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56화 (56/357)

56화

“뭐, 댄스곡이 하고 싶다고?”

“네.”

박진용 심사위원은 예상치 못한 도경의 말에 놀라 물었다. 하지만 정작 그를 놀라게 한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다.

끄덕.

“춤을 기초부터 배웠으면 합니다. 생각해 봤는데 심사위원님이나 저기 김주희 참가자한테 배우고 싶은데...”

“아, 아니 잠깐. 뭘 멋대로 진행하는 거니.”

멋대로 상황을 진행하는 도경의 말에 박진용은 다급히 그의 말을 끊었다. 도경을 황당한 표정으로 보는 박진용은 생각했다.

‘이거 생각보다 더 괴짜잖아?’

도경에 관심이 있는 만큼 그가 평범치 않다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일 줄은 몰랐다.

자신은 몰라도 참가자인 김주희에게까지 춤을 배우고 싶다니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이해가 잘 안 되었다.

‘혹시 김주희에게 관심이 있는 건가? 그리고 댄스곡이라니.’

무엇보다 자신이 정해준 곡을 다 저버리고 생뚱맞게 댄스곡을 하고 싶다는 도경의 발언에 박진용은 정신이 없었다.

“도경씨. 아니, 도경이라 편하게 부를게. 그래도 되지?”

‘네. 상관없어요.“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묘한 분위기에 쉽게 대하지 못했던 박진용은 그에게만 유지하던 반 존대를 말투를 버리고 그를 보며 말했다.

“네가 보았다시피 내가 골라준 노래들은 참가자에게 맞게 골라준 노래야. 그건 알지.”

“네.”

박진용이 참가자들에게 미리 선정해줬던 곡은 그들을 단순히 테스트하기 위함이 아니라 프로듀서로 참가자들의 개성에 맞게 고른 노래들이었다.

도경은 그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였다.

“노래들 보니까 모두에게 좋은 노래를 선정해주셨더라고요.”

앞에서 테스트를 받는 참가자들을 보면서 도경은 박진용이란 인물을 인정했다.

‘이 사람. 실력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순수해.’

마냥 참가자들에게 어울리는 곡을 선정한 게 아니다.

참가자들 본인 스스로 모르는 자신들의 매력을 이끌어주는 곡을 주거나. 미진한 부분을 자극하고 성장시키는 실험적인 곡까지.

참가자에 대한 관심과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음악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해.’

참가자들을 위해 도전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무모하지 않게 실용적인 부분을 고려해 아슬아슬한 마지노선까지 고민하고 신경 써서 준 곡들이 참가자들에게 준 선정 곡이었던 것이다.

그 정도로 세심하게 고심하던 박진용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자 도경은 그에 대한 존중이란 마음이 생겼다. 저 나이에, 저 위치에 올라선 사람이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에게 주신 곡도 저를 위해 선정해주신 곡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곡을 보니까 아마도 제가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위주들로 곡을 고르셨더군요. 그 점은 정말로 고맙게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으, 응?”

드물게 뻗대지 않고 얌전하고 진지한 도경의 모습.

평상시 보이던 도경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라서 주변 참가자들마저 의아해할 정도였다.

박진용 또한 새삼스러운 눈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단순한 고집은 아니었던 건가?’

눈은 그 사람의 마음의 창이라 했다. 도경에 눈에서 진지함을 발견한 박진용은 도경이 마냥 우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유를 듣고 싶었다.

“그래 알면서 왜 댄스곡을 하고 싶다고 하는 거니? 작곡도 한다고 들었는데 싱어송라이터를 지망하는 게 아니었어?”

도경이 작곡까지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던 박진용은 그가 싱어송라이터를 지망하는 줄 생각했지. 설마 그의 입에서 춤을 추고 싶다는 말이 나올 줄이야.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다.

게다가 내심 도경과 음악적인 소향을 나눠보고 싶었던 박진용은 그가 춤을 춘다는 말에 거부감을 표하는 입장이었다.

“무엇보다 춤을 출지 아니?”

“아... 그게.”

‘내 상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도경은 기초부터 춤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것을 들은 입장으로선 박진용은 그가 춤에 대해서 문외한이라 생각해 당연히 해야 할 질문은 한 것이지만 그의 질문을 들은 도경은 난색을 보였다.

자신의 상태를 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으음. 춤을 추면 춘다고 얘기하는데..”

“춤을 출줄 안다고?”

“네. 근데 이게 심사위원님이 생각하는 거랑 다른 춤이랄까 나...?”

“다른 춤?”

항상 여유만만하거나 명확한 태도만 보여주던 도경의 모습만 기억하는 박진용은 도경이 머뭇거리는 모습에 호기심이 동했다.

‘뭐지?’

못 춘다면 못 추는 거지. 춤을 출줄 아는데 생각과 다른 춤이라니 보지 않고는 선뜻 상상이 가질 않았다.

“우선 일단 도경이 네가 출 줄 아는 춤을 춰 볼래? 그 후. 이야기를 나눠보자.”

“아. 그게 좋겠네요. 그게 저도 편하겠어요.”

그의 말에 처음으로 화색이 돋는 도경은 넓은 공간으로 걸음을 옮기더니 자세를 취한다.

스윽!

“응?”

도경이 취하는 자세를 본 박진용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반적인 댄스의 동작이 아닌 기묘한 자세였기 까닭이다.

한 발을 뒤로 빼고 앞으로 숙여서 몸을 살짝 숙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도경. 그리고 양팔을 사선으로 뻗어 역수로 무언가가 쥐는 손동작.

박진용의 두 눈에 더욱 더 의아함이 떠오른다.

“현대 무용인가 독특하네. 도경아 춤 소개 좀 해주겠어?”

준비자세가 일반적인 리듬에 맞춰진 자세가 아닌 것을 알아 본 박진용은 궁금증이 담긴 눈으로 도경이 무슨 춤을 출지 예상해 보았다.

“딱히 소개를 한다면..”

무용(舞踊)이라면 무용이었다. 다만 도경이 추는 춤은 현대의 감성과 의지를 지닌 현대무용은 아니다.

“「검무(劍舞)」에 가깝죠.”

“!?”

검무라니 뜬금없는 대답에 이해를 못 하는 박진용을 보며 도경은 쓴웃음 지었다.

“칼춤이요.”

“칼춤!?”

“시작하겠습니다.”

설명하기도 귀찮고 복잡해질 것을 알기에 도경은 자신의 몸을 움직였다.

도경은 우선 박진용에게 자신이 익히고 있던 이 세계에서의 춤을 보여주는 것이 낫다 판단을 내렸다.

스으윽!

척.

구부렸던 자세를 우아하게 뒤틀며 돌려 올린 도경의 몸에서 비명이 울려 퍼진다.

우드득.

‘끄응.’

덜 만들어진 몸에서 새어 나오는 비명. 하지만 도경이 익힌 춤 중에서 가장 몸에서 무리가 덜 가는 춤이었다.

‘오랜만에 이 춤을 추게 되네.’

「시작의 춤」

도적 출신의 고혹적인여성 단원이 만든 군무 춤으로 유랑단에 카일이 갓 처음 들어왔을 때. 피나게 맞아가면서 익혔던 첫 번 째 춤이었다.

탁탁탁!

옛날에 박자를 떠올리며 발소리를 내는 도경은 그리운 미소를 지었다.

술병으로 머리를 얻어맞아가며 배웠던 그 당시가 그립다니 정말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져 나온다.

텅!

휘이익!

박자를 타던 발을 강하게 진각을 밟은 도경의 몸이 화려하게 공중으로 치솟았다.

쿵!

끼이익!

탁, 탁닥! 탁!

“이, 이건?”

생전 처음 보는 춤에 박진용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기 시작했다. 도경의 보여주는 춤이 너무나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역동적이고 정열적이어서 신나 보이는 한편 살벌하기도 하다. 무용에 가까우면서도 무예에 가까운 춤.

이 세계 춤이 지구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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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별]

“하하하! 오랜만에 완전체를 만난 기념으로 건배합시다. 자! 건배!”

오후 8시 30.

이른 저녁 이제는 아지트나 다름없는 익숙한 공간 속에서 반가운 얼굴들이 모여 있었다.

“건배!”

그중 가장 연장자인 정한수가 맥주병을 들어 올려 건배 제의를 하기 시작한다.

쨍.

벌컥벌컥!

모두들 그의 말에 웃으며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병을 부딪치며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푸하! 시원하다.”

“진짜네.”

센스 있게 살짝 얼음이 낀 맥주의 맛에 모두 감탄하였고 도경 또한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맥주를 다시 한 모금 들이켰다.

“후. 진짜 맛 좋다.”

“헤헤헤. 준비 좀 많이 했죠. 맛 좋죠?”

“어쭈! 신났네. 전수미? 쪼그만 게 벌써부터 까져가지고는 쯧! 그 병에서 손 떼라.”

“헉!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맥주병에 손을 내 뻗고 있는 전수미는 도경의 경고에 자신의 행동에 뒤늦게 깨닫고는 손을 회수했다.

하지만 맥주병에 시선을 두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갈색 병에 맺혀있는 서늘한 이슬이 자신을 유혹하고 기분을 느끼는 그녀는 맛이 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꿀걱.

“진짜 맛있겠다...!”

“아서라.”

드륵!

“아아...!”

그런 전수미를 향해 도경은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맥주병을 얼음 속 깊이. 그녀의 시선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파묻었다.

“왜 아쉬워?”

“으윽.”

아쉽다 뿐인가 당장이라도 병뚜껑을 따서 자신의 목에 내리붓고 싶은 수미였지만 그녀는 이 유혹을 참아야 했다.

“오우. 수미 참아야 해. 좀 있다 미경 선생님 오잖아. 먹으면 큰일 난다.”

“히잉~. 아빠.”

“쪼그만 게 가지가지 한다. 그게 그리 힘드나 나중에 성인 되면 주당 될 기세구만.”

맥주를 마시지 못해 속상해하는 혼혈미소녀라니. 정말 캐릭터 하나는 확실하다 생각이 들었다.

“도경아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아, 우진이 형. 오랜만이에요. 팀 오디션 이후로 사적으로 오랜만에 보네요. 잘 지내고 있었어요?”

“덕분에. 오늘 [LSM]기획사에 갔다 왔지. 네 쪽은 어땠어?”

“뭐. 생각한 대로였다고 해야 하나요. 박진용 심사위원의 성격이 많이 반영 되서 그런지 생각보다 분위기가 가족 같은 기획사더라고요. 다들 친해 보였어요. 형 쪽은 어때요?”

김우진은 [Lsm] 소속사에 캐스팅되었다.

도경과 팀 미션 이후. 그는 상승세를 얻어 캐스팅 오디션 라운드에서 훌륭하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고 우선권으로 이수민에게 직접 선택받는 기염을 토하며 시청자들에게 뒤늦게 인기와 인지도를 얻어가고 있었다.

“[LSM]은 진짜 회사 같아.”

“회사요?”

“어. 되게 화려한데 지독하게 체계적이고 서열화 되어있는 것 같더라고. 선후배 관계도 장난 아닌 듯했어.”

“뭐. 이수민 심사위원이 직접 지은 회사인데 오죽할까요. 오히려 저는 그녀가 형을 뽑은 게 신기하다니까요. 저는 형이 저랑 같은[JY] 올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김우진의 나이나 분위기는 얼짱이나 하이틴 스타만 뽑는 [LSM]성향하고 전혀 다른데도 불구하고 이수민 사장은 박진용 심사위원과의 경쟁하며 캐스팅 경합에서 우선권을 직접 사용하는 희생을 하며 김우진을 뽑았다.

이례적인 일은 분명했다.

“음... 사실은 도경이 네 덕분이야.”

“네?”

김우진은 잠깐 머뭇거리다 큰 결심을 한 것처럼 도경을 바라보며 한 가지 비밀을 그에게 털어 놓았다.

속닥.

“너에게만 얘기하는 건데 나 [LSM]하고 데뷔조건으로 계약했다.”

“네!?”

경사스러운 일이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도경은 그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냔 말이야. 그때 우리가 불렀던 일본 노래가 말이야...”

김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모든 이야기를 들은 도경은 앞에 있는 맥주병을 들어 올렸다.

“참나. 이수민사장 행동력 하나 진짜 빠르네요.”

“나야 감사할 따름이니. 일단은 나를 높게 봐주신 거니까 말이야.”

“확실히 영상이 주는 영향력은 무시 못 하겠네요.”

김우진의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도경과 김우진이 불렀던 [오자키유타카]의 노래가 일본에서 까지 화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받는 사람은 바로 김우진이었는데 의욕 없는 일본 젊은이들의 [사토리 세대]와 비슷한 처지의 김우진이 포기하지 않고 노래하는 모습이 일본 전반적인 사회에 감동을 주어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토리 세대]

사토리세대란 젊은데도 꿈과 야망을 포기하고 의욕 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20대들의 젊은 세대를 일컫는 말로 한국의 3포 세대와 비슷하여서, 그들은 김우진을 자신과 같은 동질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가 오자키 유타카의 노래를 이용해 20대들의 방황과 고뇌를 울부짖는 모습은 한국의 유타카라 불리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에 김우진의 일본진출의 가능성을 본 이수민 사장은 그에게 빠른 일본데뷔를 우선으로 계약서를 내밀었던 것이다.

일본 연예계 시장에 빠삭한 경험과 지식이 있는 [LSM] 계약에 김우진이 거부할 이유는 없었고 그렇게 쾌속하게 계약을 맺게 된 것이다.

“우와. 그럼 K스타 끝나면 바로 데뷔하겠네요. 축하해요 형. 응원할게요.”

“고마워.”

김우진에게 맥주병을 들이민 도경은 그를 향해 축하해 주었다. 김우진도 맥주병을 들어 그의 병에 부딪히며 웃었다.

“도경이 정말 네 덕분이다. 내 인생에 귀인이 있다고 한다면 너일 거야.”

“귀인이라니 너무 오버네요.”

그의 말에 김우진은 피식 웃으며 도경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참 내. 너 우리들 끼리 사이에서 뭐라고 불리는지 알아?”

“뭐에요 저 또 별명 있어요?”

“복덩이.”

“네?”

“네 근처에 있으면 일이 다 잘 풀린다고 다들 널 그렇게 불러.”

“복덩이는 무슨...”

질 나쁜 농담이라 생각하는 도경을 보며 김우진은 그를 보면 피식 웃었다.

“진짠데.”

‘네 덕을 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의 영향력에 모두가 변화하고 나아가는데 정작 당사자는 자신의 영향을 인식하고 있지 못한 모습에 김우진은 어이가 없었지만, 도경답다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자 건배합시다!”

“와아아아!”

김우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경은 쌓았던 스트레스를 푸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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