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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54화 (54/357)

54화

“후우! 예이~ 예!”

‘떨어져!, 떨어져!, 떨어져..!’

미친 듯이 곡예를 하듯 음계를 오가는 강소영의 절정의 애드립. 누가 들어도 입이 떡 벌어질만한 실력을 선보이지만 지금 그녀의 속은 꼴이 엉망이 아니었다.

[그 누가 알겠어요? 어떤 기적을]

(Who knows what miracles)

“!?”

녹음된 코러스 위로 성준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린다. 자신의 애드립을 한치에 오차 없이 휘감아 오는 그의 노랫소리에 기가 찼다.

‘대체 어떻게 따라 오는 거야?’

단순히 가사에 코러스를 넣는 게 아니었다.

자신이 스캣으로 부르는 애드리브라인 까지 넘어 들어와 자신이 내는 음에 화음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런 성준의 행동에 강소영은 놀람을 넘어서 경악을 하고 있었다.

손발도 맞춰보지 않은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내뱉는 스캣을 따라오는 사람이 있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뭐 이런 무식한 놈이!’

무엇보다 무모함을 넘어선 그의 터무니없는 배짱에 강소영은 이를 깨물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일수록, 실력자일수록. 노래라는 게 자칫 조금만 어긋나도 헝클어지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법.

한 곡의 3-4분의 짧은 시간.

그 사이에 단 몇 초만 삐걱거려도 노래의 맛이 상해 버리는 걸 성준은 분명 인지하고 있을 텐데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이나 망설임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실패가 두렵지 않은 거야?’

저리 태연하게 즉흥적으로 스캣을 따라 부르다니. 도저히 그녀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하기도 싫었다. 노래가 다 끝난 막판에 와서 저렇게 위험을 간수 하고 쳐 들어오는 제정신이 아닌 그의 사고회로를 알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신과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최악의 타입이었다.

“아아악”

‘떨어지란 말이야!!!’

그녀는 어떻게든 성준을 따돌리기 위해 비명을 지르듯 노래를 울부짖는다.

“...성장했어.”

박진용 심사위원은 둘의 노래를 들으며 성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두 눈을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기량이야.”

3명의 심사위원 중. 현 작곡가이며 음악적인 소양이 뛰어난 박진용.

지금 그는 성준이 보이고 있는 노래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이 자리의 누구보다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노래 중간 부분부터 박진용심사위원은 곡의 편곡구성이 강소영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 것을 파악했었다. 그렇지만 강소영을 비판할 마음은 없었다.

그런 결과가 만든 데에는 성준이 원인 제공자였고 강소영의 사정을 고려해 본다면 그것이 크게 비판할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의 편곡을 덕분에 훌륭한 결과물이 만들어 졌다.

솔직히 녹음 본을 코러스로 사용하는 강소영의 기지에 작곡가로서 감탄마저 할 정도였다.

“이 곡은 강소영 자기 자신을 위한 곡이다.”

박진용은 오히려 작곡가적인 능력을 보이는 강소영을 높게 평가했다. 외모,작곡실력,가창력,젊은나이까지 무엇하나 빠짐없이 훌륭하다.

분명 누구라도 탐낼 인재였다.

“그런데 왜 내 눈에는 성준만 눈에 보이는 걸까?”

갸웃.

분명 자신을 위한 곡만 부르는 강소영만이 눈에 들어와야 할 상황.

그런데 박진용의 눈에는 성준이 밖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아아아!]-강소영.

[우우우!]-성준.

“역시 우연이 아니었어.”

강소영이 코러스에 위에 부르고 있는 것은 즉흥성이 강한 스캣이 분명했다.

저 정도로 변칙적으로 음을 꺾으며 음계를 오가는데 연습으로 만들어진 인위적인 결과물일리 없었기 때문이다.

가성과 진성으로 오가며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스캣은 기존 가수에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미치겠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박진용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그녀의 스캣을 따라 부르고 있는 성준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는 거지? 지성준이라는 아이가 이 정도였나?”

성준이 강소영의 스캣을 따라 부르며 화음을 집어넣고 있는 모습을 지금 두 눈으로 보고 있지만 정말 말이 되지 않는다 생각이 들었다.

대체 강소영이 어떻게 스캣을 집어넣을지 알고 저렇게 한 치에 오차도 없이 그녀의 목소리에 화음을 집어넣는다 말인가.

가히 기예와도 같은 성준의 실력에 혀를 내두르며 경악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거짓말을 한 건가?”

지금에 와서는 박진용은 저 둘이 연습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 거짓말이지 않을까 의심까지 하게 되게 이르게 된다.

[당신이 일으킬지-!]

‘이익!’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가장 현재를 믿기 힘든 사람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강소영 그녀였다.

‘거짓말이야. 이런 빌어먹을 비렁뱅이한테 내가...!’

강소영은 지금 말로 형용하기 힘든 수치심과 굴욕감에 막말로 돌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여유 만만했던 모습은 지금 그녀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우와. 혼신을 다해서 노래를 부르네.”

“대단하다.”

“그러게 저렇게 잘할 거면서 왜 운거래?”

자신에게 있는 힘을 쥐어짜 내어 필사적으로 그녀의 노래하는 모습에 참가자들은 감탄하며 그녀를 치켜세우기 바쁘지만 그건 모두 다 오해였다. 사실 강소영은 이렇게 필사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원하는 자신의 모습은 고아하고 격이 높은 아름다운 모습이었지.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긁어내서 여유 없이 필사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아니었다.

카가각!

그녀는 지금 자신의 견고한 자존심에 상처가 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면 안 돼!’

지금 그녀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굳건한 믿음이 깨지고 있는 것에 비명을 질렀다.

‘나는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란 말이야.’

자신감, 자존감 그런 하찮은 게 아니라 정말로 자신 스스로 그리 생각하는 것이다.

부와 권력이 있는 집안에 태어나 남들에게 사랑받는 뛰어난 외모를 지녔고 남들이 수없이 연습해도 못하는 것을 단숨에 이뤄내는 재능까지 가졌다.

[우월한 특권의식]

그것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존재가 강소영 이었다.

분명 잘못되고 일그러진 가치관과 생각이었지만, 이를 제대로 잡아 줄 수 있는 것들은 그녀의 곁에 존재하지 않았다.

드드드드..!

‘이 녀석이... 나보다 위라고!?’

그런데 지금 그녀만의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럴 리가 없어!’

“후우우~!”

듣기 좋은 가성을 뽑아내는 와중에 강소영은 생각지도 싫은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절대로 해서도 들어서도 안 되는 생각에 몸이 부르르 떨려오기까지 한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특권의식을 가진 자들이 가장 비참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건 바로 자신이 아래로 생각했던 존재들에게 굴욕과 수치를 당하는 위치로 떨어지는 자신을 발견할 때였다.

움찔.

강소영이 자신에게 끔찍한 생각을 해버리는 순간. 그녀의 몸이 일순간 경직되었고 틈이 만들어졌다.

‘여기다!!’

[당신이 믿기만...!]

“아...!?”

아슬아슬한 맹추격전 끝. 그리고 잠깐의 틈.

성준은 그녀의 망설임이 만들어낸 미세한 빈틈을 놓치지 않고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한다면!]

그녀를 추월하는 동시에 성준은 강소영의 뒤에서 여태까지 참아왔던 에너지와 욕구불만을 토해내듯 자신의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아~!!!!”

좁은 새장에서 큰 날개를 접고 몸을 웅크리고 있었던 새가 하늘위로 비상해 오른다.

‘꺄아아악!’

쨍그랑!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성준에게 추월당한 강소영은 자신이 따라잡을 수 없는 곳을 먼저 날아가는 그의 모습에 자신 내부에서 와장창 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든 당신은 해낼 수 있어요.

당신이 믿기만 한다면.]

주르륵.

마지막 남은 가사.

성준의 목소리에 맞춰 굴욕적인 코러스를 하는 강소영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보였다.

“흑..흑...!”

[When you believe~.]

강소영의 침묵과 마지막으로 여운을 남기는 성준의 목소리.

그 둘의 노래와 승패가 지금으로 끝이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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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짝짝짝짝!!!!!

꾸벅.

“감사합니다!”

우레와 같은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그 둘에게 쏟아진다.

부르르르.

“나는 할 수 있어.”

꾸우욱.

「When you believe.」

믿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이 노래에서 승리를 쟁취한 성준은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더욱 굳건해졌다.

“흑흑흑. 이건 말도 안 돼!”

반면 인생에서 처음으로 패배한 강소영은 자신에 대한 자존심과 특권의식이 심한 상처를 입고 말았다.

남들이 있는 곳에서 진심으로 눈물을 보일 정도로 말이다.

“말도 안 된다고 내가 질 리가 없잖아.”

강소영이 눈물을 보이는 모습에 모두들 그녀가 노래를 부르다 감정이 격해져 울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처음 겪는 패배에 대한 수치심에 눈물을 보이는 거였다.

‘흥 울긴 왜 울어? 뿌린 대로 거둔 거지. 꼴좋다!’

거짓말을 하기 위해 안약으로 만들어낸 거짓 눈물이 아닌 진짜로 그녀의 감정이 섞인 눈물.

성준은 그것을 보며 통쾌함을 느꼈다.

“이야, 진짜 기분 좋다. 그 지옥 같은 연습을 한 보람이 있어.”

도경과 온종일 그가 부지불식간에 내는 기타 음에 맞춰서 힘들게 스캣을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강소영에게 완벽한 패배를 안겨다 주었으니 말이다.

고생하고 힘든 만큼 보람이 있다고 하더니 정말 그 소리가 틀리지 않았다고 성준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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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상대팀의 듀엣이 끝나고 심사위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승리한 팀을 뽑아 결과를 발표한다.

“승자는...! 강소영과 성준군의 팀. [man and woman]팀 입니다.”

분명 상대도 만만치 않은 프로가수 출신의 참가인 새넌도 심사위원들을 감탄케 한 소울보이스를 지닌 참가자인 제이도 있었지만, 엄청난 실력으로 말도 안 되는 무대를 들려주고 보여준 성준과 강소영을 이기지는 못했다.

‘운이 없었어.’

방청객에서 관람하는 참가자들도 훌륭한 노래를 보여준 「샤이닝」 팀의 새넌과 제이가 패배했다는 말에 운이 없는 팀이라며 동정을 표할 정도였으니.

성준과 강소영이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샤이닝 팀은 운이 없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네요. 샤이닝 팀에 다음 라운드를 진출할 합격자는요.”

심사위원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소녀.

“아직 잠재력이 높은 제이양이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제이양.”

짝짝짝짝.

프로가수인 새넌은 떨어지고 외국에서 멀리온 제이라는 소녀만이 다음라운드로 진출하게 되었다.

“미안해요 언니... 제가 더 잘했어야 하는데...!”

훌쩍.

새넌은 자신의 탈락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보였고 옆에 있는 제이라는 소녀는 자신만 합격하고 탈락한 언니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을 보인다.

“괜찮아. 제이야. 우리도 후회없는 무대를 했잖아 나는 그걸로 만족해.”

“언니!“

두 우애 깊은 언니와 동생의 모습에 성준은 뒤에서 입맛을 다셨다.

“쩝....!”

‘미안할 이유도 없는데 미안하네.’

그런 풍경의 모습에 성준은 자신의 뒷머리를 여러 차례 긁었다.

경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자신으로 인해서 탈락자가 발생한 풍경에 조금 가슴이 갑갑했다.

힐끔.

‘이 여자가 떨어졌으면 무진장 기뻤을 텐데.’

심사위원의 극찬에도 약한 리액션을 보였던 강소영이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자리에 서 있었다.

충격에 핏기가 가시다 못해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성준은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만 들리게끔 조용히 중얼거렸다.

“뭐?, 하늘이 무너졌나. 인상 좀 피지 그래요?”

움찔!

“....!”

부릅.

잠깐이지만 차갑다 못해 죽일 것 같은 눈빛을 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 눈빛에 성준은 어이가 없었다.

‘허. 내가 뭐 죽일 죄를 지었나?’

자신을 일부러 고른 사람도 그녀였고, 잘못을 먼저 저지른 것도 그녀였으며, 치졸한 수법을 써온 사람도 그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하게 실력으로 이긴 자신을 원망하다니 정말 염치도 없다 생각이 들었다.

절레절레

‘동정할 여지가 없는 누나야.’

그런 강소영이 못마땅한 성준은 그녀를 향해 웃음을 가장해서 비웃음을 보여주며 이죽거렸다. 자신 때문에 떨어진 참가자들 때문에 괜히 기분이 꿀꿀하던 찰나인데 반성 없는 강소영의 태도를 보니 가만히 두고 싶지 않은 것이다.

“누나 생각해서 하는 말이에요. 누나가 좋아하는 카메라가 이렇게 많은데 표정관리 해야죠.”

뿌드득.

“어, 누나? 지금 이 갈았어요? 아니죠? 누나가 그렇게 교양 없게 행동할 리가 없죠?”

성준의 조롱에 강소영은 눈에 힘을 주고 바라보지만 성준은 꿈적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향해 맑은 미소를 날렸다.

“뭐, 그렇게 화내지 마세요. 실력 차이가 월등하게 나서 그런 건데 어쩌겠어요? 하하하. 뭐 그래도 비렁뱅이인 제가 능력은 좋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드네요. 그렇죠?”

성준의 조롱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가 치솟지만 카메라가 찍고 있는 이 상황에 강소영은 아무런 반응도 보일 수 없었다.

“하하하. 누나 괜찮아요? 왜 말이 없어요?”

“...빠득!”

성준이 웃으며 강소영을 조롱하는 모습은 남이 볼 때는 성준이 지친 강소영을 걱정해주는 듯한 모습이어서 주변에서 그 둘을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짓궂은 반응들을 보이기 시작한다.

와아아.

“너무 달달한거 아니냐 지성준? 꿀떨어 지겠다.”

“케미 좋다.”

흘깃.

‘짜증나...! 다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하나같이 자신을 도와주는 것들은 없었다.

자신들을 향해 방청객에서 시끄럽게 하는 날파리들과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이 순간을 기록물로 담고 있는 카메라. 모든 것들을 박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중얼.

“절대 용서 못해...”

그런데도 그녀는 소름끼치게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웃었다.

마음이 원치 않기에 자신의 명령을 거부하는 안면근육들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강소영은 이를 무시하고 성준을 향해 웃음을 내보인 것이다.

성준의 말처럼 카메라가 돌고 있는 앞에선 표정을 관리해야 했다.

‘지성준...!’

‘너 만큼은 용서하지 않겠어!’

파르르.

독하다 못해 무서운 강소영의 심기.

웃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에 대한 증오심과 분노가 담겨있어서 왠지 담이 서늘했다.

‘허... 진짜 독하다. 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억지웃음에서 고대로 느껴지는 그녀의 감정에 성준 또한 날카로운 미소를 지으며 눈에 힘을 주었다. 두 사람 다 웃고 있지만 서로에 지니고 있는 멸시와 증오심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둘의 자존심을 건 무대는 성준의 승리로 끝을 맞이하게 된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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