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소녀검성-43화 (43/47)

〈 43화 〉 #043 문제아들의 모임 (3)

* * *

42.

으음~

깔쌈하게 좆됐는걸~

‘시발······.’

저 어둠 너머에서 느껴지는 살기들, 모르긴 몰라도 보통이 아니다.

여러 개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저 교수의 말대로 한 명에 한 마리인 모양인데··· 그래도 곤란하다.

왜냐고?

나는 저 중에서 가장 약한 놈에게도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나는 팔에 마나를 흘려 보내어 근력을 강화시켜 보았다.

‘대충 악력의 세기로 보면··· 옛날의 2% 정도 되려나?’

내 몸에 흐르는 마나가 그대로임에도 불구하고 근력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했다.

당연한 일이다.

마나가 그대로면 뭐하나?

내 몸은 지금 마나가 흐르는 길도, 담아내는 육체도 형편없다.

지금껏 며칠간 열심히 수련했음에도, 결국 마법 배우겠다고 깝치던 소네트의 발끝만큼도 따라가지 못하는 기본 체력임을 확인하지 않았던가.

아직 검기도 뽑을 수 없다.

검기를 버텨낼 만한 몸을 만드려면 앞으로 몇 달은 더 소요되리라.

그 때까지는, 아득바득 쥐꼬리만한 신체 강화로 버텨야만 했다.

‘···뭐, 강화를 하지 않으면 0.01%도 되지 않을 테니, 이 정도라도 감지덕지하며 써야겠지만.’

어쨌든··· 트롤처럼 크고 둔한 녀석이면 도망칠 수는 있겠는데, 저 중에 그림자 살쾡이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도망이고 나발이고 끔찍하게 두 동강이다.

트롤은 근본적으로 사지가 달린 인간의 형태다.

두 발로 서고 두 팔로 휘두르는 이상, 결국 그 거구에서 나올 수 있는 공격의 방향은 한정되어 있으며 느리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림자 살쾡이 따위의 짐승형 마수들은 그렇지 않다.

날렵하고, 방향 전환이 자유로우며··· 기초적인 근력조차 나보다 위.

그림자 살쾡이와 트롤과 싸우면 트롤이 압도적으로 이기겠지만, 내게 있어서는 오히려 인간형의 트롤이 그나마 더 쉬운 상대였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할까.’

다행히도 저 멀리서 소네트가 가장 먼저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순서를 생각한다면 역시 내가 가장 마지막.

그렇다면······.

‘다행히도 방법이 있겠군.’

아주아주 유서깊은 방법이.

‘푸흡.’

반 배정 테스트라고?

갑작스레 급조한 그 단어에 로뎀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차암. 베르투스 교관님도 서투시지. 반 배정이 뭐야?’

자신이 만든 것은 아니다.

자신이 이유를 생각해 내었더라면, 차라리 그것보다는 좀 더 유의미한 핑계를 생각해 내었으리라.

그야 그렇지 않은가.

지금 이것은 그저 이 아이들의 실력과 정체를 간파해 보려는 일개 수작질에 지나지 않았다.

저 아이들이 어떻게 싸우든 간에 그것이 반의 결정에 영향이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뭐, 베르투스의 상황도 급박했으니 이해는 간다.

당장 합격생들 중에 ‘뱀’의 끄나풀이 숨어 있는 상황이고, 당장 그것을 색출해야만 하는 상황.

학생들의 불안감을 조성시키지 않고, 외부에 티끌만한 찌라시도 흘리지 않게끔 그것을 해내는 방법은 깨나 한정되어 있었다.

‘마나를 겉으로 내보일 정도로 싸움을 붙이고, 그럴싸한 이유를 붙이는 것까지는 좋은데······.’

하필 반 배정이라니.

뭐, 아이디어는 썩 나쁘지 않긴 하다.

뱀이라면 분명 학교에서도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싶을 테고, 단번에 ‘은색 여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기회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고 싶을 테니까.

—콰아앙!

로뎀은 저 아래, 교실 중앙 폭 20m 너비의 바닥 아래에서 싸우는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저 바닥은 이 교실 외의 다른 공간과 이어져 있었다.

감옥이나 구치소라고 불러야 옳을 공간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만큼은 ‘투기장’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왜냐 묻는다면, 그야 지금 저 아래에서 일어나는 행위는 딱 그 꼴과 다를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충격에 강한 재질로 코팅되었던 벽과 바닥은 이미 몇 번에 거친 싸움으로 거칠게 깨져 있었고, 여러 사람이 흘린 피로 범벅이 된 바닥은 흉칙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지금도 싸우는 이가 있었다.

“약해. 왜 이런 걸 시키지? 이해할 수 없어.”

버드나무의 아셰카, 연녹색 머리칼의 소녀가 뇌까리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양 옆에서 푸른색 빛으로 이루어진 강철의 형상이 일렁였다.

창, 검, 도끼··· 아니, 그게 무엇이든 간에.

푸른색 빛으로 정형된 무기는 허공에 붙들려 동시에 쏘아져 나갔다.

그 맞은편에 있는 것은 거대한 트롤이었다.

푸른색의 피부를 지닌, 소녀보다 다섯 배는 클 것 같은 트롤.

그 외견의 차이가 과도할 정도로 압도적임에도, 싸움의 양상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니— 이것을 싸움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워어어어어어!!”

“더러워.”

“쿠웩!”

어른이 어린아이를 놀아주는 수준의··· 확연한 격의 차이.

아셰카는 옅게 하품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 야만한 것들은 이 정도야. 추하고, 약해빠졌어······.”

그리고 그녀가 점점 싸움에 흥미를 잃어갈수록 로뎀 교수또한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모든 싸움이 이렇듯 싱겁게 끝났다.

분명 그들의 수준에 맞게, 일반 학생들에겐 과도할 정도의 몬스터를 끌고 왔음에도 말이다.

당장 저 트롤만 하더라도 1차 입학 시험에서 쓰던 것과 동일한 종이었다.

열 명의 응시생이 힘을 합쳐도 잡을 수 있을까 말까 한 괴물.

그러나, 아셰카에게는 놀잇감조차도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정말이지이··· 마탑주 그 할망구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뭐, 로뎀 그녀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필기 시험도 완벽한 정공법으로 통과한 아셰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고양이 무리에 던져 놓은 호랑이’라서다.

버드나무의 아셰카.

즉 다시 말해— 칭호를 지니고 이미 완성된 한 사람의 마녀.

이제 갓 입학하는 학생들과는 그 격이 다르다.

그래서 그녀는 문제아였다.

애초에 그녀는 이 아카데미 같은 것에 연연할 이유가 없는 존재였으니까.

이런 문제아가 그녀 하나 뿐이면 좋으련만.

‘곤란한 아이들이라니까요오····.’

안타깝게도— 이 자리에 모인 아이들은 그녀보다 과하면 과했지, 못하진 않은 문제아들이다.

기사들이라면 이름만 들어고 무릎을 꿇을 4대 검가의 자손이 셋에, 제국에서 제일가는 부호의 외동아들, 산맥의 대전사의 후예······.

게다가 뭐랬더라, 교수를 공갈협박한 미친년이 하나랬던가.

‘참 대단한 친구에요오. 질레타 그 사람이 멍청하긴 해도 약하진 않을 텐데.’

뭐,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다.

로뎀이 맡은 —정확히는 떠넘겨진— 이 반은, 통칭 ‘특수반’이라고 불리우는 집합.

200명의 기사 및 마법 합격생 중 가장 ‘문제아’들만을 모아 놓은 집단이었다.

실력이든, 인성이든, 가문이든······.

어떤 것이 되었든 다른 아이들과 섞여 결코 좋을 것이 없는 아이들.

그리고 오히려 그렇기에 다른 아이들보다 더욱 신상의 파악이 정확히 되어 있는 아이들이었다.

문제가 많은 녀석들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뱀'과 연관되어 있을 확률은 한없이 적을 것이다.

—쿠우웅!

이윽고 트롤의 거대한 몸체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흙먼지를 날렸다.

수백 개의 마법 무기가 몸에 박힌 채였고, 트롤의 숨이 끊어짐과 함께 그것들 또한 작은 실의 형상이 되어 녹아내렸다.

아셰카는 그만큼 마법을 난사해 놓고도 전혀 타격이 없는 모습이었고 말이다.

숨겨둔 수 같은 것은 쓰지도 않았다.

“어쩜.”

확실히 다들 문제아지만 그래도 실력은 있는 모양이다.

하긴, 실력도 없는데 말썽을 일으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다만.

로뎀은 다른 아이들을 향해 눈을 돌렸다.

아셰카의 숫자는 ­500.

대략 중간에서 오른 쪽에 위치했고, 앞으로 세 명의 아이들이 남았다.

그녀가 네 번째로 강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잘잘못을 따져 보았을 때, 딱 그 정도의 위치라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잘못한 것이 있느냐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지만—

때로, 호랑이의 출현은 여우들에게 있어 그 존재만으로도 ‘문제’인 법이니.

허나 앞으로의 세 명도 썩 다른 결과일 것 같지는 않았다.

앞으로 더 강한 마수가 나오기는 하겠지만, 그들 또한 그녀보다 약하다 말하면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인재들이었으니까.

어쨌든 그녀는 이 우스꽝스러운 테스트를 감독하기만 하면 되는 위치였다.

이 문제아들은 사실상 용의선상에서 제외되어 있었고, 이 콜로세움을 구경만 하면 될 것이다.

‘그래도 저건 좀 심한 것 같긴 한데······.’

딱 하나 문제가 되는 게 있다면··· 저 ‘­1000’짜리 마수였다.

암흑 속에서 숨을 죽이며 기회를 기다리는 그것은, 마치 기쁘게 사냥을 기다리는 저녁놀의 맹수와도 같아 보였다.

긴장감도, 굶주림도, 억압으로 인한 흉폭함도 없다.

자신에게 곧 일시적인 자유가 생긴다는 것을 파악하는 지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를 수는 없다.

저 ‘대적자’들은 아티펙트, ‘대천의 천칭’으로 인해서 자동적으로 결정된 마수들.

천칭이 저 실베니아라는 소녀에게 적합한 적수라고 판단하여 결정한 것이다.

아카데미가 포획하여 시험용으로 가두어 두고 있는 마수들 중에 가장 적합한 한 마리라고 말이다.

로뎀이 알기로 저것은 이번에 준비된 마수들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일 터이나······.

‘뭐, 상관 없죠오.’

방금까지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어쨌든 저것도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그 아셰카가 ‘­500’인데 저 실베니아라는 소녀는 무려 ­1000.

아직 정확한 실력 파악조차 진행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그 말은 곧 아카데미의 합격 판정을 받을 때까지도 본 실력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는 소리.

모르기는 몰라도, 분명 어마어마한 실력자일 것이었다.

그 때.

“이봐. 교관.”

“네에?”

“이딴 걸 무슨 테스트라고 보고 있는 거냐? 좀 더 재밌는 걸 하는 게 어때.”

“흐으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걸까요오?”

“그냥 한번에 다 풀어. 나 혼자면 충분하니까.”

가장 오른쪽에 있던 은발의 소녀가 도발적인 웃음을 지으며 목을 뿌득였다.

실베니아는 저 어둠 어딘가에서 로뎀이 듣고 있을 거라 확신하며 고개를 들었다.

“어때? 어차피 의미 없다는 거 알잖아. 여기서 저딴 걸 두려워하는 머저리는 없다고. 테스트 같은 걸 하고 싶으면 차라리 우리끼리 직접 붙이던가 했어야지.”

“흐으음. 당신 실력에 자신이 가득하단 건 잘 알겠는데요~ 그건 무리에요. 규정이란 게 있답니다? 저기 보세요. 저기 늑대 친구도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나셨잖아요? 하지만 결국 한 마리만 잡았다구요.”

허공에서 스포트라이트가 하나 더 비춰 늑대 수인을 더욱 밝게 비췄다.

갑자기 밝아진 빛에 그는 불쾌한 듯 눈쌀을 찌푸렸지만, 로뎀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실베니아는 코웃음치며 대꾸했다.

“아이, 저런 허세 가득한 떨거지들이랑 나랑 같아? 봐. 저 멍멍이랑 나랑 점수 차이가 3배라고. 3배.”

“높다고 좋은 점수가 아닌데 말이죠······.”

“뭐면 어때. 당신 입으로 말했잖아? 우열을 가리자며. 방금까지의 테스트로 그런 걸 가릴 수 있었나?”

“다 채점 방식이 있답니다.”

“그딴 거, 여기 있는 누구도 납득하지 못할 걸.”

“그렇게 억지를 부리면 저희도 곤란하다구요오.”

당연히 곤란하다.

애초에 ‘뱀’을 구별하기 위한 시험, 채점기준 따위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딱, 학생들을 압박하고 실력을 보이게 만들 만한 위협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베르투스 교관님으은··· 왜 그런 핑계를 만드셔서···.’

로뎀은 할 말이 궁했다.

처음부터 이 모든 상황을 자신이 꾸렸다면 모를까, 애당초 자신은 그냥 이 문제아들을 관리감독하기만 하면 되는 입장이었다.

그냥 딱, ‘사고’ 정도만 터지지 않게 말이다.

당연히— 누군가 이렇게 따지고 들 것이라는 가정은 하지도 못했다.

그녀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글쎄요, 그런 말씀을 해도 말이죠오. 다른 분들이 동의해야 성립하는 말 아닐까요오?”

“그래? 그럼 물어보지. 너흰 어떻지? 이딴 걸 잡으라고 해 놓고, 제멋대로 납득도 안 되는 등수를 받아봐도 괜찮겠냐?”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애초에 이런 상황 자체를 상정하지 않았던 교수진이다.

이 테스트 자체가 그냥 구색만 맞추기에 불과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아이들이라면 모르겠으나, 이 자존심 드높은 문제아들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로뎀 교수는 몇 가지 대처를 생각하다가 그냥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귀찮았다.

어차피 이 문제아들을 자기 의지로 맡겠다 한 것도 아니고.

떠맡긴 다른 교수들 잘못이지 뭘.

꼬우면 지들이 하던가.

“어휴, 좋아요. 마음대로 하세요오.”

애초에 명분만 테스트지, 이 결과가 어찌 되든 알 바 아니다.

‘얘네 중에 뱀이 있을 리도 없고 뭐.’

그냥 다른 쪽이 끝날 때까지 적당히 누구 죽지 않게만 하면 될 테다.

곧, 학생들을 허공에 붙잡아 두던 빛이 사라져 전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늑대 수인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그럼. 가장 많이. 잡은 자가. 승자.인가?”

“몰라요오~ 알아서 하세요오. 이 문제아들.”

“········.”

이미 그 목소리에 의지는 없었다.

목소리가 묘하게 멀어진 것으로 보아, 그냥 다 때려치우고 어딘가 누워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철컹, 철컹.

어둠 너머에서 강철의 해방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여러 개의 살의가, 여러 개의 기척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좋다.”

“...귀찮게.”

퍽 큰 위협이겠지만··· 그들 중에 싸움을 피하는 이는 없었다.

각자의 이유는 다를 것이다.

명예가 되었든, 성적이 되었든, 자존심이 되었든, 싸움을 피할 이유가 없든 간에.

하지만 딱 하나, 긴 은발의 소녀만큼은 검을 뽑아들지 않고 뒤로 물러나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무릎에 팔꿈치를 괴며, 빨리 안 가고 뭐하냐는 것처럼— 자신에게 향한 시선들을 돌아보았다.

한 편으로는 어이없고, 한 편으로는 불쾌하다는 듯한 시선들.

그들을 대표하여 갈색 머리의 청년이 나섰다.

실베니아의 옆에 있던, 문제아 등수로 따지면 3등이었던 청년이었다.

인상을 잔뜩 구긴 그는 아까의 상태보다도 더욱 기분이 나빠 보였다.

“넌 뭐하는 거지?”

“내가 저런 거 때문에 힘들게 칼을 들어야겠어?”

“그게 무슨 헛소리···.”

“난 저딴 허접들이랑 안 싸운다. 시간 아깝잖아.다 치우고 이긴 놈만 들어와. 반으로 접어 줄 테니까.”

아니면, 저딴 것도 못 잡는 네가 더 허접일수도 있고.

실베니아는 그렇게 덧붙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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