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김찬미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설정은 19세 여고생 송가연. 그런데 평범한 여고생이 아니었다.
전설적인 청부살인업자인 할아버지 밑에서 그의 노하우를 모두 전수받은 [19세 여고생 송가연.]
‘지루해...!’
덕분에 가연은 여자의 몸으로도 학교에 군림하는 지배자. 하지만 그녀의 일상은 너무 지겹기만 하다.
자신또래 애들과 노는 것은 수준이 맞지 않아서 유치하고 학교공부 따위는 자신에는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엇 신상 떴네?’
전설적인 킬러이자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덕일까. 그녀의 취미는 삭막하게 그지없게도 단검이나 여러 무기들을 사서 모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남은 1년을 이 지루한 학교에서 보내야 하는 것에 절망하던 찰나에 그녀의 눈앞에 재밌는 인물이 나타난다.
“여러분 모두들 반갑습니다. 이번 3-3반에 담임으로 오게 된 한가람 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남은 1년의 학교생활 많은 도움이 되고자 노력 할 테니. 모두 스스럼없이 다가와 주면 고맙겠습니다.”
“흐음...”
첫날부터 자신에게 추근거리는 담임을 그녀가 직접 교통사고를 위장시키며 몇 년간은 요양해야 하게 만든 전 담임을 떠올리며 앞에 새로 온 담임을 바라보았다.
“심심하지 않겠어.”
자신과 다르게 열의에 가득한 담임을 보며 웃음을 짓는 가연은 재밌는 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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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내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의자위에 두 눈을 감고 있던 김찬미가 고개를 들어올리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새로 온 담임선생님을 한가람을 골려주는 여고생 송가연이다.’
19살이지만 성숙한 분위기와 여유로운 분위기를 겸비하고 있는 송가연의 설정을 떠올리며 김찬미의 분위기가 바뀌며 대사를 치기 시작한다.
S# 「단둘이 있는 진로상담실(방과 후)」
[지문]:가연은 상담을 받던 와중에 가람을 향해 유혹하며 그에게 선전포고 한다.
“후후. 선생님. 나랑 사귈래요?”
[뭐,뭐라고?]
대사를 친 후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한쪽 다리로 자신의 다리를 쓸어 올리는 김찬미는 도발적인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한다.
누가 봐도 자신의 선생님을 꼬시려는 학생의 모습을 연기하는 모습이었다. 치기어리고 장난기가 도는 눈빛은 송가연이라는 캐릭터의 풋풋한 젊음이 느껴졌다.
또각또각.
털썩!
“꺄악!”
다가가는 김찬미가 도경의 무릎위에 앉아 그의 목에 두 손을 두르자 구경하고 있던 전수미는 자극적인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찬미의 집중력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도경을 향해 눈을 맞추며 대사를 던졌다.
“왜요? 나 매력 없어요? 이래 뵈도 꽤나 자신 있는데?”
[그,그만워 지금 뭐하는 거야. 장난이 지나쳐 송가연.]
“장난 아닌데.”
휙.
자리에 일어난 도경에게 자신의 뒷태를 보여주며 그녀는 살짝 뒤돌아보며
“잘 부탁해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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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 이게 끝이에요.”
자신에게 주어진 대본에 적혀있는 한 씬의 연기를 마친 그녀는 어떠냐는 표정으로 도경을 올려다보았다.
“Bravo!”
“와아아!”
“언니 연기 짱 잘한다.”
짝짝짝.
“찬미 연기를 처음 보는데 잘한다. 미경아 저 정도면 잘하는 거 맞지.”
“네. 매끄럽고 딱 봐도 기본기가 탄탄하네요.”
모두가 찬미의 연기에 감탄할 때 도경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확실히 연기를 잘해. 찬미 네가 억울해 하는 것도 알겠어.”
“그렇게 말해도 늦었어요. 연기하기로 한 거 잊지 않았죠?”
도경의 칭찬에 찬미는 그가 지금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발 빼려는 행동으로 인식하고 그에게 틈을 주지 않고 약속을 들먹였다.
“물론 후학을 위해서 이 한 몸 희생해야겠지?”
“정말 자신감 하나는 탑 스타 뺨치네요.”
“됐고. 캐릭터 설정이랑 상황이나 말해줘.”
“얼마나 잘하는지 보겠어요.”
그의 거만한태도가 짜증났지만 페어플레이를 위해 찬미는 그녀는 자신이 연기했던 캐릭터의 핵심을 요약하며 설명하기 시작한다.
“음 대충 파악했어. 시작할까?”
자리에 일어난 도경은 김찬미가 연기를 시작했던 자리에 걸어가 앉으며 모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캐릭터의 배경과 설정은 상세히 알려줬는데 상황을 설명하는 지문은 극히 짧은 단 한 줄에 대사 3마디야. 심지어 대사를 치는 곳에 행동을 지시하는 말은 없지. 그런 조건으로 한 씬을 연기하고 시험을 보게 한 이유는 뭘까?”
도경은 김찬미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흥. 그거야 배우의 연기력을 보기 위해서죠. 정보 없이 캐릭터를 구현화 시키는 힘을 보기 위해서요.”
“과연 그것뿐일까?”
“네?”
씨익.
“잘 봐.”
흠칫!
도경은 그녀의 대답에 반문하며 요사스럽게 웃었다. 평상시 보지 못했던 도경의 웃음에 김찬미는 흠칫 거렸다.
‘빠, 빠르다.’
김찬미는 도경이 이미 캐릭터에 몰입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캐릭터 송가연은 여고생이지만 킬러 밑에서 자라난 특별한 여고생이지. 아주 삭막한 환경에서 자라 보통 애들과 다른 가치관을 지녀서 학교에서도 밖에서도 겉도는 아이야. 그런 그녀가 평범하게 유혹할리 없잖아.”
“!?”
[쯧!]
탁!
[응?]
만사가 지루한 송가연은 혀를 차며 바닥을 가볍게 앞 발꿈치로 퉁기며 앞에 있는 이들의 모두의 시선을 주목시켰다.
단순한 동작이지만 이 동작을 시작으로 씬의 시작을 알리며 사건을 벌일 것을 예고했다.
[선생님 나랑 사귈래요?]
힘이 들어가지 않고 자연스러운 대사처리였다.
갑자기 뜬금없는 고백에도 위화감 없이 부드럽게 훅 들어오며 상대방을 당혹케 한다.
[뭐,뭐라고?]
당황하고 있는 한가람을 떠올리며 도경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도경이 짓는 미소는 유혹하는 미소가 아니다.
마치 포식자가 먹잇감을 바라보며 짓는 비릿한 미소였다.
저벅저벅.
쿵!
자신 앞에 앉아있는 김찬미를 향해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가는 도경은 그녀가 앉아있는 자리위에 발을 올렸다.
꺅!
이번에도 자극적인 상황에 어김없이 전수미는 비명을 질렀다.
‘어머어머 뭐야? 왜 도경오빠가 섹시해 보이지?’
분명 전에 김찬미가 연기했던 여고생 송가연도 섹시했지만 도경이 보이는 섹시함은 등급이 달랐다.
17세등급과 19+등급의 차이랄까?
어린 전수미는 잘은 표현 할 수 없었지만 도경이 보이고 있는 섹시함이 더욱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자각하고 있었다.
[왜요? 나 매력 없어요? 이래 뵈도 꽤나 자신 있는데?]
가슴 옷섶을 들쳐 올리며 힐끗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던 도경은 시선으로 김찬미를 향해 물었다.
그가 보이고 있는 액션은 전혀 도발적이기 보다 무심하면서 어린아이처럼 거리낌이 없는 행동이었다.
나른한 손가락 처리와 묘한 시선처리가 그녀가 일반 범주의 여고생이 아닌 것을 전달해 주었다.
[그,그만둬! 지금 뭐하는 거야. 장난이 지나쳐 송가연.]
“장난? 아닌데..”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한 태도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도경.
이를 보고 있던 김찬미는 자신과 다른 송가연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이건...’
도경이 선보이고 있는 여고생 송가연은 김찬미에게 있어 충격적인 존재였다.
특수한 설정과 배경 때문에 그녀는 수치심과 두려움이 없었고 그렇기에 거리낄게 없었다.
상대방보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우위에 서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면 절대 나올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사자가 초식동물을 보고 수치심을 느낄 리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잘 부탁해요 선생님.”
나른하지만 묘한 가학심이 담겨있는 도경의 마지막 대사에 김찬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졌어...’
“......”
모두들 묘한 긴장감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하고 도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짝!
“자! 연기 끝.”
박수를 치며 공기를 환기시킨 도경은 자신을 향해 눈이 촉촉한 찬미를 보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스타성] 그것은 같은 것이라도 자신만의 특별함을 첨가해 타인의 시선을 빼앗는 반짝임. 나는 그렇게 생각해.”
진지하지만 따스한 눈빛이 김찬미를 꿰뚫어 본다.
“가수는 노래를 반짝이게 하고 연기자는 캐릭터를 반짝이게 만들어야 하겠지. 그렇다면...”
“아..!”
“네가 생각하는 반짝임은 무엇일까?”
와장창.
김찬미는 자신의 좁았던 시야가 깨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은 연기에 목을 매달고 우위를 나눴던 것일까? 처음 연기자를 꿈꾸고 입문한 계기를 떠올렸다.
‘나는 연기를 잘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야. 그들처럼 반짝이고 싶었던 거야.’
기술에 집착한 나머지 기술을 익히려던 목적과 이유를 잊고 있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감독이 자신에게 건냈던 말을 떠올렸다.
(미경씨한테는 배역을 살릴 스타성이 없네요.)
오디션 시험에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가 자연스럽고 리얼했지만 매력이 없었음을 깨달은 김찬미는 허탈하게 웃었다.
“주객이 전도된 거잖아. 쪽팔린 줄 알아 김찬미.”
김찬미는 자신을 타박하며 반성하기 시작했다.
‘다른 곳에 이유를 찾다니 멍청했어. 평생 후회할 일을 저리를 뻔 했어.’
오디션의 결과가 납득이 가지 않았던 김찬미는 사실 성형수술을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연기가 아닌 다른 부분이 장애라고 인식하고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 뻔한 것이다.
“자. 다들 뭐해요? 연기 끝났다니까요? 이젠 이 몸의 활약을 보러가죠. 얼마 안 있으면 슈퍼스타의 탄생입니다. 하하하.”
“으, 응. 그래 방송 보러 가야지.”
“맞다 방송 시작했어요 오빠.”
우르르르.
김찬미에게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상황을 정리하는 도경은 모두를 이끌고 자리에서 벗어나 주었다.
씨이익.
그녀의 파장이 밝게 돌아온 것을 느끼며 도경은 생각 달리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야. 역시 젊음이 좋아.’
사소한 계기에도 흔들리지만 곧바로 다시 회복하는 그들의 순수함과 젊음에 도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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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한 시각.
따스한 방안에서 2명의 노인과 소년이 오순도순 붙으며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하암~. 성준아. 오늘 나오는 거 맞는겨? 기다려도 나오지가 않어-. 혹시 그 통 편집이다 뭐다 당한 거 아녀?”
“이놈의 영감 재수 없는 말 하지 말어. 말이 씨가 된다는 소리 몰려?”
“하하하. 두 분 조금만 기다려 봐요. 저랑 도경이형 거의 마지막에 나올 거에요.”
성준도 알거는 안다. 방송의 노른자는 맨 마지막에 나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총괄Pd가 쩔쩔 매는게 자신들의 존재였는데 통편집?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오! 성준이다! 성준이여! 아이고 우리새끼 Tv나오네.”
“어구어구. 기특혀!”
토닥토닥.
긴 기다림 속에 그저 화면에 도경과 성준의 얼굴이 비췄을 뿐인데 두 노부부 호들갑을 떨며 기뻐한다.
그러자 뿌듯함에 성준은 밝은 미소를 지었다.
“헤헤헤. 나온다 했잖아요.”
그리고 시작되는 도경과 성준의 현장스케치와 인터뷰.
성준은 자신과 도경의 방송으로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에 신기하기도 하면서 가슴 한 켠 신나서 심장이 두근거리며 짜릿하기도 했다.
[잠만 자는 도경참가자.]
“어?”
Tv를 집중하던 때 성준은 묘한 위화감을 감지했다. 도경을 향한 악의적인 편집들이 몇 개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뭐 본선인데 그렇게 까지 긴장할 필요가 있겠어요?]
분명 그 뒤에 도경이 컨셉이라 농담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감쪽같이 편집되어 날아가 있었다.
[이 부분은 편집 가능하지요?]
“이 사람들이 정말...!”
교묘하게 짜깁기로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제작진의 행태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 었지만 뭐라 하기에는 교묘할 정도로 애매하다.
[“어차피 결과가 전부 아닙니까?”
띠리링!
[시작 하겠습니다. 준비해.]
“성준아 도경씨 성격이 원래 저야? ‘
“그럴 리 없잖아요 할아버지. 저번에 같이 식사도 하셔놓고선. 형 못 믿는거 아니죠?”
“그러게 할멈. 내가 볼 때에는 성격도 좋고 싹싹 하던디. Tv가 조금 이상하구먼.”
화면에 비쳐진 날조 영상의 정점은 심사위원과 도경의 대치상황이었는데 결국 철없는 형을 동생인 자신이 모든 상황을 수습한 것처럼 보이게끔 편집했는데 자신이 보아도 도경이 예의 없고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저리 말할 정도면 이거 좋지 않다.’
아는 사람이 보아도 이정도인데 생전 도경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도경은 비호감으로 찍히기 딱 좋아 보였다.
‘해명을 하려고 해도 3주나 걸리잖아. 빌어먹을!’
방송에 모두를 경악하게 하는 노래하는 둘의 모습이 나왔지만 성준의 표정은 굳어 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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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륵!
한편 같은 시각에 방송에 나오는 화면을 보고 있던 도경은 웃음 지으며 얼음을 한 움큼 집어넣어 자신의 입안에 털어 넣었다.
뿌드득.
와그작,와그작.
“헤에-. 지지고 볶으라고 했더니 이렇게 볶으셨다 이거지? 이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어느 정도 보복은 할 거라 생각했지만 무대가 아닌 방송까지 저렇게 새로운 장면을 만들 정도로 공들일 줄은 몰랐다.
아니 사실은 예상은 하고 있었도 직접 겪어보니 이렇게 기분이 더러운 줄 몰랐다. 이 세계 가르드에선 매스컴이라는 종목이 존재하고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짝.
“좋다고 한 번 서로 파이팅 넘치게 해보 자고!”
다음 라운드를 기약하는 도경은 손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서슬 퍼런 눈빛을 빛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