 걸죠! 뭐든지 말하면 딱 하나 들어 드릴게요.”
“너를 어디다 써먹냐 내가.”
“어쨌든요!! 나, 엘리트라니까요?!”
“괜찮겠어?”
“흥, 당연히 백 점인데, 그런 걸 왜 걱정해요?”
그거야 까 보면 알겠지.
…그리고 대충 3시간 후.
결과지는 퍽 신기한 방법으로 배달되었다.
날아다니는 종이가 창문에서 노크를 하더니, 그대로 각자의 품으로 날아들어왔다.
그리고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웃기지 마!!
—그렇지이이이이!!
—밖에서부터 영문모를 희비가 교차했다. 아무래도 결과의 통지서까지 동봉된 듯 보였다.
나야 뭐 확실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문득, 통지서를 까 보지도 않은 소니아가 갑자기 밝아진 안색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앗, 우리 둘 다 합격이네요. 역시 엘리트!”
“까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이 통지서, 묶은 리본이 빨간색이잖아요. 탈락자는 파란색 리본이래요.”
“그래?”
“안내 책자에 다 쓰여 있었어요.”
“그 작은 글씨를 어떻게 다 읽냐?”
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내 합격이야 당연한 거고, 저 꼬맹이가 까 보기도 전에 탈락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재미없었을 테니까.
나는 소니아와 마주앉아 통지서의 리본을 풀어냈다.
“준비됐어? 까볼까?”
“크윽… 당신 것부터 해요.”
“허허, 벌써부터 절망에 순응하는 방법을 배우면 안 되는데.”
나는 통지서를 단번에 펼쳤고, 그 안에는…….
아주 멋들어진 붉은색 펜으로 이리 쓰여 있었다.
’0’.
그리고 밑줄 찍찍.
“0점이네?”
“0점이야?”
이상하다?
새롭게 발명된 숫자의 표기법인가?
나는 그것을 이해하는 데에 조금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소니아는 대놓고 웃음을 참으며 피식거렸다.
몰이해가 의문이 되고, 의문이 분노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허허. 이 씹새끼들 좀 보게나.
“0점?! 이 새끼들이 쳐 돌았냐?! 눈이 장식이야?!”
“히히! 내가 이상하다고 그랬잖아요! 뭔가 내가 알고 있는 거랑은 다르다니까요?”
“이건 날조다! 이럴 리가 없다니까! 그래, 합격 확정이라서 채점을 대충 한 거야!”
“아아, 자신을 속이지 마세요 용사여…….”
자신을 속이기는!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 못해?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카데미가 역사를 왜곡해서 가르치거나, 교수들이 빡대가리거나…….
아니, 그 이전에.
나는 소니아에게 눈을 돌렸다.
“그래서 넌 몇 점인데? 당연히 만점이시겠지?”
“그야 당연히…….”
소니아는 슬쩍 자신의 결과지를 먼저 보았다.
그런데 입꼬리가 아주 눈에 띄게 쳐지는 것이, 안 보아도 알 것 같았다.
“당연히?”
“……….”
“아니구나?”
“다, 다, 당연히! 만점이죠!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으래?
내가 그녀에게서 결과지를 빼앗으려 손을 뻗는 순간, 나도 전혀 생각지 못한 소리가 울렸다.
—딸랑.
맑고 청아하기 없는 종소리.
그러나 일반적인 금속의 소리와는 판이하게 다른—
마법의 종소리였다.
세상에 이것과 동일한 소리를 낼 수 있는 물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짓을 알리는 차임벨— 아이카반의 성령.
그것을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게 누구의 손에 들려 있었더라?
나는 계속 마음 속 한 구석에 자리했던 기시감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야.”
“네, 네?”
“야.”
“왜 갑자기…….”
“왜 갑자기? 정말? 진심으로 물어보는 거냐?”
침묵이 흘렀다.
소니아는 온 힘을 다해 내 시선을 피하려 안간힘을 썼고, 내가 손을 뻗어 통지서 대신 그녀의 볼을 악쥔 다음에야 내 눈을 바라보았다.
“……….”
“……….”
“하하하, 그, 그게요…. 무서우니까 잠깐만 다른 데 좀 봐 주실레요?”
소니아는 발버둥치며 내게서 벗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무슨 짓을 하려나 보고 있자니, 녀석은 허리춤의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매만졌다.
내가 보기에는 벨트 하나 없이 그저 교복 뿐인 복장이었지만, 소니아는 그것에 무엇이 있는 것처럼 조작했다.
그리고, 한 순간 뒤.
소니아의 형상이 갑작스레 일그러지더니, 그 물빛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순식간에 그 색을 잃어갔다.
뾰족했던 귀도 둥글게 변했고, 그 교복의 형태까지도 변화하여 다른 형태를 이루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하프엘프도 뭣도 아닌,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인간 소녀였다.
“하, 하하하, 에이, 참! 들켜버렸네.”
내 앞에 선 소니아—
아니, 소네트는 그리 말하며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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