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84화 (84/357)

84화

도경과 백아현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쭈우우욱.

날이 싸늘하지만, 도경은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아메리카노를 단숨에 마시며 앞에 앉아있는 백아현을 향해 물었다.

“그래 볼일이 뭐야. 보다시피 내가 좀 바쁘거든?”

찌릿.

“아니, 너도 반말하라고 애초에 내가 말 높이는 게 더 이상할걸?”

“반말은 동갑이나 친구 사이에나 하는 겁니다.”

“그래서 친구 하자 했잖아.”

“싫다 말씀드렸을 텐데요.”

‘상극이군’

“상극이다.”

두 사람 다 서로를 보며 어느새 둘 다 천성적으로 상극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용건이나 말해.”

“그 최면술 능력이 필요합니다.”

“응? 최면술?”

‘파동 각인을 말하는 건가? 뭐, 조금은 틀리지만 비슷해 보일 수 있겠군.’

도경은 백아현이 자신의 파동 각인 능력을 최면술이라 오인한 것을 알았다.

그런데 설마 자신의 능력을 필요하다고 이렇게 다짜고짜 요구해올 줄이야. 너무나 직설적이다.

최소한 능력에 대한 연유는 물어봐야 할 것 아닌가. 어이없는 시선을 담아 백아현을 보면서 도경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별로 내키지 않는걸? 나는 너희와는 연관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말이야. 저번에 김강인과 한 계약을 마지막으로 서로 보고 싶지 않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야.”

“왜죠?”

“되도록 피 보는 일 하고는 엮이고 싶지 않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거든.”

달그락.

“.......”

도경의 선을 긋는 한 마디에 백아현은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도경의 행동을 콕 집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 피보는 걸 별로 꺼리지 않는 것 같았는데요. 여태 보여 왔던 행동들과는 모순적이군요.”

힘을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딱히 거부감 없던 도경의 모습을 떠올리며 백아현은 이를 지적하지만, 도경은 고개를 젓는다.

“잔챙이들 한정이야. 하지만 너희들은 잔챙이가 아니잖아.”

“그건...”

“뭐가 되었든 위험한 너희랑 엮이는 것은 내 쪽에서 사양이야.”

“.......”

“뭐, 할 말은 다 했으니까.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스윽.

“잠깐.”

“응?”

멈칫.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도경이 백아현인 말에 어중간하게 멈춰 섰다.

“저희와 함께하면 안 좋은 일만 있다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좋은 점은 무엇인지 아직 안 들어보시지 않았습니까.”

“들어봤자...”

“도경님은 연예계에 활동 안 하실 겁니까?”

“갑자기 그건 왜 물어봐?”

“도경님 성격으로 연예계 활동을 하시면 조용하지 않으실 텐데요?”

“뭐?”

단호해 보이는 도경을 보며 백아현은 물음을 던져 그의 허를 찌르기 시작한다.

“그 성격으로 분명 이번과 같은 사건 사고를 일으킬 겁니다. 그럴 때마다 지금처럼 주먹구구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실 겁니까? 그렇다고 소속사에게 맡기기엔 도경님의 성이 안 풀릴 텐데요.”

“그건.......”

그녀의 말에 이번에는 도경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야.’

백아현 말대로 자신이 연예계에서 활동한다면 과연 이번 같은 일이 안 생긴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도경은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백아현은 그가 자신의 말에 솔깃해 있는 상태인 것을 알았다.

“이번 사건. 저희가 무료로 해결해 드리도록 하지요. 직접 옆에서 저희의 일처리를 보시고 저희의 제안을 거절할지 수락할지 선택해도 늦지 않지 않을 겁니다. 거절당하면 저희도 깔끔히 포기하도록 하지요. 어떻습니까?”

“으음...”

너무나도 솔깃한 제안에 도경은 잠시 침음성을 흘렸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긴 뒤를 봐줄 존재가 있으면 편하긴 하지.’

도경은 어리숙한 청년이 아니다. 세상을 편히 살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것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재능?, 능력?, 힘?, 재력? 모두 아니었다.

이 세상을 편히 살아가기 위한 요소는 바로 다름 아닌 ‘인맥과 연줄’이다. 인맥과 연줄이 없다면 위의 것들은 분명 한계를 드러낸다.

물론 도경의 능력과 힘이라면 처음부터 자신이 만들어 갈 수도 있겠지만, 도경은 편한 길을 두고 굳이 처음부터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나쁘지 않은 거래대상이긴 해.’

군더더기 없이 실리를 중시하는 김강인을 떠올리며 도경은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청부조직이라는 것이 거슬리기는 해도 그만큼 정보력과 은밀함은 보장이 될 것이고 그 능력이 자신의 뒤에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은 확실했다.

‘뭐 1일 한정 무료로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데 무작정 거절할 필요는 없지.’

도경의 머릿속에서 손익에 대한 계산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네 말대로 너희들의 능력을 보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군.”

“잘 생각하셨습니다.”

씨익.

도경의 대답에 백아현이 미소를 보였다.

“음? 너 제대로 웃어본 적 없나 봐. 되게 어색한 웃음이네. 웃지 않는 것을 추천하지.”

빠직.

“항상 느끼는 거지만 도경 님이야 말로 수수한 얼굴주제에 독설을 하는데 별로 어울리지 않다 말씀드리고 싶군요.”

발끈.

“수수한데 보태준 거 있냐.”

“보태줘야 합니까? 얼마면 됩니까? 2만9천900원이면 될 듯싶은데.”

그녀의 애매한 가격산정에 도경이 발끈했다.

“무슨 홈쇼핑 세트도 아니고 줄 거면 3만 원으로 채워...”

툭.

“여기 있습니다. 이로써 저는 도경 님의 수수함에 보태드리게 되었군요.”

“......”

‘이거 의외로 골 때린 얘네...’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3만 원을 보며 도경은 결국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두 사람.

생각 이상으로 맞지 않는다.

--

[교회]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시다.”

힐끔.

‘이제는 나오는 걸 포기했나 보군. 크크크.’

예배를 올리던 뚱뚱한 전도사는 어디를 흘깃 바라보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아들을 용서해달라고? 어림없는 소리!’

욱신욱신.

그 당시를 떠올리자 맞아서 빠졌던 치아 자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기도하는 중간 살짝 표정을 찌푸린 그는 자신에게 고통뿐만 아니라 수치와 모욕감을 준 도경을 떠올렸다.

‘방송 하차했다고 내가 고소를 취하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

전도사의 정체는 성준을 때리고 겁박하다 도경에게 날벼락을 맞은 사람 천한구란 이름을 지닌 38세의 전도사였다.

‘건방진 성준이 녀석도 한 번 쓴맛을 봐야 하는데 그 녀석에 대한 기사는 없어 아쉬워. 분명 기사가 난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그가 읊고 있는 용서와 자비로움이 담긴 기도내용과 달리 그의 마음속은 도경에 대한 분노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들 주님의 은혜가 가득한 하루가 되길 바라며 오늘 예배는 이로써 마칩니다. 아멘.”

“아멘.”

우르르.

예배가 끝이 나고 전도사 주변으로 다가오는 인영들이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오늘도 좋은 내용이 담긴 설교 잘 들었습니다.”

“오늘 드디어 그 여자가 나오는 걸 포기했나 보군요. 정말 뻔뻔하다니까요. 아들을 데려와서 용서를 빌지 못할 만정 무작정 용서해달라고 하다니 말이에요.”

전도사를 둘러쌓으며 자신들의 대화 장을 여는 여사들을 보며 천한구는 웃음을 내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야 죄를 알고 수치심이라는 것을 느끼나 봅니다. 하하하. 그나마 다행이지요.”

“기독교 사람들이 무작정 용서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라니까요.”

“그러게 말이에요. 전도사님은 그런 실수 하시면 안 됩니다. 괴롭겠지만 힘내세요.”

“하하하 그게 사람 마음처럼 쉽나요. 그 청년이 정말로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저는 용서를 할 수밖에요.”

“아아. 이래서 사람이 무작정 좋으면 안 된다니까.”

“하하하. 그런 거로 따지자면 여사님들도 얼굴만큼 마음씨가 좋으시지 않습니까.”

“어머 어머.”

서로들 장단 치는 그들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두 사람이 조용히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협박, 납치, 회유 3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 고르시면 저희가 실행하도록 하지요.”

“저 남자와 독대를 하고 싶네. 가능해?”

“알겠습니다.”

“잘 부탁할게.”

백아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보다 흠칫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미건조하게 굳은 도경의 모습에 그가 많이 분노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서둘러 품속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하더니 무언가를 지시하고 전화를 끊었다.

“납치하려면 역시 인기척이 드문 밤에 하는 게 좋아서 시간이 조금 걸릴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남는 게 시간이니 상관없어. 일 다 보면 연락 줘.”

끄덕.

“그럼 나중에 연락하는 곳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포털사이트에 있는 기사 같은 경우는 이번 주 안에 모두 내려갈 것입니다.”

“알겠어...”

“그럼.”

말 없는 도경을 뒤로하고 백아현은 교회 밖으로 걸어가며 도경의 모습을 떠올렸다.

또각또각.

“...저런 성격이었군.”

도경의 미묘한 태도 변화에 백아현은 도경의 겉으로 보이는 성격이 아닌 내향적인 성향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Rrrr. Rrr.

철컥.

“오라버니 저예요.”

[빠르군. 그에 대한 것 때문에 전화를 준 거겠지.]

“네.”

[역시 힘든 가?]

“아니요 오히려 쉽게 일이 풀릴지도 모르겠어요.”

[음?]

“돈에 대한 욕심이 없어 보였는데 받은 만큼 갚는 성격인 것 같더군요. 그래서 말인데...”

도경이란 인물에 대해서 김강인에게 상세히 이야기를 나누는 백아현은 도경의 일 처리에 대해서 어떻게 할지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이번 일.

도경이 요구하지 않은 부분마저 제대로 처리할 셈인 백아현 이었다.

---

덜컹.

“읍읍!”

뒤뚱뒤뚱.

끼익! 끼익!

늦은 밤 어디서 겁박 된 음성과 함께 육중한 몸이 위아래로 바동거리려 반동에 낡은 쇳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진다.

“힘도 좋다.”

“!?”

찌이익.

자신의 입가의 테이프가 떨어진 것을 느낀 남자는 서둘러 하늘이 떨어지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세요! 여기 납치당했어요. 살려주세요!”

“시끄러워.”

찌익!

“아악.”

자신의 눈에 붙어있던 테이프를 거칠게 뜯는 손길에 그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아무리 외쳐도 아무도 안 오니까. 닥치고 이쪽 봐봐.”

“으으으... 너는?”

따가운 눈을 껌벅이며 그는 주변을 살피다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을 납치한 이를 바라보았다.

낯설지 않은 얼굴이어서 자신을 납치한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박도경?”

“안녕이라 해야 하나?”

“이게 지금...!”

“됐고 일단 맞고 시작하자.”

퍼억!

“크아악!”

“티 나지 않게 때리시죠. 그래야 뒤처리가 편합니다.”

“.......”

퍼퍼퍼퍽!

도경의 뒤에서 백아현의 충고 덕분일까. 도경이 천한구 전도사를 구타하는 주먹질의 부위가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 곳으로 향해 옮겨진다.

“크아아악!”

“감히 네가 우리 어머니를 건드려?”

돼지 멱따는 소리가 울려 퍼지지만 도경은 더욱 주먹에 힘을 주고 전도사를 질근질근 밟았다.

교회에서 그들이 나누었던 대화를 들으며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알게 된 도경의 분노한 것이다.

원래라면 그가 여신도들을 여기저기 건든 사진들을 건네며 협박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히이익.”

“닥치라 했지.”

퍼억.

“아, 얼굴은...”

결국, 참지 못하고 전도사의 얼굴을 휘갈긴 도경을 바라보며 뒤에서 백아연은 혀를 찼지만, 도경은 결국 폭주하고 말았다.

끼익 끼익.

산속에 세워져 있는 검은 봉고차가 위아래로 격하게 흔들리며 그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비명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덜컹!

“후우우.”

1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도경은 갑갑한 봉고차 밖으로 나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별것도 아닌 것들한테 엮이고 짜증 나.”

급에도 오르지 못하는 시시한 인물들.

독심도 끈기도 없는 너무나도 얄팍한 인물이었다. 몇 대 맞자마자 질질 짜며 무조건적인 저자세를 보이는데 이게 뭐하나 싶을 정도로 시간만 아깝고 짜증만 나는 도경이었다.

고등학생들부터 시작해서 점점 손맛이 찰지지 않고 더러워지는 느낌이었다.

“어떻습니까?”

“봐서 알잖아. 기분 더럽기만 하지.”

“그러니 저희가 필요하다는 생각 하지 않습니까?”

“쉴 틈도 주지 않고 영입이냐?”

무표정한 인상으로 저렇게 시도 때도 없이 자기 자신들의 유용성을 어필 하는 백아현을 보며 도경은 고개를 절레 저었다.

얼굴도 미인에다가 차분한 분위기 때문에 도도해 보이는 인상에 비해서 격식이 전혀 없는 그녀였다.

“도경 님이 연예인 활동을 할 때 저런 잔챙이들이 많이 엮일 텐데 참으실 생각입니까? 그렇다고 일일이 손 보시기에는 지금처럼 짜증 나는 일일 테고 말입니다. 그러니...”

“아 좀 그만해라. 귀 아파 죽겠어...”

뚝.

“.......”

처녀 귀신도 아니고 전도사를 패는 옆에서 자신의 옆에서 1시간 내내 저리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화법에 도경은 이제는 질려 버렸다.

그렇지만 꾹 다물었던 백아현이 입을 다시 떼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수락을 해주신다면 아까 전에 말했던 교회까지 싸잡아 일을 처리해 주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정말 특별한정 할인 서비스입니다.”

“너. 말은 내가 만약 수락하지 않으면 깔끔히 포기한다 했지만, 사실은 계속해서 그렇게 설득할 생각이지?”

끄덕.

“당연한 거 아닙니까? 영업의 기본은 인내와 포기를 모를지 모르는 도전이라 알고 있습니다만.”

자신의 말에 말없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며 도경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보면 네가 보험회사원이거나 샐러리 맨인줄 알겠다. 정말 의외로 끈질긴 성격이었네.”

“칭찬 감사합니다.”

“뻔뻔하기도 하고...”

“그건 도경 님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비아냥대기까지.”

“기분 탓입니다.”

“끄응.”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자신이 말리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백아현이라는 인물은 평소 도경이 재미를 쏠쏠하게 보았던 수작 같은 게 잘 통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진지하게 생각해보십시오. 솔직히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유용한 일 아닙니까. 바로 지금처럼 말입니다.”

“뭐 그건 그렇지...”

‘그녀의 말대로 서로 좋은 일이 될 거는 분명하다.’

솔직히 흠잡을 것 없이 훌륭했다.

이 번호판이 떨어져 있는 검은 봉고차부터 시작으로 신속 정확하게 천한구를 납치하는 능력. 그리고 이중삼중으로 그의 신변을 얽매는 협박과 회유를 통한 뒤탈 없는 깔끔한 뒤처리까지 무엇 하나 흠잡을 것 없이 완벽했다.

“꼭 저희를 킬러조직처럼 생각 안 하셨으면 합니다. 살인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 수단은 맨 마지막이고 보통은 해결사 노릇들을 많이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도경 님 생각처럼 그렇게 위험한 일을 많이 하지는 않습니다.”

“......”

백아현의 마지막 설득에 도경은 곰곰이 생각에 잠겨 앞에 있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투명하도록 절제된 감정을 지닌 눈동자.

보통 사람이라면 꺼림칙해야 하지만 도경은 오히려 그러한 눈빛에 친숙한 느낌을 느끼었다.

‘서로 거래하는 대상으로는 나쁘지 않아.’

사람들이 지니는 정은 없지만 그렇기에 비즈니스 적으로는 주고받는 뒷맛이 깔끔하다는 것을 떠올리며 도경은 결정을 내렸다.

“내 능력의 쓰임새의 용도와 그에 따른 보상을 어느 정도 선까지 생각했는지 들어 볼 수 있을까?”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저희 회사에서 나누도록 하지요.”

도경의 허락이나 다름없는 말에 백아현의 얼굴이 티는 나지 않았지만 화사한 생기로 물들었다.

“정말 너도 독특한 여자다.”

우뚝.

“이제부터 협업할 파트너가 될 사이인데 서로에게 존중을 담아 존칭을...”

“친구하자니까?”

“그건 제가 싫다고 말을...”

“친구야 얼른 가자.”

“........”

무언가 쏘아붙이고 싶지만 겨우 계약이 성사된 마당에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은 백아현은 근처에 세워둔 자동차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먼저 걸어갔다.

타다닥.

“어이! 같이 가.”

그런 백아현을 보며 도경은 능글맞게 웃으며 서둘러 백아현의 뒤를 쫓는다.

‘설마 지구에 와서 먼저 계약을 맺는 회사가 청부조직이라니 내 팔자도 참...!’

여러 기획사가 자신과 계약을 맺기 위해 찾고 있었는데 정작 자신은 엉뚱한 회사와 계약을 맺으러 가는 중이라니 조금 웃기다 생각이 드는 도경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