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자 타시죠.”
삐빅!
“이 차는...”
도경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성준을 바라보았다.
잘나가는 연예인들은 태반이 체면유지로 외제차를 모는데 성준이 모는 차는 그에 비해 조금 소박하고 투박한 국산 차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저 국산차는 도경에게 낯설지 않은 자동차다.
“하하. 알아봤어요? 맞아요. K스타 우승으로 받은 차에요.”
“짜식. 연예인이 모는 차가 저게 뭐냐? 소속사에서 뭐라고 안 그래?”
“사장님이 하나 사준다고 하는데 그래도 저는 저게 좋아요.”
“그래....”
공항의 사람들 반응을 보면 성준이 현재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솔직히 성준이의 입장이라면 사치스럽게 살면서 조금은 우쭐할 만도 하려만, 저 자동차 하나가 성준이 예전과 변함없은 마음을 가지고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알려 주었다.
“...많이 성장했네.”
“네?”
“많이 컸다고.”
“하하. 또 키 얘기에요?”
발끈
“쯧, 그 말 취소다.”
철컥! 쾅!
“아... 형!, 차문을 그리 세게 닫으면 어떻게요?”
컸다는 얘기에 다시 한 번 이죽거리려는 성준의 모습에 발끈하는 도경은 자신의 꺼낸 말을 전언 철회 하며 성준의 차속 안으로 들어간다.
피식.
“참내 성격하나는 여전하네.”
오랜만에 반가 와서 놀린 거였는데 어른스럽지 못한 도경의 태도에 성준은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뒤늦게 성준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도경이 조수석이 아닌 운전석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성준의 기억이 분명하다면 도경은...
철컥!
“형이 거길 왜 타요!? 운전 못 하지 않아요? 제가 알기로 운전면허 없는 걸로 아는데?”
“아차...! 내 정신 봐. 나 운전면허가 없었지? 깜빡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형, 설마...!”
“응?”
“외국에서 무면허 운전했던 거예요!?”
도경이 한국에 귀국해서 처음으로 성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형. 미쳤어요!?”
“윽...! 친구한테 배웠어. 나 운전 기가 막히게 잘해.”
“지금 그 말 하는 게 아닌 거 알잖아요!”
“........”
무면허 운전.
소속사에서 연예인으로서 조심히 해야 할 부분을 철저히 교육을 받은 성준으로서는 도경의 행동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 ****! *******!”
“.......”
[JY]엔터테인먼트로 도착하기 전까지 차 안에서 도경은 성준의 폭풍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올해 20살이 된 성준은 도경과 달리 올바르게 자란 사회인이 되어 있었다.
‘내가 운전면허 따서 내 직접 관성 드리프트를 보여준다.’
이상한 곳에서 분해하는 도경.
도경이 한 사람의 사회인이 되려면 아직은 많이 멀 은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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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엔터테인먼트]
[K스타 레전드 박도경 귀국!]
[지성준 끈끈한 의리.]
[3년만의 재회! 두 형제의 아름다운 우애.]
[뜨거운 브로맨스.]
[너무나도 다른 두 형제의 모습.]
툭.
“조용히 들어 올 수 없는 거냐? 아니면 진짜로 뭔가 있는 건가?”
태블릿 패드를 책상 위에 던진 박진용 사장은 반 체념에 가까운 웃음을 지었다.
대체 이 녀석은 뭔가 씌었나 보다.
저번에 케이블 방송으로 신 스틸러를 하더니 전에 불렀던 노래가 화자 되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타도 아닌 주제에 공항에 사진이 찍혀 기사까지 났다.
“운이 너무 좋잖아.”
씨익.
박진용은 연예계에 가장 중요시 여기는 ‘운’이 도경에게 존재한다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은가? 솔직히 데뷔도 안한 신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타고 기사가 터지며 거론이 되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모은다.
신기하게도 도경이 나타난 곳에는 항상 무언가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복색 좀 신경 쓰지...!”
성준에 비교되며 거지꼴인 도경을 보며 박진용은 인상을 찌푸린다.
자기의 비밀병기가 저런 거지꼴로 세상에 노출 되다니 조금은 속상한 것이다.
“아니야... 이미지가 점점 이상해지지만, 그래도 도경의 가치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아무리 미사일에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낙서하든 색을 칠하든 그 미사일이 지니고 있는 파괴력과 한방은 바뀌지 않는다.
“두고 보라고 현섭이 형...!”
(하하하하. 우리 성준이가 이번에...!)
(어떡하나? 요즘 너무 우리 기획사만 계속 빵빵 터져서 말이야. 으하하하.)
(걔는 크게 될 놈이라니까? 미친놈이라니까. 콘서트를 마친 당일 날 곧바로 작업실을 가더라.)
(내가 쉬라고 얘기할 정도라니까. 걔들 전부가 음악적인 욕심이 대단해. 처음 보는 현상이라니까. 분명 이번 그룹은 사고도 안치고 롱런할거다.)
(Go High는 내 인생 역작이 될 거다!)
전화를 하든 술집에서 이야기를 하든 태현섭과의 요즘 대화는 [TG]에서 배출해낸 [Go High]에 대한 자랑에 또 자랑으로 끝이 났다.
([LSM]에서도 요즘 김우진으로 일본의 국민가수 배출했다 뭐다 엔화를 싹 끌어 모으는 것 같던데 너만 아쉽게 됐네. 으하하하.)
빠드득.
자랑으로 끝이 나면 박진용도 이해한다.
문제는 자꾸만 술만 들어가면 태현섭이 박진용의 아픈 곳을 골라 은근히 골린다는 것이다.
“이젠 끝났다.”
3년 길고 길었던 긴 기다림이다.
그 긴 기다림 박진용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도경이란 존재가 드디어 [JY]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카일]이 도경이라는 건 그 형은 꿈에도 모르겠지 흐흐흐!”
[카일] 혹은 [KY]
3년 전 한국 음악계의 갑자기 정체불명의 신성 작곡가.
세상은 아직 이 작곡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연예계 음악을 하는 종사자들은 그의 이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명실상부 아시아 최고의 밴드 [GO High] 지성준의 [Wind].
대한민국에서 제일 핫한 여자 싱어송라이터 [I]. 이지원의 [구두].
일본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JIN]이라 불리우는 김우진의 [지지 말아요].
요즘 유명세를 떨치는 이들의 대표곡 모두 만든 작곡가가 바로 카일이란 작곡가이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그의 곡을 받는 아티스트들은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주목과 화제를 받는 데 성공했으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카일] 혹은 [Ky]
명실상부 한국에서 스타메이커로 인정받는 가장 핫한 작곡가인 카일.
하지만 그의 신원은 일체 비밀로 알려지지 않아 많은 음악 관계자들의 애를 태우고 있었는데 지금 박진용은 매우 놀라운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도경이 카일이다!’
그런 대단한 작곡가의 정체가 도경이라는 소리를 꺼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진짜 아쉽다...!”
박진용은 도경을 떠올리며 자신이 손으로 직접 폐기한 프로젝트를 떠올리며 아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가수중의 진짜 가수.]
많은 세월을 살아온 원로가수들이나 지닐 왕관.
무겁지만 한번 지니면 누구나 인정하고 대우해주는 왕관을 박진용은 도경에게 씌워주려 했다.
도경이 떠나기 전 남긴 곡들을 이용한 카일이란 가상의 작곡가 탄생. 그리고 3년이란 공백을 이용한 전략이라면 그것이 가능했다.
‘하아...! 그런데 하필 거기서...’
자신의 소속사가 가진 힘과 이미지 메이킹이라면 분명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남미 미녀들과 자유분방하게 즐기는 도경의 모습에 모든 게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리고 도경 또한 자신이 즐긴 것을 부인할 생각은 없어 보였고 말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쉬울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20대의 젊은 나이에 그런 타이틀을 달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남녀노소 전 연령이 인정하는 가수.
[국민가수]
부르르.
“꿈만 같은 가수가 될 수 있었는데 그걸 걷어 차버리다니. 진짜 바보 같은 녀석이라니까.”
지금도 생각만 떠올렸을 뿐인데 전율이 솟구친다. 하지만 이제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도경이 무게감 있고 진지한 가수 이미지 대신 자유분방(문란한)하고 가벼운 이미지를 얻어 버렸으니 말이다.
“보고 싶었는데 정말 아쉬워.”
한국 기성세대의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이기는 가수의 탄생을 볼 기회를 놓친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박진용이다.
도경이 난놈이라는 것을 박진용은 잘 알았다.
도경의 괴물같은 천재성은 의심하지 않는다. 솔직히 뭘 해도 될 놈이 도경이라 박진용은 그리 생각했다.
프로듀서 경력이 얼마인데 그 점을 모를 수 있을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도경을 조심히 다루려 했다. 최고의 대우와 최고의 자리로서 공들여 대우해주려 했었다.
하지만 도경 본인이 직접 그 기회를 걷어찼다.
(사람들 시선에 좌지우지되는 삶을 생각 없어요.)
“네가 평범하게 가는 게 싫다는데 그럼 나도 어쩔 수 없지.”
피식.
귀국 전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 통화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도경이란 인간은 인기와 돈. 그리고 성공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희생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거 나도 별로 싫어하지 않아.”
박진용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지금 자신에게 오고 있을 도경을 떠올렸다.
신신당부 했으니 어디로 새지 않고 바로 올 것이다.
뭘 해도 상관없다는 도경의 터프한 태도에 원래의 기획은 망가졌지만, 그 덕분에 박진용은 프로듀서로서 많은 부담을 벗을 수 있었다.
“덕분에 하고 싶은 것들이 떠올랐어.”
비워야 채운다고 도경을 최고로 만들겠다는 프로듀서의 부담감을 벗자. 도경을 가지고 하고 싶은 것들이 샘솟듯이 떠올랐다.
도경은 이에 대해서 많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었다.
“너 때문이니까 책임져야 할 거다.”
미국진출이라는 한 번의 큰 실수.
그 덕분에 많은 욕도 먹고 회사와 아이들을 위해서 프로듀서 개인으로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그다.
평소 지니고 있던 프로듀싱의 욕심을 꾹 참으며 리스크가 적은 선택만을 해왔었는데 이번에는 도경이 대상인 만큼 그러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흐흐흐흐.”
다시 도전하고 시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박진용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나온다.
꾹 참았던 만큼 평소 생각하던 것들 모두 도경을 통해서 다 해볼 것이라 박진용은 굳게 마음먹었다.
드르륵.
오랜만에 다시 젊어지는 감각을 맛보는 박진용은 자신의 서랍에서 한 서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툭.
[박도경 기획서]
도경이 한국으로 오기 전.
회사 기획팀과 박진용 둘이서 짜놓은 기획서이자 계획서이다.
자신들이 정해준 것중 도경이 어떤 것을 고를지 기대가 되는 그는 생인선물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도경을 기다기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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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드디어 벗어 날 수 있었구나. 휴... 벌써부터 저리 잔소리가 심해서야. 나중에 주변 사람들 많이 피곤하게 만들겠어.”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도 결국은 자신의 잘못으로 귀결되는 성준의 화법에 질린 표정을 짓는 도경은 자신의 얼얼한 귀를 후비적거리며 [JY]에 피신해 왔다.
[JY엔터테인먼트]
만들었던 곡들의 멜로디를 만드느라 익숙한 장소라 도경은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누군가 도경의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안녕 하십니까 도경씨. 모시러 왔습니다.”
“예? 저를요?”
“네. 사장님이 도경씨 오시면 저보고 데려오라 하셨습니다.”
‘3년 만에 왔다고 그래도 조금은 나름 신경써주려나 보네.’
꽤나 섬세한 환대에 도경은 내심 박진용에게 흡족해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주제에 나름 섬세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을 하며 박진용에 대한 신뢰도가 또 다시 한번 상승한다.
“하하하! 에이, 그래도 제가 나이가 몇인데... 저도 사장실이 어딘 줄 아니까. 제가 알아서 갈게요.”
“안됩니다.
“응, 왜요?”
꽤나 완고한 태도로 대답하는 사원의 모습에 도경은 궁금해서 이에 되묻자 사원은 난감한 표정을 짓다 이내 도경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다.
“트러블 생긴다고 꼭 같이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빠직.
‘무슨 내가 사고뭉치야?’
내심 감동했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을 트러블메이커로 취급하는 것에 허탈한 심정을 느끼는 도경을 향해 사원이 손짓한다.
“가시죠.”
“네...”
시무룩.
벌써부터 이런 대우와 관리라니.
박진용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느낌 왠지 싸한데...?’
자신의 연예계 생활이 왠지 순탄치 않은 쎼한 느낌에 도경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여행을 떠나기 예전에도 곡을 만든 다면서 반 강제로 작업실에 감금되어 작업했던 기억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불안해...’
‘박진용.’
창작과 음악에 관련된 일에 있어서만큼은 도경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독한 일벌레였다.
도경은 3년 동안 자유를 만끽하고 앞으로도 행복한 삶을 영유할 자신의 계획에 있어 그가 매우 위협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도경의 그럼 예감은 불행이도 틀리지 않았다.
쾅!!
사장실로 들어선 도경은 정확히 30분도 안 되어 사장실을 가득 메우는 비명을 지르고 만다.
“나 안해!!”
“해!”
“싫습니다 사장님!!!”
“이럴 때만 사장님이라고 하지마라!”
“그럼 형이라 하면 안 해도 되요?”
“안돼!!!”
“쯧!”
사장실 안에서 다 큰 남자 성인 둘이 고성을 높여가며 엎치락뒤치락하기 시작한다.
“그럼...!”
한발도 양보 없는 대치 속에 박진용은 도경을 상대할 비장의 한수를 꺼내기 시작한다.
“...!?”
그를 들은 도경은 창백한 안색을 지으며 자리에 얌전히 앉아 기획서를 다시 집어 올렸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