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타닥!
“자! 많이들 기다렸지 식사 들 하자.”
“와아아! 잘 먹겠습니다.”
손님을 맞이하는 정한수는 가게 문을 일찍 닫고 도경의 힘을 빌려(재촉하며) 30분 만에 뚝딱 요리를 해왔다.
모락모락.
식탁에 크림,토마토,알리올리오 세 종류의 파스타와 알록달록한 피클 그리고 디저트로 버터를 바른 구운 식빵 옆에 찍어 먹으라고 치즈 크림과 생크림이 놓여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맛있는 식단에 모두가 기쁜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밥이 좋은데...”
꾸욱!
“윽!”
“많이 먹으렴. 도경아.”
“네 형.”
도경의 작은 투덜거림을 들은 정한수는 그의 발을 지그시 눌러주며 도경의 접시에 파스타를 담아 주며 그를 노려보았다.
소근.
“분위기 파악하지?”
후루룩!
쩝쩝!
“맛있다! 진짜 맛있어요 점장님. 선생님 말씀대로 요리 진짜 잘하시네요.”
반들반들한 이마와 앞니가 인상적인 귀여운 소녀가 정한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하하하. 연습하느라 많이들 힘들었을 텐데 맛있게 먹으렴.”
“네 잘 먹겠습니다!”
아빠 미소를 보이는 정한수를 보며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던 김미경 팀장은 트레이너로서 아이들을 향해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들! 먹고 곧바로 잠자지 말고 가벼운 운동하고 자렴. 내일은 식단조절 하고 말이야.”
“네~!.”
체중에 관련된 잔소리에는 이골이 나 있는 연습생 소녀들은 익숙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여 대답한다.
다들 행복에 겨워 밥을 먹고 있을 때 도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다들 연습이 일찍 끝났나 봐요. A반만 그런가요? 소희네 반은 아직 연습 중인가요?”
우걱우걱.
“소희 언니는 자유 연습 중일걸요? 레슨이 일찍 끝나도 언니는 매일 혼자 남아 연습하니까요. 정말 우리 언니는 지독한 연습벌레라니까요.”
“언제부터 우리 언니가 된 거냐?”
“곧 될 거니까요. 히히히.”
전수미의 소희 사랑에 도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소희 녀석 대체 얼마나 활약했으면 저 녀석 상태가 저 지경인 거야?’
수미가 소희를 저리 열렬하게 동경하는 것은 소희가 2년 전에 참가했던 태권도 대회 때문이었다.
다이어트로 시작했지만, 태권도에 푹 빠졌던 수미는 성차별을 없애자는 취지로 열린 남녀 무차별 청소년 대회에 참가한다.
수미는 여자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참가했지만 아쉽게도 광속으로 예선 탈락.
그 후 대회는 의도와 달리 남자만 우승을 하며 성차별을 예기치 않게 더 발생시키는 상황에 대회관계자 들은 욕이란 욕을 다 먹고 있었고 사태를 어떻게든 타파하고 싶지만 딱히 수가 없어 식은땀을 흘리며 발을 동동 굴리는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한 소녀가 망해가는 대회를 구원하기 시작한다.
그게 바로 도경의 여동생 박소희였다.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결승에서 자신보다 3살이나 많은 19살의 남자를 상대로 박빙의 승부를 펼쳐준 명경기는 모두에게 감동을 주며 대회는 성황리에 마쳤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운동신경도 좋았지.’
어렸을 때 같이 태권도 도장을 다녔던 것을 떠올린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자신의 여동생이 은근 완소녀라 생각이 들었다.
운동신경뿐만이 아니라 학업도 뛰어났고 연예인이 된다고 설칠 만큼 171cm의 신장에 훌륭한 비주얼을 지니고 있다.
오늘 저 앞에 있는 수미 덕분에 자신 안에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여동생이었다.
그러다 문득 연예인으로서 자신의 동생의 구체적인 실력이 궁금해지는 도경은 김미경 팀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김미경 팀장님. 저희 소희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요?”
“음...”
도경의 사심 없는 표정에 김미경 팀장은 고심에 잠기다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주기로 결정했다.
“배운지 얼마 안 됐는데 솔직히 말하면 매우 우수한 편이에요. 운동신경도 좋아서 춤도 빨리 배우고 사실상 b클래스에서 상위에 속하죠. 다만...”
“노래인가요?”
끄덕.
그녀가 말한 것을 제외하면 남는 것은 노래밖에 없는 것을 안 도한은 그녀를 향해 짤막이 물었다.
“기술적인 문제인가요? 아니면 심리적인 문제?”
“그거야!..응. 도경씨 예전에 노래 배우셨나요? 꽤 날카로운 질문을 하시네요.”
보통 사람들은 가창력을 물으며 노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묻지. 문제의 요인을 묻지 않는다.
그런데 도경은 태연한 표정으로 중요한 것을 묻는 것이다.
“아. 뭐 그렇죠.”
물끄러미.
얼버무림 가운데 묘한 자신감이 담겨있는 도경의 말에 김미경은 도경을 유심히 살폈다.
‘지금 보니까 듣기 좋은 목소리 톤이야.’
평범한 인상이라 자각을 하지 못했는데 김미경은 도경의 특이한 점을 발견하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눈빛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차분하고 은근 분위기가 있네.’
10년간 여러 스타들을 봐왔고 옆에서 트레이닝을 도우면서 알게 모르게 감이 생긴다. 도경은 김미경의 그런 감각을 자극하는 묘한 면이 있었다.
“도경 씨 나이가 어떻게 되죠?”
“네? 22살인데 갑자기 왜 나이를?”
“전공은?”
“고졸이라 전공이라 할 건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걸 물어보시는지?”
갑작스러운 호구조사에 도경은 표정을 찌푸렸다.
자신은 그녀의 밑에 있는 연습생이 아닌 엄연한 성인이다. 이러한 일방적인 질문을 받고 대답해줘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도경의 그런 기색을 파했는지 김미경이 살짝 당황하며 서둘러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아 제가 실수했네요. 도경씨 미안해요.”
‘내가 왜 이러지?’
평상시라면 하지 않는 실수에 자신도 살짝 당황한 김미경을 향해 도경이 그녀의 사과를 받았다.
“괜찮습니다. 그냥 갑작스러워 그랬어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신경 쓰지 말라 했지만, 더욱더 신경 쓰이는 김미경이다.
‘저 묘한 분위기가 자꾸 신경 쓰여!’
말로 표현 못 하겠는데 무언가 이질적이다.
정말 평범해 보이는데 그 아래에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 김미경은 도경을 알아가고 싶어졌다.
“다름 아니라 도경 씨 목소리도 좋고 왠지 느낌이 좋아 관심 가서 물어봤어요. 혹시 가수에 관심이 있나요?”
“네?”
“관심 있다면 오디션 받지 않을래요?”
갑작스러운 김미경의 폭탄 제의에 모두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헐. 대박! 지금 선생님이 직접 도경 오빠한테 오디션 제의한 거야?”
웅성웅성.
“그렇게 좋은 목소리였나?”
“뭐지?”
전수미는 도경과 김미경 두 사람을 좌우로 번갈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김미경 팀장이 누구인가?
JY 엔터테인먼트에서 신임받는 보컬트레이너이자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너들의 팀장 자리를 맡고 능력 있는 여성이다.
그녀의 트레이너로서 혹독함과 수준 높은 눈높이는 이미 사내에 정평이 나 있는 바.
그런 그녀가 목소리만 듣고 도경에게 개인적인 오디션 제의를 건넨 것은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
‘뭐지 이 여자? 감이 좋은 건가?’
자신을 바라보는 김미경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기대와 확신으로 차 있었는데 도대체 오늘 처음 본 자신을 뭘 믿고 저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도경은 조금 황당해 했다.
스윽.
“여기 제 명함이에요. 제가 오디션 직접 볼 테니 생각 있으면 부담 없이 연락 주도록 해요.”
명함을 건네는 김미경을 바라본 도경은 손을 뻗어 그녀의 명함을 집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노래할 생각이 나면 연락하겠습니다.”
‘역시.’
도경의 긍정적인 대답에 김미경은 그가 가수의 관심 있다는 것과 노래에 자신 있다는 것에 확신을 가졌다.
노래할 생각이 나면 연락한다는 말은 자신의 실력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지 않은 이상 그런 대답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나 혼자 착각한 것일 수 있지만 뭐 손해 보는 일은 아니지.’
신내림 받은 것처럼 무언가 꽂히는 감각은 이쪽 업계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그게 자신에게 내려온 것이고 대박일지 쪽박일지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도경에게 달려 있었다.
“이야 미경이 촉 좋은데 언제 한 번 도경이랑 노래방 가서 노래 불러봐야겠네.”
“남자 둘이서 노래방 절대 안 갑니다.”
“뭐야?”
“깔깔깔!”
정한수와 도경의 만담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리며 즐거운 저녁 식사를 마저 먹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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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도경은 늦게까지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동생을 마중하기 위해 JY엔터테인먼트 트레이닝 사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저벅저벅.
“도경 오빠 오디션 받을 거예요?”
“...”
“노래 잘해요? 어떤 노래 좋아해요?”
“....”
“소희 언니보다 잘해요? 한 번 들어봤는데 선생님이 깐깐해서 그렇지 노래도 되게 잘해요 소희언니.”
“......”
“원래 이렇게 매일 마중하러 가요?”
우뚝.
옆에서 한시도 쉬지도 않고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떠드는 수미 때문에 잠시 걸음을 멈춘 도경은 홱! 하고 옆에 있는 수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수미야. 자꾸 그렇게 떠들면 소희 소개 안 해준다.”
“합!?”
이상한 소리를 내며 자신의 입가를 막은 수미는 도경을 향해 초롱초롱한 눈빛을 발사한다.
“에휴. 조용히 하고 가자. 온종일 일해서 지금 피곤하단 말이야.”
“네 오빠.”
모두가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는 와중 도경을 따라나선 수미는 오늘의 인연을 핑계로 그에게 소희에게 자신을 소개해 달란 부탁하며 자신을 따라 나섰다.
“근데 너 차 시간은 괜찮니?”
“괜찮아요. 맷이 저 데리러 올 거라 했어요.”
“맷?”
“아 제 아빠 이름이에요.”
“너희 아버지도 고생 많으시네.”
밤늦게까지 연습하며 하루를 끝내는 연습생 사정상 부모들도 나름대로 고생을 해야 했다. 남자면 상관없지만 예쁜 딸을 가진 부모는 더욱 말이다.
도경이 소희를 마중 나가지 않았다면 지금 도경의 아버지 박호찬이 이 시간에 차를 몰고 소희를 데리러 나왔을 거다.
괜히 도경이 소희의 소속사와 가까운 곳에 일하는 게 아니었다.
“헤헤 언젠가 데뷔해서 맷한테 용돈 드릴 거예요.”
“그래그래 기특하네.”
쓰담쓰담.
“...”
어린 소녀치고 기특한 목표에 도경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수미의 얼굴이 어느새 붉어져 그와 얼른 떨어져 호들갑 떨기 시작한다.
“뭐,뭐,뭐! 하시는 거예요!? 이 오빠 그리 안 봤는데 은근 앙큼하네.”
“뭐어?”
자신의 양쪽 어깨를 붙잡으며 자신을 노려보는 전수미의 모습에 도경은 기가 찼다.
“쪼그만 게 까져가지고는 그런 반응을 보이려면 좀 더 커서 오려무나.”
“제가 왜 쪼그만 해요? 하나도 안 쪼그만 하거든요?”
전수미의 키는 168.
그녀의 말대로 대한민국의 여성들 사이에서는 작은 키는 아니었다.
피식.
“남자나 여자는 키만 중요한 게 아니거든?”
“네?”
“잘 생각해 봐. 그럼 알거야?”
“...!”
화끈.
“이익, 변태!!!”
“하하하! 내 말을 알아들은 너야말로 변태 꼬맹이다!”
타다닥!
“거기서요!”
도경이 말을 뒤늦게 이해한 전수미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하고 이내 두 눈에 쌍심지를 키우며 도경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도경은 전수미의 상태를 깨닫고 도망가고 있었다.
이에 전수미는 얄미움에 도경을 때려주기 위해서 전속력을 향해 그의 뒤를 뒤쫓았다.
“헉헉헉. 아이고야. 얼마나 뛰었다고 숨이 차냐.”
뛴 지 얼마 지나지 갈비가 찔려오는 통증에 도경은 자신의 허리를 붙잡으며 고개를 숙인 채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잡았다!
덥석.
아직 도경의 몸 상태가 제 상대가 아닌 것을 여실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그것을 모르는 전수미는 도경의 옷자락을 움켜쥔 것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의 엉덩이를 힘껏 걷어차 줄 뿐이었다.
퍽!
“악! 정말 태권도 배운 애들은 발차기를 막 쓴다니까. 무도 정신 안 배웠니?”
“올바른 곳에는 힘을 써도 돼요.”
“누가 보면 내가 악당인 줄 알겠다.”
“헹! 성희롱 악당 맞거든요.”
“팩트가 성희롱이라니 참 피곤한 세상이 되었네.”
“뭐라 구요?”
“자자! 갑시다. 소희 많이 기다리겠다.”
도경과 수미 서로 실랑이를 벌이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Jy]기획사 트레이닝 사옥에 도착한 둘의 표정은 굳었다.
별로 좋지 못한 풍경을 목격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거 놓으라 했잖아요!”
“아 거 되게 튕기네.”
“낄낄낄! 빠순인 것 같은데 어차피 대줄 거 한 번 대주면 어디 덧나?”
“지금 말 다했어요?”
아무리 멀리서 보아도 다수의 남자가 한 소녀를 성희롱하는 부도덕한 상황이란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스윽!
“오빠..”
“봐라. 저거에 비하면 내가 한 건 조크 아니냐? 걱정하지 말고 여기 가만히 있어.”
“그건 아닌 듯 한데...”
“그래그래. 이 몸만 믿어.”
“......”
겁에 질려도 할 말을 하는 수미의 말을 무시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준 도경은 곤경에 처한 소녀를 구해주기 위해 몸을 풀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이거 놓으라고!”
타앗!
“어, 어?”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휘리리릭!
곤경에 처한 소녀가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던 남성의 팔을 꺾으며 그를 밀쳐내더니 도움닫기와 동시에 공중으로 몸을 날린 것이다.
퍽퍽!
공중으로 순식간에 뜬 소녀가 공중 돌려차기로 사내의 머리를 가격했다.
화려하고 깔끔한 발차기였다.
쿠당탕!
“이년이!!!”
“소희야 뒤!”
가로등 아래로 드러난 소녀의 얼굴을 본 도경이 안색이 황급하게 변하더니 그녀를 향해 소리 질렀다.
그녀의 뒤로 덩치 큰 사내가 주먹을 날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충고는 소용이 없는 상황이었다.
등 뒤가 무방비 상태인 소희가 그의 주먹을 맞은 것이다.
퍼억!
“악!”
쿠당!
“소희야!! 이런 개자식들이!!!”
타다닥!
곤경에 처한 소녀가 자신의 동생이라는 것도 깜짝 놀라고 열이 받는데 심지어 자신이 보는 앞에서 맞아 바닥에 쓰러진 동생의 모습에 도경의 얼굴은 큰 분노로 물들었다.
탁!
휘이익!
“너희들 다 뒈졌어!!”
오빠로서 분노한 도경은 절대 용서 못 할 자들을 향해 비호처럼 달려 들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