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뜨거웠던 여름의 열기가 지나가는 동안.
그와 동시에 하루하루 평범하지만 충실한 나날이 지나갔다.
“아아~.”
“그게 아니지! 좀 더 참고 끌어가. 감정을 집어넣지 말고 순수하게 소리만 내란 말이야!”
“아아아!”
뻘뻘 땀 흘리며 발성을 연습하는 성준과 소희.
그리고 그들을 혹독하게 다그치는 도경의 모습이 카페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독하네. 발성만 3시간이라니...!”
가게에 남아 이를 보고 있는 이지원은 혀를 내둘렀다.
어느 순간부터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는 도경의 혹독한 트레이닝은 4달 연속 내리 지금까지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의 밑에서 구슬땀을 흘리면서 배우고 있는 성준과 소희는 몇 시간 내내 소리를 내지르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하지만 도경은 그들의 사정을 바주지 않는다.
“소리가 흔들리잖아. 일정하게 유지 안해!?”
가게의 마감시간 이후부터는 카페는 치열한 연습실의 모습으로 변한다. 새벽 1시가 되었음에도 가게 안은 땀과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아아아...! 악!”
맹연습이 진행되는 가운데 드디어 한계를 맞이하는 사람이 나왔다.
콜록!콜록!
“헉헉.”
더운 여름 3시간 내리 소리만 내면 어느 순간 몰려오는 체력의 한계. 소희는 바닥에 쓰러져 기침을 토해내고 있었다.
안쓰러운 지경이지만 지금의 도경은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었다.
“박소희 정신 안 차려! 일어나.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이익!”
벌떡!
그의 말에 독기와 오기로 일어선 박소희는 도경을 노려본다. 그런데 그녀의 눈에 뿌연 물방울이 맺혀있다.
주륵륵.
구슬 땀과 함께 흐르는 눈물. 도경의 혹독한 훈련에 박소희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것이다.
“울어? 뭘 잘했다고 울어?”
그녀의 눈물에 당황할 만 하려만 도경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다그쳤다.
“나가서 10분간 밖에 있다 다시 들어와.”
“뭐!?”
싸늘한 도경은 축객령.
친동생이 아니라 죄인을 다루는 듯 한 태도에 그녀의 눈매가 무섭게 일그러지며 자신의 오빠를 향해 독기 찬 눈으로 적의를 쏘아 보냈다.
꾸욱.
“내가 왜...!”
“나는 너 보고 나가라 했어.”
“익!!!”
빠드득.
박소희의 꾹 다문 입에서 뿌드득 거리는 꺼림직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쿵쿵쿵쿵!
분노에 찬 그녀의 발걸음. 카페 내부가 쿵쿵 울리지만 도경은 신경하나 쓰지 않는다.
쾅!!!!
“........”
박소희는 카페 안에 있는 탈의실의 방문을 쾅 소리 나게 거칠게 닫는 박소희.
그를 보며 안절부절하는 성준은 도경을 바라보며 눈치를 살폈다.
“형..!”
“뭘 쳐다봐? 한 두 번이야? 넌 다시 시작해.”
살벌한 분위기 속. 도경은 그에게 다시 훈련할 것을 종용했다.
“시작해.”
“아~.”
‘누나 저러다 쓰러지는 거 아니야?’
여름 방학이 되기 전.
소희가 도경의 트레이닝에 참여하고 싶다고 의사를 표현한 이후부터 소희의 일상은 지금처럼 매일 울음과 독기가 가득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소희누나니까 지금까지 버티지...! 다른 여자들이었으면 골병 들어도 수백 번 났어.’
평일 오전부터 소속사에서 연습.
오후 밤에는 라이브 바에서 일하고 끝나자마자 도경의 밑에서 맹훈련을 받고 있는 소희의 스케줄을 알고 있는 성준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저 녀석은 아직 독기가 많이 부족해.”
‘우와..,’
“독하다.”
도경의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이지원과 지성준은 속으로 혀를 찼다.
평상시에는 유유자적한 도경,
연습 시간만 되면 다른 인격이 들어온 것처럼 독한 사람으로 바뀌는데 그 온도차가 너무나 심하여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가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저렇게 무식한 훈련으로 정말 효과를 보는구나.”
작곡 작사를 위해 도경의 트레이닝에 참여는 하지 않았지만 옆에서 모두 지켜봐왔던 지원은 서서히 변화하는 성준과 소희의 목소리에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발성.]
노래는 하지 않는다. 4시간동안 오로지 소리를 내는 발성법 하나뿐인 훈련.
세상에서 보지 못한 지독한 기본기의 연습의 나날.
“저 훈련을 받는 것도 대단하지만 훈련시키는 사람도 대단해.”
지원은 도경의 코치에 주목하고 있었다.
단조로운 발성하는 사람 옆에서 4시간 내내 고함을 치며 교정하는 그의 체력과 집중력에 감탄스럽기 그지없었다.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혼신을 다한 도경의 가르침은 딱 두 가지로 단순하다.
「휴식」과 「발성」.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두 사람의 컨디션과 체력에 맞춰서 4달 내내 휴식과 발성을 무한 반복하는 도경의 훈련법.
단순하지만 지도 받는 사람이나 코치하는 사람 둘 모두 경이로웠다.
철컥.
탈의실의 방문이 열리고 시뻘겋게 부은 눈으로 박소희가 걸어 나왔다.
힐끔.
“와서 다시 시작해.”
끄덕.
도경의 무미건조한 말에 소희는 지성준 옆에서 서서. 그가 내지르는 발성의 톤에 맞춰서 다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아아아!]
[아~.]
어느새 자연스럽게 싱크로가 맞는 둘의 목소리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인다.
“마지막 남은 시간 30분! 온 몸의 기운을 다 쥐어짜서 소리내.”
어느새 기나긴 시간은 지나고 30분 남짓한 시간.
기뻐해도 되려만 성준과 소희의 눈빛에는 기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다음날에도 이짓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빠 저 이만 가볼게요.”
끄덕.
“그래 내일 봐.”
“적당히 하고 오빠도 얼른 가세요.”
“......”
“독하다 독해.”
혀를 내두르는 이지원은 카페를 떠나고 남아있는 세 사람은 정한 시간까지 구슬땀을 흘리며 트레이닝에 열을 올린다.
AM 2:30
어느새 지옥 같은 훈련은 끝이 났다.
지옥 같은 지하에서 벗어나 지상에 올라온 세 명은 서로에 작별인사를 건넨다.
“형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가볼게요.”
“조심해서 들어가.”
“네 형도요.”
꾸벅.
“소희누나 고생하셨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
“....하하. 그럼 가볼게요.”
성준의 인사에도 소희는 묵묵부답으로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성준은 서운한 내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대답할 여력조차 없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부우웅.
택시 내부 안, 아까 전의 뜨거운 열기는 가시고 싸늘한 적막과 냉기가 택시 안에 감돌았다.
흘끔.
도경은 자신의 동생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그녀의 파장을 들여 다 보았다.
불규칙적으로 맹렬하게 일렁이는 그녀의 파장. 조금만 건드리면 뻥하고 대폭발을 일으키는 터지는 직전이다.
“소희야.”
“......”
싸늘한 온도 속에 도경의 목소리가 택시 내부 안을 조심히 울렸다.
후읍.
“고생했어.”
군더더기 없는 딱 한 마디.
더 말을 할 수 있지만 도경은 이 이상 더 말을 건넨다면 구차해질 뿐이라 생각하며 말을 아꼈다.
스윽.
툭.
“소희야!?”
“오빠 정말 미워...”
주르륵.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는 동생을 보며 도경은 잠시 놀랐지만 이내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괜찮아. 우리 소희 잘하고 있어.”
역시 자신이라도 혈육의 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을 느끼며 도경은 소희를 다독인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
도경은 자신의 동생이 노력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를 속으로 기원했다.
부우우웅.
사이좋은 두 남매의 모습에 택시기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목적지를 향해 운전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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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똥.
[K-Star]
축하드립니다.
박도경님과 지성준님 그룹 「레전드」는 ARS 심사에 통과하셨습니다.
홈페이지에 지원서와 서류들을 다운받아 작성 후 2차 예선에 참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드디어 왔구나.”
지독하지만 충실한 하루하루 어느날.
도경의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문자음. 그들의 일상의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후...!”
일주일 전.
통화하면서 노래를 부른 [K-Star] ARS 지원의 결과가 지금 도경의 폰으로 날아온 것이다.
한참 연습을 시작하고 있는 소희와 성준을 향해 도경은 웃음 지으며 걸어갔다.
“합격 공지 떴다. 오늘로 연습 끝!”
“꺄아아.”
“정말요!”
갑작스러운 소식.
처음에는 둘 모두 얼떨결 한 표정을 짓더니 어느새 얼굴에 환희 가득한 표정으로 기뻐하기 시작한다.
우당탕탕
기쁜 소식에 성준은 그에게로 황급히 달려와 손을 내밀었다.
“봐봐요! 형.”
“여기.”
도경의 손에 들려있는 폰을 건네받은 성준은 천천히 문자 메세지를 읽기 시작하더니 환한 웃음 지었다.
길고 긴 고된 연습시간.
드디어 목표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초청창이 날아왔다.
콩닥!
그의 심장이 뜨겁게 가열된다.
“성준이 너는 지금 집에 가서 보호자 동의서 받아와. 이런 건 미룰 필요 없이 빠르게 처리 하는 게 좋으니까 말이야.”
“어, 얼른 다녀올게요.”
후다닥.
도경의 말에 흥분하며 말까지 더듬는 성준은 서둘러 자신의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굳이 저리 빨리 갈 필요 없는데 많이 신났나 보다.
“녀석 많이 밝아졌어.”
냉소적인 표정으로 모든 것에 날을 세우던 지성준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는 16세의 천진난만한 소년의 모습을 되찾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지성준 만이 있을 뿐이다.
흐뭇함에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저 나이 때는 뭘 했더라?’
마무와 십대를 보냈던 시절을 떠올리는 도경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마무 어느새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다...”
20살의 이른 나이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친구를 떠올리며 도경은 천장을 바라보며 다짐한다.
“그때처럼 다시 시작해보자.”
도경은 성준의 등 뒤를 힘껏 밀어줄 생각 이었다. 십대의 카일이 마무의 등 뒤를 밀어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 그 녀석이 자신이 한 말대로 최고가 된다면..!”
도경은 지성준에게 희망했다.
자신이 가슴에 지고 있었던 한과 숙원을 풀어줄 위치에 그가 도달하길.
도경의 가슴속에 기이한 열망이 들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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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다닥!
“헉!헉!”
성준은 터질 것 같은 자신의 폐를 느끼면서도 다리에 힘주어 미친 듯이 앞을 달려갔다.
“드디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 할 수 있어.”
두근두근.
자신에 귀에까지 들리는 심장 고동소리에 성준의 얼굴은 붉게 상기된다.
“꿈이 아니야! 하하하하!”
Tv속 브라운관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무려 한국의 음악시장을 이끄는 3대 기획사 아래에서 주최되는 「K-Star」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평가받으며 능력에 따라 기회를 붙잡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상처받을지 알면서도 수없이 부러워하며 되새김질 하듯 보았다.
“나는 할 수 있어! 올라가고! 올라서서!! 기필고 우승하고 말겠어.”
수 없이 상상하고 망상했었다. 심지어 자신이 혐오하던 신을 향해 기회를 달라 빌기 까지 하였다.
“하하하하하!”
영원히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 같던 기회.
그런데 그것이 자신에게 다가왔다.
타다다닥.
“헉.헉!”
달리는 성준의 눈에 불과 몇 달 전이면 상상도 못할 자신의 보금자리가 보인다.
전세 1억 7천짜리의 25평짜리 낡은 빌라.
낡았지만 햇빛도 들지 않아 곰팡이가 피던 6평짜리의 방에 비교하면 대궐 같은 집이었다.
“할배랑 할매 두 분 다 오늘은 일찍 들어오셨구나.”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유지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해 나머지 삼천만원 으로 마련한 푸드트럭을 보며 성준은 웃음 지으며 건물 안으로 올라섰다.
쿵쿵쿵!
[401호]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성준은 무시하고 복도 계단을 뛰어 올랐다. 이 흥분을 잠시라도 식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악.”
삑
삐비비빅!
덜컥!
“할배 할매!”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순식간에 입력하고 문안으로 들어선 성준.
그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이들을 향해 당당하게 외쳤다.
“성준이 좀 있으면 Tv에 나올거에요!”
“이게 뭔일 이당가?”
“성준이가 많이 신났나 보네?”
“할매 할배 조금만 기다려. 내가 Tv에 나올 일이 머지 않을 거야.”
식탁위에 구수한 된장찌개를 사이좋게 나눠 먹고 있던 두 노부부가 자신의 손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 거린다.
자신을 반겨주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며 성준은 웃는다.
“그래 우리 손자 똑똑하다.”
“밥이나 묵어.”
자신의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않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노부부. 그 둘은 굶주린 손주의 배속 사정만 신경 쓰며 성준의 식사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달그락.달그락.
‘도경이형 고마워요.’
폐지를 줍고 나 돌아오면 힘든 노동에 파스냄새에 찌들어 잠을 청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눈앞에 있는 노부부의 모습은 한 결 여유로웠다.
모두 도경덕분이었다.
꿈 꿔왔던 기회, 따스한 보금자리, 두 노부부의 행복한 웃음. 전부다 그가 가져다주었다.
꾸욱.
“형 말대로 최고가 될게요.”
그 어느 누구도 힘들어 하던 자신들을 도와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원망은 하지 않는다. 그게 현실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도경이 형이 비정상인 거지.’
그렇기에 성준은 도경에게 응당 보답을 하고 싶었다.
‘우승상금은 3억 이랬지...’
항상 고맙긴 했지만 2억이라는 금액의 빚은 도경의 동생으로서 당당하지 못한 거 같은 마음이 들어 불편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성준은 도경에게 빚을 갚고 싶었다.
그리고 진짜로 그의 당당한 의동생이 되고 싶었다.
“1등이 돼서 당당해 질거야!”
자신에게 처음으로 손길을 내밀어준 사람 앞에서 떳떳하게 그의 옆에 설 것이다.
화르륵.
강하게 다짐하는 성준의 눈에는 뜨거운 불길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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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귀가 간지럽네”
후비적. 후비적.
성준의 마음이 멀리서 느껴진 것일까? 도경은 갑자기 간지러운 귀를 후벼파기 시작한다.
움찔!
“오! 좋은 악구가 떠올랐다.”
귀를 파다 갑자기 멈춘 도경은 기타를들어올려 눈을 감으며 낯선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띠리링-.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