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소녀검성-45화 (45/47)

〈 45화 〉 #045 문제아들의 모임 (5)

* * *

44.

약육강식. 강자가 취하고 약자는 빼앗긴다.

아주 단순하고 절대적인 뒷세계의 법칙이다.

어릴 적, 가장 첫 번째 기억부터 뒷골목에서 시작한 데울은 그 법칙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음습한 땅의 규율은 어린아이라고 한들 비껴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달콤한 먹잇감처럼 목을 죄여온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단순한 이유다. 어린아이는 약하니까.

그렇기에 그들은 착취당하고, 이용당하며, 끝끝내 버려진다.

그 과정에서 말 이룰 수 없는 폭력과 억압이 행해진다고 해도 변변찮은 저항 하나 해볼 수 없다.

그 ‘어린아이’라는 단어를 다른 무언가로 바꾸어도 그 명제는 언제나 성립했다.

설령 어제까지 잘 나가던 카르텔의 보스라고 하더라도 명제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곳에서 약함이라는 건 상대적인 개념이니까.

아무리 본신의 무력이 강하고, 아무리 강력한 유대로 이어진 카르텔을 꾸린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강한 적이 나타나게 되면 그것은 결국 ‘약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매일매일을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며, 어느날 갑자기 죽으면 그것으로 끝.

그렇다면 그곳에서 살아남는 데에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이겠는가?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은 아니다.

사람마다 중요히 여기는 가치가 다르니, 이 질문의 대답 또한 달라지리라.

누군가는 그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을 무력이라 말할 수도 있겠고, 누군가는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상대와 나의 차이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말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 소년 데울의 대답을 꼽자면—

바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것.’

완벽하게 어둠에 녹아들어 기척과 존재감을 완벽하게 지워내는 것이야말로 소년이 생각한 제일의 능력이었다.

들키지 않으면 싸울 일도 없다.

싸우게 되더라도, 기습이라는 전법은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도 극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것이 이 소년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그 어둑한 구렁에서 기어올라와 이 자리에 서 있게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반응이 없군. 역시 속임수였나.’

데울은 실베니아의 근처 3m까지 접근했지만 실베니아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 거리라면, 굳이 찌를 것도 없이 단검을 던지기만 해도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거리다.

한데 여기까지 와서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반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응하지 못 하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뭐, 죽이지는 않겠지만······.’

데울은 벌써부터 교수들에게 밉보이고 싶은 멍청한 생각은 없었다.

그러잖아도 ‘문제아’랍시고 이곳까지 끌려왔으니 뭐.

딱 저 년의 속임수를 깨서 누가 위인지 가르쳐 주는 것.

그 정도면 될 것이다.

어느덧 데울의 위치는 실베니아의 바로 등 뒤까지 다가섰다.

기술은 완벽했고, 그녀는 여전히 눈치채지 못했는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그리고 단 한 번.

데울의 망설임 없는 칼끝이 허공을 갈랐다.

—그러나.

“어?”

당혹스러운 결과에 데울은 저도 모르게 목청을 울렸다.

수 천 번 수 만 번 반복한 칼질이었다. 이 동작을 소년이 몇 번이나 반복했겠는가.

실수할 리도 없고, 거리가 모자랐으리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소녀의 은빛 머리카락은 그저 바람에 흔들린 것처럼 흔들거릴 뿐이었다.

잘려나가지도, 소녀의 피부에 상처가 남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뭔가에 막혔는가?

아니, 그 또한 아니다.

실수는 아니었거니와, 착오도 없었고, 방해도 없다.

‘그렇다면 이건—’

“뭐 하냐?”

“······!!”

서늘하게 뒤 돌아보는 실베니아와 데울의 시선이 부딪혔다.

데울은 반사적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왜? 하던 거 마저 해 봐. 해 보니까 자신이 없어졌냐?”

“····그럴 리가 없다. 머리카락에까지 마나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네가 못 한다고 모두가 못 하는 건 아니란다. 꼬맹이.”

그녀의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신에 차 있었다.

아까의 아가페 가 소년을 대할 때처럼 어디 해 볼 수 있으면 해 보라는 투다.

‘그래, 못 할 것 없지.’

언제는 계획대로 일이 돌아갔던가?

데울은 도발을 듣고 곧이곧대로 넘어가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굳이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딱히 목숨이 걸린 일도 아니고 안전은 교수가 보장해 주는 상황이다.

지금 싸워서 진다 해도 잃을 것은 자존심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한 번이라도 싸워 보는 것이 즐겁겠지. 하지만·····.’

그러나 데울은 좀처럼 칼을 다시 바로잡을 수가 없었다.

‘····이토록 짙은 살기라니. 대체 저건··· 뭐냐?’

데울은 지금껏 살아오며 수많은 악의를 경험했다고 생각했다.

그것들을 잊을 생각은 없었다. 그 많은 고난의 끝에 지금의 자신이 서 있는 것일 테니까.

그리고 그 고난들로 인하여 데울은 자신을 감추는 것 뿐만 아니라, 상대방과 자신의 격차를 파악하는 방법까지도 익히고 있었다.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

이길 수 없다면 숨어야만 하는지.

숨을 수조차 없다면 어찌 해야만 하는지.

그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한 줄의 사고가 되어 처리되었다.

그 결과, 그의 모든 감각이 저 소녀는 자신보다 약하다. 그리 말하고 있었음에도.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모든 오감보다도 예민한 감각은 바로 ‘죽음의 감각’이었다.

보다 정확하고 뚜렷하게 말하자면 ‘살의를 느끼는 감각’이라고 말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바로 그것이 그의 발목을 묶어놓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넘쳐흐르고 있음에도, 저 소녀가 내뿜는 살기 탓에 몸이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를 앞에 두고 내뿜는 듯한 지독한 살기다.

부모의 원수에게나 이런 살기를 내보일 수 있을까.

살기가 칼날이 되어 찌르는 것 같은 따끔따끔한 감각에, 데울은 눈을 흘기며 소녀를 바라보았다.

‘놈에게 아직 무기는 없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이 상황, 어떤 변수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직 선공권은 자신에게 있었다.

데울은 섬전처럼 품 속의 단도로 손을 가져갔다.

꺼내는 것은 세 개.

양 쪽에서 몰아치면서 허점을 찌르면, 설령 놈의 실력이 진짜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가능성이—

—콱!

···있었을 터인데.

데울은 품 속에서 허무하게 붙들린 자신의 오른손을, 그리고 그 팔에서 이어지는 새하얀 손을 바라보았다.

그 손의 주인은 그의 뒤에서 그를 붙든 채 어깨 너머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플레타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하하, 죄, 죄송합니다. 얘가 좀 못 배워먹은 놈이라서··· 실례를 좀, 했네요···.”

“놔라. 프리드웬. 저 년은··· 저 년은 지옥에서 기어올라온 악마거나, 하늘이 낳은 사기꾼. 둘 중 하나다.”

“입 다물어. 제발.”

“놔라.”

“네 말대로 힘으로 풀든가. 가만 있어. 좀!”

“······.”

데울은 어떻게든 저항하려 팔에 힘을 주었지만 플레타의 손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로, 약간의 미동조차 없었다.

어쩌면 이대로 그녀가 꽉 껴안아 버리면 몸이 으스러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가만히 있을 테니 풀어 줘.”

“풀어 주세요.”

“···풀어 주세요.”

“좋아.”

플레타는 잠깐의 실랑이 끝에 그의 손목을 놓아 주었다.

설마 한 번 실패한 것을 두 번이나 시도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녀가 보기에 실베니아는 엄청난 실력자.

데울도 썩 나쁘지는 않지만, 온 몸을 강기로 두르는 그녀를 이길 수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플레타가 데울의 손목을 놓은 바로 그 순간.

데울은 활시위를 빠져나간 화살처처럼 바람을 가르고 쇄도했다.

플레타가 그의 손목을 잡은 시점부터 실베니아의 살기는 조금이나마 풀려 있었다.

그리고 데울의 본능은 여전히 자신이 실베니아를 이길 수 있으리라 확신한 채였다.

“야, 너 정말····!!”

“미안하다. 프리드웬.”

두 사람의 시선이 엇갈리고, 찰나의 순간을 가르며 데울의 단검이 실베니아의 목을 향했다.

‘하지만 저게 진짜일지··· 확인해 볼 수 밖에 없지 않냐!’

피하지 않으면 죽는다.

막아내지 못해도 죽는다.

미적지근한 장난 따위 없이 이번에는 진심을 담은 일격이었다.

실력이 진짜라면 어떻게든 대처할 것이다.

허울 뿐인 거짓말쟁이라면, 자신의 생각이 옳았노라 확신을 얻으리라.

어느 쪽이든 자신은 잃을 것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아앙!!

강하게 맞부딪힌 강철의 소음이 검은 공간을 가득 울려 메아리쳤다.

데울의 검은 눈동자가 희미하게 떨렸다.

이 변수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로, 어둠 저편에 남겨진 것들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저곳에 존재하던 악의의 결합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 남아 있던 다섯 체의 마수는 전부 찢겨진 고깃조각이 되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꺼져라.”

이윽고,안쓰럽게도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던 아가페의 귀공자는 기분 나쁜 듯 인상을 구기며 일갈했다.

“이건 내 상대다. 버러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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