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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소녀검성-47화 (47/47)

〈 47화 〉 #047 교권이 바닥에 추락했어 아주(2)

* * *

46.

실례되는 말이지만, 나는 한순간 이런 가설까지 세우고 말았다.

혹시 이 아카데미의 교수진을 채용하는 기준 중, ‘일정 수준 이상으로 미친놈일 것’ 같은 기준이 있지 않을까?

아니, 그냥 가설이라 부르기에는 상당히 타당한 추론 아닌가.

하지만 다행이라 해야 할지, 로뎀 교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요오. 안타깝게도 시간이 다 되었지 뭐에요오.”

“뭐라고?”

“으음~ 안타까운 일이에요. 안타까운 일이에요오······. 하지만 괜찮아요. 시간은 앞으로 몇 년이나 있지 않나요오~”

타캉.

그녀의 지팡이 소리가 맑게 허공에 울렸다.

황금색 냇가를 저어내는 사공처럼, 바닥 위로 호선을 그을 때마다 금빛의 파동이 퍼져나간다.

공간에 자신의 마나를 새겨넣는 행위.

무엇을 하려 하는지는 명백하다.

데울과 제레딘은 납득하지 못했는지 서로에게 다시금 칼끝을 향했지만, 어느샌가 허공에서 뻗어나온 나무덩굴에 붙잡혀 꼼짝도 하지 못했다.

“······!!”

“망할 년이!”

“안 되요. 안 되요오. 수업시간은 이미 끝났다구요. 저는 받은 만큼만 일하는 여자랍니다. 초과근무는 사양이에요오.”

저리 유해 보여도 교수는 교수.

특히나, 마법학과의 젊은 교수라는 것은 세계 제일의 천재 중 하나라는 의미다.

제레딘은 쌍검을 휘두르며 나무덩굴을 끊어내려 하고 있었지만, 무한히 반복해서 뻗어오는 덩굴을 전부 막아내지는 못했다.

결국 녀석은 거의 애벌레의 고치에 가까운 형태가 되어 버둥거렸다.

“뭐, 제 입장에서는 여러분 싸움을 계속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오, 그건 저 위의 다른 분들도 흥미로워 하는 주제겠지만요오······.”

로뎀은 아가페에게 그리 대꾸하며 힐끗 위를 쳐다보았다.

저 위에 지켜보는 놈들이 있었다.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하니 다들 교수··· 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

언제부터 지켜보고 있었는가 싶었지만, 로뎀은 대답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시간이 다 됐답니다. 다음에 계속 해 보는 걸로 하죠오.”

싸우는 놈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교수들 마음대로 이곳에 끌어모았으니, 끝내는 것도 저치들 마음대로다.

꼬우면 학생 같은 걸 하지 말았어야지.

로뎀은 그런 웃음을 지으며,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살짝 튕겼다.

동시에 퍼져나오는 것은 강렬한 황금색의 물결.

공간이 일그러지는 거지같은 감각과 동시에, 주변에 있던 학생들의 모습이 하나둘 없어지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것도 귀찮다는 양 먼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아셰카부터, 영문을 몰라 하는 소네트··· 그리고 이젠 고치를 넘어 거의 공처럼 변하고 있는 저 머저리까지.

그리고 잠시가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이 장소에 남아 있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야. 나는?”

“실베니아 양으은··· 잠깐만 좀 남으셔야겠는데요오.”

“···뭔데?”

“금방 끝나요~ 이것만 전해주면 되는 문제라서어.”

로뎀은 느긋하게 웃으며 품에서 푸른색의 편지를 꺼내 내밀었다.

아카데미의 황금색 인장이 찍혀 있는 편지.

모르기는 몰라도, 결코 나쁜 내용이 들어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뭐, 거창한건 아니에요오. 우리 모자란 질레타 교관이 싸질러 놓은 걸 치우러 온 것 뿐이라서.”

내가 그것을 받아들자 로뎀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아카데미는 능력지상주의를 표방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의 규칙이라는 게 있답니다아. 이번 건은 교수들의 책임이 있으니 넘어가지마안, 앞으로는 그렇게 제멋대로인 행동은 조금 자제해 주세요오.”

“고려해 보지.”

제멋대로라니?

누가 들으면 맘대로 깽판이라도 치고 다니는 줄 알겠다.

나는 어디까지나 정해진 룰 안에서 최대한 열심히 사는 것 뿐인데, 이것 참.

나는 입맛을 다시며 곧장 편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이런 것 곧장 확인해야 하는 법이다.

그냥 받고 넘겼다가 뒷말이 다르면 어떻게 할 방법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허, 역시나.

“내기 내용이랑 좀 다르지 않나?”

“당신이 요구했던 ‘카탈로그의 모든 것’을 들어주기에는 일정이 곤란해요오··· 당장 수업도 있고··· 그래서 이것저것 타협해서, 네 가지 정도로 합쳐 봤답니다. 그래도 아쉽지는 않을 거에요.”

‘아쉽지는 않다라.’

우스울 정도로 당연한 말이다.

카탈로그에 있었던 거라고 해 봤자 학생들 레벨에서나 혹할 만한 것들.

그걸 다 바리바리 싸 들고 와도 내게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마는 정도의 물건들이다.

당연히 안 아쉽다.

기대를 해야 실망을 하는데, 기대를 한 적조차 없으니까.

어쨌든 세 개의 항목을 살펴보자면··· 뭔가 조항은 많은데 결국 이 소리였다.

아카데미가 보관하고 있는 영약 한 개.

오더 메이드 무기 한 자루.

승급을 위한 추가점.

‘영약은 뭐 많을수록 좋은 거고··· 무기야 솔디어한테 부탁하면 되겠지만, 뭐 아무래도 좋고···. 추가점은 그래, 나쁘지 않군.’

내 심드렁한 표정이 너무 드러났던 탓일까, 로뎀은 입술을 삐쭉 내밀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사실이 그런데.

“아, 추가점을 주는 방식이 조금 특이한데··· 없는 조항으로 특혜를 줄 수는 없어서, 결국 실베니아 양의 순위를 조금 바꿨어요오.”

“무슨 순위?”

“당연히 시험 순위죠오. 필기 시험 결과가 나왔을 텐데요?”

“그것도 나는 할 말 많은데···.”

“다른 교수한테 해 주세요. 애초에 제가 채점한 것도 아니라구요오. 어쨌든, 순위를 바꾸다 보니 다른 특혜도 딸려가게 되었고··· 뭐, 기숙사에 가서 확인해 보세요.”

로뎀은 전해줄 건 다 전해줬다는 듯이, 아까처럼 다시 지팡이로 땅을 저어내기 시작했다.

어디서 밑장 빼기야.

나는 지팡이를 멈춰 세우며 물었다.

“이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가장 중요한 게 빠졌잖아.”

이딴 혜택은 아무래도 좋다.

그걸 넣은 건 그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뭘 더 뜯어낼 만한 게 그것밖에 없어서 그랬던 거지, 굳이 내가 그게 절실해서 필요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정작 필요했던 건 따로 있었다는 소리다.

내 친구··· 아니, 그건 좀 그렇고.

그냥 아는 씹새끼 정도의 관계인 대연금술사 엘로힘.

녀석을 만나게 해 준다 했던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허나, 로뎀의 반응은 대놓고 알면서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는 것 같았다.

시선을 피하고, 말끝을 늘여 끈다.

“그건 말이죠오······ 조금 사정이 있어서,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오.”

“뭔 놈의 사정? ”

“약속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마안··· 저희도 그분의 위치를 몰라요. 그분을 만날 수 있는 분은 사실상 교장선생님 뿐이었는데, 지금은 외부로 출타 중이신지라······.”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사실인걸요오?”

제대로 풀리는 일이 하나가 없군.

‘어떻게든 해결해 줄 줄 알았는데. 어떻게든은 무슨. 안 되니까 배 째라인가.’

웃기지도 않지만, 사실 예상은 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영웅들 중 가장 만나기 힘든 인간을 찾으라면 첫번째로 꼽히는 인간은 분명히 엘로힘이 될 테니까.

직위의 고하 여부를 떠나서 그 중증 방구석 폐인 녀석은, 제국의 황제가 찾아와도 만나기 귀찮다면서 거부한 전적까지 있었다.

성황이든 대마녀든 간에 상식은 있으니, 상식적인 접견 요청을 하면 받아 주는 것이 태반이다만.

그 방구석 폐인은 아주 예외적이었다.

아무리 교수들이라도 마음먹고 잠적한 놈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내가 직접 찾는다면 모를까.

“그러면 내가 직접 찾아도 된다는 거지?”

“으음~ 그걸 문제 삼지는 않겠지요오.”

“그럼 그걸로 됐어. 교장이 먼저 오든지, 내가 먼저 찾든지 하나는 되겠지.”

“하하, 건투를 빌게요오. 마음같아서는 조금 더 현실적인 걸 추구하라고 하고는 싶지만요오. 가령 학교를 폭파시킨다거나아.”

“그래도 돼? 그게 빠를 것 같긴 해.”

녀석은 공간을 일그러트려 만든 아공간에 숨어있을 것이다.

거기가 어딘지 모른다는 게 문제기는 하지만, 이 아카데미는 온갖 공간 마법의 온상이니 뭐 하나만 제대로 폭발해도 연쇄적으로 마법이 뒤틀릴 것이다.

“미친 소리 하지 마시구요오.”

로뎀은 상큼하게 웃으며 지팡이를 다시금 쥐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폭력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해결해 주는데···.

황금색 마나가 주변을 물들이고 내 시야가 반전해 갈 무렵, 로뎀은 내 어께를 툭 치며 말했다.

“아, 그리고 실베니아 학생?”

“음?”

“다음부턴, 높임말 쓰도록 해요. 이젠 학생이라구요?”

“생각해 볼게.”

“꼭 그래 보세요오.”

생각은 뭔 놈의 생각.

널 가르친 선생보다 내가 나이가 더 많을 거다.

5층짜리 기숙사의 꼭대기 층.

나는 로뎀이 아까 말했던 ‘다른 혜택’을 손에 쥐고 복도를 거닐었다.

거창한 건 아니다. 단촐한 디자인의 황금색 열쇠.

기숙사 입구에서 사감이 쥐여 주길래 뭔가 싶었다만, 방 열쇠라는 모양이었다.

“흐음, 2인실이라······.”

5층은 방금까지 익숙하게 펼쳐지던 4층까지의 복도와 다르게 상당히 화려하고 단정했다.

그 외견에서부터 5층과 4층의 수준 차이가 여실히 느껴질 정도였다.

‘아카데미의 기숙사는 계급 별로 나뉜다고 했던가.’

동색 여우반, 시두스.

은빛 늑대반, 디아나.

황금 사자반, 솔론.

당연히 상위 계급일수록 이 산의 상부에 건물이 자리하여 더욱 호화로운 삶을 영위하고, 솔론의 경우에는 학과장까지 별도로 사용한다고 했다.

뭐, 그런 것이야 별로 알 바 아니지만··· 중요한 건 이곳에 ‘계급’은 있지만 ‘학년’은 없다는 사실이다.

‘한 학기의 입학생은 기사, 마법, 행정을 통틀어 300명.’

아카데미는 5년제이니 전교생은 1500명 남짓 되리라.

추가 입학 따위이나 자퇴 따위의 변수도 있으니 완벽하게 들어맞는 인원은 아니겠다만.

어쨌든 그 5년이 지나도록 만년 시두스인 머저리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놈들이 갓 입학한 것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이 싫다는 모양인지, 시두스 안에서도 조금 구분하여 만든 것이 이 ‘5층’이라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다 병신들인데 그 병신들 사이에서도 네가 낫네 내가 낫네 하고 있는 꼴이다.

병신들.

‘쯧,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

중요한 건, 이 열쇠를 건내받으면서 들은 사감의 말이었다.

‘원래는 룸메이트가 이미 정해져 있지만, 실베니아 양의 경우에는 특혜로 마련한 거라 다른 학생이 없어요. 혼자 쓸 수는 없으니 다른 학생이 들어가야 하지만 말이죠. 원하신다면, 다른 학생 한 분을 초청할 수 있게 하라는 교수님들의 말씀이 있었답니다.’

아마 엘로힘을 찾아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약한 보상 같은 것 같았다.

내가 놈을 끌어내기 전에 교장이 돌아온다면 따지겠지만, 그 전까지는 입 싹 닫고 이용해 먹을 수 있을 테다.

‘원하는 놈은 많겠지. 로렌스를 박아놓고 부려먹으면 제일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는 없겠고.’

남녀 기숙사를 따로 쓰는 탓에—당연하긴 하지만—차마 녀석을 여기 들여놓을 수는 없다.

결국 새로운 사람을 찾아야만 했다.

좀 심부름꾼으로 편하게 쓸 만한 누군가가 없으려나.

‘뭐, 천천히 찾으면 되겠지. 다른 놈들과 사이 안 좋고, 인간관계 파탄난 주제에 좀 더 나은 생활을 원하는 놈은 어디든지 있기 마련이니까.’

나는 그리 생각하며 방의 문을 열었다.

새삼스럽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꽤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짜잔!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1초 정도 전까지는 말이다.

“짜잔은 뭔 놈의 십··· 꺼져.”

“에이, 자, 잠깐만···악! 포, 폭력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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