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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46화 (46/357)

46화

3라운드 팀 미션 당일.

시끌시끌.

“아! 너무 긴장돼.”

“괜찮아 잘할 수 있어.”

무대를 두고 긴장하는 참가자부터.

“어? 안녕하세요.”

“안녕. 연습 많이 했어?”

“뭐 저만 많이 했겠어요? 결과를 봐야 알겠죠.”

“파트너는 어때?”

이제는 서로들 친분이 제법 두터워져 서로의 근황 이야기를 풀고 있는 참가자까지.

확연히 전과는 달라진 풍경이었다.

참가자의 수가 줄어들면 들수록 서로들의 경쟁은 좀 더 치열해지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서로들 간의 친분과 정은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다들 친해졌나 보네요.”

“그렇지만 도경이 너는 아니지.”

“뭐래요? 형도 애들하고 별로 안 친하잖아요.”

“나는 나이가 있잖아. 10대 20대 초반 사이에서 20대 후반인 나에게 저곳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도경이 넌 상상도 못 할 걸?”

“아 그거 이해해요.”

이곳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는 28살의 김우진은 도경의 말에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한다고? 그럴 리 없잖아 너야 쟤들한테 형, 오빠지만 나는 삼촌뻘이란 말이다.”

“왜 이해 못 하겠어요. 저는 아재뻘인데..”

“뭐? 너가 아재라고?”

자신의 의기소침한 말에 김우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도경은 그를 보며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를 다 합치면 50 넘는 나이인데 내가 쟤들하고 낄 군번은 아니지.’

그가 어찌 알 수 있을까.

카일과 도경의 두 인생을 합치면 쉰 살이 넘는다는 것을 말이다. 이를 대놓고 얘기할 수 없기에 도경은 웃음으로 상황을 넘겼다.

“이곳 참가자들 사이에서 제가 제일 정신연령이 성숙하니까요. 우하하하!”

“응. 아니야.”

“?”

김우진은 도경을 향해 어이가 없는 웃음을 보였다.

박도경이 정신연령이 성숙하다? 아무리 내성적인 김우진이라도 이거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중얼

“도경이 너는 여기 어린이 참가 조 얘들 다음으로 어릴걸?”

“뭐라 구요?”

김우진의 나지막한 중얼거림. 하지만 자신의 흉에 유독 민감한 도경의 귀는 그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도경은 표정을 찌푸리며 그를 향해 도끼눈으로 노려 봐 주었다.

“이러다 내 얼굴 뚫리겠다. 하하하.”

“아주 여유만만이죠.”

“그럼. 내가 초조해야 할 일이 있을까? 네가 있는데?”

“으윽! 뭐래요. 우진 형. 이제 보니까 되게 낯 간지러운 사람이었네요.”

10일 사이에 변화한 김우진의 모습은 놀라웠다. 우환거리가 사라진 그의 모습은 보기 좋게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한결 가벼워져 보인다고 해야 하나?

예전에 지니고 있던 어둠침침함과 궁핍함이 사라고 나자 그의 원래 모습이 찬찬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었다.

“진심인데.”

“진심이니까 더 문제라니까...”

도경은 우진의 원래 모습을 보며 여자들에게는 우진이란 존재가 조금은 위험하다 생각했다. 우환거리가 걷힌 김우진에게서 이제는 여유롭고 포근한 분위기가 풍겨났는데 이게 묘한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 오빠 같은 이미지에 치명적인 마력이 섞여있다 해야 할까?

‘이 형. 타고났네. 타고났어.’

성숙한 느낌이 드는 선한 얼굴에 모성본능까지 자극하는 유약함까지 한데 섞여 왠지 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애를 태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응 도경아 왜그래?”

씨익.

흠칫.

물끄러미 자신을 쳐다보는 도경을 향해 웃음을 짓는 김우진. 도경은 그의 웃음을 보고는 흠칫했다.

너무나도 선한 미소.

저 미소라면 그가 보증서류를 내밀어도 당장에라도 도장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위험한 남자일세...!”

김우진은 자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웃음이 많아진 것이다. 그리고 그 웃음은 이곳에서 알게 모르게 파급력을 내뿜고 있었다.

힐끔.

‘저 봐라....’

전에는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여성 참가자들이 지금은 흘깃흘깃 그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 도경의 눈에 간간히 포착 되었다.

사람에게 근심걱정이 없어진다면 얼마나 많이 바뀔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케이스의 유형이 김우진이었다.

힐끔.

“헐...! 트리샤야.. 너마저!”

“응? 트리샤?”

“안돼!”

도경의 말에 김우진은 트리샤란 참가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혼혈의 예쁜 얼굴과 귀여운 미소로 유명한 참가자였기 때문에 김우진은 금방 그녀가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흠칫.

자신과 눈을 마주친 소녀를 보며 김우진은 그녀를 향해 눈웃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꾸벅.

김우진의 인사에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운 미소를 짓는 트리샤는 그를 향해 조그맣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안 된다 했잖아요!”

퍼억!

“으악.”

자신의 엉덩이를 걷어차인 김우진은 놀라서 도경을 쳐다보았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도경아 아까부터 뭐가 안 된 다는 거야?”

“아무 데나 끼 부리지 말아요. 특히 우리 트리샤한테!”

“뭐어?”

“내 주변에 있는 남자들은 대체 왜 이리 헤픈지 모르겠어.”

투덜투덜.

자신의 잘못을 자각 못 하는 김우진을 바라보며 도경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충고하지만 김우진의 입장으로선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내가 끼를 언제 부렸다고 그래?”

“자각도 없는 게 더 나쁜 걸 나중에 알 겁니다.”

“내가 나이가 몇인데 끼를 부려. 도경이 너야말로 조금 위험하지 않니? 트리샤 나이가 몇 살인 줄 아니? 그러다가 큰일 나.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우리나라에서 이미지는 중요하니까...중얼중얼.”

자신을 향해서 설교하는 김우진을 보며 도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허...”

‘옛날에 그 녀석을 보는 거 같네.’

김우진을 볼 때마다 천연으로 많은 여성의 마음을 애태우고 울렸던 [분홍바람]이라 불렸던 음유시인이 떠올랐다.

도경이 개인적으로 가장 분해하고 질투했던 음유시인.

빠드득.

‘더러운 페로몬 몬스터...!’

자신은 분명 최고의 음유시인 이었지만 주변에는 괴짜들과 땀 내나는 남자들이 득실거려 고달프게 살아왔던 도경과 달리.

그는 항상 하늘하늘한 알짜배기 여자들의 치마폭에서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던 것을 사실을 떠올리자 도경은 절로 이가 갈렸다.

“쯧.”

도경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옆구리가 시린 감각에 자신이 초라해지는 느낌에 발걸음을 빨리 옮겼다.

“좋은 자리 없어지기 전에 얼른 와요.”

“도경아 같이 가.”

이제부터는 심사위원과 같이 다른 참가자의 무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도경은 김우진을 뒤로하고 먼저 방청석을 향해 걸어간다.

“나는 대륙 제일의 붉은 보석이라고 부러워할 필요 없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걸음을 걷는 도경의 등이 안쓰럽게 축 처져 있는 건 기분 탓일 것이다.

“같이 가자니까?”

“시끄러워요.”

괜히 짜증 내는 도경. 그 모습에 김우진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 번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쉬었다.

“진짜 감정 기복 심하다니까...”

--

씨익.

“두 사람 다 호흡이 좋네.”

“......”

“우리 둘하고 다르게 말이에요? 그렇죠?”

뒤에서 도경과 김우진을 바라보는 한 사람은 부러운 표정으로 그 둘을 바라보다 옆에 있는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단순한 비아냥.

좋은 의도라고는 담겨있지 않은 메마른 어조에 옆에 있던 소녀는 그를 보며 으르렁거리듯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입 냄새 나니까 조용히 하고 닥쳐 비렁뱅이 새끼야.”

“어이쿠. 남이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소영 누나? 말조심해야죠. 비렁뱅이라니 말이에요.”

씨익.

빠직.

“그래 계속 그렇게 설쳐봐. 어떻게 될지 한 번 두고 볼 테니까 말이야.”

“뒤에서 추잡한 짓거리 하는 것보다 자신만만한 게 낫죠. 안 그래요?”

“흥.”

모욕적인 언사에도 성준은 웃음 지으며 그녀의 성격을 최대한 긁었고, 강소영은 그를 향해 냉기를 풀풀 풍기며 방청석이 있는 자리로 걸어갔다.

주변 참가자들도 그들의 사이가 좋지않는 것을 깨달았는지 그 둘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한 눈빛을 보내었다.

수군수군.

“살벌하네. 재들 분위기가 왜 저래? 상대 팀 추천할 날에는 괜찮아 보였는데?”

“뭔 일. 있었나 보지.”

“생각 외로 안 맞았나 보네.”

끄덕.

팀 중 강력한 팀으로 참가자들 사이에 인정을 받고 있던 두 사람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자 모두 궁금해하는 한 편.

강력한 팀 하나가 스스로 자멸할 기대하는 마음을 품기도 하였다.

미안한 소리지만 강력한 상대가 스스로 떨어지는 것만큼 그들에게 고마운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팀 미션을 시작 하겠습니다. 모두들 심사위원분들을 향해 박수를 쳐주세요.]

와아아!

짝짝짝.

오늘 하루 동안 50명 남짓 참가자들의 심사를 보게 될 3대 기획사 사장들이 자리에 나타나자 뜨거운 환호가 스튜디오 안을 울렸다.

이제는 익숙한 심사위원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참가자들은 속으로 이번 라운드에 꼭 살아남을 것을 다짐한다.

“꼭 캐스팅 오디션까지 살아남겠어.”

이번 라운드만 넘기면 참가자들이 모두 기대하는 캐스팅 오디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맛보기 식으로 3명의 심사 위원에게 밀착 오디션을 경험하고 실력이 증진한 효과를 본 그들에게 있어 3대 대형 기획사 트레이닝을 받는 것은 탑10이전에 제 1차 목표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랜만에 뵙습니다. 다들 열심히 연습은 하셨나요?”

“네에!”

자리에 앉은 심사위원 중. 역시나 제일 막내인 박진용이 마이크를 들어 올리고 참가자들을 향해 인사를 먼저 건네었다.

“지금부터 규정을 설명하겠습니다.”

1.패배한 팀 중 1명만 합격 가능. (혹은 둘 다 탈락.)

2.두 팀, 전부 합격자가 안나 올수도 있습니다.

3.탈락자 중에 탈락하기 아까운 참가자는 심사위원 [세이브카드]추천으로 다음 라운드 진출 가능합니다.

“두 팀 다 탈락할 수 있다고?”

꿀꺽.

“역대 최고로 제일 살벌하잖아.”

간단하지만 전번보다 살벌해진 규칙에 참가자들 모두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심사위원들을 바라보았다.

“눈치채셨겠지만 이번 라운드는 대전운 이라던가, 애매한 상황, 어중간한 실력으로는 다음 라운드에 진출이 어렵습니다. 그러니 모두 최선을 다해서 무대에 임해주셨으면 합니다.”

“네!”

박진용 심사위원의 냉정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을 응원하는 말에 모두들 소리 높여 대답한다.

“자, 그럼 시작할까요?”

와!

짝짝짝짝.

--

“후유. 드디어 시작이네.”

첫 참가자들로 이루어진 팀이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도경의 옆에 있던 김우진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에요? 갑자기...”

“그러게 갑자기 처음 참가하는 것처럼 떨리네.”

자신도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김우진은 새삼스레 지금 자신이 있는 장소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긴장한 거예요?”

“긴장이야 항상 되지.”

두근두근.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라.”

“응?”

긴장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고 항상 익숙한 김우진은 지금 자신의 상태는 평상시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예선부터 지금까지는 긴장으로 몸이 굳고 위축됐던 것과는 명백히 다른 상태인 까닭이었다.

‘긴장되는데 떨리기도 해. 이런 적은 처음이야.’

항상 자신의 순서 앞에서 무대를 망칠까 봐 두려움에 떨었던 김우진은 지금의 앞에 있는 무대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예전에는 무대가 사형장처럼 보였는데 말이야...’

본인조차도 헛된 꿈이라 생각하면서도 끝까지 미련을 가지고 올라서려는 자신을 심판하는 처형장이란 무대.

그런데 지금은 그곳으로 빨리 올라서고 싶은 김우진이다.

두근두근.

심장 박동수에 맞춰 몸이 한껏 달아오른다.

“성준 이가 말한 게 이거였구나.”

전에 「은하수 별」에서 도경과 혹독한 연습을 하고 휴식하고 있을 때. 자신에게 다가와 다소 부럽다는 얼굴로 말을 걸었던 성준이 떠올랐다.

“도경이 형하고 팀을 하다니 형은 진짜 운이 좋은 줄 아세요.”

“도경 씨가 잘하긴 잘하지.”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닌데...”

긁적긁적.

“응?”

자신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지만 성준은 명확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다만 두루뭉술한 말로 표현했을 뿐이었다.

“도경이 형은 바람이에요.”

“바람?”

“그 형하고 있다 보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게 될 거에요.”

그 당시 성준이란 소년이 자신에게 한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툭툭!

“그렇게 떨리면 잠시 밖에서 나갔다 들어 올까요?”

조금 전에는 짜증을 내더니 이번에는 걱정해준다. 정말 변덕스러운 녀석이었다.

풋.

“뭐에요. 생각해줬더니만.”

자신을 보고 웃는 김우진을 보며 도경은 눈살을 찌푸렸다. 상태가 조금 이상해 보여서 걱정 해줬더니만 괜한 짓을 한 느낌 이었다.

“하하하하.”

“이젠 갑자기 웃네? 무대를 앞두고 진짜 실성 한 거에요?”

‘뭐지?’

천하의 도경이라도 사람의 갑작스러운 심경변화는 예측할 수 없어 조금 당혹스러워지려고 할 때쯤. 김우진이 웃음을 힘겹게 멈추고는 도경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아니. 네가 갑자기 상냥하게 대하니까 웃기잖아.”

“허.... 사람을 도대체 어떻게 보고.”

항상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였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저런 모습이라니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라 생각이 들었다.

“정말 성준이가 말한 대로구나.”

“하아? 성준이가 무슨 이야기 했어요? 걔 또 쓸데없는 얘기 했죠!?”

“으응. 아니, 오히려 좋은 이야기였어.”

“걔가요? 그럴 리 없어요. 뭐에요 뭐라 얘기했어요?”

투덜투덜.

투덜거리는 도경을 보는 한편 김우진은 성준의 말에 이제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성준은 도경을 향해 바람이라 표현했는데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끄덕.

‘도경은 변화를 일으키는 바람이다.’

사방이 막히고 껌껌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갑갑한 현실 속에 자신에게 날아온 바람 한 줄기.

숨 막혀 죽을 것 같던 김우진에게 도경은 그의 어둠을 걷어내고 ‘꿈’이라는 빛을 안겨다 주었다.

“이제는 무섭지 않아.”

그와 함께 있으면 싫든 좋든 변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김우진은 도경과 만남에 신께 감사했다.

두근두근.

처형장으로만 보였던 무서운 무대가 김우진의 눈에 들어온다.

“무대 위에 올라가서...”

당장에라도 무대 위에 오르고 싶은 자신을 발견하며 그는 자신의 목을 붙잡았다.

“노래하고 싶다.”

김우진은 무대에 올라가 마음껏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두려움에 떨던 와중 순서가 되어 마지못해 하는 노래가 아닌 처음으로 자신이 직접 먼저 나서서 노래하고 싶은 것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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