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보컬 연습실]
1-2평짜리의 좁은 방이지만 노래하기에는 불편함이 없는 방. 그런데 노래연습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하아..! 이게 무슨 일이야?”
갑작스럽게 자신을 부른 것도 놀랐는데 도경을 스카웃하고 싶다면서 노트북으로 보여준 동영상은 소희에게 더욱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도경에게 대해서 묻기 시작하는 그녀를 보며 소희는 그 어떤 말에도 속 시원하게 대답 해줄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속에 한 가지.
김미경 팀장이 도경을 회사에 데려오고 싶다는 말은 진심임것을 깨달았다..
“도경씨가 음악을 배워 보거나 연습한 적이 없다고!?”
“네. 제가 알기로는 그냥 그 또래의 평범한 남자아이와 다른 게 없었는데..”
“진로나 전공도 음악 관련된 게 아니고?”
“네. 전형적인 문과생이었어요.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해서 문예창작학과 준비하고 있었어요.”
“동생이니까 네 말을 믿어야겠지만 정말 믿을 수가 없구나.”
경악하는 김미경을 보며 소희 또한 말을 흐렸다. 자신이라도 저 영상을 본다면 자기의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거짓말은 아니지?”
“네. 제가 알기로는 확실히 오빠는 노래를 배워본 적이 없어요.”
“네 말이 사실이라면...“
소희의 전해주는 정보에 김미경은 무언가를 종이에 끄적거리며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네 오빠는 천재야.”
“......”
김미경 팀장이 내뱉었던 마지막 말이 도저히 그녀의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았다.
“도대체 지금 이 상황은 뭐야? 내 오빠가 천재라고?”
기이한 열망을 띈 눈빛으로 자신의 오빠를 향해 천재라고 말하며 영상에 시선을 두는 김미경 팀장이 자꾸만 떠올랐다. 괜스레 마음이 복잡해지는 소희였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조용히 학교에서 지내며 수험을 준비하던 평범한 고등학생인 자신의 오빠.
교통사고 후 3년간의 코마(coma)상태.
단언컨대 도경의 인생에 음악이 접촉할만한 접점이 없었다.
“정말로... 내가 아는 오빠가 맞아?”
예전부터 느꼈던 위화감이 점점 강해진다.
툭!
띠리링.
다시 동영상을 틀어본 소희는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오빠의 영상을 계속해서 틀어서 그의 노랫소리를 반복해서 듣기 시작한다.
---
“아이고! 좋구나. 너무 행복해.”
노곤노곤.
“팔자도 좋네!”
퍼억!
“억!”
6인석을 혼자 차지하며 빈둥거리는 도경이 눈꼴 시려운 정한수는 그를 걷어찼다.
“아니 손님을 이렇게 막대해도 되요?”
“손님?”
“그럼 제가 알바생인가요?”
“공짜로 밥 처먹고 공짜로 음료 마신 놈이... 손님?”
“......”
그러고 보니 자신이 가게에 매상에 이바지한게 없다고 깨달은 도경은 입을 다물었다.
“1인석으로 가서 얌전히 있으렴.”
“넵...”
도경의 그의 말대로 자리에 일어나 스마트폰과 충전기를 챙겨 좁은 1인석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투덜투덜.
“칫! 지갑만 가져왔어도 제대로 된 갑 질을 보여줬을 텐데..!”
“하여간 둘 다 티격대는 것도 지겹지 않아요? 자 이거나 들어요.”
“응? 이게 뭐야?”
김찬미가 그를 보며 웃음 지으며 노란색 향긋한 차를 건네었다.
“점장님이 오빠 가져다주래요. 벌꿀로 담은 유자차래요.”
“앗싸.”
꿀걱 꿀걱.
마침 마실게 땡겼던 도경은 반색하며 유자차를 한 모금 마셨다. 향긋한 유자향과 벌꿀의 맛이 한데 어울리는 맛에 도경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었다.
“히야~! 좋다. 이 맛에 내가 여길 못 관두지. 점장님 사랑합니다. 은하수 카페 짱짱짱!”
“흥.”
도경이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는 점장을 향해 큰 웃음을 지으며 하트를 뿅뿅 날린다.
“둘 다. 브로맨스 쩌시네요.”
“응? 브로맨스?”
“브라더 로맨스 남자들의 애정을 말하죠.”
김찬미의 말에 도경은 깜짝 놀라며 자신의 몸을 팔로 감싼다.
“헉! 그치? 저 형 지금 나 꼬시는 거지? 설마? 이것도 나를 조련하기 위한 포섭!?”
“뭐라구요? 풋! 하하하하.”
도경의 진심어린 표정에 결국 김찬미가 웃음을 터트렸다.
“음... 그런데 안가?”
“왜요? 손님도 없어서 한산하고 오빠도 혼자 있으면 심심한 거 아니에요?”
“그리 쳐다보면 내가 불편할 거란 생각은 안하나 김찬미양?”
자기의 앞자리에 앉아 골똘히 자신을 쳐다보는 미인의 시선에 어느 누가 편히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애는 또 왜이래?’
김찬미가 평소 안하던 짓을 하자 조금 불편한 도경이었다.
“흐음. 그래도 신기하잖아요.”
“뭐가?”
“오빠가 그런 굉장한 노래를 부르다니 아직도 믿을 수 없는 걸요.”
“그만해. 쪽팔리니까 그 이야기 꺼내지 마랬잖아.”
도경이 그녀의 말을 듣자 인상을 팍 썼다.
“아니. 대체 왜요? 노래 그리 잘 불러 놓고 대체 왜 그러는 거에요?”
‘하아. 진짜 쪽 팔리니까 그러지.’
그의 반응이 정말 이해가 안가는 김찬미는 볼을 부풀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대체 그런 대단한 노래를 불러놓고도 진심으로 창피해하는 그의 모습이 못 마땅했다.
“좀 더 자기 노래에 자신감을 가져도 돼요!”
“자신감 없는 게 아니야. 자신감으로 치면 나는 세계 최고일걸?”
“응?”
“찬미야 네가 생각하는 거랑 조금 다르다. 이 세상에 나만큼 최고라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걸?”
“그럼 왜 노래 부르는 걸 그렇게 싫어해요?”
자신이 최고라 자부하는 도경의 말은 놀랐지만 그가 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싫어하는 지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자신을 최고라 생각하는데 말이다.
“내 기준에서 그 노래는 최고가 아니니까.”
“네?”
“그때 불렀던 노래가 내 베스트가 아니니까 부르기 싫은 거야.”
“그러니까 지금. 자신이 불렀던 노래가 최고가 아니라 싫다는 거에요?”
“그래. 변명을 하자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거든.”
‘지금 이 인간이 뭐라고 하는 거야?’
찬미는 도경의 말에 기가 막혔다.
아티스트들이 완벽을 추구한다고 해도 이거는 정도가 심했다.
최고가 아니었다고 관객들을 환호하게 만들 정도의 노래를 불러놓고 진심으로 창피해하며 노래 부르기를 싫어하는 도경을 보며 김찬미는 조금은 화가 났다.
“오빠 그거 너무 완벽주의 아니에요? 최고가 아니면 노래를 부르는 걸 싫어하다니 그럼 어느 누가 노래를 할 수 있겠어요. 그건 독선이자 오만이에요.”
도경의 사상대로라면 이 세상에는 아티스트들이 탄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최고와 완벽에 집착하다가 다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도 보이지도 못하고 늙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정 못해...!’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티스트가 아니다.
서툴러도 자신의 예술을 대중에게 선보이고 소통하며 성장하는 게 아티스트라고 생각하는 김찬미는 도경의 사상을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이 가진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해 선보이고 만족하면서 그것을 거름으로 천천히 성장해야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자신의 능력을 아예 보이지 않는다니. 오빠는 자신의 능력이 아깝지 않아요?”
갑자기 뜨거워지는 김찬미의 열의어린 목소리에 도경은 그녀를 내다보았다.
“찬미야.”
“네.”
“네 말이 맞다.”
“그럼?”
도경의 말에 찬미가 화색이 돋았다.
자신의 뜻이 도경에게 전달되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섣부른 오산이었다.
“근데 그건 나에게 해당 되지 않아.”
“하아?”
“나같은 놈들은 타협하면 안 돼. 할 수 있는 것을 못하는데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찬미는 도경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이렇게 오만한 사람은 처음 봤어요. 내가 오빠를 잘못 본걸 까요?”
도저히 자신이 앞에있는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이가 맞는지 싶다.
“이해할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어.”
김찬미는 진지하게 마지막으로 도경에게 물었다.
“정말 진심으로 자신이 아티스트로 정점에 올라선 최고라 생각하는 거에요?”
“아니.”
“네?”
의외의 대답. 그리고 이어지는 가관인 답변이 도경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최고로 생각 하는 게 아니라고 정말 나는 최고야.”
“그 정도면 병이네요! 흥!”
벌떡.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도경이 뻔뻔하다 못해 제정신 상태가 아니라 생각한 찬미는 연습파 연기자로서 그의 오만함에 진심으로 실망했다.
또각또각!
“이런 꽤나 화났네 보네.”
그녀의 걸음에 감정이 섞여있는지 평소보다 배는 가게에 울리는 구두 굽 소리를 들으며 도경은 혀를 찼다.
가만히 서있던 정한수가 도경의 곁으로 다가온다.
“야 무슨 일이야? 너 무슨 말 했길래? 찬미가 저렇게 열 받았어?”
심상치 않는 표정으로 들어온 김찬미를 보며 정한수가 도경에게 어떻게 된 연유인지 물었다.
“음. 조금 오해가 있었어요.”
“오해?”
“네. 서로의 존재를 몰라서 벌어진 오해랄까?”
“뭔 말이야? 똥 폼 잡지 말고 제대로 말 안해?”
“이야기 하면 더 복잡해 져요.”
도경의 말에 정한수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막 서로 얼굴 붉히거나 심각한 일은 아닌 거지.”
“그럼요. 걱정하지 말고 일이나 보세요.”
“그래 믿는다.”
“저 형도 참 델리커시하다니까.”
토톡!
돌아가는 정한수를 보며 소리죽여 웃던 도경은 스마트폰이 톡 알림음이 울리자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응 소희잖아? 이 시간에 갑자기 왠 연락이람?”
지금 한창 연습에 몰두하고 있을 시간에는 스마트폰을 꺼두는 것을 알고 있는 도경은 의아해 하며 소희가 보낸 톡을 읽었다.
[오빠. 일어났어?]
[ㅇㅇ 지금 카페에 있음.]
[카페?]
[ㅇ. 어머니가 나 알바 쉰다고 점장하고 얘기한 거 몰라 나왔음 ㅠㅠ]
[ㅋㅋㅋㅋㅋ 바보.]
[시끄러.]
[뭐 그래도 잘됐네. 오늘 일찍 볼래?]
[응. 난 상관없는데 연습은?]
[뭐 할 얘기도 있고 연습도 손에 안 잡혀서.]
[그래 좋아 그럼 어디서 볼까?]
[내가 그 쪽으로 갈게.]
[위치는 알아?]
[응 알어. 1시간 이내로 갈게.]
[ㅇㅋㅇㅋ.]
“뭔 일 있었나?”
평상시 다른 여동생의 반응에 조금 마음이 걸렸지만 별일 아니겠지 하고 도경은 다시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대서 멍 때리기 시작했다.
이젠 숙취도 슬슬 가셨겠다. 본격적으로 안락함에 몸을 맡겨야 했다.
“칫! 뭐람? 오지도 않네?”
비록 의도하지 않았지만 언성을 높인 일이 되어 버렸다.
보통 여자가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면 남자들은 당황하거나 어떻게든 갈등의 원인을 해결해보려 시도를 해보던가 아니면 불편함을 느껴야 정상이다.
그런데 도경은 유유자적 그 자체다.
“정말 재능 있어 보이는데 아까워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처음에는 맹한 얼굴로 성실하게 일하며 재밌는 오빠인줄 알았다.
그러다 엄청난 노래를 부르고 재능 있고 끼가 충실한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연극팀에 끌어들이고 싶었는데 말이야...”
소속사에서 연기연습을 하고 주말마다 소극장에서 연극을 하는 김찬미는 도경의 노래에 감탄도 했지만 그의 연기에 주목하였고 그를 끌어들이고 싶었다.
하지만 도경은 저리 아집으로 가득 차있는 정신을 가진지 몰랐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팀에 어울리지 않아.’
성실히 연습하고 항상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자신의 팀에 저런 사상을 가진 사람을 데려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응 저 아이들 왜 도경오빠한테 가지?”
도경을 바라보며 아쉬움에 한숨을 내뱉는 와중에 도경을 향해 접근하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보며 김찬미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방금 전
아메리카노Ice 3잔을 시키며 시시덕거리는 학생들이었는데 매우 기분 나쁜 눈초리로 자신의 몸을 훑어본 녀석들이라 기억하고 있었다.
“어이 아저씨.”
“......”
“아저씨!”
3명의 학생이 도경을 둘러싸며 그를 불렀다. 하지만 도경은 그들을 일부러 무시했다.
“아저씨 귀 먹었어?”
“형이 피곤한데 그냥 가면 안 될까?”
“에이. 요즘 한창 뜨고 있는데 팬들한테 박하시네.”
털썩.
도경의 피곤하다는 표정에도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그중 리더로 보이는 학생이 그의 앞에 앉아 이죽거렸다.
“인기인이 된 기분이 어때요.”
‘아 역시 안 가려나? 귀찮게 하네.’
무시한다고 돌아갈 유형의 녀석들은 아닌 것을 확인한 도경은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인기인였어? 몰랐네. 그래 청소년들 나에게 무슨 일 이야? 이 형아가 싸인이라도 해줄까?”
“크크크! 뭐래. 말하는 것도 센스 없어. 촌티나.”
“너는 센스 있게 말해서 나는 네가 참 부럽구나.”
자신의 안락함을 방해하는 불청객들을 보며 도경은 이들의 처리를 어떡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장소도 적절치 않고 보복도 생각해야 하니까 주먹질은 패스하고 무시해도 통하지 않는 이기적인 녀석들이고 어떡할까...’
“역시 어울려 줘야 하나?”
“응?”
“그래 꼬맹이들아. 뭐 때문에 형아 찾아 왔어요?”
분명 자신에게 의도가 있어서 찾아와 보이는 녀석들을 향해 도경은 웃으며 물었다.
“아재 함 배틀한 번 뜹시다.”
피식.
그들의 패기로운 한 마디에 도경은 웃었다.
“고 녀석들 참 귀여워.”
배틀이라 하면 서로의 기량을 겨루자는 것인데 타이밍 한번 구릴 때 왔다 생각하는 도경이었다.
“젊은 게 참 좋아...!”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