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딸랑.
“여기가 도경이가 일하는 곳? 회사랑 가깝네.”
“헉! 사장님?”
“음?”
딱 보아도 일반인과 다른 이국적인 외형과 생김새를 지닌 박진용이 도경이 일하는 은하수 별을 찾았다.
도경이 K 스타를 하차한 지 하루 만에 기획사 사장이 몸소 그를 찾아온 것이다.
“네가 우리 회사 연습생으로 있는 도경이 동생 박소희구나.”
자신을 보며 놀라는 소희의 모습에 박진용은 재미있는 미소를 지었다.
김미경 팀장이 전해준 도경의 신상정보를 통해 소희의 얼굴을 사진으로 통해 익혔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눈이 닮았네.’
도경의 동생이 자신의 소속사 연습생이라는 것에 기분이 묘한 박진용 사장이었다. 게다가 말을 들어보니 요즘 급성장으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는 아이라 한다.
“정말 오빠랑 별로 안 닮았구나. 그래도 분위기는 비슷하네.”
“네, 네...”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말이 걸렸지만 소희는 무어라 말도 못하고 그를 향해 눈치 보았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JY]연습생인 소희지만 실제로 박진용을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 이었다.
“말 들었던 대로 운치가 있어.”
“.......”
주변을 주의 깊게 살피던 박진용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카페가 마음에 드는 모습을 보였다.
“묘한 곳이야.”
“묘하다고요?”
“묘하지. 이곳에서 요즘 화제가 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으니 말이야.”
“아...”
박진용은 김미경 팀장에게 이곳 카페에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많이 놀랐었다.
K스타를 휩쓸고 있는 성준과 도경부터 시작해 요즘 기대되는 신인 솔로 여가수 [I] 이지원. 조주연이지만 충무로 유명감독 박한일 감독과 영화를 촬영 중인 김찬미.
그저 단순한 카페인 곳인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곳이 중형 엔터테인먼트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그저 어쩌다 운이 좋았던 거죠. 대단한 것이라고 할 것까지야...”
“그 운이 사람의 인생을 가른단다.”
“네?”
“네가 연예계 생활을 하다 보면 알게 될 거란다. 그 ‘운’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야.”
철저한 시장조사와 치밀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승부를 거는 [JY] 엔터테인먼트의 사장답지 않은 발언.
하지만 박진용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연예인을 하는 사람에게 매력도 실력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가장 중요한 것은 운이라 진심으로 생각했다.
여러 가지 요인이 뭉쳐서 만들이지는 그 사람의 운.
사람의 힘으로 컨트롤 할 수 없는 불가영역. 그렇기에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는 곳이 이곳 연예계이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한숨을 내쉬며 꿈을 포기할 정도로 말이다.
“도경이는 없는 것 같은데 언제쯤 가게에 나오니?”
운을 믿는 만큼 박진용은 그 운의 중심에 있는 사람인 도경이 탐이 났다. 그렇기에 그를 직접 데려오려는 것이다.
그를 데려온다면 자신의 [JY]가 크게 바뀔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 그게...”
“도경이는 아마 당분간 이곳엔 안 올 겁니다.”
“예?”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휴가 냈습니다.”
말을 잘 못 하는 소희를 대신해 카페 주인인 정한수가 박진용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
“처리해야 할 일이라고요?”
“뭐, 아시다시피 그쪽 방송 나가고 나서 별로 좋지 못한 일이 생겨서 말이에요.”
“아. 그렇군요.”
대답하는 정한수의 눈빛이 곱지 않았다.
그깟 오디션 프로그램이 뭐라고 자신의 아끼는 동생이 좋지 못한 일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도경의 잘못도 있기는 했지만, 자신의 동생을 때린 놈한테 그냥 손 빨고 있으란 말인가? 이렇게까지 주변에 크게 비판받을 정도로 잘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 똑같은 놈들이야.’
도경의 악의적인 편집을 한 K 스타 제작진과 이를 묵인했던 심사위원인지라 박진용을 바라보는 정한수의 시선은 곱게 보이지 않았다.
“도경이를 많이 아끼시는군요.”
꾸벅.
정한수의 눈빛이 탐탁지 않다는 것을 눈치챈 박진용이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그 부분은 사과드리겠습니다. 도경이의 그 문제는 저희 [JY] 법무법인을 통해 도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응?”
“네?”
예상치 못한 박진용의 저 자세에 정한수와 소희는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저는 도경이를 저희 기획사에 데려오고 싶습니다. 사실은 집 앞을 찾아가려 하려다 부담스러울까 봐 이곳으로 온 겁니다. 그러니 도경이를 만나게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한 기획사의 대표가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한 정한수와 소희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어쩔지 무언으로 시선으로 교환하기 시작했다.
‘악재와 호재가 동시에 찾아온다더니...’
악의적인 기사와 고소 그리고 K스타 하차.
분명 도경에게 좋지 못한 상황임이 분명한데 이상하게 악재 같지가 않았다.
[저 찾는 사람 있다면 당분간 저 혼자 보낼 시간이 필요하다 하고 돌려보내 주세요.]
‘일단은 돌려보내야겠지.’
미리 이런 상황을 예견했는지 어떻게 대처할지 부탁한 도경의 말이 있어 정한수는 박진용에게 적당한 변명을 꺼내었다.
“명함이나 연락처를 남기시면 도경에게 건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제 직통번호가 적힌 명함입니다.”
스윽.
명함을 남기고 정한수와 소희에게 인사를 남기고 떠나는 박진용을 바라보는 두 사람은 조용히 그의 등 뒤를 바라보다 긴장으로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푸하~!”
“후...!”
생각지도 못한 거물의 등장에 두 사람 한숨을 돌리는 시간을 가졌다.
“와. 저는 심장이 멎을 뻔했어요. 설마 사장님이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그러게 말이다. 소속사 사장이 찾아온 거는 처음이구나.”
드르륵.
철컥.
정한수는 박진용이 건네준 명함을 들고 카운터에 걸어가 금고 서랍을 열었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많은 사람이 찾아오네. 도경이 정말 난 놈은 난 놈인가 보다.”
휘익.
금고 서랍 한쪽에 수북히 쌓여있는 명함을 바라보며 정한수는 혀를 내두르며 그 위로 조금 전 받았던 박진용의 명함을 던져 넣었다.
툭.
드르륵. 철컥!
“도경이 녀석 연락도 안 되고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이 사태의 주범이자 장본인을 떠올린 정한수는 투덜거렸지만, 그의 얼굴은 짜증이 아니라 도경을 향한 걱정스러운 표정이 지어져 있었다.
---
욱신욱신.
“하아.. X발 아직도 아프네.”
얼굴이 퉁퉁 부은 상태로 살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학생은 짜증 나는 표정을 지으며 친구들을 만날 장소로 걷고 있었다.
붉은색의 노르딕페이스를 입고 걸음을 옮기는 그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그를 향해 두려운 눈길을 보내며 자리를 피한다.
힐끔힐끔.
“지랄 났네. 지랄 났어. 뭐 내가 범죄라도 저질렀냐?”
자신을 향해 두려움과 혐오가 섞여 있는 시선을 보내며 피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짜증스럽게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을 탓 하면 안되는 게 얼굴에 상처투성이에 험악한 인상의 소유자를 만나면 누구라도 피하리라.
[다이렉트 Pc방]
“하아! 개좆같네.”
“기훈아 여기야. 자리 잡아 놨다.”
자신의 친구를 보면서 인사를 하는 남자와 그 뒤편에 있는 3명의 친구들도 그를 반겼다.
모두 얼굴들이 기훈이라 불리던 친구와 똑같이 상처투성이로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이 이제는 흉측하기까지 하다.
“빨리 리그오브워 하자. 오늘 5명 모두 골드 찍어야지.”
“뭐 이리 급해 일단 담배나 하나 줘봐. 오다가 깜빡하고 못 사왔다.”
“큭큭! 까먹을게 따로 있지 좀 있다 하나 나한테 빚진 거다.”
“새끼. 쪼잔하게.”
슥.
기훈은 친구에게 담배 하나를 건네받고는 흡연 부스 안으로 들어가 담배를 태웠다.
“휘유유!”
큭.
독한 담배연기에 입안 상처에 닿자 미친 듯이 쓰렸지만 기훈은 끝까지 참아내고 담배를 태웠다. 아프더라도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하루도 못 버티는 골초인 까닭이다.
질끈.
“박도경 그 개새끼...!”
이렇게 고통을 느낄 때면 기훈은 마법의 주문처럼 그의 이름을 읊조렸다. 그를 향해 욕을 내뱉으면 분노로 통증이 경감되기 때문이다.
“방송에 하차했던데 그게 끝일 거라 생각하지 마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뭐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말이야 그런데 생각보다 상태가 멀쩡하네? 금제가 발동 안됐나 봐. 아직까지 쌈박질을 하지 않았구나. 칭찬 해줘야 하나?”
흠칫.
담배를 태우고 있는 와중에 자신의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 기훈은 경악과 공포에 몸이 석상처럼 굳고 말았다.
‘서, 설마!?’
주륵.
두근두근.
목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등 뒤에 식은땀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제발...”
끼기기긱.
고장 난 태엽 시계처럼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기훈은 속으로 아니길 빌었지만, 역시나 그곳에서는 절대로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인물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안녕?”
“혀, 형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했으면 내가 널 보러 올 일이 있었을까?”
뿌연 담배 연기 속.
진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도경이었다.
부스럭부스럭.
도경은 기훈이 앉아있는 자리 마주 편에 앉아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에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 그건!?”
“입안 상처에는 이게 그렇게 좋다고 하더라고 어때 알아보겠어?”
휘익. 툭!
“으으으...!”
자신의 허벅위로 튕기는 물건을 바라보며 기훈의 몸이 고장 난 장난감처럼 떨기 시작했다.
덜덜덜덜.
왜 안 그러겠는가? 지금의 자신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준 물건이었느니 말이다.
[알보칠]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던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었던 물건.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아기자기한 갈색 병 이지만 기훈은 저 물건이 너무나 두려웠다.
욱신욱신.
몸이 고통을 기억하는 것인지 입속 안에 열이 오르는 동시에 시큰거리는 고통이 느껴진다.
부들부들.
“내가 재미난 편지를 받았는데 그게 고소장이더라고?”
도경은 떨고 있는 그를 신경 쓰지 않고 고저 없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이어 나갔다.
휘익~!
툭! 데구루루.
“뭐 만나서 합의를 보고 싶다고 해도 그쪽에서 얼굴을 보기 싫다고 하더라. 그러니 어쩌겠어.”
툭! 데구루루.
“달게 벌 받아야지.”
툭! 데구르르....!
“때린 내가 잘못했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으으으...”
계속해서 자신의 몸에 맞고 튕겨 떨어지는 갈색 약병.
어느새 발밑에 수북이 쌓이기 시작한다. 말은 저리 하지만 이것은 명백히 자신에게 전하는 경고라는 것을 기훈은 알 수 있었다.
덜덜덜.
‘대체 여길 어떻게 찾아온 거야?’
트라우마를 일깨우는 도경의 협박에 기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필 만난 곳도 몸을 피할 데도 없는 밀폐된 공간 속이라니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사람이라는 게 한 번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건데 말이야. 참 각박한 사회야. 너희들은 누군가의 호의로 사지 멀쩡히 집을 기어들어 갔는데 말이야.”
툭!
“히이익!”
우당탕탕.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도경의 손길에 기훈은 기겁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옆에 있는 담배 재떨이 통에 몸을 부딪친 덕분에 담뱃재 가루와 가래침으로 온몸이 더러워졌지만, 그는 도경에게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
덜덜덜.
“오, 오지 마세요...!”
“더러워서 안가.”
횡설수설하며 도경을 마치 악마로 보는 듯한 태도였다. 하지만 도경은 이러한 반응은 너무나 익숙한 것이라 별 감흥 없이 바닥에 뒹굴고 있는 그를 보았다.
“긴말 안 할게 알아서 처신해. 안 그러면...!”
꽈드드득!
파칭!
펑펑펑!
발밑에 뒹구는 갈색 약병을 으스러트려주며 도경은 그의 눈을 노려보았다.
“으으으...”
도경의 발밑에 터지는 약병이 마치 자신의 머리통 같은 느낌을 받은 기훈은 더욱더 구석으로 자신의 몸을 구기며 기어들어가 몸을 떨었다.
“어떻게 될지 알겠지?”
끄덕끄덕.
“오늘 당장...가서 고소 취하하겠습니다.”
“쩝...”
싱거운 입맛을 느끼며 도경은 흡연실을 밖을 나섰다. 이미 자기 뜻은 제대로 전달한 듯싶으니 이 이상 이곳에 있는 것은 시간 낭비인 것이다.
“시간 아까워.”
너무나 싱거운 녀석들이다. 오늘 소비한 자신의 시간이 너무나 아까운 도경이었다.
힐끔.
도경이 Pc 방구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으며 한심하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의리 없는 새끼들. 친구를 두고 냅다 줄행랑쳤네..”
흡연실에 있는 기훈에게 경고하기에 앞서 먼저 4명의 학생에게 들러서 알보칠을 선물했던 도경이었다.
---
“고등학생들은 알아서 처리할 거고 이제는 전도사 차례인가?”
뚜벅뚜벅.
지하에서 지상으로 가는 Pc방의 계단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는 도경은 자신의 다음 예정지를 떠올렸다.
“CCTV 동영상이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니까 서둘러 처리하는 게 좋겠지.”
이런 일은 미루는 것보다 빠르게 처리하는 게 좋았다. 특히 지금처럼 시끌벅적한 소란 끝에 말이다.
K 스타의 탑텐 진출이란 큰 것을 포기한 만큼 얻는 것도 컸었다. 비워야 채운다고 예전에 방송 활동 때문에 제약되었던 스케줄과 활동범위로부터 자유로워 도경은 미뤄두었던 일들을 일사천리로 해결하는 중이었다.
“고생하시는군요.”
“응? 너는...”
“그새 까먹었습니까? 아현. 백아현입니다.”
“아, 우리 아현씨.”
꿈틀.
다방 커피집의 아가씨를 부르는 듯한 도경의 어조에 백아현의 눈가가 잘게 꿈틀거렸다.
‘계속 엮이는 건 별로인데...’
능글맞은 태도와 달리 계속해서 자신에게 엮이는 원치 않은 인연에 도경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이번에 무슨 일이야?”
“.......25”
“응?”
“저 25살입니다. 올해 23살 되는 도경 씨보다 2살 더 많은 누나입니다. 왜 반말입니까.”
“음...”
백아현의 말에 처음으로 도경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설마 갑자기 나이를 들먹일 줄은 예상 못 했기 때문이다.
도경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 입을 열어 그녀에게 하나의 의견을 내었다.
“친구 할까?”
“싫습니다.”
“그건 그렇겠지?”
“실례겠지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꿈틀.
‘묘하게 기분이 나쁘네.’
백아현의 명백한 거부.
거부야 당연히 그럴 거라 예상했는데 묘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그리고 도경은 그렇게 만드는 원인을 찾았다.
‘저 눈 때문이야.’
자신을 돌멩이 쳐다보듯 무심한 그녀의 눈빛. 그것에 도경의 자존심과 똘기가 꿈틀거렸다.
힐끔
‘희한한 여자네...’
자신의 앞에 있는 백아현을 응시하기 시작하는 도경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