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랭킹오디션 노래하다.
인터뷰가 끝내고 도경이 대기실에 돌아와 보니 연습하러 나갔던 7명 참가자 모두가 자리에 돌아와 앉아 있었다.
“뭐야? 다들 돌아와 있네?”
“네 슬슬 저희 차례 인가 봐요. 일단 모여서 대기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끝나고 뭐 먹을까? 배고프다.”
“어?”
자신의 배를 쓰담으며 도경이 웃음을 보이자 성준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처다 보았다.
“형 도시락 안 받았어요?”
“도시락? 아... 자느라 못 받았나 보다.”
“참나. 남는 거 있을 텐데 가져다줄까요?”
“아니.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냥 참고 더 맛있는 거 먹으려고.”
식은 도시락보다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었던 도경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요 그럼. 뭐 먹을 거에요?”
“족발 땡긴다.”
“콜!”
시시덕거리고 있을 때 도경과 성준의 귀에 방송안내가 들렸다.
[최강보컬조. 무대 앞에 대기하시길 바랍니다.]
제작진의 안내의 말에 모두들 긴장이 역력한 표정을 지었다.
자리에 일어나 그들은 진행요원의 안내에 따라 무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랭킹오디션 무대〉
짝짝짝짝!
도경이 속한조 참가자들이 모두 무대 뒤에 도착할 때. 한 참가자의 무대를 마치고 심사위원들에게 평가를 받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 일단. 노래에 아무런 개성이 느껴지지 않네요. 대체 왜 그렇게 노래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고음만 지르는 노래할거면 대회 같은 곳에 나가야죠. 이곳은 아니에요. 노래로 감동을 줘야지 고음에 감탄만 하면 무슨 소용인가요? 저희는 감동을 주는 특별한 사람을 찾는 거지 고음을 잘 지르는 사람을 찾는 게 아니니까요.]
인정사정없는 촌철살인.
박진용의 말에 참가자의 표정이 짙은 패색을 보이며 어둡게 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의 혹평은 끝이 날줄 모른다.
인상이 좋던 태현섭 또한 굳은 표정을 지으며 진심으로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참가자를 보았다.
[고음도 듣기 좋은 고음이 아니네요. 저번 밀착 오디션 때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네요. 저번에 분명 이야기 했었죠? 힘 빼고 편안하게 부르라고요. 대체 열흘 동안 뭘 한지 모르겠네요.]
박진용이야 숨 쉬듯 하는게 참가자들의 보컬지적이니 그렇다 하지만 평소 보컬에 지적하지 않는 태현섭이 그리 지적하자 박진용과 지적과 다른 무게감이 느껴진다.
[박찬호 참가자. 고음이 아니면 자신을 보여줄게 없다. 본인이 먼저 그리 생각하는 이상 발전은 없을 겁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무미건조한 이수민의 심사.
그녀의 심사는 여타 2명의 심사위원과 달리 참가자에 대한 아무런 감정이 들어있지 않았다. 애초에 저 참가자에 기대나 관심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3명의 심사위원 평가 중에 박찬호란 참가자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존재를 뽑으라면 이수민 심사위원일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그는 고개를 떨어뜨리며 침통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뒤로 물러나 자신의 자리로 간다.
[잠시 회의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꿀꺽.
“제발. 제발!”
마지막의 참가자를 끝으로 발표를 기다리는 5명. 그들의 얼굴에 긴장감과 간절함이 교차한다.
그런 5명의 참가자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참가자들은 낯빛을 굳히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 시작한다.
스윽.
[합격자는...]
회의가 끝이 나고 심사결과를 알리기 위해 김수민 심사위원이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보통은 박진용 심사위원이 결과를 통보했는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김수민 심사위원이 결과를 통보하는 것이다.
[전원 없습니다.]
쿠웅.
“그,그런!”
예상치 못한 결과에 모두들 충격으로 물든 표정을 지으며 믿을 수 없는 태도를 보인다.
[시청자분들도 그렇고 여러분들 모두 납득이 안가는 면도 있을 겁니다.]
단호한 표정의 이수민 심사위원은 그들에게 현실을 깨워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여러분들이 불합격 이유를 아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나중에 맞닥트려야 하는 상대는 연습생 출신의 소년 소녀들이죠. 둘 다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더라 하더라도 갈고닦은 역량의 차이가 크게 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역량을 차이를 이길만한 특별함이나 재능 없다 판단되기에 모두 불합격을 드린 겁니다.]
“......”
[수고 하셨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인사에 불합격 참가자들은 힘없이 인사를 하며 무대에 내려와 어두운 무대 뒤편으로 들어 걸어갔고 이내 울음바다를 만들기 시작한다.
“누구 죽었냐? 뭐 저렇게 울고 난리야. 분위기 잡치게...”
“형. 카메라 돌고 있잖아요. 당연히 안 울어요? 간신히 잡은 기회인데 그게 날아가 버린 거니까요.”
“아니 기량이 모자라서 떨어진 건데 울긴 왜 울어? 독기 품고 다음을 향해 연습해야지. 나약하긴 쯧.”
자신이 기예를 배웠던 유랑단에서 저렇게 질질 짜는 순간 하루 종일 굶거나 심하면 쫓겨나는 경우도 있는 것을 떠올린 도경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멀쩡히 몸도 성하고 등도 따시고 배부르면 언제든 도전할 수 있는 것을... 쯧.’
자신의 기량에 분해서 우는 것도 아니고 그저 불합격 받았다 우는 그들에게 도경은 솔직히 공감이 가지 않았다.
“모두가 다 형 같은 천재인줄 알아요?”
“천재? 야 내가 얼마나 피나는...”
“피나는?”
“휴우.. 아니다 됐다.”
솔직히 자신이 살아왔던 배경과 저들을 비교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을 머리는 알지만 그가 살아왔던 삶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따스하게 잠잘 보금자리가 있고, 굶지 않을 수 있고, 꿈이라도 꿀 수 있는 환경이라면 젊은 저들은 저렇게 울게 아니라 다음을 기약하고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저들의 의무라 도경은 생각했다.
“부디 빛을 잃지 말기를...”
그들의 나약한 태도를 질책했지만 이 자리에서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그들이 가슴에 품은 빛을 발화하기를 기원하는 존재도 도경이었다.
[네 다음 참가자조 들어와 주세요.]
“가자.”
끄덕.
잠시간 소강상태를 거치고 어수선한 상황은 수습이 되었다.
심사위원들은 분위기 환기 된 것을 느끼며 다음 참가자의 조를 부르기 시작한다.
와아아아.
짝짝짝짝!
무대에 오르는 참가자들을 심사위원들과 뒤에 자리 잡고 있던 평가단들 모두 그들을 반기었다.
[최강보컬조]
그 이름에 걸맞은 보컬실력과 그들의 가능성을 본선 1라운드에서 높게 평가했기에 그들에게 거는 기대가 다른 조에 비해서 컸기 때문이다.
“이야. 다들 이름에 걸맞은 참가자들 밖에 없네요. 특히 그룹으로 참가했던 도경군과 성준 두 사람이 개인으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개인적으로 기대가 되네요.”
“박진용 심사위원 너무 둘을 편애 하는 거 아닙니까?”
“에이 저만 편애할까요? 제작진들도 편애하지 않을까요? 첫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저 둘이 노래할 때 시청률이13%를 넘겼으니까요. 다들 박수 주세요.”
와아!
짝짝짝짝!
박진용 심사위원의 말에 모두들 도경과 성준을 향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박진용 심사위원. 그러다 애들 부담 되서 무대 망치면 모두 그 쪽 책임입니다.”
“윽! 도경군 성준군. 저는 두 분이 잘 해줄 거라 믿어요.”
심사위원의 신분이지만 형 동생 하는 사이의 둘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웃었고 전원탈락이 남긴 흔적은 이제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다시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두 참가자 모두 화제의 인물인건 알지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강소영 참가자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아! 그렇죠. 강소영씨가 전에 보여줬던 청아한 목소리와 높이 감성적인 무대의 모습도 충격적이었죠.”
“딱 봐도 [LSM]에서 마음에 들어할만한 참가자죠. 스타일이나 풍기는 분위기가 [Lsm] 대표하는 걸 그룹 「Gir‘s century」에서 이제는 한 명의 싱어 송 라이터로 인정받고 많은 사랑을 받는 아연씨와 많이 닮았네요. 요즘 닮은꼴로 화제로 유명하다고 하네요.”
7명 중 홍일점인 그녀에게 쏟아지는 칭찬일색에 강소영은 쑥스러운 미소를 보이며 그들을 향해 감사하다고 고개 숙여 인사하기 시작한다.
“제가 아연님하고 닮았다니..”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표정과 달리 오만함과 자기애로 가득 차 있었다.
‘흥! 당연한 거 아니야? 샵 에서 들인 돈이 얼만데! 그 정도는 나와 줘야지.’
“어유. 부끄러워하는 거봐. 귀여워.”
“그만큼 이쁘다 칭찬하는 거에요. 이수민 심사위원뿐만 아니라 저희도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잘하길 빌게요.”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강소영은 심사위원들과 아이컨택을 시도하며 최대한 자신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최대한 순수하게 보이게.’
능숙한 표정연기와 제스쳐.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는 너무나 순수해 보여 보는 이로 하게끔 좋은 기분을 받게 하며 미소 짓게 만든다.
‘여기서 무대로 임팩트만 주면 돼.’
기획사의 훈련받은 이들의 무서운 점은 이런 것들 이었다.
자신의 마이너스 될 모습을 감추고 대중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철저히 훈련한다.
어릴 때부터 자기중심으로 위주로 관심 받기 위해서라면 모든지 하는 강소영의 천성적인 성격과 재능은 기획사에 들어가 구체적인 트레이닝 받고선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내고 있었다.
“첫 번째 순서가 공교롭게도 강소영양입니다. 쟁쟁한 남자 보컬들 사이에 떨릴 거라 생각합니다만 같은 여성으로서 잘해주실 거라 개인적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기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아자!”
하하하하.
누가 봐도 흐뭇해 할 수밖에 없는 소녀의 모습을 보이는 강소영은 모습에 모두가 아빠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응원하는 눈빛을 보낸다.
“부를 노래는 뭔가요?”
“아델의 「rolling in the deep」입니다.”
그녀의 신청곡에 심사위원 3명의 눈이 살짝 찌푸려지다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른 케이블 오디션 방송에서는 참가자들에게 금지곡을 할 정도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있어서 이미지 소모가 심한 곡이었기 때문이다.
“2,3년 전 많은 오디션 참가자들이 부르고 애창하며 불렀던 노래인데 그만큼 마이너스 요점이 분명한 곡임에도 부르는 이유가 있나요?”
“앞선 많은 참가자 부른 것은 알고 있지만 방송에서 제가 존경하는 아델님의 노래를 한 번 꼭 불러보고 싶어서 선택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후회 없이 노래하길 바랄게요.”
저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는 박진용은 뒷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의 건투를 빌었다.
별로 좋지 못한 선곡이라 생각하면서도 평소 존경하던 아티스트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솔직히 기특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네.”
끄덕.
그녀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얼굴이 화면에 포착되었고 반주자가 그녀의 신호에 맞춰 곡의 전조를 치기 시작한다.
띵띵띵띵.
모두에게 익숙한 전조가 들려오는 가운데 강소영은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끌어 모았다.
명곡이고 유명할수록 첫 소절을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청중이 몰입을 하느냐 안하느냐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후읍.
[There's a fire starting in my heart]
내 마음 속에 불이 붙기 시작했어.
허스키한 원곡과 달리 부드럽게 속삭이는 청아한 목소리. 원래의 곡과의 접근이 다른 방식이다.
“어? 아쿠스틱 버전으로 편곡했네.”
“그러네. 나름 신선한데?”
“.......”
‘이 편곡방식은...?’
두 남자가 감탄하고 있을 때 이수민 심사위원만 눈빛을 빛내며 강소영을 바라보았다.
“과연 그런 건가?”
피식.
“바뀐 게 하나도 없구나. 차 선배.”
자신만이 눈치 챌 수 있는 편곡 스타일.
왜 모르겠는가? 그녀와 긴 시간을 같이 음악을 했던 동료의 것인데 말이다.
그의 실력을 떠올린다면 자신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편곡할 수 있을 텐데 오히려 맞추라는 듯 티나게 곡을 작곡했다.
“저 아이는 알까? 자신이 악마의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말이야.”
노래 부르는 강소영을 향해 이수민은 알 수 없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I can't help feeling]
We could have had it all
Rolling in the deep!]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어
우린 모든 걸 가질 수 있었어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어느새 곡의 중후반을 달리는 강소영의 노래에 모두들 아델은 잠시 잊고 그녀의 목소리에 빠져들어 즐겁게 감상하였다.
원곡의 허스키하고 강렬한 느낌은 많이 빠졌지만 그를 채우는 청아한 목소리가 애달픔을 자극하며 곡의 정서를 고조시켜 나아갔다.
“이래서 검둥이들을 좋아하지 않아.”
무대 뒤에서 강소영을 바라보고 있던 도경은 떫은 표정을 지었다.
“왜? 재능 있는 녀석들이 검은 파동에 더 물들기 쉬운 걸까?”
도경은 검은 파동을 지닌 자들을 나쁘게 보았지만 사실 그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재능과 능력들을 지녀 한 편으로는 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저 유혹만 이겨냈다면 훌륭한 빛을 발했을 텐데 말이야.”
「빛을 발하는 자」와 끊임없이 「어둠으로 물들이는 자」 그 둘 모두 뛰어난 재능과 에너지를 지닌 것은 같지만 종이 한 장 뒤집는 차이처럼 결과는 극단적으로 갈라진다.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고 남도 이끄는 삶을 사느냐? 혹은 끊임없이 갈망하며 자신이 파멸될 때까지 남을 불행하게 만드는 삶을 사느냐.
명확하게 갈라지는 까닭이다.
“저건 위험해.”
어린 나이에도 저 정도로 순도 높은 어둠이라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무엇이든 거리낌 없이 저지를게 눈에 빤히 보였다.
“짜증나는군.”
모두가 그녀의 거짓된 빛에 홀리고 있는 풍경이 도경은 불쾌함을 느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