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철없는 어른의 표본을 보여줬던 도경.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뒤로하고 이번에는 심사위원들이 김우진을 향해 인터뷰를 하였다.
“우진씨는 도경군하고 팀을 하게 됐는데 괜찮았나요? 선곡도 그렇고 도경 씨가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어서 고생 좀 했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도경이 아닌 우진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박진용은 그를 지목하며 물었다.
종잡을 수 없는 도경과 내성적으로 보이는 우진 둘이 서로 어떻게 손발을 맞췄는지 한번 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
그의 말에 우진은 머릿속으로 도경과 함께했던 요 2주간 떠올려 보았다.
껄렁한 겉보기와 달리 기가 질릴 정도로 호통과 혹독한 연습. 몸은 정말 힘들었지만 몸의 모든 것을 쥐어짜는 그 감각은 좋았다.
온몸에 땀이 흐르고 옷은 푹 젖어 들어가고 갈증이 날 때에는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열기를 식혔다.
휴식시간에는 은은한 커피향이 몸에 베일 때까지 푹 쉬었다.
‘힘들지만 즐거웠지.’
배시시.
김우진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힘들었지만 자신의 인생 중에 그렇게 충실하고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본 적은 없다 김우진은 생각했다.
“저는...!”
목표를 세우고 전력으로 뛰었다. 달리지 못하면 걷기라도 했다. 덕분에 충실한 하루하루가 뭔지 알게 되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도경과 함께 있으면 하루가 매우 충실했다 그래서 불안하지도 않았고 아무런 걱정 없이 노래를 할 수 있었다.
연습 한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새삼 깨달았었다.
“도경이와 팀을 한 것을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우환과 부정적인 기운으로 가득 찼던 김우진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 하지 않는다.
김우지는 처음으로 심사위원들을 향해 해맑게 웃었다.
“행운이라고요?”
“네.”
좋았다. 많은 것을 배웠다. 잘해 주었다. 같은 수식어들은 들어 보았어도 행운이라고 말을 하는 참가자는 처음 본다.
무엇보다 진심으로 웃고 있는 김우진의 모습은 너무나 낯설었다.
‘원래 저런 인상이었나?’
“김우진 참가자 뭔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전과는 달리 많이 밝아진 모습이에요. 보기가 좋군요.”
짐을 덜었다고 해야 할까? 홀가분해 보이는 그의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그러게요. 지금은 묘하게 자신감에 가득 차 있어 보이는군요.”
“기대되네요. 두 팀 다 자신들의 역량을 마음껏 보여주는 무대가 되었으면 합니다. 슬슬 무대를 보도록 할까요?”
짝짝짝.
무서울 게 없는 두 소년들의 패기와 잃었던 자신감을 찾은 28살의 청년의 대결에 모두들 주목하며 손뼉을 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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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무대를 보일 대상은 11살 의 두 소년
「베스트 프렌드」
어린 나이라 믿을 수 없는 랩과 춤 실력에다 수많은 책을 읽으며 다독으로 다져진 작사능력까지 지닌 김중섭.
그리고 그의 파트너 우현진 또한 그와 만만치 않은 재능을 겸비하고 있었다.
밀착 오디션 때. 우연치 않게 보컬의 재능을 발견하고 랩이 아닌 노래로 전향하면서 현재 K스타에서 확실하게 자신의 재능을 뽐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리지만 무시하기에는 그 둘이 가지고 있는 무기들이 하나같이 특출 난 것이다. 그렇기에 심사위원들은 이 둘에게 [K팝의 미래] 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매번 나이를 뛰어넘는 무대를 보여주는 둘의 상승세를 무시할 수 있는 참가자는 사실상 아무도 없었다.
두둥!
스으윽!
“아아아~!”
도입부 부분을 자신의 목소리로 과감하게 매우는 우현진의 목소리에 모두가 감탄하는 웃음 지었다.
“Are you ready!”
[If I was your boyfriend I’d never let you go]
귀에 익숙한 노래.
「Justin Bieber - Boyfriend」
세계적인 악동으료 유명한 저스틴 비버의 보이프렌드.
누가 보아도 자신들의 캐릭터와 남자다움을 어필하기 위해 고른 노래인 것을 알 수 선곡.
“이야. 쟤내들 선곡 센스 봐...!”
세계적인 악동이 자신은 남자라 외치는 노래를 자신들을 어린소년으로 보는 주변시선을 탈피하는데 영악하게 사용한다.
“애들인데 정말 애들 같지 않은 발상이야.”
그러고선 당당하게 한 참가자로서 어필하는 자신들의 의도를 전달하려는 소년들의 모습에 심사위원들이 웃음 지었다.
[어린 소년이라는 편견을 버려.
그러면 너는 즐거워 질거야.]
자신들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부담스럽지 않고 세련되게 풀어 담은 둘의 랩에 모두가 집중하며 가사의 의미를 음미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생각이 담긴 당찬 랩이 끝났다.
스윽!
[So give me a chance, ‘cause you’re all I need girl]!
(넌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니까 내게 기회를 줘봐.)
“!?”
“와!!!”
랩이 끝나자마자 보컬을 맡은 우현진의 목소리가 훅 들어오며 무대 위에서 가창력이 폭발한다.
“워어어어!”
단숨에 모두의 귀를 사라 잡은 우현진.
와아아아!
이 기세를 몰아쳐서 서로가 한 사람처럼 음을 맞추며 스캣 주고받는 둘의 모습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흐음~!-우현진
워어~!-김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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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한다.”
“잘하네요.”
모두가 두 소년에게 호응하며 집중하는 분위기에 무대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김우진이 중얼거렸고 도경이 그의 말에 맞장구 쳐 주었다.
다다! 당! 당당 다!
“호우!”
“와아아!”
랩과 노래로 귀를 사로잡는 데 만족하지 않고 두 소년은 춤으로 관중들의 시선까지 사로잡기 시작한다. 포인트 되는 부분에 한 동작, 한 동작 보여줄 때마다 환호성이 튀어나오는 주변 분위기.
현재 분위기는 두 사람을 중심으로 물이 오른 상태.
두둥!
“어 뭐야 끝난 게 아니었어? 다른 노래가 나오는데?”
휘리릭!
땅!
두둥!
[Dance Time]
“와아아아!”
두 소년이 준비한 회심의 비장의 카드.
2개의 곡을 매쉬 업하여 댄스 타임을 만든 두 소년의 장치에 분위기는 이제 과열하다 못해 터지려고 한다.
쿵쿵!
휙!
초등학생임에도 멋있다 생각이 들 만큼 절도 있는 움직임과 동작. 어느새 다들 숨죽이며 그 둘의 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휘익! 쿵!
콰쾅쾅!
강렬한 마지막 비트가 끝이 나고 두 소년의 동작이 멈추자 모두가 참아왔던 환호를 마지막으로 화답한다.
“멋있다 베스트 프렌드!”
삐이익!
짝짝짝짝!
두 소년이 보여준 대단한 무대에 박수로 보답하는 청중들에 소년들을 밝은 미소를 지으며 주위에 인사를 올리며 가운데 자리에 모여 심사위원들을 쳐다본다.
“모두 정말 잘했어요!”
역시나 감정을 숨기지도 주체하질 못하는 박진용 심사위원은 먼저 마이크를 들어 올려 그 둘의 칭찬을 시작하였다.
박진용 심사위원을 시작으로 나머지 심사위원 모두가 베스트 프렌드를 향해 장점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그 둘의 대단한 점과 미래성까지 보기 드물게 극찬을 하였다.
“정말 믿기지 않게 잘하네...”
뒤에서 상대 팀을 지켜본 김우진은 고개를 절레 저었다.
‘나는 저 나이 때 뭐했더라? 상상도 못할 일이네. 저런 게 천재라는 건가?’
소년들의 빛나는 재능과 실력에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부럽다. 정말로...!”
김우진은 저 두 소년이 부러웠다.
자신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젊음이란 시간. 저 두 소년에게 있을 무안하고 밝은 장래가 말이다.
아직 자신도 28로 젊지만 본인 스스로 젊다는 느낌이 들기 보다는 제구실을 못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나이였기 때문이다.
조금만 지나면 30대.
더 조금만 지나면 40대를 찍겠다는 생각에 젊다고 느끼기보다는 다급하다는 감각이 정답이었다.
“뭐가 그렇게 부러 워요?”
“부럽지. 저 나이 때 정말 모든 걸 할 수 있는데 그 시기에 자신의 재능을 개화하는 거잖아. 쓸데없이 수능 공부다 대학교다 신경 안 쓰고 재들은 이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에만 노력하면 되는데 당연히 부럽지.”
남들처럼 가기 싫은 학원 이끌려 사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어린나이에 주도적으로 사는 그 모습은 김우진이 꿈꿔 왔던 삶이다.
“젊음 그 자체로도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구나.”
자신이 절대 가지지 못한 눈부심.
가슴속에 쓴 씁쓸함과 질투가 올라와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툭!
“참나! 또 지지리 궁상 버릇 나왔네.”
“응?”
“아니. 왜 그렇게 남에 걸 탐내요. 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도 소중히 여겨봐요.”
“내가 가지고 있는 거...?”
도경의 말에 우진은 자신의 말을 흐렸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뭐가 있지?’
아무리 떠올려도 부끄럽지만 저 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눈부심을 이길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왜요. 형은 가지고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솔직히...!”
“형한테는 어른의 쓴맛이 있잖아요.”
“뭐?”
어른의 쓴맛이라니.
분명 도경이 전에 꺼냈던 말이었다.
“그래요. 어른의 쓴맛. 저 꼬맹이들이 입시를 해봤겠어요? 짝사랑을 하다 실연을 해봤겠어요? 아니면 절절한 사랑을 해봤겠어요? 맛있는 치맥을 먹어 봤겠어요? 무엇보다...! 군대를 다녀 와봤겠어요?”
“뭐!?”
도경의 어이없는 말에 김우진은 실소 했다.
대한민국에 소속된 남자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대단치 않은 경험이다.
“그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매니저로서 굴욕과 수모를...! 암담했던 빚 채무를! 아프신 어머니를 돌보는 경험들을 쟤들은 알 수 있었을까요?”
멈칫.
“형은 여태껏 쌓아왔던 쓴맛은 형만의 것이에요. 그건 아무도 대체 못해요. 그리고 그걸 견뎌내고 여기 서있는 거잖아요. 대단하다고 생각 안 해요?”
“도경아...”
“정말 쟤들 것만 부러워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 하는 거에요?”
도경의 말에 가슴이 진탕되는 김우진은 자신이 여태껏 살아왔던 인생을 떠올렸다.
평범하지만 그래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학창시절, 아팠던 첫사랑이자 짝사랑.
‘그래 분명 나쁘지 않았어.’
평범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나쁘지도 않다는 것이기도 했다.
대학시절 술 한잔과 함께 자신들의 꿈과 개똥철학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새웠던 낭만이 있던 시절도 있었고, 군대에서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여자 친구 때문에 탈영을 생각할 정도로 순수하고 어린 적도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군대에서 접한 아버지에 대한 부고에 가슴이 찢기는 경험도 하였고 후에 사회에 쓴맛이란 쓴맛을 다 겪으며 현실에 대한 삭막함과 무거움을 알았다.
그리고 그 이상의 쓰다 못해 고통스러운 것들도 존재하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 약값조차 낼 돈이 없었을 땐 환장하는 줄 알았지.’
그 때는 꿈을 입에 담았던 자신을 때려주고 싶었었다. 쥐뿔도 없는 자신의 무능력함에 치가 떨렸고 쓴 술을 안주 없이 퍼부으며 자신에게 욕을 퍼부어 주었다.
그 후 악착같이 살았다.
더러운 꼴이란 꼴은 보면서 운전대를 붙잡으며 밤새워서 노예처럼 매니저 일에 매달려 왔다.
이 모든 것을 떠올릴 때 도경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정말로 형한테는 소중히 여길게 자부심 가질 게 없어요?”
뿌드득.
도경의 말에 절로 이가 갈렸다.
“아니 있는 것 같아.”
살면서 비뚤어지거나 남에게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다.
‘나는 떳떳하게 살아왔고..!’
포기했던 꿈을 다시 주워 담아 억지로 하늘 높이 던져 올리며 이 자리에 서 있다.
‘포기했던 꿈을 다시 시작할 정도로 바보가 나야.’
도경의 말대로 그 모든 것을 이기고 이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이다. 생각해보니 자신은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이 들었다.
‘잘 견뎌내 왔어. 너는 훌륭해 김우진.’
울컥.
자신에게 건네는 한 마디에 온몸이 떨려왔다.
처음으로 건네 보는 스스로의 칭찬과 인정에 두 눈이 시큰거려 오는 것이 느꼈다.
“도경이 네 말대로 나에겐 당당한 어른만 지닐 수 있는 쓴맛이 있어.”
씨익.
“역시 그렇죠?”
김우진의 말에 도경은 기쁘게 웃었다.
그가 순순히 자신 안에서 대단함을 깨달아준 게 기뻤기 때문이다.
“쟤들은 순전 빛나는 것밖에 할 게 없는 애들이에요. 부러워할 거 없어요.”
스윽.
도경의 말에 김우진의 눈에 극찬을 받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년들을 보면 부럽고 자괴감이 들었는데 이제는 둘의 보기 좋은 모습에 웃음이 지어진다.
질투할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나에게도 빛이 있어.”
자신 안에도 빛이 있다.
저 아이들처럼 순수하고 눈부시지는 않지만, 좌절과 역경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은 강인하고 고집스러운 빛이다.
전혀 부러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을 깨달은 우진의 눈빛은 굳세게 빛났다.
“[우여곡절]팀 올라와 주세요.”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내려오는 베스트프렌드의 애들의 눈빛을 받으며 도경과 우진은 무대 위로 올라선다.
짝짝짝.
반겨주는 소리와 함께 도경과 성준은 팀명 소개를 하기로 시작한다.
“저희는 별별 일을 겪으며 이곳으로 올라온 [우여곡절]이라 합니다.”
차분하고 덤덤하게 자신의 팀명을 소개하는 김우진의 모습에 들떴던 분위기가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묘하네...”
전부터 자신이 알고 있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김우진에게 박진용은 자꾸 시선이 가는 것을 느꼈다.
어둡기만 했던 참가자 김우진 그에게서 묘한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다 청바지에 흰 티로 옷을 맞춰 입었네요. 컨셉인가요?”
태현섭은 둘을 보며 피식 재밌다는 웃음 지었다.
“보니까 두 참가자가 부를 노래 시대 배경에 맞춰서 옷을 갖춰서 입었나 보네요.”
87년도에 나온 노래에 복고풍으로 맞춰 있음 둘의 시도에 귀엽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태현섭.
“꽤나 옛날 노래를 들고 가져왔어요. 뭐 옛날은 아니지만, 그것도 J-Pop으로 말이에요. 많은 노래 중 이 노래를 고른 이유가 있나요?”
심사위원들은 궁금증이 담긴 눈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암묵적으로 이 곡을 도경이 고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시선이 모였다.
“노래가 좋아서요.”
“하?”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 같았는데 너무나도 간단한 이유에 힘이 빠지는 심사위원들이었다. 이에 도경이 웃었고 설명은 김우진이 담담하게 말해 나갔다.
“요즘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좋은 노래라 골랐습니다.”
“들려주고 싶은 노래 라고요?”
“네. 지금부터 「僕が僕であるために」 (내가 나답기 위해서)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스윽.
무대 앞에 있는 마이크 스탠드 위에 마이크를 꽂은 김우진은 옆에 있던 기타를 꺼내어 어깨에 멘 도경과 눈을 마주쳤다.
통기타 하나와 마이크 스탠드 2개. 두 사람이 노래할 준비는 끝났다.
“시작하자.”
“갑니다.”
끄덕.
김우진이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타 현을 부드럽게 퉁겼다.
띠리링.
땅.
“모두 이 노래를 듣고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김우진의 부드러운 말에 무대 위의 공기가 촉촉하게 젖어간다.
“후...”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