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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89화 (89/357)

89화

“흐으으... 상덕아.”

“......”

흐느끼는 자신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 조상현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2년이 지났음에도 자신의 아내의 눈물샘은 마를지를 모르고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 내었다.

“X발.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거 아니야?”

“흑흑흑.”

“울지 마라니까 크흑!”

처음에는 자신의 아내를 위로하며 어떻게든 기운을 복 돋아 주려 했지만,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2년이 흐르자 더이상 자신의 입에서는 위로가 나오질 않았다.

우울증이다 뭐다 병원에 데려가 상담과 치료를 받게도 해보고 약도 먹여보고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는 아내였다.

이제는 포기했다. 지금 자신조차 술 한잔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지경까지 와버렸지 않은가 그의 마음속에는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콰앙!

“크흐흐흑! 내가 죄인이지 죄인이야.”

조상현은 문을 거칠게 박차고 나와 현관 앞에서 자신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우악스러운 손길로 쥐어짜며 자신을 탓하였다.

진학률이 높다고 이사까지 하면서 자식을 일부러 보내었던 고등학교가 이렇게 비극적인 일로 자신에게 돌아올지 상상도 못 했다.

“꺼억꺼억.”

털썩.

익숙해질 만하다. 익숙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발작하듯 찾아오는 우울함과 슬픔에 조상현은 살아왔던 세월이 무색하게 손쉽게 무릎을 꿇어 버린다.

2년 전의 인재(人災).

[여명호 사건.]

이 한 사건이 자신이 평생을 일궈오고 지켜왔던 가정을 파탄 내었고 자기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상덕아 미안하다...! 이 아빠가 미안해.”

차가운 바닷속에서 가라앉기 전까지 오히려 자신이 처한 상황이 별일이 아니라 웃어넘기며 부모인 자신들을 다독였던 자기의 자식을 떠올리며 조상현은 울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꺼어억. x팔놈의 새끼들!”

왜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했을까?

왜 정부의 말을 믿고 가만히 앉아 있었단 말인가. 불법이라도 자기 자식을 살릴 좋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머릿속을 괴롭히는 물음에 조상현은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끅.

“후우....”

자식에 대한 자책과 미안함에 숨죽이며 울었던 그는 어느새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세상이 무너지듯 울다가 다시 익숙 한 듯 호흡을 거르며 감정을 정리하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섬뜩했다.

“오늘로 끝이다.”

이번에 열린 여명호 2주기.

다시금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들이 모여 있을 때. 아이를 잃은 한 아버지는 끔찍한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상덕아...”

이제는 이렇게 지옥 같은 나날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은 그는 자신 아들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긴다.

--

톡톡!

[상현 씨. 요즘 얼굴 안 보이는 데 무슨 일이 있어요? 연락도 안 되고 걱정되네요.]

[좀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좀 이따 보게 될 겁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좀 있다. 얼굴이나 봅시다.]

[걱정해줘서 고맙습니다.]

[뭘요. 서로 같은 처지에 우리끼리 도와야죠. 조금만 더 힘내 봅시다.]

“......”

시위하다 우연히 같이 술자리를 하며 친해진 자기와 같이 여명호에게 자식을 잃은 처지의 지혜 아버지.

지혜 아버지는 자신과 너무 달랐다.

“흐흐... 힘내 보자고요? 도대체 뭘?”

자신은 현실에 절망했는데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보고 있었다. 그와 이야기할수록 같은 세상에 살고 있나 싶을 정도로 그와 조상현은 너무나 달랐다.

“이곳 어디에 희망이 있다는 거야? 크흐흐.”

벌컥벌컥.

처연함이 담긴 그의 웃음은 지독하게 염세적이어서 그가 입으로 들이켜는 독한 소주보다 더욱 써 보였다.

“빌어먹을 세상 빌어먹을 놈들...!”

여명호 사건을 조속히 처리하겠다 말한 정부. 하지만 그들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유가족의 발걸음을 묶는 바리케이트를 신속하게 쌓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부의 편에 서서 유가족인 자신들을 보상금이나 타려는 도둑놈으로 만드는 언론과 기자들 그것을 또 순순히 믿는 여론에 가슴이 시커멓게 타버린 지 오래다.

“촛불 집회? 저게 무슨 도움이 돼?”

처음에는 고마웠다.

자신들의 억울함을 알아주는구나. 자기들과 함께 싸워주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1~2시간 서 있다. 지인들과 카페에 들어서 웃는 그들을 보면서 조상현은 가슴속이 기분 나쁘게 울렁이는 것을 느꼈다.

‘너희들은 어떻게 웃을 수 있지?’

“쟤들에게는 시위는 자기를 뿌듯하게 만드는 놀이일 뿐이야...”

광화문의 거리를 SNS로 셀카 같은 사진을 찍는 이들을 보면서 조상현은 그리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정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조상현은 모두가 위선자처럼 보였다. 하긴 2년간 제대로 되고 상식적인 풍경을 본 적 없으니 그가 사람을 불신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는 쓰레기통이야.”

안팎으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악취가 나는 쓰레기들이 많았다.

일부러 배달음식을 시켜 단식투쟁하는 유가족 앞에서 먹는 사람도 있었고 이혼하고 자식에게 연락 하나 않던 부모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찾아온 사람까지 있었다.

세상에는 정말 사람이 아닌 자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외쳐야 한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이겠지 크흐흐!”

상상되는가?

단순히 한 장소에 모여 상식을 요구할 뿐인데 지옥에 놓여있는 심정을 맛보아야 하는 것을 말이다.

자신의 인생의 반을 받친 회사에서는 입으로는 애도를 표하지만 내미는 것은 퇴직을 종용하는 서류였고, 퇴직금과 자식이 죽은 보험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시위하는 자신을 보며 팔자나 좋다는 듯 노인들의 비아냥거림을 시작으로 자기의 죽은 자식과 비슷한 또래 애들은 이상한 손 모양과 알아듣지 못할 은어로 조롱이 이어진다.

벌을 받고 반성하고 비판받아야 할 사람은 저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데 정의를 외치고 처벌을 외치는 사람만 멍청이가 되고 조롱받으며 시끄러운 사람으로 취급되어 버린다.

“지옥 속에서 정의를 외쳐봐야 소용없어.”

말도 안 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들은 조상현의 가슴속에 있는 정의는 결국 죽고 말았다.

정의가 죽고 그에게 남은 것은 분노와 한밖에 없었다.

꿀걱꿀걱.

“흐으으... 쉽게 취하지가 않구나.”

조상현이 앉아있는 곳은 편의점 야외 테이블.

그의 테이블 위로 초록색의 술병이 여러 개 나뒹구는 중이었다. 빈속에 저 정도의 소주를 들이붓는 다면 보통이면 눈이 풀리고 몸을 못 가눠야 하는데 조상현의 정신은 오히려 뚜렷해지고 그의 두 눈은 더욱더 시퍼런 날이 서고 있었다.

“에잉. 저놈의 여명호. 언제까지 옛날 일가지고 저리 시끄럽게 굴 건지...!”

움찔.

한참을 술을 들이켜는데 정신없는 조상현의 귓가에 구역질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2년 내내 자신들을 탓하던 소리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간다.

“그러게 말이야. 얼마나 헤쳐 먹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 그 정도 돈 받았으면 됐지 사람 욕심이라는 게 참...”

“대통령님은 또 무슨 죄고?”

“그러니 우리가 힘내야 하는 게 아니겠어? 이러다가 북한 놈들이 원하는 대로 나라가 마비될지도 모른다고?”

“그려 자네 말이 맞아 자, 한잔하자고!”

검은 선글라스와 붉은색의 조끼 군데군데 박혀있는 태극마크.

정체를 알 수 없는 훈장들로 시대착오적인 복색을 한 노인들은 으름장을 놓으며 호기롭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이 술을 마시는 테이블 위로는 휴대용 태극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하...”

덥석.

언제부터 자연스럽게 생기고 있는 추한 존재들을 바라보는 조상현의 눈빛에 살의가 떠올랐다. 그는 조용히 술병을 들어 올리며 바닥에 내리쳤다.

쨍그랑!

“뭐, 뭐야?”

깜짝!

저벅저벅.

“다시 한번 지껄여봐.”

제대로 깨지 못해 부서진 파편에 손이 베였지만 취기에 통증이 못 느끼는 조상현은 천천히 노인들을 향해 걸어가 날카로운 술병을 들여 보였다.

“이 어린놈의 새끼가 지금 한번 해보자는 거야?”

“다시 한번 지껄여 보라고!”

휙!

“어어어?”

3명의 노인들이 조상현을 보며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멀찌감치 그와 거리를 벌린다.

“이거 완전 미친놈 이구만. 젊은 놈이 일은 안 하고 대낮부터 술이 떡이 되도록 쳐먹고 말이야. 퉤! 술병 하나 들면 우리가 쫄 줄 알아?”

“킁킁. 그런데 이거 무슨 냄새...!”

떡진 머리와 깎지 않아 수염으로 폐인의 몰골을 한 조상현을 보며 욕설을 내뱉고 있던 노인 중 한명이 무언가 익숙한 냄새를 맡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 자, 잠깐만 다들 그만하고 가자고.”

탁!

“뭐야. 왜 그래? 우리는 셋이라니까?”

“가자니까!? 내 말 들어!”

“뭐!?”

한판 붙으려던 자신의 동료들을 말린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두 노인의 팔을 강하게 붙잡으며 그들을 이끌고 자리를 벗어났다.

“아니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나 아직 젊어? 김 영감. 저런 빨갱이 놈쯤이야. 한 주먹거리도 안 돼.”

“시끄러! 내 덕분에 죽을 뻔한 거 산 줄 알아!”

“뭐라고?”

두 동료의 물음에 호탕 친 그는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며 발걸음 속도를 올리며 혹시나 조상현이 쫓아오진 않을까 두려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기까지 했다.

흘깃.

“다행히 쫓아오지 않는구나.”

‘그건 분명 신나 냄새였어.’

처음에는 술 냄새인 줄 알았는데 알코올과 휘발유 냄새가 섞인 그 특유의 냄새에 술이 아니라 신나 냄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문제는 그 냄새가 조상현의 온몸 곳곳에 그 냄새가 맡아지는 것을 알았다.

온몸에서 풍겨 나오는 신나 냄새.

그런 인물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예상할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제정신이 아닌 끔찍한 일을 벌이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

“눈치 빠른 노인네...”

두려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친구들을 이끌고 사라지는 노인네들을 바라본 그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노인들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그들이 남기고 간 술병을 집어 올려 입에 털어 넣었다.

꿀꺽.

“크으! 하마터면 일을 그르칠 뻔했어.”

죽기 전 별것이 다 신경 쓰인다.

차라리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는 거였다면 망설임 없이 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상현은 고통에 회피하기 위해 죽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화르르르.

그는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

자식을 잃어버린 말 못 할 애통함을 그리고 정의와 희망을 잃은 자신의 분노를 말이다. 사람들이 이것이 얼마나 큰일이고 얼마나 자신이 분노했는지 받아들였으면 했다.

딸랑.

눈앞에 시위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조상현이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편의점에서 기타를 맨 청년이 조상현 옆 테이블 앉았다.

흘끔.

‘뭐지?’

그런 젊은 청년에게 조상현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주고 말았다.

바닥에 깨져있는 소주병과 자신이 흘린 핏자국이 보일 텐데도 태연하게 자리에 앉은 청년이 특이했기 때문이다.

“쭈우욱!”

쪽쪽쪽 츄르르!

“이상한 녀석이군.”

검은 모자를 눈 밑까지 푹 눌러쓰고 노란 바나나우유를 시원하게 빨대로 들이키는 청년이 눈에 들어온다.

‘음악 하는 친구인가?’

바나나 우유를 들이킨 청년이 자신의 기타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 드는 모습에 조상현은 그가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띠리링.

‘상덕이가 음악 하고 싶다고 얘기했었지...’

기타 줄을 퉁기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청년을 보며 조상현은 자기 아들 조상덕이 생각했다.

한참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갑자기 음악을 하고 싶다고 졸랐던 자신의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는 참 많이도 싸웠었다.

그리고는 우선 대학을 가라며 아들의 뜻을 꺾었던 자신의 행동을 조상현은 후회했다.

“하게 해줄걸...!”

주르륵.

또 자신이 자식에게 못 해준 것이 떠오르며 옆에 청년이 기타 줄을 튕기는 소리를 들은 조상현은 소리 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띠링.

둥둥둥. 퉁!

한 중년은 말없이 울고 있었고 한 청년은 말없이 기타를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기묘한 편의점 야외 테이블의 풍경 속.

시간은 흘러가고 광화문 거리에 촛불을 든 사람들이 퇴근 시간을 시작으로 하나둘 모이고 있었다.

4시간 후.

띠리링.

“.......”

“.......”

편의점 테이블에 자리 잡았던 말 없는 두 사람.

시간이 어느새 많이도 흘러 처음에 조금만 흐렸던 하늘이 어느새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는데 두 사람의 모습은 바뀐 게 없었다.

땅땅. 퉁. 탁!

기타를 치는 청년과 그 옆에서 기타 소리를 안주 삼으며 계속해서 술만 들이키고 있는 조상현.

벌컥벌컥!

“크으으. 이제 슬슬 때가 된 거 같군...!”

모여 있는 인파 속.

촛불로 물들어 있는 거리.

일렁이는 촛불을 응시하던 조상현은 때가 되었단 생각에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휘청.

오랜 시간 앉아 술만 주야장천 마셔 현기증이 밀려왔지만, 오히려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덕아 조금만 기다리렴. 아빠가 곧 갈게...”

뒤적.

툭.

“......”

주머니 속에서 작은 라이터가 만져져 진다.

담배를 피운 덕분에 익숙한 감촉. 한데 지금의 조상현은 이 조그마한 라이터가 무서워 어쩔 수가 없었다.

화르르륵.

덜덜덜.

머릿속에 활활 타오르는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자 그의 몸은 의지와 상관없이 떨리기 시작한다.

‘빌어먹을 몸뚱이 너는 살고 싶다 이거냐?’

벌컥벌컥.

“창피한 줄 알아야지!”

그는 자신을 다그치며 테이블 위에 반쯤 차 있는 소주병을 들어 올려 쓴 알콜을 자신의 몸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심하게 떨리던 그의 몸이 잔잔해진다.

“좋아. 이제 가보자...”

마지막 술을 다 비운 그는 손에 쥐어진 라이터를 꾹 쥐며 발에 힘주며 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식을 잃은 아비의 슬픔을 정의를 저버린 분노를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줄 것이리라.

그렇게 다짐하자. 알 수 없는 사명감이 조상현을 감쌌고 그는 점점 비장해 져갔다.

띠리링! 툭.

“꼭 그 방법밖에 없는 거예요?”

하지만 그 순간.

그런 조상현에게 누군가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상덕이가 별로 안 좋아할걸요.”

“뭐?”

휙.

말을 건 사람의 정체는 아무 말 없이 기타를 치던 청년. 지금 그가 조상현의 아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의 걸음을 멈춰 서게 했다.

조상현은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내뱉는 청년을 향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뭐라고?”

“지금 하시려는 거 말이에요. 상덕이가 별로 안 좋아할 거라고요.”

“상덕이를 알아?”

“아뇨. 다만 아저씨가 일어나면서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을 뿐이에요.”

“그래... 괜한 참견이다.”

휙.

그의 대답에 조상현은 떨리는 눈을 감추며 아무 말 없이 뒤돌아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하였지만, 다시 들리는 목소리에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아저씨.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못 바꿉니다.”

우뚝.

“네가 뭔 상관이야?”

“상관은 없었는데 지금부터 상관하려고요.”

“뭐?”

스윽.

“아저씨 덕분에 좋은 악구를 얻었거든요. 어때요. 노래 한 번 들어 볼래요?”

“너...!”

푹 눌렀던 검은 모자를 들어 올리며 태연하게 묻는 청년의 얼굴을 바라본 조상현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자신의 비극과 절망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당당히 말하는 청년의 말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너 대체 뭐 하는...!”

[미안해.]

“!?”

그가 내뱉는 쭉 뻗는 딱 한 마디 구절의 노랫소리에 조상현의 가슴이 턱하고 막힌다.

[네게 하지 못한 말.

사랑해.]

울컥.

그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청년은 조상현에게 받은 영감을 모티프 삼아 자신의 프레이즈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

‘찾았다.’

노래를 부르는 청년. 아니, 도경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만든 노래에 부족한 것을 조상현을 통해 찾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작곡해서 그런지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어.’

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자신에게 모이고 있음에도 도경은 노래를 멈추지 않고 더욱더 소리 높여 불렀다.

자신에게 찾아온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아아~!”

광화문 거리에 도경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주르륵.

“성덕아...!”

도경의 노래에 맨 앞에 있던 조상현은 어느새 눈물을 흘리며 도경의 노래를 들으며 그의 노랫소리를 서툴지만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미안해~!]

도경 자기의 부족한 것을 찾기 위해 온 거리.

우연한 만남.

그렇게 하나의 노래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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