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아들 엄마 다녀올게.”
“네에. 다녀오세요.”
뒹구르르.
“......”
소파에 앉아 일어나지도 않고 몸만 돌려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네는 도경의 얼굴을 보며 서여사의 눈이 짜게 식는다.
‘이러다 우리 아들 백수 되는 건 아니겠지?’
도경이 한국으로 입국하고 2주가 흘렀다.
처음에는 아들이 문란하고 향락적으로 바뀌었을까 걱정했건만 웬걸? 집에 돌아오고 나서는 지인들이 부르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지 않는 집돌이였다.
온종일 집안에서 TV를 시청하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영락없이 백수나 다름없는 그 모습에 슬슬 불안감이 차올랐다.
‘쟤는 생각이 있는 건가? 어떻게 저렇게 하루 종일 빈둥거릴 수 있지?’
아침에 나갈 때와 퇴근하고 들어 올 때와 변함이 없는 도경의 모습에 엄마로서 아들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게 도경의 나이 26.
이제는 슬슬 자신의 진로에 고민도 하고 어떻게 먹고 살 고민을 해야 할 나이이다.
특히나 도경은 대학교를 나오지 않은 고졸. 그렇다면 더욱더 자기계발에 열중하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저렇게 빈둥거리기만 하니 내심 속이 탔다.
도경이 재능이 뛰어나고 가수가 될 거라는 것은 알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불안한 것이다.
가수 중에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인 게 현실인 곳에 저러면 안 되지 싶지 않나 생각하는 게 서여사의 입장이었다.
“도경아 너 정말로 데뷔하는 거 맞니?”
“때 대면 연락 준다고 했으니 그러지 않을까요?”
“저게... 남 일처럼 말하네.”
부모 맘도 모르고 태평하게 대답하는 아들을 보면서 서여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동생은 지금 죽을 둥 살 둥 연습하는데 말이야...’
요즘 서바이벌 방침상 연락도 되지 않고 방송으로밖에 볼 수 없는 딸을 보며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던가? 그런데 오빠라는 녀석은 저만의 지상낙원을 펼치며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빠드득.
하루 종일 집에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아들의 빈둥거리는 모습.
아무리 사랑스러운 아들이라 하더라도 생리적으로 매우 눈꼴 시려서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오빠라는 놈이 동생은 응원하지 못할망정 저리 놀 고만 있고 말이야. 이거 진짜 안 되겠어...!’
도경이 [JY]와 비관계자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소희를 찾아가 응원할 수 있을 텐데 자신이 알기로 도경이 직접 소희를 찾아 나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역시 살풀이를 해야겠어.”
하나둘 쌓여왔던 분노가 결국 터져버렸다.
처음 도경이 귀국한 날.
오랜만에 만난 아들 좋은 말은 못 하고 심하게 혼내서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여태껏 아무 말 없이 참아 왔는데 이제는 안 되겠다 싶었다.
툭.
흠칫.
“아, 네 사장님.”
우뚝.
신었던 구두를 벗은 서여사는 천천히 도경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도경이 움찔거리더니 누웠던 몸을 일으키며 깜짝 놀란 표정으로 전화를 받는다.
“네네. 아 내일 회의라고요? 네, 알겠습니다.”
살풀이 하려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도경에게 걸려 온 전화
말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도경에게 [JY]에서 전화가 온 듯싶어 서여사의 발걸음은 멈추었다.
“하하하. 잘 쉬고 있냐고요? 물론 사장님 말씀대로 집에 얌전히 쉬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
스윽.
도경의 통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여사의 김빠진 표정을 지었다.
소속사 사장이 쉬라고 하는데 도경이 집에서 빈둥거리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경의 이야기를 들은 서여사는 자신이 조금은 예민하게 굴었나 싶었다.
“그래. 아직 한 달밖에 안 지났는데... 준비 기간은 필요할 거야.”
연예계란 환경의 생리에 대해서 자신이 잘 아는 것도 아니었고 생각해보면 재촉한다고 도경이 뭘 할 수 있겠는가.
‘미안하네.’
“미안해 아들.”
조바심에 하마터면 화를 낼 뻔했다. 괜스레 아들에게 미안한 서여사는 통화하고 있는 도경을 바라보며 오늘 저녁메뉴는 그가 좋아하는 갈비를 해줄 것을 겻을 마음먹었다.
철컥.
위잉.
띠리릭.
“네 맡겨만 주세요... 휴우! 가셨구나.”
서여사가 문밖으로 나가는 소리에 도경이 한숨을 내뱉으며 귀에 되었던 스마트폰을 아래로 내렸다.
그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은 통화 중 화면이 아니라 가증스럽게도 검은 화면이었다.
“휴우. 근처에 폰이 있어서 다행이었어.”
도경의 모든 통화내용은 놀랍게도 가짜였다.
모든 게 서여사를 속이기 위한 감쪽같은 연기.
그것도 갑자기 펼친 연기라 믿을 수 없는 소름끼치는 디테일을 표현한 연기가 아닐 수 없었다.
울리지 않는 폰에 전화가 왔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몸을 약간 떨면서 뜸을 들이고 검은 액정을 보며 사장님에게 전화 온 척 놀라는 모습을 짓는다.
후에 정말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타이밍처럼 대화를 나누는 모습까지 디테일을 살린 완벽한 연기.
“하마터면 또 등짝 맞을 뻔했네.”
연기에 관련된 종사자가 이를 봤다면 감탄할 정도로 실제와도 같은 자연스러운 연기였지만 이를 어머니의 등짝 따귀를 피하기 위한 데 쓰는 도경의 행동은 정말로 아까운 재능낭비가 아닐 수 없었다.
Rrrrr.
“응?”
[박진용 사장님.]
“뭐야. 정말 양반이 못 되는 사람이네.”
카이저 소제처럼 반전을 선사하며 씨익 웃는 도경은 다시 소파에 드러누워 행복한 백수라이프 생활을 영위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그에게 전화가 왔다.
그것도 거짓을 위해 사용했던 인물이 전화였다,
“쩝.......”
덕분에 도경은 찜찜한 표정을 지으며 폰에 떠오르는 통화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네 사장님.”
[잘 지냈냐?]
“뭐 푹 쉬고 있죠.”
[이젠 슬슬 일 해야지?]
“...”
그의 말에 도경은 머릿속에 구두를 벗어 재꼈던 서여사가 떠올랐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뭐야? 웬일로 의욕적이냐?]
“사람은 일하고 살아야지요.”
[어.. 어.]
작곡 외에는 게으른 모습을 고수하던 도경이 갑작스레 의욕을 내는 모습에 박진용의 떨떠름한 목소리가 폰에서 새어 나왔지만, 통화를 끊은 의욕 만땅인 도경은 자리에 일어나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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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네 잠시만요!”
후다다닥.
초인종 소리에 문 안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철컥.
“그... 매니저분이시죠? 안녕하세요. 박도경이라 합니다.”
문이 열리고 도경이 문밖의 손님을 맞이했다.
‘헉헉. 하마터면 늦을 뻔 했네.’
주르륵
살짝 덜 마른 머리 덕에, 이마 위로 습기 찬 물방울이 맺혔지만, 도경은 신경쓰지 않고 속으로 한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집으로 온다 해서 최대한 늦게까지 빈둥거리다 뒤늦게 준비를 마쳤는데 하마터면 초면부터 실수를 할 뻔했다.
“안녕하세요. 박도경 씨?”
담배 냄새와 피곤함에 찌든 눈.
해골이라 불릴 정도로 마른 남자가 도경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임시지만 앞으로 박도경씨와 함께 일할 매니저 차도한이라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한눈에 보아도 탐탁지 않은 표정의 차도한을 보며 도경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매니저로서 화사한 사람을 바란 건 아니지만 저리 산전수전 겪은 분위기를 지닌 사람을 자신에게 붙일 줄을 몰랐다.
“그런데 임시라는 말은?”
“아. 회사에서 아직 경험 있는 매니저를 구하지 못해서요. 당분간 불편하겠지만 참아주시길 바랍니다.”
“네. 그런데 말 편히 하세요. 저보다 나이 많아 보이시는데...”
“아닙니다. 이런 건 확실히 하는 게 좋습니다. 나중 매니저를 만날 때. 지인이거나 친해졌을 때 말을 놓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그래야 나중에 감정이 상하거나 하는 문제가 덜 생길 테니까 말이에요.”
“네...”
‘철저한 사람이네.’
딱 잘라 이야기 하는 차도한의 차가운 말에 도경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에게 적대적이지도 호감도 지니지 않은 사무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차도한의 행동에 어떤 반응을 보이기 힘들였기 때문이다.
“우선...”
힐끔.
차도한은 도경의 복색을 보면서 턱을 쓸어 올렸다.
“대 공사가 필요할 듯싶네요.”
“!?”
나름대로 외출을 위해 신경 써 보였지만 일반인 레벨.
그 어떤 개성도 느낄 수 없는 도경의 복색에 차도한이 한숨을 쉬며 눈빛을 빛내었다.
연예인에게 있어 복색은 매우 중요한 요소. 임시지만 매니저로서 편안함에만 치중되어 있는 도경의 모습은 용납할 수 없었다.
“의상은 회사에 있는 것을 빌려도 되지만... 일단은 샵 부터 먼저 들러 메이크업을 받아야 할 듯싶네요.”
“네? 굳이 그럴 필요가...”
“안 됩니다.”
박진용의 들은 이야기로는 사석에 PD 한 명을 만나 밥 한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고 했는데 샵에 가서 메이크업을 받자니 조금은 오버 아닌가 싶었지만 차도한 고개를 저었다.
“기존에 활동한 연예인이라면 상관없지만, 신인이 편한 복색으로 나가는 것은 어찌 보면 실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긁적긁적.
그의 말에 괜히 더 민망해진 도경은 어색한 듯 자신의 볼을 긁적거렸다.
‘전화로는 별거 아닌 것처럼 이야기했는데 조금은 어려운 사람인가 보네.’
K스타 이외에는 PD를 만나본 적 없는 도경으로서는 PD라는 존재가 얼마만큼의 권력과 영향력을 구사하는지. 잘 감이 오질 않는 실정이었다.
가르드에서는 편안하게 신분간의 격차라는 명확한 선이 있었는데 이곳 현대에는 명확한 선이 없다.
다양한 직종과 직급. 그리고 각자의 영역에서 발휘하는 힘이 다양한 곳이 현대였는데 사회인으로서 식견이 짧은 도경에게 있어서는 그런 사람들을 파악하는 능력이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가시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자신이 모르는 부분은 나대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을 허는 도경은 순순히 차도한의 말을 따랐다.
고분고분한 도경의 모습을 만약 박진용이 목격했다면 억울함에 소리 질렀을 것이다.
저벅저벅.
“......”
힐끔.
‘이 녀석이 말로만 듣던...’
자신의 걸음에 맞춰 옆을 걷는 도경을 보며 차도한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회사 내부에서는 쉬쉬하지만. 이 청년이 임원들과 박진용의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청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개 신인을 정진석PD를 만나게 하다니 이해할 수 없군.’
도경은 그저 Pd 한 명을 만난다고 생각하지만 차도한은 도경이 지금 누구를 만날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정진석Pd]
대한민국의 안방을 책임지며 수많은 다작에도 항상 성공적인 시청률을 걷어 들이는 굵직한 예능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자가 바로 정진석Pd다.
‘도대체 이 녀석에게 뭐가 있다는 거지?’
안 좋은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팀장급 매니저인 자신에게 신인 애송이 하나 맡기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정진석PD와의 만남을 주선하다니 솔직히 하나부터 열까지 쉬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노래 실력은 인정하지만 이 쪽 연예계가 실력이 전부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진 않을 텐데...’
매니저 경력이 이제는 10년 차.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왔고 빛나는 재능을 겪어 본 차도한으로서는 이제는 타인이 지닌 재능에 현혹되기에는 그는 너무도 많은 것들을 봐왔다.
‘비율은 꽤 괜찮지만, 너무 수수해. 나이도 26살이면 요즘 얘들하고 비교하면 많이 늦은 나이다.’
연예계와 대중들의 관심은 실력과 재능이란 빛으로 승부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곳이었다.
모든 것이 변수가 될 수 있었다.
실력과 재능과 상관없는 외모부터 시작해서 군대, 나이, 사생활 등등 사소한 것 하나로 뜨고 지는 곳이 연예인이었다.
그런 곳임은 자신의 기획사도 알 텐데 도대체 이 청년의 무엇을 보고 이런 시도를 하는지 호기심이 동했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털었다.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연예인과 매니저.
같이 거론 돼도 어색하지 않은 단어인 만큼 둘의 관계는 필수불가분의 관계이다. 매니저가 있어야 스타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고 스타가 있어야 매니저가 존재할 수 있다.
‘다 부질없는 일이지.’
서로 밀접한 관계지만 이만큼 부질없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 차도한의 생각이었다.
그것이 연예인과 매니저란 관계라 그는 정의 내렸다.
(어쩔 수 없었어요. 미안해요 도한이 형.)
욱신.
한 남성의 미소가 차도한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그의 가슴을 메슥거리게 했다.
옛 과거의 악연을 떠올린 그는 멍하니 과거의 상념에 빠져 있었다.
멀뚱멀뚱.
“저기 이 차에 타면 되나요?”
‘또 잡생각을 해버렸군.’
“아, 죄송합니다. 어서 안으로 타시죠.”
“네에...”
‘되게 불편한 사람이네.’
도경과 차도한의 첫 만남.
임시지만 그렇게 둘은 연예인과 매니저의 관계란 인연을 맞이한다.
(다음 화에서 계속)