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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80화 (80/357)

80화

[그때 난 젊고 무서울 게 없었죠.

꿈을 만들고 써버리고 낭비했어요.]

회한과 후회가 담긴 도경의 촉촉한 목소리가 무대 위를 적시기 시작한다.

“아...!”

“으아아.”

“하아.”

도경이 부르는 순도 높은 노랫소리에 방청객들은 감탄과 신음성을 내뱉었다. 그런데 감탄하는 모습들이 하나같이 이상하다.

감탄을 넘어 이제는 어딘가 불편해 보이고 괴로워 보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율배반적인 상황.

자극이 어느 일정 수준을 넘어 지나치면 쾌락과 고통을 동시에 느끼는데 지금 도경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그와 같은 경우였다.

[그래도 내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없었죠.

입으로 불러 보지 않는 노래가 없었고 맛보지 않은 술이 없었죠.]

이곳에서 멀쩡한 사람은 오로지 도경 한 명. 헌데 그는 자신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편히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천천히 감정을 곱씹는 그의 노래는 모두를 한없이 깊은 늪으로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곤경은 한밤중에 찾아오네요.

그 목소리는 천둥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당신의 희망을 갈가리 찢어놓고]

좀 전의 노래와 비교를 불허하는 깊고 깊은 심해 같은 감정선.

도경은 자신의 노래를 듣고 있는 사람들을 자기 목소리 하나로 그들을 잠식해 하나둘 자신의 세계로 강제로 끌어 온다.

[당신의 꿈을 수치심으로 바꿔 버리죠.]

푸우욱!

귓가를 간질거리던 도경의 노랫소리는 어느새 고조 되더니 너무나 선명한 감정으로 노래를 듣는 모두의 가슴에 비수를 내리꽂는다.

[그는 내 곁에서 여름을 보냈어요.

나의 날들을 끝없는 놀라움으로 가득 채우고

나의 어린 시절을 즐기고는

가을이 오자 떠나가 버렸어요.]

선명하고 날카로운 도경의 절규하는 목소리.

후회와 회안이란 감정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었고 그 비참함은 분노와 한을 낳는다.

“이거는 미쳤다...!”

도경의 세상 속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덩달아 도경이 지니고 있던 감정의 편린을 엿보기 시작한다.

너무나도 어둡고 서글픈 감정의 편린에 사람들은 숨죽이고 도경을 바라보며 그의 노래를 들었다.

“아.......”

‘너희들이 건드린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다.’

그들이 누구를 건드렸는지 똑똑히 보여주기 위해서 도경은 여과 없이 자신이라는 사람의 일면을 보여 주었다.

‘그 개 같은 세상을 살아온 사람이 바로 나다.’

[가르드]

중세시대의 배경인 판타지한 이 세계와 그 세상을 여행하는 유랑 단 생활.

누군가는 낭만을 꿈꾸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만, 능력과 힘을 갖추기 전에는 불안정한 삶과 비참하고 힘든 생활이 진짜 현실이었다.

매사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자존심이고 뭐고 무엇이든 해야 했던 가혹한 환경이었고 폭력과 신분이 존재하는 부조리하고 숨 막히는 사회였다.

그런 곳에서 도경은 홀몸으로 수 십 년간 살아왔다.

[아직도 난 언젠가 그가 돌아올 거라 꿈꾸어요.

우리가 앞으로 계속 함께 살 거라고]

‘그 상황이 꿈 일 거라고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내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아십니까? 어머니.’

아침에 나올 때까지도 냉랭했던 자신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그리고 자신이 이 세계에서 겪었던 설움과 비참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안돼. 마무~! 으아아아아!)

(살려 주십시오 나리.)

(감히 천한 광대 놈 따위가!)

(제발.. 하지 말아주세요. 그만해 보지 마! 카일!)

(나는 죽기 싫어!)

(미안하다. 우리도 먹고살아야지.)

(너를 저주한다... 카일)

같이 훈련했던 동료들이 귀족들에게 강간을 당해도 죽임을 당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현실.

심지어 동료라 생각했던 이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비참하고 잔인한 현실을 경험했다.

그런데도 도경은 꿋꿋이 살아남아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그건 대단한 신념이나 목적이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니었다.

그저 배를 굶주리지 않기 위해서 불렀던 비참한 노래였다. 하지만 살기위해서 그는 끝까지 노래를 부르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꿈도 있죠.

헤쳐 나갈 수 없는 폭풍도 있구요.]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건 말 하지 않아도 돼.’

현실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을 그 누구보다 뼈저릴 정도로 잘 아는 사람이 사실은 도경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지옥과는 다른 모습일 거라고

지금 느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삶일 거라고]

‘약자 앞에 더럽고 무거운 게 세상이라는 거.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

도경이 소중히 여기던 이들은 그의 곁을 하나둘 떠나가거나 죽었다.

뿐만 아니라 도경은 전쟁터에서 수천수만 명이 죽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곳에서 매일 그들의 위해서 장송곡을 불렀던 것이 도경이라는 사람이었다.

지닌 경험과 감정. 그 순도와 깊이는 그 누구와도 비교를 불허했다.

그렇기에 이렇게 절규하듯 노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모두의 숨을 멎게 할 수 있는 노래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최고가 된 거야.’

우우웅.

무대 위의 공기가 도경을 향해서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최고라 자부하는 도경에게는 힘이 있었다.

세상이 더럽고, 버겁고, 무겁다면 자신이 직접 그런 현실을 비틀어 버리면 되었다. 그걸 위해 최고의 자리 위에 올라선 것이었다.

‘세상을 이겨낼 힘을 얻기 위해서!’

퍼엉.

[내 삶을 꿈꾸어 오곤 했었지만]

그런 도경의 굳건하고 강한 의지는 노랫소리를 타고 모두를 휩쓸었다.

최고의 음유시인이자 영웅이라는 호칭을 받은 대륙이 품은 ‘붉은 보석’ 카일.

그가 그리 불리게 된 것은 그의 행동이 유독 정의롭거나 공명정대해서가 아니었고 강한 무력을 지녀서 그런 게 아니었다.

더러운 진흙 속에 묻혀있던 돌멩이가 세상이라는 연마 질 속에 빛을 발하는 보석이 되었기에 그리 불렀다.

시련과 고난 속.

끝까지 노래하며 마지막까지 살려는 의지를 잃지 않는 그의 강인함이 모두가 그를 칭송케 한 것이다.

[이제 삶은 내가 꿈꾸던 꿈을 죽여 버렸네요.]

마지막 한 줄의 노래가사.

모두를 폭풍 같은 격정으로 몰아붙이던 도경의 목소리의 음량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동시에 노래에 몰입했던 도경의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우웅.

도경이 일그러트렸던 공간도 시간도 다시 원래로 돌아와 그의 세계에 초대 받았던 사람들도 천천히 현실로 돌아와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후우...”

지구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온전히 전력을 다한 노래.

자신의 노래를 듣고 혼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도경이 눈에 힘을 주고 무언으로 물었다.

‘이제 너희가 건드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겠어?’

도경의 무언 속에 담긴 물음은 모두에게로 전달되었고 예상치 못한 이변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

주르륵.

툭.

이수민 심사위원의 한쪽 눈가에 소리 기척 없이 하나의 투명한 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 책상 위로 떨어진다.

흠칫.

“내가, 울어?”

자신의 눈물이 믿기지 않는 그녀는 자신의 눈가에 손을 대었다. 역시나 착각이 아닌 듯 손가에 축축한 물기가 만져졌다.

얼마나 오랜만에 흘리던 눈물인지 그녀는 손가락을 비비며 촉촉한 물기를 느끼어 보았다.

“내가 울다니. 우는 법을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이 장소에 있는 가장 냉철한 사람 중 하나인 그녀가 지금 눈물을 흘렸다.

그 피도눈물도 없을 것 같은 이수민 심사위원이 눈물을 보였단 말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흐...”

“으으으...!”

부들부들.

“으아아앙~!”

“허엉~!”

역시나 촉촉한 울음기를 머금은 소리가 주변에서 조금씩 터져 나오더니 누군가의 울음소리를 시작으로 하나둘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목이 떠나가라 서럽게 울었고 누군가는 소리를 죽이며 남몰래 울었다.

“이익. 안 되는데...!”

주르륵.

“어, 어...! 지금 이게?”

너무나도 당혹스러워 떨리는 목소리.

그것은 도경을 미워하고 어떻게든 도경을 망치려 들었던 두 명의 중년 PD들 이었다.

털북숭이인 나Pd는 가슴에서 벅차오르는 슬픔에 이를 악물었지만, 이내 몸을 파르르 떨면서 눈물을 보였고 총괄Pd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지금 눈앞에 풍경을 보며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두리번두리번.

슬픔에 잠긴 울음 속 바다. 주변 상황은 말이 아니다.

자신의 48년 방송 인생 중에 이런 풍경은 정말 단언컨대 처음 이었다.

“목소리 하나로 이런 상황을 만들었단 말이야?”

파르르르.

“.......”

자신의 떨리는 손을 바라본 총괄 Pd는 도경을 향해 경이로운 눈빛을 보내다가 정신을 차려 주변을 호통쳤다.

“...모두 정신 차려!”

깜짝!

갑작스러운 총괄Pd의 호통에 주변에 눈물을 짓고 있던 제작진이 깜짝 놀라며 그를 향해 시선을 보내었다.

“지금 이건 생방송이야! 화면이 멈추자면 어떡하자는 거야? 카메라 팀. 우선 방청객과 심사위원들의 화면을 차례로 교차해서 내보내면서 현재 상황을 시청자들에게 이해할 수 있게끔 내보내. 그리고 나Pd!”

“크흐흑. 네...!”

복슬복슬한 수염에 콧물까지 질질 흘러가며 울고 있던 볼품없는 중년인이 고개를 들어 올려 총괄Pd를 향해 감정을 최대한 추스르며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박도경을 민다. 최대한 쟤를 부각시킬 화면을 찍어.”

“네!?”

“잔말 말고 빨리 준비해!”

무언가를 말하려던 나Pd를 향해 총괄Pd는 호통치고는 바삐 몸을 움직여 심사위원들에게 향해 달려갔다.

“개인 원한 따위는 저것 앞에선 쓸모없단 말이다...!”

PD인생 이런 사건을 화면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총괄Pd는 자신의 몸에 뒤늦게 올라오는 전율과 흥분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중얼.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그의 눈빛엔 그가 말했던 대로 개인의 원한이란 감정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저 녀석은 엄청난 거물이다.”

사소한 원한 따위는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런 무대만 계속해서 보여준다면 총괄Pd는 도경을 향해 절마저 하고 싶을 심정이니 말이다.

--

부들부들.

“하아. 역시 힘들 구나.”

여기 있는 무대 위에서 사람들의 감정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던 도경의 두 다리가 미세하게 경련한다.

능력을 무리하게 남용했기 때문이다.

〈파동(波動)〉

[심상 투영(投影)]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파동을 타인에게 덮어씌워 감정을 전달하는 기술로 도경이 생전에 자주 애용했던 능력이었다.

“저 정도 인원으로 한 곡에 이리 지쳐버리다니 아직 힘이 모자라구나. 그래도...”

툭.

도경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자신의 뒤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풀썩.

보통 노래를 마치면 심사위원의 평가를 받기 위해 자리에서 서서 기다려야 했지만 지금 상황이 보통 상황인가.

모두가 울음바다에 빠져서 생방송이 진행이 될까 말까한 상황인데 말이다.

씨익.

“속은 시원하네.”

의자에 앉아서 자신이 만든 풍경을 바라본 도경은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엉망진창인 이 상황을 관람한다.

마치 홀로 동떨어진 곳에서 자신과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지이잉.

“.......”

총괄 Pd의 말에 도경의 모습을 여러 각도로 숨 가쁘게 카메라에 담고 있던 나Pd는 도경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정말 어떻게 생겨먹은 신경인 거야?”

이런 무대를 보여 놓고는 의자 위에 걸터앉아 태연하게 상황을 관람하는 도경의 모습에 이제는 기가 질린다.

보통 기뻐한다거나 무언가를 이루어 냈다는 성취감에 뿌듯함을 느껴 자부심을 드러낼 텐데 의자에 앉은 도경은 이런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인다.

“미친놈이다.”

중얼

“제정신이 아닌 녀석이야.”

지쳐서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이지만 나Pd는 도경이 사람 위에서 실소를 짓고 있는 악마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덜덜덜.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인간을 만난 탓에 카메라를 직접 들어 올린 자신의 손이 자기도 모르게 떨리고 이었다.

“그러고 보니 레미제라블 뜻이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이었지...!”

나Pd는 도경이 불렀던 노래의 제목을 떠올렸다.

「Do you hear the people sing」

「One Day More」

「I Dreamed A Dream」

이 모든 걸 포함한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나Pd는 지금 이곳에서 자신들이 불쌍한 사람들이라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도경에게 휘둘리는 힘없고 나약한 불쌍한 사람들 말이다.

그런 생각과 동시에 현기증이 밀려오며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쭈우욱.

“으윽..!”

들고 있던 카메라가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그가 도경을 향해 품고 있던 원한과 증오는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경이로움과 공포라는 감정으로 변질되어 간다.

“저 녀석은 위험한 놈이야.”

도경은 목소리 하나로 모두의 의지를 꺾은 것이었다.

--

[자, 잠시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 진행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차질을 일으켜 드려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면서 광고 후에 잠시 있다 시청자 여러분들을 뵙겠습니다.]

붉게 충혈된 눈을 한 무대진행자의 말을 끝으로 Tv 방송 화면은 검게 꺼지더니 이서서 익숙한 광고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헐...”

Tv저편으로 K 스타를 보던 한 시청자가 벙찐 표정으로 방송을 시청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도대체 저 사람은 뭐지?”

타다닥.

그는 도경에 대한 궁금증에 광고시간을 틈타 인터넷 포털사이트로 들어가 검색창에 ‘박도경’이란 이름을 적어 검색하기 시작한다.

‘충격’

신년이 얼마 지나지 않은 날.

도경이라는 충격이 세상에 나와 모두를 강타하는 순간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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