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저..”
“오빠라니? 커피배달부가 아니었니?”
‘나이스한 질문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을 때.
도경은 재빨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지만, 딱히 수가 떠오르지 않고 있었는데 적절하게 누군가 그를 구원하는 질문을 던져 주었다.
“아! 오늘 알게 된 건데 저희 오빠가 선생님이 주문시킨 카페에서 일하는 알바생 이래요.”
“그래?”
도도해 보이지만 냉철한 분위기의 김미경은 옆에 있는 도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너와 달리 조금 수수하게 생겼구나.”
“헤헤. 우월 유전자는 제가 받았지요.”
그녀의 말에 도경의 표정이 자신도 모르게 부루퉁하게 바뀌었다.
‘나이스 하지만 말은 예쁘게 하지 않는 거로...’
“저는 여기 JY의 보컬 트레이닝을 맡고 있는 김미경 팀장이라고 해요. 소희 오빠 되시는 분이시라고요?”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도경을 위 아래로 한 번 살핀 김미경 팀장은 그에게 자기소개하며 손을 내밀었다.
자신을 알바생이 아닌 소희 친오빠로서 대우해주는 그녀의 모습에 도경은 커피를 담은 봉투를 내려놓고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꾸벅.
“예. 박도경이라 합니다. 저희 소희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재능 있는 아이라 잘하고 있어요.”
‘냉정해 보이지만 꽤 믿을 만한 사람이다.’
젊어 보이지만 보컬트레이닝들의 팀장을 맡고 있는 김미경을 보며 도경은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냉정하고 차가워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어려 보이는 자신에게 소희의 가족이라 예우를 차려주는 것에서 신뢰가 갔다.
부스럭.
“여기 주문하신 음료입니다. 점장님이 계산은 나중에 가게 와서 하라고 하시네요.”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수 오빠는 또 돈을 안 받으려 할 테니 여기서 계산할게요.”
‘한수 오빠?’
김미경 팀장의 말에 도경은 살짝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카페 점장 정한수의 나이는 42.
좋게 말하면 순박하고 나쁘게 말하면 깍두기처럼 보이는 그를 도도해 보이는 미인상인 김미경이 팀장이 오빠라 불렀다.
‘한수 형에게 관심이 있나?’
파동을 느끼는 감각 덕분에 예민한 감각을 지닌 도경은 그녀가 정한수를 오빠라 내뱉는 말에서 진한 호감의 감정을 느꼈다.
“이런. 내가 지갑을 사물함에 두고 왔네요. 잠시만 기다려 줘요. 15분간 휴식하자! 너희들은 각자 시킨 음료 가져가렴.”
“네!”
김미경의 말에 연습실 안에 있던 소녀들은 도경이 들고 있는 음료를 향해 몰려 모기 시작한다.
“저는 아메리카노!”
“라떼는 어디에 있어요?”
“이거다!”
“여기 커피 맛있네. 어디지?”
바글바글.
소녀들이 한창 커피 삼매경일 때. 어색하게 도경 옆에서 서 있던 소희는 도경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소근.
“오빠 이만 나는 가볼게. 레슨 받으러 가야 해.”
“응. 고마워 너 끝날 때 마중 갈 테니 좀 있다 봐.”
“헤헤 고생해.”
알바하면서도 도경이 요즘 늦게까지 연습하는 자신을 데리러 오는 오빠가 싫지는 않은지. 소희는 밝은 웃음을 지으며 연습실을 떠난다.
물끄러미.
“응?”
붉은색의 긴 웨이브 진 머리를 한 소녀가 도경을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도경을 바라본다. 소녀는 혼혈계통의 미소녀였는데 덕분에 어려 보이면서도 성숙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왜 그러니?”
“오빠가 정말 소희 언니 친오빠예요?”
“으, 응 그런데?”
부담스럽게 자신과 거리를 좁히는 이름 모를 미소녀에 도경은 살짝 주춤하며 물러섰다.
아직 드러내지 않았지만 딱 봐도 외향적인 성격으로 시끄러울 것 같은 소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헤에.”
근질근질.
저 몸속에서 꿈틀거리며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파동의 감정을 느낀 도경은 소녀를 보며 생각했다.
‘얘 크게 될 녀석이네.’
저런 파동의 유형은 지칠지 모르는 에너지로 가득했는데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데로 망설이지 않고 부딪혀 오는 특징들이 있어 피곤한 성격의 유형이기도 했다.
“혹시 소희 언니가 뭐 좋아하는지 알려줄 수 있어요?”
“응 그건 왜?”
“언니랑 친해지고 싶어서요.”
역시나 도경이 봤던 대로 감정에 솔직한 소녀였다.
“음.. 뭐가 있더라? 갑자기 말하려고 하니까 생각이 나질 않네.”
자신의 동생이 뭘 좋아하는지 갑자기 떠올리려고 하니 막상 생각이 나지 않는 도경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스윽.
“응?”
“번호 찍어 주세요.”
“뭐라고?”
그녀의 말에 도경도 놀라고 주위 소녀들도 놀라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오오!”
“수미 조금 하는데 지금 저 오빠한테 번호 따는 거야?”
“선생님한테 이를 거야!”
“아냐 그런 거!”
파닥파닥.
수미라는 소녀는 놀리는 주변 소녀들을 물러내며 도경을 재촉했다.
“오빠도 착각하지 마세요. 소희언니에 관해서 물어보려고 하는 거예요. 번호 안 찍고 뭐 해요?”
“그래...”
‘피곤해.’
남을 휘두르는데 타고난 소녀라 생각하며 도경은 그녀의 폰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전화번호를 찍었다.
딱다다닥.
스윽.
“여기”
“오빠 이름이 박도경이구나. 그럼 잘 부탁할게요 도경오빠.”
등록된 자신의 이름을 읽은 수미는 도경을 보며 함박웃음 지었다.
그녀의 웃음을 보자 가족들밖에 몰랐던 자신의 조용한 폰이 이제는 시끄러워질 예감이 드는 도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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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휴우... 저 왔어요. 한수형.”
피곤한 표정으로 카페 은하수에 들어온 도경을 보며 커피를 서빙하고 있던 정한수가 쟁반을 들어 올리며 그를 반긴다.
“어 도경아 생각보다 조금 늦었네. 배달은 잘 다녀왔어?”
“뭐 잘하긴 했는데...”
풀썩.
카운터 옆에 직원들만 앉는 의자에 풀썩 앉은 도경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톡톡!
“피곤한 게 문제죠.”
자신의 주머니에서 울리는 스마트폰을 들어 올린 도경은 메신저 앱을 열어 한숨 쉬었다.
[소희 언니 생일이 어떻게 돼요?]
[아직도 소희 언니 태권도 하나요?]
[소희 언니 사진 좀 찍어주면 안 돼요?]
자신의 동생에게 과하게 관심을 보이는 수민의 톡들의 내용을 읽은 도경을 급격하게 피곤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 톡이라는 메신저 앱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는 도경으로선 수시로 울리는 알림음에 솔직히 조금 귀찮았다.
따다다닥.
‘아. 또 오타 났다. 으으.. 너무 불편해.’
보통 가족들에게조차도 톡하지 않고 직접 전화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 톡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도경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온 톡을 무시하고 답장을 안 하자니 예의도 아닌 것 같고 자꾸 신경 쓰였기에 도경은 JY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스마트폰을 붙잡으며 톡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대로 안 되겠어. 결단이 필요해.”
따다다닥.
어느새 조금 익숙해졌는지 전보다 빠른 타자속도를 보이며 도경은 수미에게 톡을 보내었다.
[가게에 도착했어. 일해야 하니 톡은 이젠 못할 거 같아.]
‘왠지 배덕 감이 드는데?’
글로써 상대방을 거절하는 것은 생소한 감각에 도경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덥석!
“아?”
“호오. 전수미? 예쁜 아이잖아. 톡도 하지 않던 녀석이 톡 하길래 보니까 역시나 여자아이였구나.”
“이리 내놔요.”
“하하하. 건방지게 가게에서 톡을 한 대가다.”
도경의 스마트폰을 빼앗아 톡의 내용을 읽던 정한수는 경멸의 표정을 지었다.
“동생을 빌미로 여자를 꾀다니. 도경이 너 성실한 줄 알았는데 음흉한 데가 있었구나.”
“걔 미성년자에요.”
“뭐?”
정한수는 다시 전수미의 프로필의 사진을 보고 물었다.
“이야 요즘 애들은 발육이 좋구나.”
“그래요? 저는 모르겠는데.”
“야. 1-2년만 지나도 금방 진가가 드러날 거다. 보니까 혼혈인거 같은데 역시 동서양은 섞여야 한다니까.”
감탄하는 정한수를 보며 도경이 무언가 걸렸구나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말 그대로 김미경 팀장님한테 전해줄게요.”
흠칫.
“으, 응? 갑자기 그 이름이 왜 나와?”
“걔 김미경 팀장님의 연습생이거든요. 자신의 연습생을 변태 아저씨처럼 품평하다니 그분이 많이 좋아하시겠네요.”
“윽!”
도경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정한수는 도경에게 스마트폰을 되돌려 주며 당황한 웃음을 지었다.
“배, 배달 다녀오느라 도경이 많이 힘들었지? 뭐 음료 만들어줄까?“
“그보다 김미경 이라는 분하고 무슨 사이에요? 형을 오빠라 부르던데.”
“뭐 친한 동생 사이지.”
“그래요? 그러기에는 좀 더 뭐가 있는 사이인 거 같던데?”
“실없는 소리 하지 마라. 개랑 나랑 나이 차이가 얼마인데 정말 그냥 친한 친구 사이야.”
그의 강한 부정에 도경은 눈을 게슴츠레 떴다.
“흐음. 김미경 팀장님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던데...”
“뭐라고?”
도경의 말에 고개를 돌린 그는 좀 더 자세히 말해보라는 듯 눈에 힘을 주고 도경을 바라보았다.
도경을 평상시에 보통 녀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정한수는 그의 말을 쉽게 넘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 미경이가 왜?”
“형. 제가 눈치 되게 빠른 거 아시죠?”
“알지. 그러니 내가 평범하게 생긴 너를 알바로 뽑은 거 아니겠니.”
꿈틀.
“......”
정한수의 외모 괄시의 발언에 도경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이 세계에서 잘생긴 얼굴의 소유자 카일로 살았던 때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살짝 감정이 상해 버렸다.
‘그러고 보니 김미경 그 여자도 내 외모를 수수하다고 깎아 내렸지.’
보아하니 정한수도 김미경에게 호감을 지닌 것 같아 도와주려 했건만 공교롭게도 두 남녀 다 자신의 외모를 콕 집어 지적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형.”
“응응. 그래 말해보렴. 도경아.”
벌떡.
“아무것도 아니에요.”
“뭐, 뭐라고? 임마! 왜 말을 하다 말아. 이리 안 와?”
“설거지 하러 갑니다.”
도경은 기가 막혀서 날뛰는 정한수를 보며 미소 지었다.
‘두 분 다 고생하세요. 그러게 말 좀 예쁘게 하시지.’
지나가다 거울로 자신을 바라본 도경은 눈썹을 찌푸렸다.
“나쁘지 않구만. 깔끔하고 담백하게 생겼는데 어디가 평범하데?”
언어의 연금술을 시전 하는 도경은 콧김을 힘차게 내 뿜으면서 카페 일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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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18500원입니다.”
“여기요.”
“영수증 드릴까요?”
“아뇨 버려주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마지막 커플 손님이 나가는 걸 확인한 도경은 쟁반을 들고 그 커플들이 앉아있는 곳으로 걸어가 자리를 치우기 시작한다.
슥슥.
“형 슬슬 한산해질 시간인데 저녁이나 먹죠.”
현재 시각 딱 10시.
늦은 시각이지만 몰려드는 손님들 덕에 배가 허기진 도경은 카페 점장인 정한수를 향해 은근한 눈빛을 쏘았다.
“흥! 나는 배고프지 않은데? 저기 샌드위치나 네가 직접 만들어 먹어라.”
‘참 이 형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귀엽게 노네.’
“흐음 맛있는 밥 먹으면 김미경 팀장님에 대해서 뭔가 생각날 거 같은데...”
움찔.
입질이 오는 것을 느낀 도경은 정한수를 향해 확인사살을 하였다.
“김미경 팀장님이 뭐라고 했더라...”
“하하하. 오랜만에 힘 좀 발휘해 볼까?”
카운터를 지나 주방으로 들어가 프라이팬을 붙잡은 정한수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극락의 맛을 보여주지!”
푸화확!
다양한 요리 자격증을 섭렵한 정한수의 요리 실력이 수준급이라는 것을 알려 주듯 얼마 지나지 않아 맛있는 냄새가 가게 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입이 호강하겠군.”
그의 요리를 어쩌다 맛본 단골들 모두 두 손 치켜들고 칭송할 정도니 도경이 기대할 만 하였다.
딸랑!
우르르르.
“여기 특이하다.”
“어른들만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시끌시끌.
위에서 소란스러운 소리와 여러 발자국 소리를 들은 도경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참 타이밍하고는...”
여유롭게 밥을 먹고 싶어 허기를 꾹 참고 일부러 한산한 시간에 저녁을 먹으려고 한 것인데 위에 내려오는 손님이 도경의 소망을 다 망쳤다.
“어서 오세요.”
하지만 도경은 일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는 프로. 그의 얼굴은 손님이 왔다는 것에 대해 기쁘다는 미소만이 가득하다.
방긋.
평범한 알바생들이 의무적으로 하는 인사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수준급의 미소였다. 눈까지 휘게 만들어 진심처럼 느껴지는 그의 미소는 어디를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미소였다.
“어! 커피 배달 왔던 변태 오빠다.”
스르르.
제일 먼저 계단을 내려와 문을 덜컥 열었던 금발의 소녀가 도경을 가리키며 외쳤다. 발음이 부정확한 거로 보아 한국인이 아닌 일본 아니면 중국계의 외국인인 것 같았다.
뒤에 귀에 익은 목소리와 얼굴을 한 미소녀가 도경에게 손을 번쩍 들며 인사를 건넨다.
“도경 오빠. 우리 왔어요!”
“수미? 네가 여길 왜?”
꾸벅.
“다시 보네요. 소희 오빠 분. 그런데 한수오빠 안계시나요? 안 보이네요.”
보컬 트레이너 김미경 팀장은 도경에게 인사를 하며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정한수를 찾기 시작한다.
‘연애사업 때문이었군.’
“아 점장님 지금 요리하고 계세요. 지금 저녁 식사 하려고 했거든요. 일단 들어오세요.”
10명이 넘는 소녀들 덕에 도경은 여러 테이블을 붙여 자리를 만든 후 열심히 요리를 하던 정한수를 향해 손님이 찾아온 것을 알렸다.
“형. 김미경 팀장님하고 연습생들이 손님으로 왔어요.”
“뭐? 미경이가 왔다고?”
타다닥.
밥을 볶다 말고 그녀에게 후다닥 튀어나가는 정한수. 이를 내다보던 도경은 울상 지었다.
화르륵!
치이이익.
“아, 내 밥 타잖아..”
프라이팬에 자신의 저녁 식사가 타는 것을 목격한 까닭이다.
꼬르르륵.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