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041 문제아들의 모임 (2)
* * *
41.
—똑똑똑.
“차, 차리자···. 사, 사람! 사람 왔어요! 사람!”
“요령 피울 생각 말고 내려가라. 내 알아 한다.”
“아악! 허리! 허리!”
“안 죽어. 참아.”
운도 좋은 놈 같으니.
아직 1시간밖에 안 됐는데······.
나는 소네트의 등에서 내려와 문으로 다가섰다.
혹여나 1시간 전에 어딘가로 이동해야 했던 것일까, 우리가 무언가 모르고 있던 것일까 싶었다만···.
다행히도 그것은 아닌 듯 보였다.
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다급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합격생 번호 특수 1번 실베니아, 특수 10번 소네트. 맞으십니까.”
문 너머에는 바위로 만들어진 골렘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키는 지금 나의 허리 정도 오는··· 마법사나 연금술사들이 으레 사용하곤 하는 심부름용 골렘이다.
내가 대답이 없자, 그것은 하나 박힌 눈을 빛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수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신속히 이동해 주십시오.”
“수업? 벌써?”
무슨 놈의 수업이 입학 통지 1시간만에 있단 말인가?
밑도 끝도 없는 골렘의 요구에 나는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의미없는 반복적인 대답 뿐이었다.
“신속히 이동해 주십시오.”
“쓸모가 없네.”
나는 슬슬 요령을 피우며 몸을 숙이고 있는 소네트를 돌아보았다.
꼴에 4대 검식의 영애인지, 마법쟁이 하겠다고 가출해도 기초체력은 나보다 좋은 모양이다.
뚜벅. 뚜벅.
끔찍하리만치 긴 복도에 큰 발소리가 반복되어 울렸다.
한참을 걸어도 복도는 끊이지가 않았고, 그저 양 쪽에 난 문의 모양과 색깔, 명패만이 계속 바뀌어 갈 뿐이었다.
대체로는— 우리와 같은 아카데미 합격생들의 대기실인 듯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 복도가 한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공간 확장 마법으로 연장시킨 공간··· 땅도 건물도 넘쳐날 텐데, 굳이 이럴 이유가 있나?’
아카데미는 이 레비리오 산 전체를 둘러싸서 형성되어 있고, 당연히 건물도 불필요할 정도로 넓다.
아카데미의 영역은 산 전체인 데에 비해 학생은 기껏해야 천오백 명 내외.
교수들의 연구실이나 직원들의 생활공간, 복지시설 등을 제외한다고 쳐도 이 땅은 과하게 넓다.
하부 구역 중 일부는 외부의 다른 단체들에게 훈련을 위해 유료로 임대해 줄 정도이니, 잉여건물의 존재는 구태여 언급할 필요조차 없으리라.
그런데··· 고작 200명을 이 가성비 쓰레기 마법을 동원해서까지 수용할 이유가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문득, 소네트가 주변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으음,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요.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공간을 늘릴 이유가 없는데······.”
“····?!”
“저, 저기. 왜 그런 표정으로 봐요? 무슨 신기한 동물이라도 본 것 처럼.”
“세상에. 너도 눈치란 게 있긴 했었구나?”
“실례되는 말씀을 아무렇지 않게 하시네요. ‘엘리트’라니까요?”
눈치를 얻은 대신에 양심을 잃었구나. 불쌍한 아이······.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요.”
“너 잘났다고.”
“앗, 드디어 알아주시는 건가요? 역시 제가 좀!”
“·········.”
말을 말자.
···어쨌든, 그럼에도 굳이 이 가성비 쓰레기 마법을 동원한다는 건 당연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소리다.
내가 주변을 경계하며 쳐다보는 것을 알아챘는지, 소네트가 흐응—하고 목을 울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비취색 눈동자는 여느 때보다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아주 일부의 인간, 마나에게 사랑받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기예.
마나를, 허공에 새겨진 마법을 읽어내는 것이다.
“단단하네요. 바깥의 공격보다도 내부의 충격에 강인하게 만들어져 있어요. 이건··· 마치 거대한 감옥 같은데요. 이렇게까지 해서 한정된 공간 안에 묶어둘 이유가 뭘까요?”
“글쎄다. 입학생 중에 범죄자라도 숨어들은 모양이지.”
“좀 대충 뱉지 말구요. 그런 게 어딨어요! 학생들은 기껏해야 열여섯 살인데.”
“그건······.”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이 녀석 머리가 꽃밭인지, 내 머리가 수십년 째 전쟁터에 머물러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 골렘은 어떤 문 앞에서 멈춰섰다.
결국,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끼이이익.
육중한 경첩음과 함께 문이 열렸고, 그 안쪽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것은 정육면체 모양의 방이었다.
온갖 기시감과 불안감으로 가득찬 방 안에, 이미 여덟 명 정도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몹시 특이한 형태였는데— 방 가운데에 폭 20m정도의 바닥의 주변으로 난간이 쳐진 듯한 모양새였다.
굳이 이르자면, 투기장의 검투사를 보는 관람객의 자리를 교실 안에 구현한 것처럼 보였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그 구멍 안에는 별다른 것 없이 그저 평범한 돌바닥 뿐이라는 점 정도일 것이다.
“하암. 이제야 문제아들이 전부 모였네요.”
난간에 걸터앉아 있던 금발의 여자가 하품하며 자리에서 내려왔다.
교실에 있는 학생들은 나를 포함해서 10 명.
개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일단 당황한 얼굴의 로렌스 녀석이 있었고, 시험 때 마주쳤던 마탑의 후계자인가 뭔가 하는 계집애.
이름이··· 아셰카라고 했던가.
나머지는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지금 그것이 무어 중요할까.
모두의 시선은 하품하는 여자에게 향해 있었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샛노란 로브로 장식한 여자는 상당히 눈에 띄었고, 최소한 그녀가 학생은 아니리라는 것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우선 제 소개부터 하도록 할까요오. 저는 금잔화의 로뎀. 귀찮지만 여러분한테 고속 마법을 가르치는 사람이에요. 귀찮지만, 돈은 받고 살아야 하니까요. 암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안면이 있는 사이도 아니지만··· 왜일까.
저 황금색 눈동자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동안, 어딘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곧 내게서 고개를 돌려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여러분의 최종 테스트 시험관이기도 한답니다아.”
최종 테스트?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는지 일제히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불의를 참지 못하는 한 청년이 먼저 나서 입을 열었다.
공교롭게도 로렌스 녀석이었다.
“최종 테스트? 입학시험은 끝난 것 아니었습니까?”
“음. 그건 맞는 말이죠오. 시험은 끝났어요! 하지만··· 여러분 중에서도 우열은 가려야 하지 않을까요?”
“····우열?”
“아르칸티아 아카데미에는 세 개의 반이 있어요. 황금 사자 솔론, 은빛 늑대 디아나, 동색 여우 시두스. 교수라는 사람이 대놓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반이라기보다는 ‘계급’ 에 가깝죠.”
세 개로 나뉘는 아카데미의 계급.
이건 나도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위로 갈수록 그 숫자가 극적으로 줄어들고, 황금 사자반에 이르면 그 숫자는 전 학생을 통틀어서 고작 구십 구 명.
즉, 각 학부 별로 33명 뿐이다.
그리고 그 숫자가 적어지는 만큼 그 혜택도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가령 전속 시종이나 한 층을 통째로 사용하는 개인 방 같은— 학생으로서 지니리라 생각하기 어려운 것들을 쥐어 준다고 하던가.
‘내게는 대체로 의미없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구미가 당기는 것 정도는 내게도 존재했다.
내가 그럴진데, 그럼 아이들에게는 어떻겠는가?
무엇 하나 탐나지 않는 것이 없을 테다.
혜택 뿐인가?
아카데미의 최상위 학생이라는 것은 곧 그 세대 제일의 재목이라는 뜻.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난 이후의 인생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될 테니, 계급의 상승은 모든 학생들이 바라 마지않는 일일 터였다.
곧 설명이 끝나고 로뎀 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일종의 반 배정 시험이에요오. 자, 구미가 당기지 않나요?”
“그럼 좋은 성적을 거두면 바로 솔론으로 승급할 수 있는 건가요?”
이번에 입을 연 것은 암적색 머리칼을 지닌 여자아이였다.
로뎀 교수는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안타깝지만 그건 아니에요오. 날로 먹을 생각 하면 배탈난답니다. 기사학과나 마법학과가 솔론으로 승급하는 방법은 딱 하나, ‘하극상의 제전’밖에 없거든요. 참 야만적이지만 뭐, 지들이 좋다는데 어쩌겠어요.”
“그럼 굳이 멤버가 이렇게 구성된 이유는 뭐죠?”
하극상의 제전은 또 뭔가 싶었다만···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로뎀 교수는 질문한 아이를 돌아보며 웃음을 지었다.
특이한 외견의 아이였다.
머리칼은 흑색과 백색이 반쯤 섞여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순백색의 멍한 눈동자는 어디를 바라보는 것인지 초점을 잃어 있었다.
그런데 멤버가 ‘굳이’ 이렇게라···.
여기 있는 인원에게 무언가 공통점이라도 있는 건가?
나는 감도 암 잡히지만 뭔가 있긴 한 모양이다.
교수의 입꼬리가 조금 더 기울어졌으니까.
“헤에. 좋은 질문이에요. 이름이··· 아, 플레타 프리드웬 양이었나요?”
“···맞아요.”
“하지만 그냥 대답해 주면 재미가 없죠오. 시간도 별로 없고요.”
퉁—
로뎀 교수가 들고 있던 지팡이 바닥을 살짝 두드렸다.
그곳에서부터 푸른 파동이 순식간에 방 전체로 퍼져나갔고.
“자, 일단 시작하면서 천천히 알아볼까요?”
다음 순간, 어둠이 찾아왔다.
“시험은 간단해요오. 이제부터 여러분 앞에는 ‘대적자’가 한 분씩 나타나실 거랍니다. 여러분이 열 명이니까, 대적자도 열 명이겠죠?”
어둠 속에서 로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려오는 것은 저 위쪽 어딘가.
어둠 너머의 공간이었다.
교실 한가운데의 빈 공간은 마법진을 전개하기 위한 공간이었던 건가?
“대적자가 뭔지는 궁금해하지 마세요오. 어차피 알기 싫어도 알겠지만요···.”
번쩍.
하늘에서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가 이곳에 모인 학생들을 비추었다.
나를 포함해서 총 열 명.
내가 가장 오른쪽에 있었고, 내 바로 옆에는 아셰카가, 저 끝에는 소네트가 보였다.
전부가 아까 교실에 모여 있던 녀석들이었다.
누구에게도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쉬지도 못하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짜증을 내는 투였다.
“혼자서 다 쓸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기 늑대머리 수인 구운. 안타깝지만 시험은 일대일이에요. 순서대로 한 명씩만 풀어 드릴 거랍니다.”
늑대 수인이 짜증내며 목을 울린 직후, 로뎀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자! 여러분, 주변을 둘러보세요. 혹시, 여러분이 여기 있는 이유를 맞추셨을까요?”
그건 뭘 알려 주기나 하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뭘 어찌 생각해도 좋은 이유는 아닐 거라고 본능이 소리치고 있었다.
그런 말에 선뜻 입을 여는 사람이 있을 리가···.
“앗, 저요!”
있네?
“네. 소네트 양?”
“엘리트! 맞죠!”
소네트는 100% 정답을 확신하는지 활기차게 웃었다.
웃을 기운으로 양심이나 좀 키워 보지······.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랍니다아.”
“그럴 수가···!”
“강한. 순서. 인가?”
곧이어 입을 연 것은 아까의 늑대 수인.
푸른 눈을 지닌 수인이었다.
“음, 비슷하긴 하지만 그것도 아니에요오. 뭐 이 멤버면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긴 하지만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답으로 쳐 주도록 할까요오.”
—짝짝.
허공에 박수 소리가 울리자 빛의 기둥이 일그러져 조금씩 변화했다.
학생들의 머리 위에서 뭉쳐 조금씩 뒤틀리더니, 그것들은 곧 숫자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숫자들의 규칙은 단 하나 뿐이었다.
100, 275, 300······.
오른쪽으로 갈수록 더 낮아진다는 점.
즉, 내게 가까이 올수록 더더욱 낮아졌다.
로뎀의 악의적인 목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정답을 말하자면 여러분은 ‘문제아’ 랍니다. 여러분 머리 위에 뜬 건 이른바··· 그래요. ‘문제아 지수’라고나 할까요오? 지금까지 여러분이 친 사고나 부정행위. 학원에게 적발당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학원은 다 안답니다. 여러부운. 결과를 쟁취한다면 어쨌든 결국 그 또한 실력이니까요.”
그것 참 맞는 말이다.
반칙이든 협잡질이던 간에, 결국 이긴 녀석이 강한 법이니까.
그 말에는 참 동의해주고 싶은데··· 아무래도 따라붙을 것이 칭찬은 아닌 모양이었다.
서서히 한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손가락 끝부터 떨려오는 한기는 다분히도 물리적인 것.
형태를 지닌 살의가 저 멀리에서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미친 학교 같으니.
“구태여 평화를 어지럽히고, 능력이 되면서도 구태여 피해를 끼쳐 가면서까지 ‘문제’를 일으킨 여러분은······.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겠지요? 걱정 마세요. 딱 여러분들이 지은 잘못만큼만 극복하면 되니까요. 문제 없다니까요? 죄를 지어도 실력이 있다면 처벌하지 않는 곳이 바로 이곳. 동아카데미니까.”
그 말을 끝으로 빛줄기는 사라지고 숫자만이 남았다.
동시에, 어둠 속에서 여러 개의 악의가 숨쉬며 웃음짓는 것이 들려왔다.
숫자는 많았지만, 그 악의의 수준은 각자 판이하게 달랐다.
별 것 아닌 것부터··· 지금의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까지.
그리고, 내 머리 위의 숫자는······.
‘1000.’
이야.
조졌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