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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88화 (88/357)

88화

풀썩.

“하아...”

늦은 밤 K스타의 무대를 위해 하루가 부족하도록 연습을 마친 강소영은 침대 위에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씻어야 하는데”

꿈틀.

침대 위에 드러누운 것이 실수였다.

몸이 옴짝달싹하지 않는 것을 느낀 강소영은 침대에 파묻은 고개만 빼 내밀어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AM 03:40.

“힘들어...”

방송국에서 마련해준 연습실에서 온종일 연습으로만 끝을 마친 후. 곧바로 자신의 소속사에 가서 차현식PD의 지도하에 또다시 무대를 연습해야 했다.

아무리 강소영이 독하다 해도 여자의 체력으로는 이런 무리한 일정은 힘겨운건 어쩔 수 없었다.

“짜증나...!”

가슴 속에 짜증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낀 강소영은 침대에 파묻은 몸을 힘겹게 빼 가장자리에 걸터앉는다.

이대로 잠을 자고 싶지만 클렌징도 안한 상태로 자고 일어난다면 피부트러블이 일어날 수 있는 일.

자기 관리가 철저한 그녀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쏴아아아.

욕실 안. 뽀얀 흰 수증기 사이로 드어나는 새하얀 살결과 그녀의 아름다운 몸이 드러났다. 남자라면 누구나 군침을 흘릴 장면이었으나 강소영의 표정을 본다면 그 흥분이 금세 가라앉을 것이리다.

분명 따스한 증기일터인데 강소영 근처에 피어나는 증기는 마치 싸늘함을 나타내는 서리 같았기 때문이다.

강소영이 짓는 표정에서는 샤워하는데 특유의 개운함이라던가 시원함이 없었다.

꾸욱.

“왜 이러지...”

보통과 다른 자신의 컨디션에 강소영은 입술을 꾹 깨물며 앞에 있는 거울을 향해 손을 뻗는다.

뽀드득.

거울에 서린 김을 닦아낸 자리에 강소영은 자신의 얼굴을 들여 다 보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데 말이야...”

피부상태나 기미도 없고 항상 노심초사하며 관리하던 다크 서클도 없는 깨끗한 얼굴이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자신의 몸 상태는 분명 나쁘지 않은게 확실하다.

“그런데 왜 이리 푸석푸석해 보이지?”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녀는 신경질적인 표정을 지으며 욕실을 벗어났다. 자신이 예쁘게 보이지 않는데 거울을 계속해서 들여다보며 스트레스받을 이유가 없었다.

틱틱!

‘짜증 나! 짜증 나! 짜증 나!’

연습으로 몸이 지치고 힘든 것이야 강소영에게 익숙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자신의 상태가 나빠질 이유가 없었다.

이것은 다른 부분의 문제라고 강소영은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이렇게 짜증 나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계속해서 짜증이 솟구쳐 오르는 것은 정상적이지 못한 것이다.

“생리할 때도 이렇게 짜증이 나지 않았는데.”

손톱을 신경질적으로 물어뜯으면서 그녀는 하루도 소홀히 하지 않는 피부 관리를 위해서 냉장고 안에 있는 팩을 꺼내러 부엌으로 향했다.

“짜증 풀 곳이 필요해. 그런데...”

마음 같아서는 냉장고에 있는 팩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각종의 달콤한 디저트와 케이크를 마음껏 퍼먹고 싶지만, 무대를 앞두고 있어선 꿈도 꾸면 안 되었다.

“풀 곳이 없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강소영 본인 자신이었기에 그녀는 더욱더 짜증을 담아 발에 힘주어 부엌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

흠칫.

“언니?”

씨이익.

늦은 새벽 이 시간에 깨어있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게다가 때마침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그래. 미진이 네가 있었지.”

절로 웃음이 나오는 강소영은 미진을 지나쳐 냉장고를 뒤적이며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품속에 꺼내 들고는 자신의 이복동생에게 말을 건네었다.

“나한테는 정말 너밖에 없는 것 같아.”

“....”

“잠깐 내 방에서 놀래. 미진아?”

씨익.

“갈게...”

강소영의 진한미소.

미진은 그녀의 미소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대답했다.

어차피 자신에게 거부라는 선택지를 아예 주지 않는 강소영의 화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후후. 그래 천천히 올라오렴.”

언제나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며 자신의 말에 복종하는 동생이었기에 강소영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진의 표정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자신의 방안으로 걸음을 먼저 옮기었다.

“.......”

넒은 부엌 가만히 서 있는 미진은 멍한 눈으로 부엌을 떠나고 있는 자신의 언니 강소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덜커덕.

“강소영.”

강소영이 떠난 자리 적막 속.

냉장고 안에서 얼음이 만들어져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미진의 멍한 두 눈에 무언가 알 수 없는 빛이 스쳐 지나갔다.

“다 너 때문이야...”

드르륵.

저벅저벅.

서랍에 무언가를 꺼내 들은 그녀는 자신의 언니가 있는 방이 곳으로 걸음을 옮겼는데 미진의 소리 없는 발걸음이 심상치가 않아 보였다.

--

똑똑.

"왔어? 늦었잖아. 얼른 들어와."

끼익.

분홍빛으로 칠해져 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화장대에 있는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 위에 팩을 하는 강소영이 눈에 들어왔다.

"너 많이 건방져졌다. 오라고 한지 언제인데 지금 와? 요즘 들어 사춘기니?“

툭툭툭.

얼굴 팩에 있는 수분이 피부에 잘 스며들도록 팩을 리듬감 있게 두드리는 강소영은 비추는 거울로 통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미진을 보며 그녀를 향해 비아냥거렸다.

"언니..."

"응?"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요?"

"물어?“

묻다니?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에 강소영은 의아함에 뒤돌아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았다.

갸웃.

‘정말 사춘기인가?’

보통이라면 건방지다고 따귀를 올려붙일 일이었지만, 나름 생소한 그녀의 반응에 강소영은 오히려 자극을 받고는 재밌겠다는 미소를 지었다.

피식.

"주제를 넘는 행동이지만 네가 그러니 재미는 있네. 뭔데 물어봐.“

"..."

"언니가 나를 이렇게까지 괴롭힌 이유가 뭐예요?"

“뭐?”

미진의 질문에 강소영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말았다.

그래도 나름 대단한 거 물을 거라 생각하고 나름 기대했건만 저런 시시한 걸 물어보다니 실망감이 들었다.

“그걸 인제 와서 묻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갈만한 이유가 생각이 나질 않아서요.”

“이유?”

피식.

진작에 물어보던가.

수년간 괴롭힘을 당해오고 나서야 저런 걸 물어보며 이유를 찾는 미진을 보며 강소영은 미진이 정말 멍청하다고 생각을 하였다.

“이유 따위가 있을 리가 없잖아.”

“이유가 없다고요?”

“길 가다가 발밑에 깡통이 있어. 그럼 어떻게 해?”

“깡통?”

강소영의 말에 미진은 고개를 갸웃 이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모르는 거야? 하긴 너처럼 나사 빠지게 공부만 하는 애들은 모를 수도 있겠다.”

“걷어차는 게 당연하잖아. 그리고 마지막에 꽈직하고 짓밟아주는 거지.”

“...제가 그런 깡통이라는 거예요?”

“그래.”

“.......”

‘재미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거 나름대로 재밌겠는데?’

강소영은 자신의 잔인한 대답을 듣고 미진이 어떤 반응과 표정을 보일지 기대가 되었다.

미진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반항하지 않을까 말이다.

두근두근.

‘어떻게 화를 내려나?’

보통 사람이 반항한다면 화가 나겠지만, 수년간 묵묵히 벙어리처럼 괴롭힘을 받아온 미진이라면 오히려 환영이었다.

강소영 그녀에게는 지금 자극이 필요했는데 미진이 그것을 충족시켜 줬으면 했다.

‘반항하면 어떻게 해줘야 할까? 후후후.’

그럼 보답으로 그녀를 전력을 다해 짓밟아줄 생각이었고 말이다.

어떻게 생각해 보아도 강소영 그녀의 가학 심은 정도를 넘어서는 부분이 있었다. 그녀의 기대를 아는지 모르는지 미진은 강소영에게 되물었다.

“언니 저는 길거리에 놓여있는 깡통이 아니에요. 저는 고통을 느끼고 감정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건 모르지 않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 까지. 멍청한 계집애야.”

“?”

저 답답할 정도로 둔감한 미진에게는 자신의 비유는 알아듣기 어려웠나 보다.

미진이 자신이 원하는 반응을 보내오지 않자 짜증 나는 표정을 짓는 동시에 한심하다는 어조로 그녀에게 이야기를 쏘아붙였다.

“아무런 의사 표현을 못하는 깡통을 차는데 그 정도로 재밌는데 네 말대로 고통도 느끼고 의사 표현도 하는 장난감이라면 더욱 재미나는 거지.”

“장난감...”

“그래 장난감. 너는 나한테 있어 원할 때마다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 같은 거지.”

“.......”

[장난감]

차라리 이유가 있어서 자신을 미워하고 괴롭혔으면 했다. 이복형제이든 자매이든 간에 사이가 나쁜 일이야 흔한 일이니 말이다.

게다가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아버지 강명석에게 원하지 않게 모두에게 정체를 숨겨야 하지 않았는가. 이기적이라도 자신을 미워할 이유는 아주 많았다. 하지만 고작 저런 이유라니 막상 저런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말을 잇기 힘들었다.

“그럼...”

“뭐야 또 물어볼 게 있어?”

“성준이랑 도경오빠도 그런 이유로 괴롭혔던 거예요?”

“응? 그건 조금 다르지. 근데 오늘 따라 궁금한 게 많네. 이젠 조금 귀찮아 지는 걸.”

“대답...”

“뭐?”

“대답해주세요.

철컥.

자신의 방문을 등지고 문을 잠그는 미진의 행동에 강소영은 기분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을 느꼈다. 반항을 기대했지 위협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지금 뭐하자는 거야. 정말 사춘기야? 간덩이가 부었네. 강미진.”

“시끄러...”

“뭐라고?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나보고 시끄럽다고 한 거야?”

자신이 기대하고 보고 싶었던 반항은 절망에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이었지 저런 건방진 눈빛을 한 표정이 아니었다.

“대답이나 제대로 하라고...!”

스윽.

오싹.

“너!? 진짜 돌았어? 그 칼 어서 안 내려 놔?”

심상치 않은 긴장 속.

미진이 부엌에서 챙겨 온 과도를 꺼내 들자 강소영의 낯빛이 바뀌었다. 그녀의 표정을 본 미진의 눈에는 푸른 안광이 스쳤다.

“내 유일한 친구를 괴롭히고 잃게 만든 이유를 나는 들어야겠어.”

“너...!”

자신의 동생을 바라본 강소영은 그녀가 제정신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쟤 때문에 성준이를 잃었어.’

강소영이 꾸몄던 음모를 몰래 들은 날.

자신의 친구와 그가 의지하는 도경에게 위험을 미리 알릴 수도 있었지만 두려움에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나서 도경의 K스타 하차.

미진은 방송을 안 봤기 때문에 도경이 어떤 식으로 하차했는지 몰랐고 덕분에 죄책감에 물든 미진은 성준에게 울면서 고해성사를 하듯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따스하게 위로해주길 원했다.

하지만 성준은 미진이 원하는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들은 성준은 그걸 지금 와서야 왜 말한 것이냐며 미친 듯이 화를 내다 이내 실망스러운 눈으로 미진을 바라보았다.

(네가 나를 친구로 생각했다면 그래서는 안 됐어. 최소한 사건이 터지는 날은 이야기를 해줘야지.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

꾹!

매정히 뒤돌아서 어디론가 달려가는 성준의 뒷모습이 떠오르자 과도를 쥐고 있는 미진의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간다.

그 후 서로들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성준과의 인연이 미진은 끊겨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미진은 단순히 자신이 친구를 잃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도 하였다. 친구라 생각하고 애써 외면하고 눌러왔던 마음이 자신을 괴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첫 친구이자 「짝사랑」.

몰래 성준을 홀로 짝사랑하던 자신의 진심을 뒤늦게 알아 버린 그녀는 결국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었다.

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너무나 후회스럽고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너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잃었어!”

휙.

서걱!

자신을 향해 휘두른 미진의 칼을 피한 강소영은 자신의 뒤에 있던 꽃이 베어져 떨어지는 것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진짜 휘둘렀어. 너 진짜 미쳤어. 강미진?“

“그래. 미쳤어.”

“진작 미칠 걸 그랬어.”

‘제, 제정신이 아니야...!’

정말로 자신을 향해 칼을 휘두른 미진을 보며 그녀는 이게 진짜 현실로 일어나는 일인지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알던 겁 많고 소심한 얘가 맞나 싶었다. 칼을 휘둘렀음에도 떨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눈빛을 빛내는 미진을 보며 강소영은 얼굴은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지금 이 상황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멍청한 년. 그깟 과도 하나 들었다고 네가 뭐라도 된 거 같아? 같잖은 짓 하지 마! 너는 평상시대로 병신처럼 괴롭힘 받고 방구석에서 질질 짜는 게 어울려!”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하는구나.”

“미쳤냐? 너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할 바에 죽는 게 나아.”

“그래? 그럼 한 번 죽어봐.”

휘익!

힐끔.

‘도망가야 돼’

자신을 보며 달려오는 미진을 보며 침대 위에 올라서 있는 강소영은 미진의 뒤쪽에 있는 문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키며 심호흡하였다.

“죽어”

“미친년!”

휙~!

우당탕탕!

간발의 차로 침대의 탄력을 이용해 점프한 강소영은 미진이 자신에게 휘두른 칼을 피하며 바닥에 넘어진다.

벌떡!

하지만 이내 빠르게 일어선 강소영은 절뚝거리며 자신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도망갔다.

벌컥!

타다다닥.

“거기서!”

“꺄아아아악! 엄마! 아빠! 미진이가 미쳤어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우당탕탕.

새벽.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저택에서 끔찍한 비명으로 가득 울려 퍼지며 미진과 강소영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여졌다.

그리고 소란스러운 소리와 강소영의 비명소리를 들은 두 소녀의 아버지 강명석의 등장으로 추격전이 끝이 났다.

“미진이 너 이게 무슨 짓이냐?”

바둥바둥

“이거 놔요!”

“이, 미친년이!?”

짜아악!

“아악.”

억센 손길에 과도를 빼앗기고 바닥에 쓰러진 미진을 향해 강명석이 호통을 쳤다.

“가족에게 칼을 휘두르다니 네가 정말 제정신이냐! 감히 내 집안에서 이런 미친 짓을 벌이다니.”

스윽.

평소 두려워했던 노기를 띠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 강명석의 목소리를 들으며 미진의 두 눈을 부릅떴다.

“가족?”

하지만 미진의 눈에는 두려움이 아닌 그를 향한 원망과 분노가 담긴 증오가 서려 있었다. 17살에 불과한 어린 소녀이지만 알 것은 안다.

“너희들 같은 존재가 가족이라면 그딴 가족 필요 없어!!!”

미진은 자신이 강명석이 말한 가족이란 존재를 떠올리며 이를 갈며 인생 처음으로 소리라는 것을 질러 보았다.

“뭐, 뭣?”

생전 처음 보는 미진의 모습에 강명석의 얼굴에 당황함으로 물들었다.

자신이 알던 딸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존재감도 없던 미진이 저리 증오와 한으로 가득 채운 소리 지를 줄이야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들어보는 미진의 목소리에 강명석은 자신의 딸이 다른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스윽.

“후우...”

미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터진 입술로 흐르는 피를 닦으며 자신의 앞에 있는 가족을 눈에 담았다.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을 천박하다는 듯 바라보는 강소영의 어미와 그녀의 품속에서 얼굴을 내밀며 상황을 살피는 강소영.

그리고 이 집안의 중심이자 어떻게 보면 이 모든 상황을 초래한 자신의 아버지란 존재인 강명석의 모습이 보였다.

‘저런 사람들이었어. 뭘 기대한 거지 나는?’

도대체 저들을 보고 뭘 기대하며 여태 참아왔던 걸까. 저런 인간들로부터 애정을 구한 자신이 멍청하기 그지없었다.

‘이젠 끝이야.’

이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더 이상 필요 없어요. 오늘부로 나는 너희들과 인연을 끊겠어요.”

이상한 말투.

하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세상 밖으로 내는 강미진의 모습은 어리숙해 보이지만 묘하게 멋있었다. 나이를 떠나 정말로 각오한 마음이 그녀가 내뱉는 말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어...!”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자신의 아버지를 보며 미진은 그에게 예의를 갖춰 고개를 숙이며 그와의 선을 확실히 그었다.

“저는 외가에 귀의할 거예요.”

“그 인간에게 가겠다고? 네 어미와 연을 끊었던 인간인데 말이야. 받아 줄 거라 생각해?”

“...!”

‘뻔뻔한 인간’

외가가 인연을 끊었던 이유도 바로 다 저기 앞에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강명석인 덕분인데 무슨 낮짝으로 그것을 언급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할아버지의 구두를 핥아서라도 받아 달라 부탁할 거예요. 무관심한 당신보다 화를 내는 할아버지가 더 나아요. 그분은 그래도 관심이라도 있는 것이니까요.”

“...”

자신을 있는지 없는지 취급하는 곳보다는 자신의 딸과 애증으로 인연을 끊은 외가의 할아버지가 저 사람보다 인간적이고 낫다고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있을 곳은 내가 만들 거예요. 거기에 당신은 없을 거예요.”

그녀는 결국 자신의 아버지에게 절연을 선언하고 말았다.

뜨거운 분노가 지나고 차가운 이성이 미진에게 하나의 결단을 내리게 만든 것이다.

꾸벅

자신의 앞에 있는 가족을 바라보며 미진은 마지막 인사말도 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그들에게 등을 돌렸다.

저벅저벅.

그렇게 미진은 어린 나이에 평생을 살아왔던 집을 스스로 나왔다.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

“이게...”

“.......”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야!?”

처음 보는 미진의 살벌한 모습과 그녀의 결단에 강소영의 가족들은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이내 강명석은 미진이 왜 저런 행동을 했는지 이유를 뒤늦게 찾기 시작했다.

흠칫.

“그, 그게...”

강명석의 분노한 눈초리를 처음 맞이한 강소영은 그를 향해 침을 꿀꺽 삼키었다.

---

한 소녀가 각오하며 집에서 독립해 나온 일이 있었지만, 세상 사람들이 사는 곳은 아무런 변화가 없이 잠잠했다.

그리고 그런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누군가 걸음을 옮겼다.

[광화문 거리]

터벅터벅.

“이곳이 광화문 거리인가? 아직은 한산하네.”

등에는 기타케이스를 메고 검은 모자를 푹 써 얼굴을 가린 청년. 그는 어제 성준에게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불러주었던 도경이었다.

“그래도 역시 다르구나.”

유독 이곳만 공기가 이질적이다.

침울하게 가라앉아있는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터질 것 같이 들떠있는 현장 분위기. 그것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지 않아 나타나지 않는 것이지만, 이 거리에 내제된 힘과 감정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곳이라면 모자란 것을 찾을 수 있겠지.”

성준에게 노래를 불러주면서 무언가 부족함을 느낀 도경은 결국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었다.

자신이 이번에 부를 노래의 이유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곳이라면 확실한 모티프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이잉

“응?”

발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구경하고 있던 도경은 자신의 피부를 찌르는 감정을 지닌 파동을 느끼며 그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건...”

[절망],[분노],[살의],[그리움],[슬픔]

짙은 감정들로 도배된 파동에 도경의 가슴이 울렁인다. 도경은 자신도 모르게 그곳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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