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유시인 현대로 귀환하다-99화 (99/357)

99화

‘비일어먹을~’

도경은 분한 기색을 지으며 자신의 앞에 있는 서류를 노려보았다.

박진용이 꺼낸 회심의 카드에 상상도 못했다.

“대학...”

“그래. 나는 너를 위해 과외 선생님을 구해다 줄 수도 있단다.”

“.......”

‘이 인간! 우리 어머니까지 접근하다니...! 아주 작정했구나.’

(네가 아직 데뷔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니고 고졸에다가 장래는 모른다면서 도경이 너희 어머니가 걱정이 많으시더라. 내가 그래서 너희 어머니 걱정을 덜어 드리겠다 약속드렸는데 말이야... 대학 갈래?)

박진용이 꺼낸 회심의 한 수.

그것은 도경에게 확실하게 먹혀들어 갔다.

‘이 나이에 대학을 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도경 자기의 행복한 삶에 대학이란 존재는 필요 없었다.

배움에 대한 의욕도 없고 언제든지 돈 벌 능력도 되는데 쓸데없이 돈을 쓰며 4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의 생각이 어떻든 부모의 생각과 입장은 다르다.

웬만한 사람들은 대학교를 나오는 대한민국의 정서상 능력 유무를 떠나 대학을 안 나오는 자식은 부모에게 있어 걱정거리일 수밖에 없다.

“사실 나도 기획사 사장이지만 말이야. 애들이 대학교 안 가고 이쪽 일에 올인 하는 건 반대하거든. 세상일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으니까 말이야.”

“흥! 입에 바른말 하지 마요. 그건 불안한 어린애들 문제고 저는 다르죠.”

“......”

미래를 알 수 없으니 여러 보험을 들어놓고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어린 나이부터 긴 시간을 연습생 생활을 해오며 연예계에 성공할지 모르는 세상 물정 어두운 애들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도경 자기 자신에게는 속하지 않는 말이다. 이미 자신은 최고라고 자부하는 도경 아닌가?

땅 짚고 헤엄치기 할 만큼 연예계에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벌써부터 카일이란 작곡가로서 성공을 거두어 들였고 무일푼으로 세계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버스킹한 경험과 자신의 음악이 지구에서도 먹힌다는 확신을 다졌는데 대학을 간다?

그건 멍청한 짓이나 다름없었다.

“저 가지고 성공 못하면 바보죠. 제 말 틀려요?”

“끄응...!”

그런 도경의 말에 박진용은 혀를 차며 도경을 바라보며

“쓸데없는 소리를...! 빨리빨리 고르기나 해.”

“아니, 그냥 앨범 내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데뷔하면 안 돼요?”

“너가 평범한 놈이야 말이지. 그래도 남들은 못 나가서 안달인 프로그램들이야. 그냥 2개 아무거나 골라.”

“그렇긴 한데 그럼 멀쩡한 걸 주던가요...”

박진용의 건네준 기획서.

어느 하나 가수로서 평범한 데뷔기획서가 아니었다.

분명 좋은 프로그램들임은 알지만 이대로 가다가 가수가 아니라 예능인이 될 판이다.

[도경 프로젝트]

(라디오 수다)

(정글의 생존)

(복면 가수 왕)

(여행을 떠나요)

(삼시끼니]

(아이돌 현장)

종이 한 장 한 장 적혀있는 프로그램 정보와 기획의도를 읽는 도경의 표정이 어이없다는 듯이 바뀌었다.

도대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기에 이런 기획의도들을 떠올렸는지

“[정글의 생존] 아니 이거는 누가 냈어요? 3년 동안 여행 하다 온 사람한테 통기타 들고 정글 들어가라니? 미친 거 아니에요? [삼시끼니] 그 지루한 섬에서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할 바에 차라리 전국노래자랑 가서 트로트 구수하게 한 곡 뽑을게요. 그리고 대체 복면을 쓰고 노래는 왜 부르는 거예요. 이거 진짜 음악방송 맞아요?”

대중에게 노출시키겠다는 기획의도는 알아도 해도 해도 너무하다 생각이 들었다.

몸으로 때워야 하는 프로그램이 태반에다 정상적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다.

“갑자기 예능프로그램에 나가라니.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네가 평범한 놈은 아니잖냐.”

“왜요? 평범해서 연예인을 어떻게 해요? 오히려 좋은 거 아니에요?”

도대체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구축하려는지 몰라도 자신을 가지고 힘든 예능으로 데뷔시키려는지 기획사의 의도는 알아야 했다.

“그래 네 말대로 분명 좋기는 하지...”

도경의 대답에 박진용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지만. 도경의 본질적인 문제를 끄집어냈다.

“문제는 너는 분명 사고를 치거나 오해를 쉽게 살 놈이라는 거야.”

“윽...! 사람을 어떻게 보고?”

“도경이 네가 여행 갔던 기간 동안 사고를 안 쳤다면 내가 한 말에 대해서 사과하고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

그의 말에 이번에는 도경이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당히 그의 말에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3년간 여행을 다니면서 온갖 사고를 친 것들이 머릿속에 떠올라 도경은 아무런 말도 못하는 것이다.

그 찔리는 도경의 표정을 놓치지 않은 박진용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자신을 잘 알아서 다행이군...’

도경의 성격은 너무 자유분방하고 거리낌 없었다.

보통의 연예인이라면 대중의 시선에 민감해하고 오해를 사지 않으려 조심하려 하지만, 도경은 대중의 시선에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도경이 네 실력을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미 네가 남미 미녀들하고 즐기는 짤 들이 인터넷에 올라왔는데 평범하게 앨범을 내며 데뷔한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잘 될까? 도경이 네 실력으로 앨범은 성공은 한다 하더라도 네 이미지는 과연 어떻게 될까? 그리고 너와 일하는 주변 사람들과 관련된 지인들은 그 성공을 축하해 줄까?”

“...죄송합니다. 이거는 형 말이 맞아요.”

박진용이 짚는 문제에 도경은 순순히 그에게 사과하였다.

“그래. 성공이 다가 아니야. 최소한 주변 사람들에게만큼은 존중받을 수 있는 가수가 되어야지. 도경이 너도 이제는 프로가 되는 건데 앞으로 어느 정도 행동에 조심은 해야 돼.”

“네...”

그의 말대로 이제는 프로가 되어야할 때.

자신 개인의 문제라면 상관이 없지만 앞으로는 자신의 행동에 주변의 사람들이 영향이 갈 것을 생각하면 그의 말대로 최소한의 조심은 해야 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것 같으니. 이제 내 생각을 얘기해 줄게. 도경이 너...”

“예.”

박진용의 진지한 프로듀서의 면모에 도경은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가수로서의 데뷔는 미루자.”

“그게 무슨?”

“가수가 아닌 박도경으로부터 시작하자는 거다. 이 프로그램들은 모두 그걸 위한 거고 말이야.”

“아...!”

그의 말에 도경은 박진용이 자신을 가지고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 알게 되었다.

덕분에 기획서에 적힌 방송프로그램들이 무엇을 위해 있는지도 깨달았다.

‘세상은 먼저 박도경이란 녀석부터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박진용은 가수로서 도경의 데뷔를 미루기로 결정했다.

그의 재능과 노래 실력보다 먼저 도경이란 사람이 어떤 성격을 지니고 어떤 녀석인지 먼저 보여줘야 한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거 바라는 게 아니야. 솔직하게 네가 어떤 사람인지 대중에게만 보여주기만 해.”

[예능]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기 좋은 방송프로그램은 예능만큼 뛰어난 것이 없었다.

거기서 도경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대중에게 알렸으면 했다.

“솔직히 이거 쉽게 정한 기획이 아니다. 데뷔도 안 한 일반인과 마찬가지인 너를 가지고 예능에 꽂는 거니까 말이야. 너에게도 우리에게도 쉽지 않은 시도인 거야.”

“......”

솔직히 대중에게만 보면 아무것도 아닌 도경을 소속사의 힘을 이용해서 방송프로그램에 꽂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보면 남들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비판 받을만한 행동이고 양쪽 다 어느 정도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기획인 것이다.

‘그래도 잘 될 거야.’

하지만 박진용은 모두 다 잘 될 거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현재 도경이 눈에서 진지한 눈빛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부담을 진다는 말.

그 말이 도경의 마음을 제대로 움직인 것이다.

“기획서... 다시 한번 살펴볼게요.”

“그래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보고 정해.”

끄덕.

가수 박도경이 아닌 박도경 그 자체를 보여주기 위한 기획.

보는 시야를 바꿨을 뿐인데 아까 전에 보았던 것과 다르게 보이는 방송프로그램들 이었다.

‘나를 잘 보여줘 줄 수 있는 것은...!’

고려할 것들이 많다.

자신의 성격도 보여주면서 자신의 끼와 매력도 은연중에 내비쳐야 한다.

“2개라 했죠?”

“어. 네가 방송 나간 추후에 반응을 봐야겠지.”

“그렇다면...!”

도경의 선택에 박진용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고르는 센스가 있어.’

도경이 택한 선택은 내심 자신도 베스트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답은 정해져 있던 것과 다름없었지만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선택을 스스로 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테스트 해본 것이었는데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스케줄은 정해지는 대로 알려주고 호출할 테니까 그때까지 집에 가서 몸조리나 잘해둬라.”

“알겠습니다. 어휴. 못난 신예 두셔서 고생하셨습니다.”

“참 내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라.”

“사람 진심도 안 믿어 주시고 못난 사장님이네요.”

“집에 가서 등짝 맞을 준비나 해두시지?”

“네?”

진지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다시 장난치는 도경의 모습에 박진용은 여유 롭게 웃음 지으며 그에게 경악할 사실 하나를 알려주었다.

“저 때 너희 어머니 만나 뵙는 데. 못난 자식 키워서 죄송하다면서 너 아주 박살 내실 생각이신 것 같더라. 하하하!”

“아...! 대체 우리 서 여사님 왜 만났어요!? 진짜 일만 복잡해지게.”

“누가 그러게 방송에서 그런 모습 보여주래? 가서 싹싹 빌기나 하렴.”

도경은 모르겠지만, 박진용과 서여사 이제 이 둘은 한 편이었다.

서 여사는 도경의 진로를 위해 박진용을 믿었고 박진용은 도경을 유일무이 조정할 수 있는 서여사의 조련술에 기대었다.

둘의 동맹에 대해서 알 리 없는 도경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아아. 다들 왜 오자마자 날 못 물어뜯어 안달 인 거야?”

“으악! 도경이 너 더럽게 뭐하는 짓이야? 당장 목욕탕부터 가!”

“에이 비밀병기인 이 몸한테 더럽다니 너무...!”

“꺼져 자식아!”

쾅!

아직까지 씻지 않은 도경의 더러운 몰골을 바라본 박진용은 눈살을 찌푸리며 용건이 끝난 도경을 자신의 사무실 안에서 서둘러서 쫓아내었다.

“쳇, 박하구만.”

문밖으로 쫓겨난 도경은 투덜투덜 거리며 [JY] 사옥 밖으로 나와 목욕탕을 찾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이 상태로 가다간 안 그래도 화난 어머니가 난리를 치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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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연습실.

환한 조명과 수 대의 카메라와 제작진들로 가득했는데 무언가를 촬영하고 있는 듯하였다.

하하하하.

촬영 주변 현장이 웃음으로 가득하였는데 웃음의 근원지는 한 중년남성의 화려한 언변으로부터 나왔다.

“자 그럼 티엘 이라 했나? 성대모사 할 줄 아는 거 있어?”

“아... 그게 아직 연습을 못 해 와서”

“그럼 안 되지. 한두 개 익혀 놓아야 한결 편해져.”

“으으.. 진짜 못하는데 어쩌죠?”

“하... 나 망했다. 너희들 진짜 노잼 이구나. 나 [아현:아이돌 현장] 정규편성 Mc에 떨어지겠다.”

하하하하.

넋두리를 하며 울상을 짓고 있는 mc의 말에 연습실 안에 있던 6명의 남성들이 뻥 터지며 웃어 재꼈다.

훨친한 키와 요즘 소녀들이 좋아할 곱상한 외모.

각각 화려한 머리색으로 물들어져 있는 머리를 한 그들의 복색은 누가 봐도 아이돌의 모습이었다.

“저건 아니야...”

절레절레.

모두가 만족스럽게 촬영에 임하고 있을 때 한 남성만큼은 굳은 표정으로 촬영현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주변에서 분위기를 살핀 작가진들은 뒤에서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또... 마음에 안 드시는 거지?”

“확실히 재밌는 진행은 개그Mc들이 잘하는데 역시나 아닌가 보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모르겠어. 분명 저번보다 체계적이고 재밌게 흘러가는데 대체 왜 저러시지?”

“우리 같은 범인이 어떻게 알겠냐? 스타 Pd가 보는 건 다른 게 있나 보지.”

“그래도 저렇게 마음에 안 들면서 시청률 2%대 유지하는 것도 대단하다니까.”

“확실히 괴물 PD긴 해. 솔직히 무명 아이돌을 소재로 방송을 한다 했을 때는 말도 안 된다 생각했는데 결과물을 내버리니까 말이야.”

[아이돌 현장]

음악 전문 채널 MMO에서 하는 리얼버라이티 프로그램 [아이돌 현장].

아직 정규방송이 아닌 13화 파일럿 단계이긴 하나 7화에서부터 시청률이 오르더니 10화에서 2%대로 올라갔다.

케이블 방송에서 2%로 대의 시청률 성적은 성공적인 시청률로 치는데 [아이돌 현장]은 정규방송으로 프로그램이 거의 확정이 된다고 보는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서 성공한 결과에 모두가 축하해도 모자랄 판. 하지만 제작진의 중심이자 총책임자인 Pd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있어 주변 제작진들은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있었다.

“후, 빌어먹을 분명 방송기획의도를 분명 제대로 설명했는데... ”

[장진석PD]

고정관념을 깨며 수많은 히트작 예능을 만들어 이제는 뜻 맞는 사람끼리 사단까지 만들어 걸어 다니는 예능방송국이라는 말까지 듣는 슈퍼스타 PD.

그 사람이 장진석 PD였다.

이번에는 무명의 아이돌을 소재 삼아 그들의 연습실을 찾아가 재미를 주는 리얼 버라이티 방식을 고수하는 [아이돌 현장]을 만들고 이었다.

‘이제는 2번밖에 남지 않았는데 큰일이야...’

현재 매회 마다 아이돌 연습실을 찾아가는 Mc가 바뀌는 독특한 형식으로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 시키고 나중에 13화 종영 이후 방송에 출연했던 MC중 한 명을 시청자들 투표에 따라 정기방송 메인Mc를 뽑을 거였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

문제는 이번 11화까지 촬영한 장진석 PD에 마음이 드는 MC가 없다는 거다.

MC한명과 무명의 아이돌을 소재로 하는 리얼버라이티인 만큼 MC의 역량이 중요한데 11화까지 촬영해 왔던 장진석PD가 원하는 그림은 여태껏 나오지 않았다.

“제기랄...!”

방송의 결과인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스타PD인 그에게 있어서 시청률은 이제는 부가적인 것이었다.

“저런 가공된 것보다는 날것이 필요하단 말이다.”

안정된 시청률보다 새로운 활력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떠올리며 장Pd는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결국 오늘의 촬영을 마치게 되었다.

띠리릭.

“응? 왜 이 녀석이?”

[영원한 딴따라 박진용]

자신의 스마트폰에 뜬 이름을 보며 장진석은 통화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오늘 밤 술 한잔하지?]

“뭔데? 나 오늘 기분 별로다.”

[오! 그러니까 술한잔 해야지. 할 얘기도 있고 내가 거하게 한턱 대접할게.]

“뭔가 구린데? 후... 그래서 어디서 볼 건데?”

[그러니까...]

기분도 저조한데 술을 거하게 산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장진석 Pd는 주변 제작진에게 뒷정리를 맡기며 연습실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뒤늦게 방송을 마친 MC가 장진석을 찾았지만 이미 그는 떠난 후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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