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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97화 (97/357)

97화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단 말이야.”

처음에 비행기를 타면서 연신 감탄 성을 내뱉으며 신나는 표정을 지었던 도경은 이제는 없었다.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떠난 3년간의 여행의 시간이 도경을 그리 만들었다.

긁적긁적.

꾸질 꾸질.

새로움은커녕 때에 찌들은 모습.

비유가 아니라 정말 도경 몸에서는 찌든 냄새들이 풍기고 있었다.

신경 쓰지 않으면 그저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냄새에 조금 예민한 사람이라면 코끝을 찡그릴 퀴퀴한 냄새를 말이다.

‘이 사람 냄새나...!’

킁킁!

도경의 몸에서는 퀴퀴한 냄새 가운데 술 특유의 알콜 냄새가 맡아졌는데 깔끔한 것을 좋아하고 냄새에 민감한 여성은 도경을 향해 인상을 쓰며 짜증난 표정을 지었다.

‘짜증 나. 이럴까 봐 퍼스트클래스를 끊으려 했는데...!’

일등석보다 한 단계 아래에 끊은 것도 짜증났는데 옆에 앉은 사람마저 냄새나는 사람이라니 자신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 오늘의 일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흘깃.

‘이곳에 있는 것을 보아 돈은 있어 보이는데...’

그녀가 앉아있는 자리는 비즈니스 석.

부유하지 않으면 타기 힘든 자리인데 저리 자연스럽게 앉아 있는 것을 보니 돈이 없어 보이는 사람 같지는 않았다.

“돈 있으면 뭐해. 꼬라지가 저런데...”

이해가 가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는 도경을 훔쳐보았다.

“정말 중국인들이란...!”

정리 안 된 떡진 머리와 꾸깃꾸깃한 낡은 옷 복색의 추레한 몰골의 도경을 보면서 그녀는 평소 복색에 신경을 잘 쓰지 않는 몇몇의 중국사람의 특징을 떠올리며 잘못된 선입견으로 도경을 낙인찍었다.

떡진 머리야 떠나기 전 친구들과 밤새 동안 술 마시고 날뛰느라 그렇게 된 거고, 변색되고 낡은 옷들은 긴 여행을 다니면 누구나 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한 사정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대체 왜 저러고 다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민폐야 정말...!”

그녀는 도경이 중국인이라 확신하고는 거릴 거 없이 그를 향해 한국말로 혐오하는 말을 내뱉는다.

“좀 씻고 다니지 더러운 놈들.”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거란 생각에서 나온 말이었다.

문제는 도경은 한국인이고 그녀의 인신공격을 다 들었다는 거지만 말이다.

슥.

흠칫

갑자기 보는 자신을 바라보는 중국인의 시선에 깜짝 놀란 여성은 혹시나 그가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나 싶었지만 이내 자신은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생각하며 그를 뭐 어쩔 건데 하는 식으로 노려보았다.

피식.

‘원하는 대로 해주지.’

몰상식한 중국인이라 오해받았으니 도경은 그녀의 선입견을 충족시켜주기로 하였다.

3년 여행 짬밥 간단한 외국어는 간단히 구사할 줄 안다.

씨익.

“너 괜찮니?”

[니 메이 쓰바!]

“뭐?”

중국에서 재미있게 기억하고 자주 사용하던 중국어를 도경은 그녀에게 시전하기 시작한다.

니메이쓰바!

[너 괜찮니?]

뜻과는 달리 한국인에게 욕 같은 말.

어차피 그녀 또한 중국어는 알아듣지 못할 거 도경은 그녀에 귀에 익숙한 단어에 힘을 줘 거침없이 말을 꺼낸다.

악센트의 차이는 자국 사람이거나 외국어를 능통하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 중국어 같은데 어감 진짜 한번 뭐 같네... ”

도경의 짓궂은 장난은 예상대로 그녀에게 먹혀들어 갔다.

씨바라는 익숙한 단어.

한국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찜찜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도경의 장난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취 팔러마?

[밥 먹었어요?]

아?

한국에서도 유명한 욕 같은 중국말.

오히려 그래서 모두가 중국어는 몰라도 그 말을 알았다.

“밥? 내가 왜 밥 먹은 걸 왜 물어봐?”

그녀는 도경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지 알 수 없지만, 그가 자신에게 흥미를 가지고 말을 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뭐하자는 거지? 지금 설마 나한테 작업 거는 거야?”

그러다 자신의 떡진 머리를 가리키며 가렵다는 모션을 취하며 울상을 짓는다.

“씨바쉐이”

[샴푸]

“씨바”

[씻어요.]

“썅니엔”

[그리워요.]

그러다 이내 실실거리며 자신에게 손을 흔들면서 헤실헤실 웃는데 이게 묘하게 수작을 거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흥! 지금 내가 쉬워 보이나? 그리고 말 꺼내는 것마다 꼭 지 같은 말을 꺼내네...!”

울컥.

뭐라 말은 못 하겠고 기분은 더러워지기만 하는 도경의 화법에 그녀는 짜증을 담으며 그를 쏘아보다가 등을 돌리고는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의사를 나누는 것에 대한 명백한 거부의 표시였다.

“혹시 한국인은 아니겠지?”

이어폰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그녀는 씨바4연타에 마지막 쌍년이라 들리는 도경의 중국어를 떠올리며 뒤늦게 의심이 들었지만, 이 이상 저 남자와 엮이기 싫었기에 이 비행기가 한시라도 빨리 한국으로 도착하길 바라였다.

후우우우웅!

--

킁킁.

“하...! 진짜 기분 더럽네. 오늘 되는 게 없어!”

비행기가 착륙하고 공항으로 나서는 그녀는 자신의 몸에 냄새를 맡으며 히스테리를 부렸다. 수 시간 동안 도경에게서 흘러나온 냄새가 자신에게까지 베어든 느낌에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낭만적인 여행을 갔다 와도 이 마지막 날 때문에 모든 걸 다 망친 느낌이었다.

“쩝...”

자신이 보는 앞에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냄새 맡는 시늉을 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도경은 혀를 찼다.

친구들이 새벽까지 죽여라 술 먹이고 잠을 안 재웠는데 자신이라고 뭐 방법이 있겠는가? 잘못하다 비행기도 놓칠 뻔 했는데 말이다.

그저 서로들 타이밍이 맞지 않아 벌어진 트러블인데 그녀의 행동에 도경도 조금은 기분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욕 같은 중국어로 골릴 때는 즐거웠지만 2,3시간 내내 자신을 볼 때마다 짜증과 콧방귀를 끼는 상대와 비행기 안에서 좌석에 앉아있던 도경도 그리 편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살다 보면 별별일 있는 거지... 참, 유별나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고생도 할 수 있는게 여행 아닌가?

그 또한 여행의 묘미이기도 했고 말이다. 저렇게 2, 3시간 내내 짜증만 낼 거면 여행을 왜 하는지 솔직히 도경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저리 짜증내고 사람 무안 줄 거면 돈 낭비하지 말고 차라리 맛집 가서 맛있는 거나 처먹던가.”

세계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여행객을 봤지만 정말로 이해가 가질 않는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돈 없이 알뜰살뜰하게 맨몸으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은 짜증을 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힘들고 짜증 나는 일도 웃으면서 새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 많고 여유를 즐기러 온 사람들은 조그마한 것만 틀어져도 불같이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도경의 앞을 걷는 여성처럼 말이다.

“칫, 그나마 깨끗한 옷인데...”

스슥.

자신의 옷을 만지작거리며 도경은 조금은 기운 없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복색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이런 취급을 받으니 은근 자존심도 상하고 괜시리 쪽파림을 느끼는 도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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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아악!”

찰칵. 찰칵!

“죄송합니다. 사적으로 나온 거여서요. 사진 찍는 거 그만둬주시겠어요? 아 사람들 나오는구나. 저기 지나가게 조금 비켜주세요.”

“응? 연예인이 있나 보네?”

공항 입구를 나오자 시끄러운 환호성이 들리면서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한 인물이 그런 인파를 헤치고 걸음을 옮긴다.

멈칫!

“헉! 지성준 이잖아?”

도경을 향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고 신경질적으로 걷던 여성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연예인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게 요즘 대한민국을 들썩이는 연예인이 자신의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TG]의 새로운 신성 지성준.

10대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밴드 [Go high].

밴드가 외면받고 사장되어 가던 연예계에 다시 밴드의 붐을 일으키며 정상으로 우뚝 선 [Go high].

이제 와서는 물 건너 해외 밖에서조차 뜨거운 화제와 주목을 받는 밴드가 되었다.

“와....!”

꿀걱.

그 대단한 밴드에서 밴드의 꽃이라 불리는 보컬을 맡고 있는 지성준의 인기는 실로 엄청났는데 그런 대단한 존재가 자신의 눈앞에 떡하니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실물도 진짜 완전 꽃미남이잖아!? 눈에서는 색기가 줄줄 흐르는구나...!’

하루 종일 짜증 났던 기분은 어느새 황홀한 기분에 뒷전으로 밀려 있었다.

자신의 눈앞 가까이 걸어오는 성준을 보는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지성준을 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올해20살이 되어 성인이 된 성준은 180이 넘는 신장에 누가 봐도 감탄할 꽃미남으로 폭풍 성장해 있었다.

“하 괜히 패왕색이라 하는 게 아니었어......”

어릴 때 반항적인 느낌이 들었던 날카로웠던 눈매는 현재는 묘한 곡선을 뛰며 치명적인 색기를 띄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성준의 그런 눈을 보며 농담 삼아 패왕색이라 불렀다.

그 정도로 성준이의 저 특유의 눈빛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있는지 오래였다.

“아...!”

슥.

배시시.

무언가를 발견한 성준은 놀란 표정을 짓다 이내 눈을 활처럼 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성준의 모습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성준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웬만해선 잘 웃지 않는 성준이 저리 환히 웃는 희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쿠쾅!

“흡!”

‘지금 나 보고 웃음 지은 거야?’

부르르.

여자라면 심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미소.

그만큼 성준의 미소는 너무나 심장에 좋지 않을 만큼 치명적이었는데 그런 성준의 미소를 정면에서 직격당한 그녀의 의식은 혼미해져만 간다.

“형!”

깜짝!

“형?”

하마터면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한걸 간신히 참은 그녀는 살짝 비틀거리며 의아한 시선으로 성준을 보았다.

타다닥.

휘익.

“아......”

성준이 자신을 지나쳐 이내 기쁨에 한달음에 누군가에게 달려간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어, 설마!? 에이 아니지? 아... 말도 안 돼!?’

그도 그럴게 더러운 몰골로 자신을 비행기 안에서 내내 괴롭혔던 인물을 지성준이 형이라 부르며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풀썩!

“오랜만에요 도경이 형!”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포함해서 도경을 반가움 한가득 실어 끌어안은 성준의 행동에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 천하의 지성준이 저런 더러운 사내와 포옹을 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여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저렇게 반가워하는 얼굴이라니 같이 밴드를 하는 [Go high]멤버들 조차 저런 성준의 모습은 처음 보았을 것이다.

찰칵찰칵!

“아씨...! 다 큰 사내자식이 지금 뭐하는 거야!?”

탁!

성준의 갑작스러운 포옹과 주변에 미친 듯이 사진 찍히는 소리에 도경의 표정은 이내 똥 씹은 것처럼 변하여 성준을 거칠게 밀어내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남자끼리의 포옹이라니 자신에게 이만한 수치 플레이는 또 없었다.

“서운하게 뭐에요. 오랜만에 보는 동생한테...!”

“지랄! 징그러우니까. 저리 떨어져! 그리고 키는 또 왜 이리 멀대처럼 큰 거야?”

퍼억!

(히익익!)

(지성준을 걷어찼어.)

그 지성준을 걷어차는 도경의 행동에 이를 지켜보는 모두가 경악했지만 성준은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3년.

오랜만에 봤는데도 변함없는 그의 태도가 더욱 기꺼웠기 때문이다.

“하하하! 좀 많이 컸죠? 제가 한 유전자 하잖아요. 그런데 키 큰 보람이 있네요. 어느새 형하고 눈높이가 맞고 말이에요. 이런 게 격세지감이라는 건가요?”

“격세지감은 개뿔 사내새끼가 멀대처럼 커서 기생 오래비처럼 생겨서 말이야. 마, 비켜! 나 바로 소속사 가야 해 바쁘다고.”

손짓으로 자기 키와 도경의 키를 비교하며 묘한 표정을 짓는 성준의 웃음에 남자로서 울컥한 도경은 정말로 바쁜 스타 앞에서 바쁘다 말하는 심술을 부리며 성준을 지나쳐 걸어간다.

그런 도경의 행동에 그립고 반가운 감각에 성준은 더욱 능글맞게 웃음 짓는다.

“오랜만에 보는데 웬 심술이에요? 그냥 솔직히 질투 나고 부럽다 얘기해요.”

“부럽긴 개뿔...! 약 빨았냐? 헛소리도 그 정도면 수준급이네. 나와 비교해서 넌 아직 멀었다.”

“그래요? 그럼 우리 같이 사진이나 찍을까요?”

“...닥치고 가지?”

도경의 대답에 성준은 큰 웃음 지으며 그의 걸음속도에 맞춰 같이 걸음을 옮겼다.

“하하하. 형은 여전하네요.”

“그렇지 사람은 변함없이 꾸준해야지. 누구처럼 커서 성격 나빠지지 말고...”

“그러니까 말이에요.”

“쯧!”

“후후후.”

‘얘가 되게 능글맞아졌네?’

예전에는 그래도 순수한 구석이 있어서 놀리기도 하고 재미난 구석이 있었는데 성준이 너무나 재미없게 커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이란 시간은 역시 짧은 시간은 아닌 듯싶었다.

“아... 거추장스러워.”

“후후. 조금만 참아요. 형도 나중에 유명해지면 겪어야 하는 일인 걸요?”

“뭐 그건 그렇겠네. 너 정도가 이 정도면 나는 아예 걷지 못할 수도 있겠는데?”

“안됐네요.”

“뭐냐 그 눈빛은?”

“하하! 아니에요.”

너무나 당연히 자신이 유명해질 걸 염두에 둔 도경의 대답.

당연히 유명해질 거라는 그 대답에 성준도 이의를 표하진 않았다.

다만..

“남자 중의 남자.”

소근.

“응 뭐라고?”

“형은 진짜 걷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뭐래...!”

포털 사이트에 자신의 이름보다 도경의 이름을 많이 검색하는 성준은 도경의 팬층들이 누구 인줄 안다.

도경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압도적일 정도로 형님같은 남자들이 많다.

그 땀내 물씬 풍기는 형님들로 이루어진 도경의 팬들의 모습이 어떨까. 떠올린 성준은 미소를 짓고 말았다.

‘재밌겠다!’

유별난 도경인 만큼 그의 팬들도 왠지 시끌벅적하고 유별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도경 말대로 그가 팬에 둘러싸인다면 꽤나 재미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싹!

“뭐지? 뭔가 되게 싸한데?”

알 수 없는 미래.

성준의 기대를 받고 있는 도경은 알 수 없는 오한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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