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띠리리리.
“으음!”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뿌드득!
“으어어... 죽겠다.”
잠만 자고 일어나면 심하게 굳어있는 육체 덕분에 비명을 지른 도경은 눈을 감은 상태로 고양이 자세를 유지한다.
“......”
띠리리릭!
탁!
고양이 자세를 취한 상태로 잠에 취해있던 도경은 있는 의식을 쥐어짜서 알람을 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재 시각을 확인해 보니 11시.
아침이 아니라 오후가 코앞인 시간에 도경은 놀라서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11시!?”
부엌 식탁에는 쪽지와 함께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아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은가 보네. 몸조리 잘하고 일어나면 식사하렴.]
“그러고 보니 아침에 잠깐 일어났다가 못 일어났지...”
사고의 후유증으로 무리하거나 간혹 이렇게 생체리듬이 흐트러지면 아침에 잘 못 일어날 때가 있었다.
특히 오늘 아침에 못 일어나는 이유를 추측한 도경은 의자를 끌어 위에 앉았다.
“아마도 어제 힘을 써서 그렇겠지.”
부스럭부스럭.
접시를 덮고 있는 랩을 걷어낸 도경은 자신의 엄마가 차려준 밥을 보며 수저를 식탁 위에 한 번 퉁기는 동시에 감사함을 표현했다.
탁!
“잘 먹겠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감사인사를 하였지만 그는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먹는 것은 이 세상에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먹기 위해서 살고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
단순한 사실이었지만 이를 뼛속까지 느끼는 사람이 바로 도경이었다.
꼬르륵.
“맛있겠다.”
이 세계에서 혈혈단신으로 쓰레기통을 뒤적거릴 정도로 굶주린 경험이 있는 도경에게 있어 지금 앞에 차려진 식탁은 단순한 밥이 아니었다.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식사를 하면서 느끼는 맛도 중요한 법.
도경의 눈앞에 차려져 있는 식사는 세상에서 제일 그립고 정겨운 밥이 차려져 있는 것이었다.
우걱우걱.
“역시 맛있어. 그냥 평범한 가정 식사인데 말이야.”
달그락달그락.
맛있는 밥이란 바로 남이 자신을 위해 차려준 밥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애정이 담긴 자신의 부모가 차려주는 밥이리라.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도경은 그리 생각했다.
툭!
후루룩.
“하아. 시원하다.”
카일로 살았을 때에는 보기 힘든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의 얼굴에 지어졌다. 평생을 그리워하고 원했던 식사를 했으니 여한이 없는 것이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
성공을 하면 할수록 엄습하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공허함.
굶주림에 그토록 먹고 싶은 호화로운 음식들을 아무리 탐하여도 마음 한 편에는 제대로 만족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도경.
나중에 그 날을 계기로 음악 기술에 대한 욕심을 버린 도경은 원론적인 마음을 되돌아보며 한 단계 성장해 나가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밥이란 도경에게 음악 다음으로 소중한 거였다.
투툭.
“오늘도 잘 먹었다.”
씨익.
김치찌개마저 다 마신 도경은 배를 툭툭 건드리며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늦은 아침 식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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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으읍.”
식사를 마친 후 여지없이 도경은 특이한 호흡을 유지하며 명상을 하기 시작한다.
1시간..2시간..3시간..
자신의 내부에 집중하는 순간만큼은 시간은 무아지경으로 흘러간다.
우드득.
더구나 고장 난 몸을 수복하는 과정이었으니 솔직히 이 시간은 항상 모자랄 정도였다.
띠디디딕!
명상을 시작한 지 5시간 이상이 지나고 오후 5시를 알리는 알람 소리에 도경은 천천히 호흡을 거르며 일어났다.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대충 씻고 가자.”
평상시라면 땀을 많이 흘려 샤워를 했을 테지만, 오늘 늦게 일어난 덕에 일찍 땀을 닦고 간단한 세수로 만족해야 하는 도경.
텁!
“으음 퍼펙트! 역시 모자는 시크한 블랙이지.”
씻든 씻지 않든 티 나지 않는 자신의 담백한(평범한) 얼굴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도경은 자신의 패션 센스에 자화자찬을 하였다.
머리 위에 시크한 블랙의 모자가 자신과 어우러지며 매력도+1을 증가시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도경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화룡점정 검은 마스크. 잘생김+1 추가. 역시 패션의 완성은 원판이지!”
착!
얼굴을 가렸는데 잘생김+1이 증가한 논리적인 오류를 자각하지 못한 도경은 카페 은하수 별(Star)를 향해 자신감이 담긴 발걸음을 옮겼다.
***
딸랑!
“저 왔어요. 형!”
“어. 오늘은 좀 일찍..아씨! 깜짝이야!!!”
자신을 보며 화들짝 놀라는 정한수를 보며 도경이 물었다.
“왜요?”
“뭔데? 그 범죄자 컨셉은? 도망갈 곳 없는 지하카페에 그런 복장하고 오지 마라. 심장 떨어질 뻔했다.”
“아 형. 형이 이 시크한 멋을 모르네.”
“시크는 개뿔. 내가 불혹의 나이라도 알건 안다.”
“네네. 아재랑 제 패션코드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싶지 않네요.”
뻔뻔한 도경의 말에 억울한 표정을 짓는 정한수는 카운터에 서 있는 김찬미에게 의견을 구했다.
“찬미야 도경이가 저리 우기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그래 찬미는 알겠네. 이 패션코드에 대해서 말이야.”
“네, 네? 저기 그게...”
두 남자의 부담스러운 눈빛이 자기에게 쏠리자 몸을 움츠린 김찬미는 자신의 의견을 조심히 말하기 시작한다.
“저는 패션보다 옷걸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뭐어?”
“풋, 푸하하하! 그렇지 옷걸이가 문제였네. 지금 보니까 도경이 걸친 것들은 괜찮네. 찬미한테 내가 중요한 걸 하나 배웠네.”
난데없는 잔인한 팩트를 내뱉는 김찬미의 폭격에 도경의 표정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그녀의 말에 정한수는 도경의 등 뒤를 팡팡 치면서 크게 비웃어주었다.
“도경아. 시크한 컨셉은 좋네. 좋은 시도였어! 하하하하.”
“이익!”
부들부들.
김찬미.
그녀는 청순하게 생겨 유약한 이미지와 달리 할 말은 다하는 잔인한 여자였다.
“칫. 이래서 생긴 것들은 안 된다니까..”
미남인 카일 일 때는 아무거나 걸쳐도 그림이 되었던 경험을 지닌 도경에게 있어서 패션으로 자신을 꾸민다는 감각은 생소하고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래도 나름 멋 낸 건데 도둑놈으로 오해받자 아무리 도경이라 하더라도 기가 죽는다.
시무룩.
“왕년에는 내가 말이야...”
도경은 자신의 왕년을 떠올리며 투덜거리다 주방에 있는 창고로 들어간다.
부스럭. 부스럭.
철컥!
얼마 지나지 않아 창고 안에서 가게 유니폼을 갈아입고 나온 도경.
아직도 의기소침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도경은 주방을 지나 홀로 나오자 무언가를 발견한다.
“응?”
미처 정신이 없어서 눈치채지 못한 카페의 바뀐 풍경을 발견한 도경은 손을 들어 올려 그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형 저거 지금 노래방 기계 아니에요?”
씨이익!
“짜식. 드디어 눈치챘구나. 몰라줘서 섭섭할 뻔 했다.”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이는 정한수를 바라보다 도경은 다시 가라오케가 설치되어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분명 가게 내부 흡연석 이어야할 장소가 어느새 라이브 무대로 바뀌어 있던 것이다.
“아니 하루 만에 어떻게 저걸 설치했어요?”
“돈이면 안 되는 게 뭐가 있냐? 바닥이야 그대로 살리고 음향장비랑. 그럴듯한 카펫하고 의자 2, 3개면 다 해결되지.”
“참 행동력 하나 대단하네요. 근데 갑자기 왜 라이브 무대에요?”
너무나 뜬금없지 않은가?
원래 정한수가 좀 기분파라 하더라도 하루 만에 카페 내부에 노래할 장소를 만든 것은 조금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게 어제 미경이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꽂혀서 말이야.”
“어휴..,”
“뭐 어때. 커피 향 망치는 흡연실을 원래부터 못마땅했는데 잘 됐지. 오히려 좋지 않아? 라이브 바 멋지잖아.”
도경은 40대의 나이임에도 현실을 생각하지 않는 그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갑갑함을 느끼고는 목소리를 높여 한소리 하였다.
도경으로서는 정한수가 마음에 들기에 하는 소리였다.
“형! 무슨 라이브 바가 장난인지 아세요?”
[라이브 카페]
듣기에는 로망과 낭만을 자극하는 정말 좋은 단어이다.
향긋한 커피 향과 피부를 직접 간질거리는 악기연주 노랫소리.
누가 싫어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들은 머릿속에 존재하는 달콤한 이미지일 뿐이다.
그렇게 좋다면 주변의 카페들은 전부 라이브 바를 들여다 놓았을 것이다.
한 땀, 한 땀.
비싼 기기로 가득한 스튜디오에서 공들여서 만들어낸 음악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내려받아 스피커로 틀 수 있는 요즘 현실에서 라이브 바는 망하기 딱 좋다.
그리고 라이브 바를 운영한다 하더라도 MP3에 담긴 음악보다 듣기 좋은 라이브를 부를 사람을 어디서 구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비싼 시급을 들여야 하는데 말이다.
현실적으로 터무니없이 가성비가 좋지 않았다.
“자자. 걱정해주는 건 좋은데 나도 다 생각이 있다니까?”
부스럭부스럭.
터엉!
“짜잔!”
카운터 아래에 두꺼운 종이뭉치를 꺼내 들어 탁자에 올려 둔 정한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건 또 뭐에요?”
“바로 라이브 바에 노래를 부를 사람을 구하는 오디션 전단지!”
[은하수 별(star)]
꿈을 위해 노력하는 당신들을 응원합니다.
은하수에서 노래를 불러줄 스타를 구합니다.
모집 기간:xx 월xx 일~xx 월xx 일
모집인원:(엔터테인먼트연습생) 그 이외에는 불가.
일당:3만5천 원 바로 현장에서 지급[email protected](손님들 팁)
시간:3Time [12시-14시] [17시-19시] [21시-23시]
조건:오디션테스트 합격.
연락처:xxx-xxxx-xxxx
생각보다 정성 들여서 써진 내용을 읽은 도경은 정한수가 하루 치고는 나름 고심해서 전략을 짠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좋은 생각인데요?”
적절한 시간 배치와 모집인원을 엔터테인먼트 연습생을 한정해서 구하다니.
마냥 가망 없는 플랜은 아니었다.
소속사에서 훈련받고 스타성을 나름 인정받은 인재들일 테니 라이브 바에 세워 놓는다면 무대의 질은 어느 정도 보장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많지.’
청담동에 자리 잡은 만큼 근처에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많았다.
항상 노래를 부르며 연습하는 어린 나이의 연습생들에게 1-2시간 노래를 부르고 3만5천 원이라는 일당을 일시불을 받는 것만큼 매력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괜찮은 것 같네요. 근데 이거 정말 형 생각이에요? 조금 믿기 힘들지 말입니다.”
“윽!”
저기 라이브 바에 놓인 장비들도 하루 만에 구한 것부터 시작해서 깔끔하게 디자인되어있는 전단지와 지형과 특성을 고려해 라이브를 부를 연습생을 구하는 계획까지 하루 만에 생각할 정도의 전략과 구성이 아니었다.
“크흠! 미경이가 조금 도와줬어.”
‘조금은 개뿔 다 도와줬겠지.’
“참 양심도 없다.”
“시, 시끄러! 내가 사장이야. 어디서 일개 알바생 주제에 시급 깎는다.”
“예. 예. 하여튼 저는 응원합니다. 잘해보세요.”
이제야 이런 무모한 짓을 저지른 전후 사정을 파악한 도경은 관심을 끄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서려 했다.
“잠깐!”
“응 왜요?”
“흐흐흐. 도경군. 어딜 가시나?”
“일하러 가잖아요. 갑자기 왜 그런 징그러운 웃음을 지어요?”
탕!
자신의 앞에 있는 두껍게 쌓여있는 전단지를 두꺼운 손바닥으로 쿵하고 내려찍는 정한수는 도경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아, 형... 설마, 아니죠?”
“흐흐. 그 설마가 맞지 않을까?”
툭!
조그마한 가방을 도경에게 던진 정한수는 깨소금이라는 표정으로 그를 약 올렸다.
“흐흐흐 부탁한다. 거기 가방 안에 테이프랑 칼 들어있으니 잘 사용하고 전단지 붙일 곳은 설명 안 해도 알지? 엔터테인먼트 회사 주변을 시작으로 분식점, 편의점 빵 가게 등. 애들이 밥 먹는 곳 근처에 붙이면 좋을 거야.”
“그것도 김미경 팀장님 생각이겠죠. 형 생각인 것처럼 말하지 말아요.”
“.....”
자신의 말에 합죽이가 된 정한수를 뒤로 하고 전단지와 가방을 챙긴 도경은 이를 갈았다.
“라이브 카페 따위 망해버려라..”
“뭐? 저자식이!”
“흥!”
후다닥!
부아가 치밀어 오른 걸 참지 못하고 도경은 저주를 퍼부으며 두꺼운 전단지를 들고 도망치듯 계단 위로 달려갔다.
“저, 저! 천둥벌거숭이 자식. 돌아오면 너에게 또 다른 지옥을 선사해주마.”
빠드득.
빠르게 사라지는 도경을 보며 정한수가 이를 갈며 도경을 어떻게 골탕 먹일까 여러 방안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도경이나 정한수나 유치함에 있어선 별반 다를 게 없었다.
--
“아, 더럽게 많네.”
스마트폰을 통해 검색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만 주변으로 열 군데.
그 근처들을 돌아다니며 일일이 전단지를 붙일 생각을 하니 골이 아파왔지만 도경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최대한 늦게 돌아오겠어.”
톡톡!
“응?”
[8시 전에 돌아 와버리기~. 전단지 다 못 돌리면 내일 돌리기~. 42년 먹은 짬밥은 어딜 가지 않는다 도경아. 후후후!]
어디서 배워먹은 말투인지 제대로 기분을 더럽게 만들어주는 톡 메세지.
빠직.
“이, 인간이..!”
부르르.
자신이 정한수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기분에 도경의 이마는 사거리 마크로 주름 잡혀있었다.
파바바밧!
“얼마나 잘 되나 보자고!”
철퍽!
파바바밧!
신속 정확하게 안정적인 자세로 전단지를 사방에 빠르게 붙이는 도경의 모습은 투덜거리는 거라 믿을 수 없게 매우 성실히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붙일 때 테이프로 2번의 마감 질까지 꼼꼼히 할 정도로 말이다.
이 세계에서 카일의 프로페셔널한 정신은 현대에서도 도경에게 이어져 내려오는 중이었다.
“어이 거기 지금 뭐 붙이는 거야!”
“죄송합니다.”
후다닥!
“망해라! 망해버려.”
휘이잉.
“응. 이게 뭐지?”
“뭔데?”
주목을 모으기 쉬운 장소에서 완벽하고 꼼꼼하게 붙여놓은 전단지는 금방 성공적으로 이목을 모으기 시작한다.
“풋! 알바 오디션?”
“헤에. 재밌겠다. 1-2시간에 일당도 3만 5천 원이면 페이도 좋네.”
“한 번 해볼까?”
“나도!”
연습생들에게 맞춰진 알바 전단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며 도경의 저주와 달리 화제 되기 시작하였다.
투덜투덜.
"언제 이걸 다 붙여.. 젠장!"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